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3화 (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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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연어 프로젝트

“이서진입니다.”

“최강철입니다.”

“강무호입니다.”

“원범수에요.”

“오공유라고 합니다.”

“민연서에요.”

신성일이 먼저 물고를 트자 다른 능력자들도 서진에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눴다. 서진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그들의 손을 한 번씩 잡고 흔들었다.

“자, 다들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여기 앉아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네.”

“예.”

오 박사의 말에 모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 편한 데로 회의실 안에 있는 의자를 하나씩 골라 앉았다.

오 박사는 회의실 상석에 앉아 먼저 자신의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놓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덕분에 서진은 자신을 찾아온, 조금은 부담되는 손님들에게 금세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하자 오 박사는 신성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고 있던 신성일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서진을 향해 고정됐다.

“오늘 저희는 서진 씨에게 중요한 부탁을 하려고 왔습니다.”

“부탁이요? 여러분이 제게 부탁을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서진은 재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자신과는 상대도 안 되는 능력자들이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있습니다. 그것도 서진 씨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네에? 그게 뭔데요?”

“그것을 말하기 전에 먼저 비밀서약부터 해주세요.”

“기밀이라면 굳이 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서진은 굳이 누군가의 비밀을 들을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가급적이면 그런 불편한 얘기는 아예 듣고 싶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신성일은 그의 생각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이 얘긴 꼭 서진 씨가 들으셔야합니다.”

신성일은 서진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S급 능력자인 신성일의 모습은 정말 이상하고 위화감이 느껴졌다.

서진은 과연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음, 좋습니다. 비밀은 지킬 테니 그럼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신성일의 태도를 봐서 일단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이 자신에게 부탁할 것이라곤 자신의 목숨을 달라는 것 외에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와 척추밖에 남지 않은 이 알량한 목숨 따윈, 사실 대의명분만 확실하면 얼마든지 줘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서진은 굳이 그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눈만 껌벅거리며 쳐다보자 신성일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자신과 함께 온 동료들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다들 신성일과 눈을 마주치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이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낸 신성일은 이윽고 무거운 입술을 열어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토로했다.

“연어는 연어목 연어과의 회귀성 어류로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 연어요?”

서진은 신성일의 뜬금없는 연어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능력자들은 모두 하나의 극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연어입니다.”

“연어 프로젝트요?”

“네, 맞습니다. 연어 프로젝트.”

신성일은 서진의 말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장장 한 시간에 걸쳐 연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했다.

서진은 너무나도 친절한 신성일의 브리핑을 통해 연어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얘기를 듣고 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야했다.

“3개월 안에 대한민국이 마수들에 의해 점령된다는 게 사실입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90일정도가 될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 이 나라가 절단 날지도 모르겠네요.”

“주변국과 우방국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잖아요?”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동북아 초인전쟁을 치루면서 서로 철천지원수가 됐습니다. 아무리 다음 차례가 그들이라고 설득을 해도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라니?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말이 왜 안 됩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비기(祕技)이자 S급 스킬이 바로 회귀입니다. 물론 그걸 쓰는 순간 전 100% 죽을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세상에…….”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 신성일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시간회귀라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거기에다 회귀능력을 사용하면 신성일은 100% 죽는다고 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과거로 회귀시키려 하겠는가?

이 나라가 그에겐 정말 목숨을 걸 정도로 소중한 것일까?

서진은 도무지 신성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 좋습니다. 이 나라가 3개월 안에 망해버린다는 것도, 신성일 능력자가 누군가를 과거로 회귀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일단 그렇게 된다고 믿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접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저를 제외한 여기 다섯 명과 서진 씨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능력자를 과거로 회귀시킬 생각입니다.”

“저분들이야 A급 능력자니까 그렇다고 쳐도 저는 안드로이드의 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F급 능력자에 불과합니다.”

“아닙니다. 아공간 능력은 절대 F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서진 씨는 일반 아공간도 아니고 무려 영혼에 귀속된 아공간을 열 수 있지 않습니까?”

“아!”

서진은 그제야 신성일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신성일을 비롯한 이들 능력자는 서진이 가지고 있는 영혼에 귀속된 아공간이 필요해서 온 것이다.

“제 능력은 영혼에 귀속된 아공간을 여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크기가 겨우 당구공만 하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바로 이게 있거든요.”

신성일은 품속에서 파란 공 하나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영롱한 빛을 뿜어대는 파란 당구공처럼 생긴 그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친밀한 느낌이었다.

“그게 뭐죠?”

“레드볼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블루볼입니다.”

“어? 혹시 그거 제가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레드볼을 만든, 미국의 S급 마법사의 작품 아닙니까?”

“맞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S급 마법사인 멀더가 특별히 저를 위해 만들어 준 마법아이템입니다. 이 블루볼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m x 3m x 3m 인 아공간이 인챈트 되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서진은 블루볼의 기능을 확인하는 순간, 이들이 자신에게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짐을 날라줄 짐꾼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 영혼에 귀속된 아공간에 저 블루볼을 담아서 같이 회귀를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서진 씨를 비롯한 여기 있는 능력자 모두 막 각성한 초보능력자가 될 것입니다. 그때 블루볼에 들어있는 각자의 무기와 방어구, 슈트와 장비 그리고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마이키’를 꺼내주시면 됩니다.”

“과거라면 구체적으로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날인 7월6일 입니다.”

대격변은 지구곳곳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마수가 쏟아져 나와 수많은 사람이 죽었던 2016년 7월7일을 가리킨다.

서진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생각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10년이 다된 지금까지도 그날 일은 서진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trauma)을 남기고 있었다.

“저 블루볼에 들어있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많지는 않지만 당장 가서 쓸 현금, 골드바, 보석, 마수의 정수, 초능력시드 등이 있습니다.”

“제가 쓸 장비를 넣을 공간도 남아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연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 당연히 한 팀이니 일정공간을 배분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습니다. 기껏해야 무기와 전신슈트 정도를 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서진은 신성일의 말을 다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온전한 사람의 몸도 아니다.

마수에게 팔다리와 하체를 먹혀버리고 머리와 척추만 간신히 남아 안드로이드의 몸체에 기생하고 있는 반쪽짜리 인간도 못되는 형편이다.

신성일에게 회귀능력이 있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자신은 그보다 먼저 과거로 회귀시켜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상황은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에게 먼저 부탁을 해오고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는 한자성어처럼,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였다.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서진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연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진 씨 덕분에 드디어 연어 프로젝트의 큰 틀이 완성됐습니다. 하하하하!”

신성일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맑고 통쾌한 웃음을 시원하게 터트렸다.

서진은 신성일의 옆에서 축하를 하고 있는 나머지 능력자들의 얼굴을 한명씩 쳐다봤다.

미소를 띠고 있는 그들의 얼굴도 신성일과 크게 다르지 않는 기쁨이 엿보였다.

서진은 차례로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다 마지막으로 한때 짝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민연서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봤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역시 보기만 해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인이구나.’

서진은 비록 안드로이드의 몸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예전에 많이 좋아했던 감정까지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했다.

최강철이 민연서를 바라보는 자신을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연서는 탱커인 최강철과 연인사이로 보였다.

굳이 물어서 확인해보지 않아도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서진은 신성일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런데 연어 프로젝트의 디데이는 언제입니까?”

“지금부터 정확히 한 달 뒤, 과거로 회귀하면서 연어 프로젝트는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겁니다. 아니 과거로 회귀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셈인가요?”

신성일의 헷갈리는 말에 듣자 서진은 온갖 상념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들어 머릿속을 복잡해졌다.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오 박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서진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작게 속삭였다.

“서진 군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그저 한 달 동안 편하게 쉬고 있어. 앞으로 마수 잡는다고 출동할 필요도 없어.”

“고맙습니다. 오 박사님.”

“대신 회귀에 성공하면 과거의 나에게 내가 준비한 선물 하나를 꼭 좀 전해줬으면 좋겠어.”

“네? 아! 네. 그렇게 하죠.”

오 박사가 연어 프로젝트를 직간접적으로 돕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과거의 천재 오희명에게 미래의 천재 오희명이 서진을 통해 전달하려는 선물!

그것이야말로 오 박사가 생각해낸 신의 한수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이날부터 신성일을 비롯한 여섯 명의 능력자는 오 박사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안드로이드 연구소의 VIP룸을 통째로 빌려 썼다.

대외적으로는 오 박사가 개발 중인 전신슈트의 완성을 돕는다는 이유로 머물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극비프로젝트를 착착 진행시켰다.

여섯 명의 능력자는 오 박사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비밀리에 모아놓은 각종 데이터와 고급정보들을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마이키’에 담았다.

그리고 회귀 후 꼭 필요한 장비와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와 철저히 각자의 공간에 분배해 정리해놓았다.

덕분에 블루볼 안의 공간은 어느새 99%가 뭔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중요도에 따라 기존의 것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여섯 명의 능력자들은 가끔 연구소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걸고 중대형 마수들을 처리하고 돌아왔다. 한 번씩 밖으로 나갈 때마다 그들은 처참한 몰골로 변해서 돌아왔다.

그러고 나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연어 프로젝트 외에는 이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하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진은 자신이 과거로 회귀하더라도 이들의 계획에 큰 도움은 줄 수 없는 최하급 능력자라 그저 무기력한 눈빛으로 비통해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연구소의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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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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