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5화 (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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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연어 프로젝트

다들 바쁘게 움직이자 서진도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을 채워놓은 장비를 꺼냈다. 오 박사가 혹시 모른다며 챙겨준 최신형 안드로이드 전투로봇과 그 위에 입혀놓은 전신밀착형 방어복, 내부장갑에 해당하는 전신슈트와 튼튼한 외부장갑을 차례로 살펴봤다.

자신의 전용무기인 레드볼을 요요처럼 움직여 상태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을 관리해줄 인공지능 ‘메딕’과 관리와 수리 및 보관을 해줄 캡슐의 상태를 점검했다.

“모든 장비와 물품의 상태가 양호하다.”

여섯 명의 능력자가 가져갈 모든 장비와 물품의 확인이 끝나자 그들은 처음에 쌓아놓은 방식 그대로 자신의 짐을 차례차례 조심스럽게 잘 쌓아올렸다.

신성일은 그들이 과거로 회귀하면 사용할 현금, 골드바, 보석, 마수의 정수, 초능력시드 등이 가득담긴 배낭을 맨 위의 빈 공간에 올려놓더니 블루볼을 꺼내 서진에게 넘겼다.

“이건 왜?”

“어차피 과거로 회귀하면 서진 씨가 쓸 블루볼이잖아요. 지금부터 미리 적응하라고 드리는 거예요.”

“아!”

서진은 신성일을 향해 고개를 한번 꾸벅이고는 블루볼을 손에 쥐고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가로, 세로, 높이가 정확하게 3m X 3m X 3m 인 블루볼의 아공간에 여섯 명의 능력자가 쌓아놓은 모든 장비와 물품을 한꺼번에 담았다.

“슬슬 시작할까?”

쿵!

오 박사의 말에 서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제3연구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신성일을 향했다.

차원의 지배자 신성일

대한민국 유일의 S급 능력자이자 여섯 명의 능력자를 과거로 회귀시켜 대한민국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할 영웅이었다.

서진을 포함한 여섯 명의 능력자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신성일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민연서를 시작으로 신성일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민연서는 아예 신성일의 가슴에 깊이 파묻힌 채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다.

최강철도 이번만큼은 민연서의 행동을 이해해주기로 했는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고 그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강무호와 원범수가 신성일의 뒤에서 그를 안으며 비통해하자 오공유가 반대편 어깨로 가서는 자신의 이마를 대고 어린아이처럼 흑흑거렸다.

서진은 민연서의 뒤에서 최강철의 어깨와 오공유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들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모두를 한꺼번에 감싸 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왠지 안타까웠다.

그는 자신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자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매일같이 마수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혈투를 벌이며 이미 자신은 어느 정도 인성을 상실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두 눈에서 아직도 이렇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오늘 다시 되찾은 기분이었다.

“내가 연어 프로젝트 시작하자고 그랬지, 이런 청승떨라고 그랬어? 다들 제자리에 가서 앉아.”

“네.”

“예.”

오 박사의 말에 여섯 명의 능력자는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들은 원뿔 모양의 ‘연어호’ 안으로 차례차례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여섯 명의 몸 사이즈를 정확하게 미리 재어놓았는지 그들의 어깨가 서로 살짝 맞닿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성일이가 알아서해.”

“오 박사님, 감사합니다.”

신성일이 오 박사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이자 오 박사는 그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한번 포옹해줬다.

서로의 따듯한 체온이 전해지며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정이 흘렀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어. 언제 죽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해. 너는 네 소신에 따라서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을 한 거야.”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00% 죽는다고 했는데 그건 실제로 겪어봐야 아는 일이니까 최후의 한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마.”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으니 나는 이제 그만 나가볼게.”

“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오 박사는 냉정하게 신성일 앞에서 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정이 들대로 든 서진의 얼굴을 힐끗 한번 쳐다보자 서진은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한번 흔들었다.

얼핏 그녀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눈물이 분명하다.

오 박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더니 차폐문을 차례로 내려 제3연구실을 완전히 폐쇄해버렸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제3연구실 안에 있는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신성일은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 하며 인터폰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지금 막 정부에서 연락이 왔어.

인터폰에서 오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부에서요?”

-그래. 당장 연어 프로젝트를 중단하라는 거야.

신성일은 청와대에서 연락이 온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청와대가 끝까지 비밀을 지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이 나라 대통령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미국에서 뭔가 눈치를 채고 정부에 당근을 제시한 모양이야.

“미국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겠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비슷한 제안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어찌됐던 빨리 결정해.

“결정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어떤 당근을 제시해도 결국 조금 빠르게 가느냐 아니면 조금 느리게 가느냐의 차이일 뿐인데…….”

-그걸 혼자 결정할 수 있겠어?

“으음, 아닙니다. 일단 팀원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오 박사의 말을 들어보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연어 프로젝트에는 자신의 목숨만이 아닌 다른 여섯 명의 고결한 희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찌됐던 난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뗐어. 그랬더니 연구소로 특수부대를 투입하겠다고 하더라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에서 15분이야. 그 안에 어떻게든 잘 결론을 내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신성일은 수화기를 쥔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고 연어호로 다가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들 내가 통화하는 것 들었죠?”

“예.”

“아니요.”

신성일의 말에 다섯 명은 ‘예’라고 대답했다.

오직 그 깊은 내막을 모르는 서진만 영문을 몰라 ‘아니요.’라고 대답한 것이다.

신성일은 서진을 한번 쳐다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정부에서 연어 프로젝트를 당장 멈추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정보가 새나간 것 같아요. 미국, 일본, 중국에서 정부에 당근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우리 투표로 결정하도록 합시다.”

“저들이 제안한 당근이면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까?”

최강철이 신성일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신성일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걸 지금 몰라서 나한테 묻는 겁니까? 이미 자력으로는 이 나라를 지킬 능력이 안 되는 것 다 알잖아요.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몇 년 안에 다른 나라도 전부 아프리카와 남미처럼 되어 버릴 겁니다. 시간은 많이 못 드립니다. 딱 3분만 생각해보시고 투표하도록 합시다.”

신성일은 그들에게 정확히 3분을 줬다.

아무래도 그 이상 시간을 주게 되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진은 신성일의 말에 그동안 자신이 너무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이제는 세상이 얼마나 참혹하게 변했는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다.

과거로 회귀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연어호’에 타고 있는 다섯 명의 능력자들은 각자 생각에 잠겨들었다.

과연 정부가 타국에서 받은 당근은 무엇일까?

그들이 제시한 당근이 과연 이 나라를 다시 회생시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하고 머리를 쥐어짜 봐도 부정적인 결론만 도출되고 있었다.

이미 이 나라는 썩을 대로 썩었다.

정치는 동서의 벽과 친일의 늪에 빠져 민족정기를 갉아먹는 구한말의 당파싸움을 보는 듯 했다. 공무원은 보신과 사리사욕에 급급했고 고위 관리들은 벌써 미국과 유럽으로 도망가 있었다.

경제는 중국에 꽉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온갖 불공정한 협정과 계약에 끌려 다녔고, 대기업은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국부를 등골까지 뽑아먹으며 나라의 근간을 썩게 만들고 있었다.

사회는 쓸데없이 경쟁만을 부추기는 통에 이미 지독한 이기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무관심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정보는 미국에 예속되어 너도 나도 나라의 비밀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팔아넘겼다.

그나마 재산이 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단 외국으로 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동북아 초인전쟁’과 ‘동서 초인내전’으로 인해 가뜩이나 모자란 능력자들을 능력자법이라는 황당한 법을 만들어내 미국과 유럽등지로 떠나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능력자 엑서더스’라고 부르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수와의 전쟁을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던 고위 관리들은 그 누구 한명 이 땅에 살고 있지 않았다.

정말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호국(護國)선열(先烈)들이 알게 된다면 당장 무덤에서 튀어나와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3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투표를 할 시간입니다.”

신성일의 말에 서진이 손을 들고 물었다.

“투표의 결과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간단합니다. 모두 찬성하면 모두 가는 겁니다. 설사 반대하는 사람이 나와도 찬성하는 사람만 과거로 회귀하게 됩니다.”

“아!”

서진은 신성일의 말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신성일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만큼 이 나라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말이겠지.’

투표가 시작됐다.

차례차례 손을 들어 찬성과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난 찬성.”

“강행합시다.”

“당연히 회귀해야죠.”

“하하하, 이쯤 왔으면 이제 못 먹어도 고(go) 아닙니까?”

“전 찬성이에요.”

“저도 과거로 회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어 프로젝트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졌다.

놀랍게도 아무도 반대의사를 내지 않은 것이다.

그 모습에 신성일은 크게 감동했다.

“모두 고맙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제 연어호의 문을 닫고 여러분을 과거로 회귀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신성일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그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자신은 그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쓰고 죽으면 그만이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여섯 명의 능력자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이제부터 온갖 역경과 위기를 극복하며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어호에 타고 있는 여섯 명의 능력자들은 신성일의 절을 받으며 과연 자신들이 그에게 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다.

최소한 서진만큼은 그의 절이 황송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역할을 포터(짐꾼)라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끼릭 끼릭 철컥!

신성일은 곧바로 연어호의 문을 닫은 후, 레버를 돌리고 버튼을 눌러 이중으로 단단히 잠갔다.

“지금부터 회귀 스킬을 사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잠시 후, 대격변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인 2016년 7월6일의 과거로 회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안녕과 무운을 빕니다.”

신성일의 목소리가 연어호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여섯 명의 능력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옆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손과 손을 맞잡자 그들은 원을 그리며 완벽한 하나가 됐다.

웅웅웅웅웅…….

신성일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막대한 마나를 한꺼번에 폭발시키듯 연어호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자신의 근원의 힘까지 모조리 뽑아 올렸다.

연어호가 그 엄청난 마나의 폭포수에 크게 진동을 하며 묘한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신성일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S급 스킬 ‘회귀’를 사용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퍼부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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