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20화 (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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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 벌써 1년

“이사했으면 짜장면 먹어야죠?”

“맞네. 난 짬뽕!”

“난 탕수육!”

“헤엥, 그럼 난 샥스핀으로 할게요.”

“서진아, 그건 좀…….”

“샥스핀은 못들은 것으로 합시다.”

이만수가 샥스핀 한방에 약한 모습을 보이자 손예진이 얼른 수습에 나섰다.

서진은 못 이기는 척 웃으면서 그냥 넘어갔다.

굳이 꼭 샥스핀을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중식으로 한바탕 거하게 배를 채운 그들은 이제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막 이사를 해놔서 치우고 정리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서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잠갔다.

이만수와 손예진이 서진을 위한답시고 나름 작심을 하고서 그의 방을 아주 예쁘게 꾸며놓았다. 누가 봐도 어린애 방 같은 모습이 오히려 서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냥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는 남모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스터, 준비 되셨으면 올라오세요.

“알았어.”

메딕이 창문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서진은 자신의 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재난발생시 피난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옥외피난계단(outdoor escape stairs)이 옥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키가 이 빌라를 고른 이유가 이런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서진은 옥외피난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이서진님,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어서 오세요.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마이키와 메딕이 차례로 인사를 했다.

전용면적 135㎡(약 40평), 방 세 개에 화장실 두개.

2층과 똑 같이 생긴 구조의 3층집은 마이키와 메딕에 의해 서진의 취향을 고려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방이 마음에 드는군.”

-거실을 보시면 더욱 마음에 드실 겁니다.

마이키의 자신 있는 말에 서진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그의 기호에 맞게 초대형 TV와 서라운드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었다.

“오! 여기서 영화 보면 딱 이겠네.”

-운동을 하실 수 있도록 각종 운동기구도 갖춰놓았습니다.

“잘했어.”

거실의 한쪽은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다.

서진은 운동기구를 대충 한번 살펴본 뒤, 부엌으로 갔다.

최신형 주방기구가 완비되어 있어 절로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주방이었다.

“로이 요리할 줄 알아?”

-가르치면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가르쳐봐. 주방이 아까워서라도 좀 써먹자.”

-네, 그렇게 하죠. 마스터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요리할 수 있도록 요리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시켜놓겠습니다.

마이키와 얘기를 나누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끝에는 침대와 캡슐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서버들과 각종 컴퓨터 주변기기가 선반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건 뭐야?”

-저와 메딕을 보조해줄 슈퍼컴퓨터와 서버입니다.

“슈퍼컴퓨터?”

-네, 그렇습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듯이 사소한 일은 이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서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래?”

생각해보니 마이키의 말도 맞았다.

할 일도 많은데 굳이 고성능의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마이키에게 모든 일을 다 맡길 필요는 없다. 적당히 CPU와 메모리, 그리고 주변기기들을 미래의 기술로 손보면 훨씬 경제적으로 슈퍼컴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럼 자연히 일을 분산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것은 마이키가 알아서 다 관리할 테니 자신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뭐 굳이 관심을 둔다고 해도 마이키보다 더 잘할 자신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로이는 어디 갔어?”

-건넛방에서 마스터를 위해 시스템을 손보고 있습니다.

“가보자.”

-네.

건넛방 문을 활짝 열었다.

중앙에 커다란 책상이 보이고 그 위에 몇 개의 모니터와 키보드가 올려져있었다.

삼면의 벽에는 대형 벽걸이 모니터가 걸려있어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멀티로 처리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로이가 서진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이는 서진의 앞으로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스터, 오셨습니까?”

“로이, 이제 이곳생활은 좀 적응했어?”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겉모습이 미국인이라 어차피 한국 사람은 먼저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흐음, 그런 단점이자 장점이 있었군.”

전 국민이 영어울렁증이 있는 특이한 나라라서 아마도 이런 일이 벌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서진은 로이를 상세히 살펴봤다.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로이 헤븐은 메딕에 의해 눈동자를 조금 더 파랗게 만들고 머리카락을 자연스런 금발에 가깝게 손질 받았다.

또, 마이키에 의해 기본 장착된 한국어와 영어를 제외하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수십 가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운받았다.

그 외에도 서진을 경호하고 보좌하는데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과 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몸에 익혔다.

겉으로 볼 때 로이는 전혀 안드로이드 같지 않았다.

이제는 도저히 사람과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네.”

-이미 로이는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으로부터 미국여권과 사회보장카드 그리고 뉴욕 운전면허증까지 받아왔습니다. 겉모습으로 보나 신분으로 보나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이제 로이를 앞세워 은행계좌를 트고 회사를 열면 되겠군.”

-로이 헤븐이란 이름으로 이미 여러 나라에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있고 회사도 설립중입니다.

“그래? 잘됐군. 그럼 한국에도 로이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겠네?”

-네, 그렇습니다. 일단 작은 투자회사 하나를 M&A(기업의 인수와 합병)해서 헤븐(Heaven)이란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혹시 회사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바꾸셔도 됩니다.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회사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천만에. 헤븐이란 이름 아주 좋아. 앞으로 헤븐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냥 대기업보다는 전 세계에 지점을 세우는 다국적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이키는 이제 갓 이름을 지어준 회사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키자며 서진보다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다국적기업!

정말 말만 들어도 등골이 찌릿찌릿해진다.

“그럼 더욱 좋고. 그런데 왜 새로 투자회사를 세우지 않고 M&A를 했지?”

-국내에서 투자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작업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시간절약도 하고 일을 간단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M&A 방식을 취했던 것입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런 거 전혀 없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지금은 일단 이렇게 시작하고, 나중에 미국이나 유럽에 다국적기업의 본사를 세운 후에는 서울에 지점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에 본사를 세우기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으니 말입니다.

포부가 아주 야무진 마이키였다. 하지만 서진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마이키에게 자금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어떻게 하던 그건 마이키가 알아서 잘하고…… 이젠 제대로 돈 좀 벌어보자. 맨날 계획만 세워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서초코레빌라 3층 집 구하고, 가구와 가전제품 사고, 거기에다 슈퍼컴인지 뭔지 모를 서버와 컴퓨터를 잔뜩 사는 바람에 수중에 더 이상 돈이 한 푼도 없잖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블루볼에 남아있는 50만 달러를 이서진이 ‘헤븐’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입금시켰습니다. 또한 골드바와 보석도 로이를 시켜서 처분해 현금화하고 있으니 곧 충분한 자금이 들어올 것입니다. 양도세나 세금, 회사설립에 관한 서류작업 등은 곧 로펌과 회계 법인을 선임해서 일괄 처리하겠습니다.

“음, 그건 다행이군.”

역시 마이키는 만만치 않았다. 이미 서진이 이런 소리를 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미리 로이를 움직여 시드머니(seed money)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블루볼에 들어있던 물건들은 다 어디로 치웠어?”

-창고에 잘 넣어뒀습니다. 이서진님, 이제 이것 받으십시오.

툭!

서진이 손을 벌리자 그의 손바닥에 블루볼이 툭 떨어져 내렸다.

묵직하고 차가운 블루볼의 감촉이 손바닥 전체에 느껴졌다.

블루볼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무기다.

레드볼처럼 단단하진 않지만 거의 그것에 근접할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아공간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노 칩이 달려있어 스스로 움직이고, 공격하고, 스텔스 & 클로킹 모드로 몸을 숨기는 것이 가능했다.

쓰기에 따라 만능에 가까운 아티팩트(artifact)인 것이다.

“아공간이 텅 비어있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모두 창고에 따로 잘 보관해놓았습니다. 이제 블루볼은 이서진님이 사용하시면 됩니다. 레드볼을 근접무기로, 블루볼을 원거리무기로 사용하시면 더욱 유용할 것입니다.

“고마워. 마이키!”

-천만에요. 어차피 처음부터 블루볼은 이서진님에게 드리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마워!”

서진은 과거로 회귀하는 대가로 블루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이키가 잊지 않고 챙겨주자,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서진님, 일단 보유하고 있는 50만 달러와 앞으로 들어올 현금으로 자금을 불릴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방법을 생각해뒀나 보군. 그래. 한번 들어보자.”

서진이 방 중앙에 놓인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로이가 앉았던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고가의 의자에 앉았다.

키가 작아 발이 허공에 동동 뜨자 로이가 다가와 높이를 맞춰줬다.

마이키가 곧 정면과 좌우에 걸려있는 대형 벽걸이모니터에 각종 사진과 데이터를 띄우기 시작했다.

-먼저 주식투자입니다. 올해 등락의 폭이 아주 큰 국내의 회사들입니다.

로지시스, 큐리언트, 삼성제약, 레드로버, 썬코어, 삼립식품, 프리엠스, 디에스티로봇, 현대건설, 삼성중공업, 코라오홀딩스, 동국에스엔씨, 웅진…….

모니터에 증시에 상장된 주식회사의 이름과 그들의 현재 상황, 앞으로의 전망 등이 알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출력됐다.

서진은 단번에 마이키가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모니터에 나오는 회사의 주식을 사고팔겠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이외에도 올해 상장되는 바이오 기업들을 노려볼만 합니다.

“그럼 미국증시를 비롯한 해외증시는?”

-올해 미국은 엔론, 월드컴, 타이코인터내셔널, 글로벌크로싱, 아델피아 등 대기업의 잇단 회계부정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한 해 동안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증시폭락을 겪게 됩니다. 굳이 원하신다면 선물투자라도 할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올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미국증시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네, 맞습니다. 2002년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2002 FIFA 대한민국·일본 월드컵’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해외 스포츠도박을 할 수도 있고, 사상 최고의 당첨금이 될‘파워볼’ 로또복권을 살 수도 있습니다.

“파워볼!”

서진은 ‘파워볼’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2002년 성탄절에 잭 휘태커라는 사람이 로또복권 사상 최고의 당첨금을 받은 것으로 크게 화제가 된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로또(lotto)는 이탈리아어로 ‘행운’이라고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로또’ 야말로 서진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다.

마침 2002년 12월, 국내에서도 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된다.

-로또복권을 이용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로또는 매스컴과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끌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내에서 로또복권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이서진님의 안전을 위해 말리고 싶습니다.

“그럼 성탄절이 되기 전에 로이를 미국으로 보내 파워볼 복권을 사야겠군.”

-그 전에 먼저 로이를 영국으로 보내야합니다. 베팅 숍(Betting Shop)에서 2002 월드컵 축구경기를 베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2002 FIFA 대한민국·일본 월드컵이 정확히 언제 열리지?”

-2002년 5월 31일 금요일부터 6월 30일 일요일까지입니다.

서진의 머릿속에 2002년 한해 어떻게 자금을 운용해야할지 큰 그림이 그려졌다.

5월까지는 주식에 투자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면 로이를 영국으로 보내 베팅을 한다. 연말이 되면 성탄절이 오기 전에 로이를 다시 미국으로 보내 파워볼 로또복권을 산다.

“깔끔하군. 이것으로 올해 투자계획은 벌써 만들어졌네.”

-그렇군요.

서진은 벌써부터 얼마나 많은 자금을 벌어들일지 기대가됐다.

그렇게 서진의 서초코레빌라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 * *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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