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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연어 프로젝트
울창한 밀림을 연상케 하는 숲속 한가운데로 V-23 수직이착륙기가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크고 단단해 보이는 직사각형의 여러 건물들은 진한 녹색과 연두색이 뒤섞인 디지털 문양으로 어우러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존재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강력한 2개의 터보샤프트 엔진의 힘으로 돌아가는 12m의 저소음 로터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자 수직이착륙기가 정육면체 모양으로 된 중앙의 건물 옥상 헬리포트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두두두두두두두!
2023년도에 실전 배치된 이 틸트로터 형 수직이착륙기 V-23은 극단적으로 소음을 줄이는데 성공해 어지간해서는 마수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 기종은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위이이이이잉!
수직이착륙기의 로터가 서서히 멈추자, 옥상 중앙의 반경 15m에 달하는 바닥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수직이착륙기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이번에는 원형으로 뻥 뚫린 헬리포트 바닥 네 곳에서 바람개비처럼 생긴 티타늄합금 차단막이 중앙으로 곡선을 그리며 밀려들었다.
촤르르르륵!
차단막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에게 정확히 맞물려 들어가며 기묘한 소리를 내고는 굳게 닫혔다.
옥상의 헬리포트에서 아래층으로 수직이착륙기를 수직 이동시킨 승강기가 바닥과 수평을 이루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수직이착륙기의 옆문이 스르르 열리며 마루3호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자동으로 내려오고 있는 계단을 쳐다보지도 않고 훌쩍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쿵!
안드로이드 몸 위에 외부장갑을 장비한 탓에 제법 육중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쪽 게이트를 찾아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15m 쯤 걸어갔을까?
남쪽 게이트의 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안에서 전동지게차가 줄줄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전동지게차는 그의 몸 앞에 차례로 멈춰 섰다.
마루3호는 그중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전동지게차 앞으로 다가갔다.
전동지게차에는 원기둥 모양의 투명한 장치가 부착되어있었다.
그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투명한 원기둥 안으로 들어가 몸을 바로 세웠다.
바닥이 180도로 돌아가 그의 몸을 돌려놓자 원기둥 안에서 촉수처럼 생긴 반투명한 기계 팔이 쏟아져 나와 그의 전신을 붙잡아 고정시켰다.
위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좌우에 있던 전동지게차도 동시에 앞으로 약간 움직이더니 역시 촉수처럼 생긴 반투명한 기계 팔을 쏟아냈다.
얼핏 봐도 수십 개가 넘어 보이는 기계 팔은 삼면에서 달라붙어 제일 먼저 마루3호의 우락부락한 외부장갑을 깨끗이 분리해 가져갔다.
전신슈트처럼 생긴 날렵한 디자인의 내부장갑이 모습을 드러났다.
기계 팔은 쉬지 않고 이번에는 내부장갑을 마치 분해라도 하듯 조각조각 분리해냈다.
분필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몸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위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이번에는 마루3호의 머리를 향해 몰려들었다.
기계 팔은 순식간에 헬멧을 반쪽으로 분리해서 벗기고 반구(半球)형태의 장치를 단 기계 팔을 이용해 그의 머리를 위로 잡아 올렸다.
순간, 안드로이드 몸체가 좌우로 쫙 갈라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기계 팔의 이동에 따라 머리가 위로 올라가자 머리와 연결된 척추가 통째로 뽑히듯 따라 올라갔다
척추의 맨 아래 끝으로 피 같이 생긴 붉은 액체들이 줄줄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기계 팔은 마루3호의 머리와 척추를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가운데에 있는 전동지게차 뒤쪽으로 어느새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전동지게차가 다가와 대기를 하고 있었다.
기계 팔이 최대치로 쭉 늘어나며 그의 머리와 척추를 뒤쪽의 전동지게차 안에 탑재된 원기둥 모양의 장치 안으로 집어넣었다.
투명한 원기둥 안에는 목이 없는 안드로이드가 좌우로 몸이 살짝 벌려진 채 앉아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의 정교한 안드로이드였다.
치잉 찰칵찰칵 치잉 찰칵찰칵…….
마루3호의 머리와 척추가 안드로이드 몸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카메라 셔터를 연속으로 누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좌우로 벌어져있던 안드로이드의 몸체가 안쪽으로 조이듯 다가와 합체됐다.
-결합 100% 완료!
원기둥 모양의 장치 안에서 맑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마루3호의 머리와 척추가 안착된 안드로이드가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몇 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목을 옆으로 돌리고 허리도 돌려봤다. 발도 이상이 없는 지 빙글빙글 돌리며 확인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만족한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의 옆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연구원이 다가왔다.
“마루3호, 오늘도 미션을 훌륭히 완수했군요.”
“마루3호가 아니라 이서진입니다.”
“아! 미안해요. 버릇이 되어서…….”
말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남자연구원의 얼굴은 별로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서진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마루3호는 당연히 그의 이름이 아니다.
마루3호는 이곳, 안드로이드 연구소에서 제작된 최첨단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의 모델명이다.
비록 마수를 상대하다 팔다리와 하체를 잃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엄연히 자신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이 존재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마루3호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큰 실례다.
물론 서진을 마루3호로 부르는 사람이 안드로이드 연구소 안에 중년 남자연구원 하나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한 명의 인간이나 능력자로 보기보다는 마수를 처리할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또는 신무기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원들의 태도였다.
마루3호, 아니 서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한번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년 남자연구원은 그 모습에 놀라 빠르게 달려와 소리쳤다.
“오 박사님이 1번 회의실로 바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소.”
서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가 자신에게 존댓말로 말을 하긴 했지만 말하는 투는 영락없이 아랫사람에게 통보를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서진은 남쪽 게이트 안으로 들어와 길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열등감과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면서까지 계속 마수를 잡는 일을 지속해야하는지 고민이 됐다.
물론 이 일을 그만두면 자신은 바로 죽음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생활용 안드로이드만 해도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어 만들었고 유지비는 물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신의 재력과 능력으로는 안드로이드를 사는 것은커녕 유지비도 감당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마수를 잡아야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죽어야한다.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엿 같은 상황이었다.
연구소 연결 통로를 걸어가자 그를 스쳐 지나가는 연구원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자기들 딴에는 조심한다고 작게 쑥덕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아무리 생활용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지구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몸이다. 수백 미터 밖도 아니고 그저 수 미터에 불과한 거리에서 소곤대는 목소리 따윈 굳이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린다.
“저 사람이 오늘 A급 마수, 블랙 드레이크를 잡았데! 대단하지 않아?”
“사람은 무슨, 머리통과 척추밖에 안 남았는데…….”
“그래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능력자잖아?”
“능력자는 개뿔, 생식기도 안 달려서 오입질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사람취급이야? 저건 그냥 인공두뇌가 달린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마루3호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너 참 냉정하다. 마루3호가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
“그러는 너는 왜 마루3호라고 부르고 있어? 너 저치 이름도 모르지?”
“흐흠, 굳이 알 필요가 있나? 그냥 마루3호로 부르면 되지.”
“네가 그럼 그렇지.”
“근데 마루3호 이름이 뭐였지? 코드네임도 하나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서진은 두 명의 젊은 연구원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자 절로 주먹이 꼭 쥐어졌다.
벌써 죽었어야할 이 몸을 굳이 안드로이드로 개조까지 해가면서 목숨을 연명해야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2016년에 일어난 대격변 이후,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들과 차례로 벌인 ‘동북아 초인전쟁’만 아니었어도 자신은 이미 영면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아니 동북아 능력자전쟁의 참패로 차원게이트의 기득권과 권리를 몽땅 빼앗겨버린 후에 일어난 ‘동서 초인내전’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그가 이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뿌드득!
상아처럼 하얀 이빨을 뽀드득 갈며 서진은 참을 인(忍)자를 마음속으로 몇 번씩이나 써내려 가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1번 회의실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소의 1번 회의실은 도청방지장치가 되어있는 대형회의실로 민감하고 중요한 연구 과제를 다룰 때나 극비사항을 논의할 때 주로 쓰인다.
오 박사가 자신에게 1번 회의실로 오라는 말을 분명 뭔가 긴히 할 얘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철컹!
1번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오 박사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진 군, 어서 와요.”
“오 박사님.”
서진은 오희명 박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생각해보니 연구소에서 그나마 가장 자신을 인간답게 대접해주는 사람이 그녀인 것 같았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과학자 오희명 박사는 서진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20대의 꽃다운 나이로 미국에 건너가 나사에서 우주에서 사용할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녀의 성공담은 이미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소개될 정도로 세계인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녀가 가진 천재적인 재능에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오희명 박사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며 미국의 사교계를 평정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하얀 새치가 살짝 보이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싱글의 화려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에게 해외로부터 선물이 매일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고 한다.
“부르셨다고요?”
“응,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내가 불렀어.”
“무슨 일인데요?”
“그건 저들에게 직접 한번 들어보도록 해.”
“저들이라니요?”
서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1번 회의실과 연결된 VIP 휴게실의 문이 열리며 여섯 명의 남녀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랐다.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이미 국내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대한민국의 최고위 능력자들이었다.
물론 ‘동북아 초인전쟁’과 ‘동서 초인내전’을 통해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전(前) S급 능력자와 A급 능력자들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진 현재,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최고위 능력자는 이들이 분명하다.
철벽의 탱커 최강철
그레이트소드 강무호
매직딜러 원범수
신궁 오공유
아트엔젤 민연서
차원의 지배자 신성일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광하는 A급 능력자들이다.
특히 신성일은 대한민국 유일의 S급 능력자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진은 이런 대단한 능력자들이 대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신성일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서진입니다.”
신성일이 웃으면서 서진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서진은 S급 능력자인 신성일이 먼저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자 황송한 마음으로 마주 손을 가져갔다.
서진은 아공간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크기가 겨우 당구공 사이즈에 불과하다는 약점 때문에 F급 능력자로 평가 절하됐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F급 최하위 능력자가 감히 S급의 최상위 능력자와 마주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 작품 후기 ============================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 수정공지: '아트엔젤 민채원'의 이름을 '민연서'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