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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 정신단련 프로젝트
서진은 잠시 장독대를 쳐다보더니 유소라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넌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 괜히 이놈하고 엮이지 말고.”
“응. 고마워.”
유소라는 서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급히 교실 안으로 달려갔다.
서진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메딕, 저놈 많이 다쳤어?”
-아닙니다. 벤치 모서리에 이마가 찍혀서 좀 부었을 뿐입니다.
“피는 안 나오지?”
-네, 전혀 안 나옵니다.
“우아아아아앙!”
하지만 장독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니 계속 비명소리를 내며 땅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김사랑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슨 일이니?”
“서진아! 장독대 왜 그래?”
“…….”
“어머 얘가 다쳤네. 이마가 부었어. 어디에 부딪쳤니?”
“쟤가 날 때렸어요.”
“누가? 서진이가?”
“네, 서진이가 때렸어요. 전 여기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 자리 전세 냈냐고 하면서 저를 확 밀었어요.”
김사랑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서진이 좀 시크한 면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누굴 때릴 애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의 옆으로 나이 지긋한 스타유치원 부원장 김경미가 다가왔다.
“어머 이를 어째? 장산그룹 손자이신 장독대 도련님이 다치셨네.”
“네에?”
김사랑은 부원장이 장독대를 부르는 호칭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오십대 초반에 깐깐한 얼굴을 하고 있는 김경미는 얼른 장독대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의 이마부터 살펴봤다.
한쪽 이마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이 영 우스꽝스러웠다.
“도련님,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어요?”
“쟤가 날 때렸어.”
“네에?”
김경미가 놀라자 장독대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서진이 자신을 때렸다고 모함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말이 더해지더니 잠시 후 서진은 얌전히 사색을 즐기고 앉아있는 장독대를 때리고 밀어낸 나쁜 개종자가 되어 있었다.
“너 이리 와서 우리 장독대 도련님에게 당장 사과하지 못해?”
“장독대 도련님이요?”
서진은 김경미의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이 여자가 도대체 장독대와 무슨 사인데 자꾸 도련님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진이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자 화살은 당장 김사랑 선생에게 돌아갔다.
“아니 김 선생은 아이들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이런 사고가 나도록 만들어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당장 119에 연락해서 구급차 불러요.”
“네?”
“아니 구급차 부르라는 내말 안 들려요?”
“이마 조금 부은 것 가지고 무슨 구급차를 부르라고 하시는지…….”
김사랑의 말에 김경미는 화가 났는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표독한 얼굴로 쏘아봤다.
“부르라면 부를 것이지 왜 그렇게 잔말이 많아요. 우리 장독대 도련님이 혹시라도 탈나시면 당신이 책임 질 거야?”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김사랑은 김경미의 말에 황당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참 나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유치원 부원장이라는 사람이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못 알아보고, 도련님이라고 불러대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마 좀 부은 것 가지고 구급차를 부르라고 하네.”
서진은 참다못해 그냥 시원하게 빵 터트려버렸다.
그의 말을 들은 김경미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너, 너 지금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소리니?”
“네, 맞아요. 아줌마 들으라고 하는 소리에요.”
“아줌마? 아니 이 녀석이……. 너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어른에게 그따위 막말을 지껄이는 거야?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되다고 그렇게 말렸는데……. 별 거지같은 새끼가 들어와서 유치원 물을 다 흐려놓네.”
서진은 순간 뒷골이 확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무슨 이런 개또라이, 미친년이 다 있지?’
그는 스타유치원의 부원장 김경미가 가정교육을 언급한 것도 모자라 ‘근본 없는 것’이란 말과 ‘거지같은 새끼’라는 말까지 듣게 되자 마음속에 잘 세워놓은 뭔가가 터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서진은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더니 빠르게 속삭였다.
“마이키, 메딕, 도저히 못 참겠다. 일단 장독대와 김경미에 대해 좀 알아봐. 장산그룹도 샅샅이 털어보고 김경미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사해. 그리고 아까 그 장면 CCTV에 자연스럽게 찍힌 것처럼 영상을 확보해놔.”
-장독대와 김경미의 관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더불어 장산그룹에 대한 정보도 확보하겠습니다.
-마스터, 이미 영상은 확보된 상태에요. 장독대가 거짓말 한 것과 김경미가 막말한 것 모두 확실하게 찍어 놓았습니다.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김경미를 고소하실 수 있습니다.
마이키와 메딕은 서진의 명령에 즉각 반응했다.
서진은 가능하면 조용히 유치원생활을 하고 싶었다. 괜히 일을 크게 벌려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명백한 도발은 가차 없이 응징해줄 생각이었다.
일단 김경미의 이름을 살생부에 올려놓고 어떻게 응징할지 방법은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쟨 누구에요?”
“이서진이라고, 오늘 신입생으로 들어온 원생입니다.”
“이서진? 알았어요. 그만 가 봐요. 장독대 도련님은 내가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가겠어요.”
“그냥 양호실에서 데리고 가서 약 바르면 낫지 않을까요?”
“아니 진짜 이 사람이…….”
김경미는 자꾸만 자신의 행사를 말리는 김사랑을 쳐다보며 이를 뽀드득 갈았다.
그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원장선생님.”
김사랑은 스타유치원 원장 정미희가 나타나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원장선생님, 나오셨어요?”
“부원장선생님,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럽습니까?”
김경미는 아까와는 달리 얌전한 얼굴로 바뀌어져있었다. 그리고 장독대가 한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정미희 원장에게 일러바쳤다.
서진은 한순간에 또다시 근본 없는 거지같은 쓰레기 망종새끼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장독대 도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자꾸 김사랑 선생님이 말리신 겁니다.”
“부원장선생님! 도련님이라니요? 지금 제정신입니까? 우리 원생에게 왜 그런 호칭을 쓰는 겁니까?”
“아니 그게 장독대 도련님, 아니 장독대 원생이 장산그룹의 손자이시기 때문에…….”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다시는 스타유치원 안에서 그런 호칭 쓰지 마세요. 아셨습니까?”
“네.”
김경미 부원장은 날카롭게 쏘아보는 정미희 원장의 말에 작게 대답했다. 하지만 불만스런 눈빛을 바꾸지는 않았다.
정미희는 장독대의 이마를 보고는 일단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양호실 선생님은 장독대의 이마를 살펴보더니 바로 후시딘을 발라줬다.
그 모습에 김사랑은 김경미 부원장을 한번 힐끗 쳐다봤다.
김경미 부원장은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못 본 척 시치미를 뗐다.
이로써 구급차를 부르는 문제는 간단히 일단락됐다.
정미희는 아이들과 일행을 데리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모두 푹신한 소파에 자리하자 그녀는 제일 먼저 장독대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독대야, 정말 서진이가 너를 때리고 밀었니?”
“네, 절 때리고 밀었어요.”
장독대는 변함없이 거짓말을 했다.
정미희는 시선을 서진에게 돌려 물었다.
“서진아, 네가 장독대를 때리고 밀었니?”
“아니요. 벤치 위에서 누워있는 저의 이마를 때리고 두 손으로 밀려고 하다가 제풀에 혼자 넘어져서 벤치에 이마를 찧었어요. 그게 다에요.”
“확실한 거지?”
“물론이죠.”
서진이 웃으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자 정미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장독대, 내가 집으로 전화를 해놓을 테니 내일 부모님 모시고 같이 오도록 해라.”
“네? 부모님은 왜요?”
“내가 따로 드릴 말이 있어서 그래.”
“날 때리고 민 것은 서진인데 왜 나만 엄마와 같이 와요?”
“너만 오라는 것 아니다. 서진이도 마찬가지야. 서진아! 내일 부모님 모시고 같이 오거라.”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정미희 원장은 두 아이에게 똑같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말로 일을 매듭지었다.
“김경미 부원장은 잠깐 남으세요.”
“네? 저요?”
“그렇습니다.”
김경미는 정미희의 말에 잔뜩 위축된 모습이 됐다.
원장실을 나오자마자 장독대는 서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를 향해 인상을 잔뜩 쓰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 서진의 키와 덩치가 자신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자 퍼뜩 놀라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물러섰다.
서진은 장독대의 그런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띠리링 띠리리리링 띠띠디리리리잉!
스타유치원에 경쾌한 리듬의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서진은 교실로 가서 자신의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손예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서진이 나오는 것을 보자 마구 손을 흔들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서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안겼다.
“아이고, 우리 아들! 수고 많았어. 힘들었지?”
“아뇨. 전혀 안 힘들었어요. 그냥 좀 지루했어요.”
“그래?”
서진의 말에 손예진은 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하긴 이미 초등학교 교과서를 줄줄 읽어대는 서진에게 유치원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정서를 위해 다른 아이들과 같이 지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스타유치원을 보내게 된 것이다.
물론 스타유치원에서 전액장학금을 제안한 것도 그녀의 결심을 부추기는 하나의 계기가 되긴 했다.
“별일은 없었지?”
“별일 있었어요.”
“그래? 뭔데?”
“집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그럼 우리 집에 가는 길에 떡볶이 먹고 갈까?”
“좋아요.”
서진은 그녀의 말에 동공이 확장되고 절로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손예진과 서진은 누가 모자(母子)사이 아니라고 할까봐 입맛이 똑같이 저렴했다.
떡볶이, 어묵, 순대, 파전 등 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전부 잘 먹었다.
특히 시장 입구에 용달차를 대놓고 팔고 있는 생굴(석화)은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커다란 생굴을 하나 집어 칼로 푹 배를 쑤셔 따고 그 위에 초장을 얹어 한입에 넣고 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꿀맛이다.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양도 많았다.
서진은 앉은 자리에서 세 개는 뚝딱해치울 만큼 굴을 좋아했다.
모자는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입맛을 다시며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은 몇 개를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스타유치원의 짧지 않은 첫날이 지나갔다.
* * *
“이게 뭐야? 아니 무슨 이런 빌어먹을 장독대가……. 그냥 확 다 부셔버릴까?”
“엄마,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이미 제가 증거를 다 확보해놨어요.”
“진짜?”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누구긴 우리 아들, 천재 이서진이지.”
“참 엄마도…….”
손예진은 겉으로 크게 흥분한 척 했지만 근본적으로 아들을 굳게 믿고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내일 서진의 손을 잡고 스타유치원에 가서 크게 한 따까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다.
서진이 안방에 있는 컴퓨터를 켜서 능숙하게 조작했다.
곧 모니터에 동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메딕이 찍어놓은 동영상을 미리 아버지의 컴퓨터에 옮겨놓은 것이었다.
“제가 스타유치원 옆에 있는 CCTV에 찍힌 동영상을 찾아 보내달라고 돈을 주고 부탁을 했는데 그게 벌써 도착했네요.”
“그래?”
손예진은 아들의 말을 듣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이 그냥 천재라고 쿨하게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동영상을 얻은 과정보다는 동영상에 나오는 결과가 보고 싶었다.
“아니 무슨 이런 개베이비가 다 있어. 완전히 거짓말쟁이에다 싹수가 노란 사기꾼이네.”
“그렇죠? 이 녀석이 저만 괴롭힌 것이 아니었어요. 옆에 서 있는 이 유소라라는 애도 억지로 자기 여자 친구 삼는다고 막 끌고 다녔어요.”
“어머, 장독대라는 놈이 이렇게 예쁜 아이의 손을 꼭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네.”
손예진은 유소라의 예쁜 얼굴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들 서진의 얼굴도 한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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