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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 질풍노도
“현재 헤븐에서 신탁관리하고 있는 아버지의 재산이 얼마나 되지?”
-228억 원입니다. 2003년 30억 원을 미국증시에 투자해서 매년 투자금 대비 50%가 불어난 덕분입니다.
“십장생 건설회사 지분매입으로 40억 원이 들어가지 않았었나?”
-그건 일단 헤븐에서 이만수 이사님에게 저리로 융자해드리는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물론 이자는 신탁금에서 지불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처리했지? 그냥 40억 원을 빼면 되잖아?”
-수익률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서진은 메딕의 말을 듣자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왔다.
메딕이 나름 아버지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십장생 건설회사가 내년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장을? 그럼 잘하면 대박 나겠네?”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004년 십장생 건설회사에서 유동 자금난을 겪었을 때 40억 원으로 십장생 건설회사의 지분 20%를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십장생 건설회사의 자산총액이 천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준공한 아파트를 100% 분양하는데 성공한 덕분입니다.
“부채는 얼마나 되지?”
-100억 안팎입니다.
“그럼 자본이 900억으로 늘었다는 말이야?”
-감가상각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다 고려해도 800억은 넘습니다.
서진은 머릿속으로 암산을 해봤다.
800억의 20%면 160억이다.
40억을 투자했으니 이미 투자대비 4배의 이익을 본 셈이다.
거기에다 만약 내년에 만약 상장에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몇 배 아니 몇 십 배의 대박을 치게 될지도 몰랐다.
‘십장생 건설회사가 자본이 튼튼하고 부채가 적은 편이라서 지분을 매입하라고 권해드렸더니 아파트 분양으로 남은 부채를 싹 털어내고 이제 상장까지 노리고 있네. 정말 잘하면 대박치겠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십장생 건설회사 대표가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워보려고 아예 작정을 하고 나선 모양이었다.
물론 절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메딕, 혹시 모를 돌발사태가 터지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줘.”
-예, 마스터! 이번에 반드시 대박을 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돕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천만에요. 마스터!
메딕은 서진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자 절로 목소리가 하이 톤으로 올라갔다.
서진은 통제실을 나와 로이가 갈아준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아지트를 나왔다.
2층 집으로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맛있는 갈비찜 냄새가 났다.
아직 한창 성장기에 있는 서진은 이 냄새가 자신의 집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번개같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들 왔어?”
“네, 갈비찜 했어요?”
“우와! 귀신같이 알고 딱 시간 맞춰왔네. 앉아라.”
“네.”
손예진은 서진에게 식탁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게 생긴 갈비찜이 요염한 자태로 그를 유혹했다.
서진은 젓가락을 들고 갈비찜의 유혹 속에 푹 빠져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옆에서 자식이 갈비찜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손예진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한아름 망울망울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쏴아아아아!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잔뜩 성이나 있는 근육들이 부드럽게 이완됐다.
그러자 몸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아……. 좋다.”
열탕 속에 들어간 아저씨들이나 내뱉을법한 기분 좋은 신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수련으로 온몸을 적셨던 땀과 노폐물이 뜨거운 물줄기에 한순간 쓸려 내려갔다.
심신이 다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서진은 그렇게 한참동안을 샤워기 밑에 서 있었다.
그러다 샴푸를 집어 들었다.
샴푸로 머리를 감고 린스로 꼼꼼히 마무리했다.
이태리타월에 바디워시를 듬뿍 짜내 거품을 만들고 온몸을 빡빡 문질렀다.
강철같이 단단해진 피부는 오히려 이런 자극에 시원한 느낌을 줬다.
이번에는 차가운 물로 온몸을 헹궜다.
몸의 온도가 빠르게 가라앉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조각처럼 아름답고 늘씬한 몸을 가진 앳된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180cm의 키에, 온몸이 마치 말 근육처럼 쫙쫙 갈라진 압축된 근육으로 뒤덮인 모습은 무척이나 야성적이었다.
배에는 일명 초콜릿복근이라는 왕(王)자가 선명한 명품복근이 자리 잡았고 대지를 단단히 밟고 있는 탄탄한 허벅지의 근육은 수컷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그의 시선이 사타구니 사이에 달린 당당한 분신을 향하자 절로 만족스런 호선이 그려졌다.
-마스터, 자신의 몸을 보고 너무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 짓지 마세요.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도취된 사람 같아요.
“메딕, 너무하는 거 아냐? 내가 그동안 이런 몸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수련해왔는지 잘 알잖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가지고 있는 포션의 재고가 50%나 줄었습니다.
“포션이야 또 만들면 되잖아.”
-어떻게요?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포션을 만들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생각해보니 메딕의 말이 맞았다.
서진은 메딕과 더 이상 말싸움을 해서는 승산이 없겠다는 판단을 빠르게 내리고 얼른 욕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새 속옷을 꺼내 입고 메딕이 이번에 새로 주문한 서상중학교 교복을 걸쳐 입었다.
하얀 와이셔츠, 회색바지, 체크무늬넥타이, 짙은 남색 니트(조끼), 남색재킷!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새로 교복을 주문했는지 모른다.
몸이 빨리 자라는 것도 이런 면에 있어서는 그리 썩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메딕, 어때?”
-멋지십니다. 확실히 마스터는 뭘 입어도 핏(fit)이 사네요.
“하하하, 고마워.”
서진이 목젖을 드러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인공지능에도 츤데레가 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쪽으로 설정을 했는지…….
메딕은 갈수록 서진의 추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자 또 한명의 그의 열성팬이 나타나 덥석 품에 안겼다.
“어머, 우리 아들! 너무 멋지다. 이거 탤런트나 모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머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야! 어머니가 뭐야? 그냥 엄마라고 불러!”
“엄마! 사람들이 알면 욕해요. 다 큰 놈이 엄마라고 부른다고…….”
서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예진을 위해 기꺼이 엄마라고 불러드렸다.
자신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그녀에게는 영원한 어린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 고마워 아들! 얼른 학교가야지.”
“네, 다녀오겠습니다.”
서진은 손예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자 4월 중순의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쳐대고 있었다.
“보스, 나오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오대호 대리가 차문을 열어주자 그는 살짝 옷깃을 한번 여미고는 마이바흐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정장의 각을 칼같이 잡은 이민영 대리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서진을 맞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새벽운동은 잘 하셨습니까?”
“네.”
“그럼 학교로 모시겠습니다.”
“부탁해요.”
이민영이 운전대를 잡은 오대호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오대호는 작게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차를 이동시켰다.
부우우우웅!
두 사람의 상의에는 작은 핀이 꽂혀있었고 그들의 귓속에는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이어피스가 들어있었다.
민간군사기업인 ‘헤븐 시큐리티’의 최고요원인 이민영 대리와 오대호 대리를 포함한 제1 경호팀이 오늘도 서진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출근하셨어요?”
“네, 그렇습니다. 전무님은 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회사로 일찍 출근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서진은 이민영이 넘겨주는 탭을 받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당장 결제해야할 중요한 안건들이 끝도 없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는 눈으로 빠르게 내용을 훑으며 손가락을 옆으로 쓱쓱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제출된 안건들을 검토를 해서 결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 도착했습니다.”
“결재할 거 좀 남았습니다. 한 바퀴 더 도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이바흐는 서상중학교 앞을 지나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제야 결재를 끝낸 서진이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손으로는 탭을 이민영에게 넘겼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민영은 탭을 받아 한쪽에 치워놓고는 오늘의 수업시간표에 맞춰 준비한 교과서와 준비물이 담긴 책가방을 서진에게 건넸다.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 전체가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서진에게는 사실 책가방이 전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쓸데없이 학생이 교과서도 안 들고 다닌다는 욕을 먹을까봐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니고 있었다.
서상중학교 정문에 마이바흐가 서자 오대호 대리가 얼른 밖으로 나가서 문을 열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물론 길을 걸어가던 일반인들까지 서진을 쳐다봤다.
그러나 서진은 조금도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책가방을 어깨에 멘 채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상중학교에서 이렇게 자가용을 타고 등교하는 학생이 서진만은 아니다.
강남의 요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학교라 주변에 난다 긴다 하는 고위 공무원과 대기업 임원, 변호사, 의사 등 일명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수두룩하게 살고 있었다.
권력과 금력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학교로 통학시키는데 자가용을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서상중학교 앞 등굣길은 언제나 외제고급승용차로 북적거렸다.
처음에는 서진도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등교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굳이 혼자서 독야청청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대놓고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며 부티를 줄줄 흘렸다.
그러자 괜히 시비를 거는 놈이나 겁도 없이 덤비는 놈들이 현저히 줄어드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됐다.
“서진이다.”
“어머, 멋있어.”
“저 넓은 가슴을 좀 봐!”
“뽀얀 저 얼굴은 어떻고…….”
서진이 나타나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여학생들이 양쪽 옆으로 일제히 비켜서며 중앙에 길이 뻥 뚫린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서진을 훔쳐보며 서로 머리를 맞댄 채 열심히 수다를 털어댔다.
“아침부터 우리서진이 봤으니 오늘 하루는 행복한 하루가 될 거야.”
“누가 우리서진이야?”
“서진은 내가 찍어놨다고 앞발 내밀지 말라고 했지?”
“아주 지랄을 쌈 싸서 쳐드시고 계시네.”
“이년아! 너야말로 우리오빠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오늘은 또 누가 고백을 할까?”
“누가 될 진 모르지만, 서진이와 결혼하면 인생 활짝 피는 거야.”
“맞아. 얼굴 잘생겼지, 공부 잘하지, 돈 많지…….”
“난 결혼보다 일단 서진의 여자 친구가 되고 싶어.”
“야! 꿈 깨라. 꿈 깨!”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서진을 무슨 아이돌 보듯 몽롱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서진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에게 아직 덜 자란 여중생 따위는 그저 핏덩이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서진아!”
“서진아!”
서진의 양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강백호와 장독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서진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라.”
“굿모닝!”
“야! 너 하룻밤 사이에 키가 더 큰 것 같다.”
“너야말로 한 10cm는 큰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왜 내 키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 나보다 10cm는 더 큰 놈이…….”
장독대는 눈빛을 빛내며 서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강백호는 연신 서진의 정수리에 손을 대며 자신과 비교하고 있었다.
서진이 그런 강백호의 옆구리를 장난삼아 툭 치자 그제야 겸연쩍게 웃으면서 서진의 몸에서 떨어졌다.
셋은 그렇게 웃고 장난을 치며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강백호는 서진과 같은 반이었다.
서진이 그를 가까이 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같은 반을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장독대도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같은 반이라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뭔가 남모르는 수고로움을 끼친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싶었다.
강백호와 장독대는 이제 제법 서로 친해져서 굳이 서진이 없더라도 예전처럼 서먹서먹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주 보면 정이 들게 마련인지라, 강백호도 서진바라기인 장독대를 그냥 살짝 맛이 간 놈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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