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1화 (11/225)

0011 / 0225 ----------------------------------------------

제3장 - 정신단련 프로젝트

-네가 믿건 안 믿건 난 너를 도와주러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뭐 하러 이렇게 구구절절 너와 대화를 하고 있겠느냐? 그냥 벼락을 내려서 널 죽여 버리고 네 아내가 젊고 능력 있는 남자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면 그만인데…….

“그건 안 됩니다. 제 아내가 젊은 놈과 재혼을 하다니요? 제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럼 서진이는 어떻게 하고?

“서진이가 다른 놈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만수는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했다.

-그럼 어떻게 할래? 앞으로 내말 잘 듣고 따라올래? 아니면 그냥 조용히 병신을 만들어 줄까?

“병신을 만들다니요? 이거 너무 섭섭합니다. 저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 절 병신을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병신이 되기는 싫은가 보구나. 앞으로 내 말 잘 듣고 따라올 거냐?

당장 ‘네!’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던 이만수는 급히 심호흡을 하면서 일단 한번 분위기를 끊었다. 왠지 백화점에서 미리 세일용 상품을 따로 주문해 가져다놓고는 마치 백화점의 유명메이커가 세일하는 것처럼 광고를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쓸데없이 엉뚱한 곳에 촉이 발달한 이만수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무슨 말을 듣고 따라오라는 거예요?”

-너의 몸과 마음을 개조하려고 그런다. 몸은 아주 건강해서 30분 아니 1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고 마음은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게 해주겠다. 또한 내 말을 잘 따라오면 네가 좋아하는 돈을 상으로 주도록 하지. 물론 주식을 통해서 가끔은 떼돈도 벌게 해주겠다.

“그 말씀 진짜죠?”

이만수는 1시간을 견딜 수 있는 변강쇠로 만들어주고 떼돈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그만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아무리 촉이 좋아도 기본적으로 귀가 엷고 유혹에 약한 천성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 법인가보다.

-당연하지. 내말만 잘 들으면 넌 누가 봐도 성공한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다.

“헤에, 성공한 멋진 남자요?”

-그렇다. 이제 슬슬 회가 좀 동하느냐?

“네, 그렇습니다. 전 앞으로 어르신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따르겠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 둘 서로 합의 본거다?

“물론이죠.”

이만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껄껄 소리를 내어 웃었다. 표정만 보면 마치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지금 네 상태 얼마나 처참한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보여주겠다. ‘상태창’이라고 말해 보거라.

“상태창이요?”

팟!

순간 이만수의 눈앞에 온라인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태창이 홀로그램의 형태로 허공에 떠올랐다.

======

상태창

이름: 이만수

능력: 절대자의 조력

직업: 십장생건설회사 배관공

스탯: 근력 9, 민첩 7, 체력 6, 지력 5, 의지 1, 결단력 1, 정력 1

스킬: 간파

은행잔고: 3000 만원

======

“억, 이게 뭡니까?”

-넌 상태창도 모르느냐?

“설마 이게 그 온라인게임에서 나온다는 상태창입니까?

-맞다. 네 지력이 너무 떨어져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손을 좀 봐놓았다.

“가,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 먼저 스탯을 살펴봐라. 건강한 성인 남성의 평균 스탯을 10으로 잡았다. 그런데 넌 이게 뭐냐? 정말 허접하구나.

“그, 그러네요.”

이만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스탯이 건강한 성인 남성의 평균도 못 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정력이 겨우 ‘1’이라는 사실에 당장 제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게 바로 지금의 네 모습이다. 적나라하지? 의지와 결단력이 1이니 맨날 줏대 없이 남의 말만 듣고 쫓아갈 수밖에……. 거기에다 정력이 1이 뭐냐? 너 토끼냐?

“크으…….”

이만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의 상태는 정말…… 시궁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앞으로 내 말만 잘 들으면 빠르면 한 달 늦어도 세달 안에는 변강쇠라는 소리를 듣게 해주마.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내겐 능히 너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단(靈丹)도 좀 있고…….

“영단이요?”

-응, 영단! 너도 소싯적에 무협지 좀 읽어봤겠지?

“네, 그렇습니다. 설마 가지고 계신 영단이라는 것이 제가 생각한 바로 그 영단입니까?”

-맞다. 바로 그 영단을 말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바로 영단을 복용하면 넌 혈맥이 터져서 바로 즉사한다. 천상의 신비한 힘이 담겨있는 영단을 복용하려면 그만한 그릇이 되어야한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사실 처음 듣는 얘기다.

무협지에서는 그냥 영단만 먹으면 끝난다.

내공이 오갑자인지 십갑자인지 마구 늘어나고 순식간에 탈태환골해서 짱 강하고 멋진 초콜릿 복근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만수는 은근히 윽박지르는 말투에 눌려 그냥 또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무, 물론입니다.”

-난 네가 필히 이 영단을 복용해서 고개 숙인 남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할 수 있겠느냐?

“당연하죠.”

-좋아. 그럼 당장 오늘부터 헬스장을 끊어서 운동을 시작하도록 하자.

“네? 헬스장이요?”

-그럼 집에서 운동할래?

“아, 아닙니다. 헬스장 끊겠습니다.”

이만수는 바로 그의 말을 이해했다.

이 시대에 어디 산으로 가서 운동할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헬스장을 끊어야했다.

“그런데 어르신, 능력에 ‘절대자의 조력’이라는 것이 있고 스킬에 ‘간파’가 있는데 이건 뭡니까?”

-임시로 네가 받은 능력이다. 절대자의 조력이 누구에게로부터 오는지는 이미 눈치 챘겠지?

“아, 어르신을 말하는 것이군요.”

-그렇다. 그럼 간파라는 스킬만 말해주면 되겠구나. 간파는 말 그대로 사람의 말과 행동 또는 의도가 진짜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스킬이다. 지금의 네 몸으로는 도저히 쓰지 못하는 스킬이라서 이 또한 당분간 내가 옆에서 도와주도록 하겠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천만에. 그럼 지금 당장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도록 하자.

“헉, 네, 알겠습니다.”

이만수는 그제야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로 서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두 손으로 사타구니 사이를 급히 가리자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변했다.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워 할 것 없다. 번데기만한 놈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변강쇠가 될 수도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의지가 부족해서 그것을 잡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것이니라.

“네, 어르신.”

-앞으로 사람 앞에서는 나를 찾지 마라. 내게 물어볼 것이 있거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나를 찾으면 된다. 물론 난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또한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네게 조언을 해주도록 하겠다. 알겠느냐?

“네, 어르신. 고맙습니다.”

-어서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너라. 지갑도 잊지 말고!

“예.”

이만수는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어르신이라고 부르면서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이 확실히 100% 믿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서진은 메딕의 깜찍한 연기에 혀를 내둘러야했다.

“메딕, 너 참 대단하다.”

-뭘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호호호!

“그런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고 아버지의 신체능력이 그렇게 빨리 좋아질까?”

-물론이죠. 메디봇을 이용해 뇌에서 엔돌핀을 방출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 마이키를 통해서 전달받은 포션을 조금 사용하면 됩니다.

“아! 포션백이 있었지.”

서진은 그제야 메딕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포션만 있다면 아버지가 아무리 무리를 하거나 거칠게 운동해도 상관없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져도 바로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장 포션을 쓰면 이만수의 탈난 위와 과민성대장증상 정도는 단박에 고치고 바닥을 기고 있는 몸의 상태도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공짜로 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

처음에는 고맙게 생각을 하겠지만 나중에는 당연히 받아야할 자신의 권리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메딕은 처음부터 포션을 주지 않고 처음부터 이만수가 헬스장을 끊고 스스로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좀 힘들겠지만 엔돌핀과 포션, 돈과 주식이라는 당근과 벼락으로 알고 있는 정전기라는 채찍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이만수는 잘 조련 말처럼 튼튼하게 변할 것이다.

서진은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을 나서는 이만수를 보며 메딕의 정신단련 프로그램이 부디 대성공을 거두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 *

2001년 3월4일, 서초동 스타유치원.

오늘은 스타유치원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신입생들이 연한 브라운색 상의와 회색의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하나둘씩 스타유치원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너도 나도 반짝거리는 구두와 멋진 넥타이를 매고 뽐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또 의젓해 보이기도 하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약간의 두려움과 또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모여든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다.

서진도 스타유치원에서 제공해준 동계원복을 깨끗하게 다려 입고 손예진의 손을 꼭 잡은 채 강당으로 들어섰다.

‘제기랄, 더럽게 오래 걸렸네.’

서진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사실은 지루해 뒈질 뻔 했다.

동심이고 지랄이고 그냥 다 엎어버리고 가출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들었다. 그걸 참느라고 혀를 깨물다 피를 낸 게 몇 번이나 됐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할 김사랑 선생님이에요.”

온갖 예쁜 척, 귀여운 척을 다하면서 과장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유치원교사!

‘웰컴투더정글(Welcome to the Jungle!)이다.’

이제 막 세상 밖, 아니 정글로 기어 나온 햇병아리 유치원교사 김사랑의 풋풋한 모습을 보자 서진은 예외 없이 그 특유의 썩소를 날려줬다.

아마 그녀는 곧 이 세상이 참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 꼬맹이들과 2년 동안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끔찍하구나.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잘 보냈다는 소리를 듣지? 정말 돌아가시겠네.’

회귀하기 전 나이가 서른에다 회귀해서 다시 삼년을 보낸 서진은 앞으로 유치원을 다닐 생각에 치가 떨려왔다.

아무리 겉은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속은 서른세 살이나 된 서진이 유치원생활 따위가 재미있거나 흥미로울 리 없었다.

그나마 마이키와 메딕이 실시간으로 아버지 이만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중계해주거나 한가한, 양정도 같은 악의 축들의 비리와 근황을 보고해주고 있어서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다.

“자, 이제 반배정이 끝났으니 모두 각자의 반으로 들어가도록 하세요.”

“네, 선생님!”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에 목청이 터지게 빽빽 소리를 지르며 대답하고 교실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서진은 힐끗 칠판에 붙어있는 반배정표를 한번 확인해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서진아, 어서 가봐. 너 샛별반인거 알지?”

“네, 알아요. 그럼 어머니 먼저 들어가세요.”

“야, 어머니가 뭐냐? 예쁘게 엄마라고 불러야지.”

“네, 엄마.”

손예진은 서진이 보통아이들과는 달리 아주 영특하고 어른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아파 난 자식이 유치원에 와서 첫 수업을 들어간다고 생각하자 절로 긴장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서진은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손예진을 향해 한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줬다.

그제야 손예진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강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앤가? 왜 저렇게 걱정을 하시지? 허어! 이런, 나 애 맞구나.’

서진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보호자, 아니 감시자에 가까운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자 확실히 아까보다는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교실로 가는 길은 유치원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쫙 깔려있어서 일부러 길을 잃어버리려고 해도 잃어버릴 수가 없었다.

‘샛별반’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교실로 들어가자 긴장된 표정을 한 꼬맹이들이 한 가득이었다.

빠르게 눈으로 한번 훑어 숫자를 세어보자 자신을 포함해 정확히 25명이나 됐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