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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 회귀, 그 새로운 시작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스텔스 & 클로킹 모드로 들어갑니다.”
“혹시 어디로 가버리려는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전 항상 이서진님이 계시는 곳을 기준으로 반경 10m 안에 있을 겁니다.”
“알겠어.”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그래.”
서진의 말이 끝나자 마이키는 스스로 허공에 몸을 띄우더니 스텔스 & 클로킹 모드로 들어갔다.
마이키는 마치 허공에 녹아들어가듯 투명하게 변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놀란 서진이 급히 마이키를 찾았다.
“마이키, 너 거기 있어?”
“네, 바로 옆에 있습니다.”
서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만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이 마이키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메딕’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는 블루볼을 다시 잡고 안에서 캡슐을 꺼냈다.
궁!
매끄러운 곡선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묵직한 캡슐이 그의 방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검은 캡슐 안에는 자신이 사용하던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이 대기모드로 얌전히 누워있었다. 누군가 캡슐을 훔쳐본다면 아마 사람이 관속에 누워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진은 일단 버튼을 눌러 투명한 강화금속으로 만들어진 캡슐의 덮개를 열었다.
푸쉬이이이익!
적당한 기압으로 조정된 캡슐의 덮개가 열리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덮개가 완전히 열리자 그는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캡슐 안쪽에 있는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퉁!
그러자 하얀 공 하나가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하얀 공은 팽그르르 돌다가 멈추더니 이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메딕!”
“네, 부르셨습니까?”
“처음 보는구나. 내가 누군지 알지?”
“버튼을 누르실 때 스캔을 통해 이미 확인했습니다. 마스터 서진님이십니다.”
“맞아. 그냥 편하게 마스터라고 불러.”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스터.”
서진은 마이키와는 달리 청아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나긋나긋한 메딕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네 마스터면 어떤 명령을 내려도 따르게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폭을 원하셔도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자폭이라니…….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
“호호호, 제 의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메딕은 오 박사가 장담한대로 뛰어난 인공지능이었다. 그래서 농담도 제법 할 줄 알아 대화하기가 무척 편했다.
“메딕,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지?”
“저는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의 케어와 메디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교육, 스케줄관리, 비서, 검색 등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혹시 재정 관리나 재테크도 가능한가?”
“기본적인 재정 관리 프로그램과 재테크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식투자나 선물투자 같은 것도 가능해?”
“그건 프로그램이 없어서 불가능합니다.”
“그럼 프로그램만 있으면 가능한 거야?”
“네, 그렇습니다. 업그레이드만 된다면 제가 못할 것도 없지요.”
메딕은 생각보다 자신감이 대단했다.
아무래도 오 박사가 만든 인공지능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서진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꼼수를 쓰기로 결정했다.
“마이키!”
“네, 이서진님.”
“여기 메딕과 소통이 가능하지?”
“네, 그렇습니다.”
마이키의 대답에 서진의 입 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혹시 메딕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어?”
“하드웨어는 곤란합니다만 소프트웨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정보획득 및 분석, 검색, 도감청, 해킹, 주식투자, 선물투자, 재테크에 관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해.”
“제가 현재 장착해 사용하고 있는 최신버전은 곤란합니다. 하지만 구버전이라면 얼마든지 다운로드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외에도 혹시 메딕이 요청하는 프로그램이나 요청이 있으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좀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고마워!”
“천만에요.”
마이키는 의외로 선선하게 서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메딕!”
“네, 마스터.”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최대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해.”
“네, 마스터.”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 명령을 수행할 때 혹시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마이키에게 받도록 하고, 막히는 것이 있으면 조언을 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이키가 그의 명령을 따르면 굳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직 서진이 미성년자라 명령을 따를 수 없다니 이렇게라도 꼼수를 써서 우회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은 쓸 일이 없으니 인공지능 메딕을 이런 식으로 활용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이키와 자신의 사이에 메딕이 있으면 굳이 일일이 마이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메딕이 마이키에게 물어보고 알아서 걸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가 끝나고 요청하신 프로그램을 설치했습니다.”
메딕도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이라서 그런지 다운로드와 프로그램 설치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마이키, 메딕, 일단 상황을 설명해줄 테니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좀 해줘!”
“알겠습니다. 이서진님.”
“네, 마스터.”
마이키와 메딕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참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소통을 해야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금세 눈치챌 텐데…….”
서진의 말에 마이키가 즉시 대책을 내놓았다.
“나노로봇을 귀에 부착시켜드리겠습니다. 귀 뒤쪽에 작은 점의 형태로 고정을 해놓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마이키의 말이 끝나자 메딕이 경쟁적으로 대안을 내놓았다.
“원하시면 귓속에 메디봇을 이식해드리겠습니다.”
“나노로봇과 메디봇이라……. 뭐가 좋지?”
서진은 잠시 둘 사이에 고민했다.
하지만 메딕의 추가설명이 바로 이어지자 그는 메디봇을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나노로봇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도감청과 감시에 특화된 스파이 나노로봇일 뿐이다. 그러나 메디봇은 귓속에 이식을 해놓으면 대화는 물론 대상의 건강과 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또 관리할 수 있다는 놀라운 장점이 있었다.
“그럼 메디봇을 귓속에 이식하겠습니다.”
“응.”
서진은 메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딕은 즉시 하얀 몸체를 이동시켜 그의 왼쪽 귀에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금세 떨어졌다.
“이식이 끝났습니다.”
“뭐? 벌써?”
“네, 메디봇은 나노로봇보다 크기가 훨씬 작습니다. 그러니 굳이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지요.”
“그런가?”
메딕의 자신만만한 말에 마이키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서진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나노로봇도 부착하실 것을 조언드립니다.”
“으음,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나노로봇을 부착해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시 뭐든지 끼워 팔면 쉽다.
서진은 자신의 오른쪽 귀 뒤에 나노로봇을 부착하는 조건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나노로봇을 부착하게 됐다.
이렇게 해놓으면 마이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두 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알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도 나노로봇을 부착한 의미는 차고도 넘쳤다.
“마스터, 기왕이면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메디봇도 이식하시죠.”
“아, 생각해보니 그것도 좋겠다. 두 분의 건강도 지켜드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네. 메딕, 즉시 이식해드려.”
“네, 마스터.”
메딕이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서진은 자신의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마이키와 메딕이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안방으로 날아갔다.
이만수와 손예진은 피곤했는지 속옷도 걸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이키와 메딕은 둘의 양쪽 귀에 차례로 나노로봇을 부착하고 메디봇을 이식했다.
마이키와 메딕이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서진의 방으로 돌아왔다.
서진은 둘을 크게 칭찬하고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잠갔다.
-이서진님, 잠시 나노로봇을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잘 들리십니까?
“응, 잘 들려.”
-마스터, 저도 테스트를 해볼게요. 잘 들리세요.
“끝내주게 잘 들리네.”
나노봇과 메디봇은 성공적으로 부착 및 이식됐다.
“이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설명할 테니 잘 듣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부탁해.”
-네, 이서진님.
-네, 마스터.
마이키와 메딕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서진은 마이키와 메딕에게 앞으로 일어날 집안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아버지 이만수를 속이고 이용해먹으려는 놈들에 대해 신나게 욕을 섞어 까댔다.
마이키와 메딕은 서진이 하는 말을 들으며 수백, 수천가지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가며 각자 나름대로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이렇게 쫄딱 망하게 된 거야.”
-정말 암울한 얘기군요.
-참 슬픈 스토리에요.
마이키와 메딕은 일단 서진을 위로했다.
서진은 그동안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했던 집안의 흑역사를 털어놓게 되자 속이 다 후련했다. 역시 비밀을 가슴속에 묻고 사는 것은 참 피곤한 짓이다.
“자, 이제 마이키와 메딕의 생각을 좀 들어볼까?”
서진은 마치 상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마이키와 메딕을 쳐다봤다. 그리고 보니 그는 지금 어린아이가 맞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키와 메딕의 조언이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서진님, 먼저 아버지 이만수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자들에 대해 상세한 조사와 감시가 선행되어야합니다. 이들의 약점과 비리를 알아내고 적절히 사용해서 접근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노봇의 살포가 필수적이네요.
“좋은 생각이군.”
역시 마이키였다.
듣기만 해도 속이 후련한 직관적인 방법이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확인하고 선제적 타격을 통해 피해자체를 아예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메딕의 생각은 어때?”
-죄송합니다만, 문제의 핵심이 외부적인 것보다 내부적인 요인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결국 마스터의 아버지 이만수님의 쉽게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물러터진 성격에 있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아예 약점을 내보이지 않고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아무리 저들이 찾아와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려 해도 넘어가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하지만 아버지 성격이 원래 저런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어?”
서진은 메딕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입맛이 개운하지가 않고 무척 썼다. 문제의 핵심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메딕의 말대로 아버지 이만수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왜 방법이 없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만수 정신단련 프로젝트’의 실행을 허락해주십시오.
“뭐? 이만수 정신단련 프로젝트?”
-그렇습니다. 홀로그램을 통해 바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진은 이어진 메딕의 잘 짜인 브리핑을 듣고 깜짝 놀랐다.
메딕의 말 그대로 정말 참신하고 획기적인 정신단련 프로젝트였다.
“좋아. 메딕! 정신단련 프로젝트의 실행을 허락한다.”
-마스터, 고맙습니다.
“아니야. 오히려 내가 고맙지. 우리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수님은 머지않아 믿음직한 가장, 사랑스런 남편, 든든한 아버지, 능력 있는 남자로 변화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길 기원하지.”
서진은 메딕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이키는 메딕의 브리핑을 듣고 분석하면서 살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메딕이 일을 풀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신성일을 비롯한 능력자들에게 최고, 최강의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지내왔는데 지금은 그 자부심이 조금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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