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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응징
“야! 중간고사 순위 나왔다.”
와아아아아!
교실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소리를 치자 다들 우르르 교실 밖 복도로 달려나갔다.
서진은 굳이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시험성적이나 순위에 별로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장독대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이미 밖으로 나가는 무리에 섞여 달려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장독대가 허겁지겁 달려와 서진에게 소리쳤다.
“서진아, 이번에도 네가 전교1등이야.”
“그래? 확인해줘서 고맙다. 그럼 너는?”
“어? 나? 아직 내 것은 확인 안 해봤는데…….”
“그럼 빨리 가서 네 것도 확인해봐.”
“응.”
갈수록 바보 같은 짓만 골라하는 장독대였다.
서진이 한숨을 쉬자 강백호가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네가 참 고생이 많다. 예쁜 미녀도 아닌 것이 저러니…….”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넌 성적 확인 안하냐?”
“뭐 대충 나오겠지. 어련히 담임 선생님이 성적표 안 나눠주시겠냐?”
“하긴 넌 중학교 최고의 농구스타니까 그런 것 필요 없겠지.”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난 너만 보면 열등감에 시달려서 죽을 것 같아!”
“그런 놈이 작년에 중학교 부문 MVP로 뽑혔냐?”
“어휴! 정말 전교1등만 아니면 농구부로 끌어들이는 건데…….”
사실 강백호가 서진에게 같이 농구를 하자고 떼를 쓴 게 한두 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진이 강백호와 농구를 한 것은 그와 접촉점을 찾기 위해서지 농구선수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강백호도 서진이 농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매번 전교1등을 하는 놈이 뭐가 아쉬워 운동을 하겠는가?
거기에다 서진의 집이 꽤 잘산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더 이상 같이 농구를 하자고 조르지 않았다.
“담탱이 떴다.”
와아아아아!
호르몬분비가 한창인 때라서 그런지 아이들은 끄떡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부화뇌동을 잘했다. 지금도 담임 선생님이 온다는 누군가의 함성에 아이들은 다들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 앉았다.
정확히 5:5로 가운데 가르마를 탄 30대 후반의 남자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진이 있는 3학년1반 담임이자 수학선생인 조지훈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냐!”
반장의 신호에 맞춰 학생들이 인사를 하자 조지훈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성적이 10등 이하로 떨어진 놈들은 점심시간에 모두 모여서 운동장 열 바퀴 뛰고 와라.”
“우우우우우!”
“조용히 해라. 대신 여자들은 다섯 바퀴만 뛰어도 된다.”
“와아아아아!”
“선생님, 그건 성차별이에요.”
“나 원래 남녀차별주의자야. 몰랐니? 냄새나는 사내놈들보다 말 잘 듣고 향기 나는 여자들이 더 소중해.”
“우우우우우!”
조지훈은 아이들의 항의에 실실 웃으면서 농담을 잘도 해댔다.
담임 선생님으로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와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지훈이 고개를 돌려 서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중간고사에도 이변은 없었다. 이서진 전교1등! 수고했다. 모두 박수!”
짝짝짝짝짝!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참, 성적표를 나눠주기 전에 우리학교로 전학을 온 새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 이름은 우동면이다. 어서 안으로 들어와라.”
“하하하! 이름이 우동면 이래.”
“호호호! 그럼 앞으로 우동이라고 불러야겠다.
반 아이들은 새로 전학 온 학생의 이름 때문에 깔깔대며 웃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우동면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덩치가 불곰처럼 커다랗고 인상이 더럽게 생긴 놈 하나가 선생님이 서 있던 자리로 올라왔던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렸던 반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우동면은 싸늘한 눈빛을 하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내가 우동면이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내 이름가지고 많이 웃어라.”
우동면은 인사인지 경고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고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조지훈을 쳐다봤다.
조지훈은 어째 앞으로 고생깨나 하겠다는 불안한 표정으로 우동면을 쳐다보더니 뒤쪽 공간을 향해 손짓했다.
“우동면, 맨 뒷자리로 가서 빈의자에 앉아라.”
“네.”
우동면은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교실 맨 뒤쪽에 빈 책상에 가서 앉았다.
서슬 시퍼런 우동면의 기세에 아이들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는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성적표를 나눠준 조지훈이 간단히 몇 가지 공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자 분위기는 아까보다 훨씬 삭막해졌다.
하지만 서진과 강백호 그리고 장독대만은 우동면의 반응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즐겁게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런 모습에 우동면은 서진을 향해 노골적으로 못마땅하다는 시선을 날려댔다.
가뜩이나 더러운 인상에 눈까지 찡그리자 면상이 마치 조폭을 연상케 했다.
서진은 우동면의 도발에 피식 웃음을 한번 흘리고는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영어선생님 오신다.”
“…….”
누군가 복도에서 영어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전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
소리친 녀석은 괜히 뻘쭘해져서 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영어 수업이 끝나자 수학 수업이 시작됐다.
수학 수업이 끝나자 국어 수업이 열렸다.
수업시간표에 맞춰 쳇바퀴 돌아가듯 그렇게 차례로 선생님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나갔다.
딩동댕동!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는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서둘러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서로 교실을 빠져나가려고 앞뒷문이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급식 먹으러 안가냐?”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오늘 급식 뭐냐?”
“수수밥, 열무된장국, 닭볶음탕, 버섯잡채, 콩나물홍조무침, 배추김치야!”
“독대야, 넌 어떻게 그걸 다 꿰고 있냐?”
“서진이 궁금해할까봐 그냥 외웠어.”
“그, 그래?”
강백호는 장독대의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서진이 일어나서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그의 앞을 떡하니 막아섰다.
우동면이었다.
“너 뭐하냐?”
“네가 여기 짱이라며?”
우동면은 어디서 들었는지 삐딱한 자세로 서진을 추궁했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우동면이 바로 앞에 서니 키가 강백호만했다.
거기에다 덩치가 산만해서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도대체 중학교 3학년짜리가 어디서 뭘 주어먹고 컸기에 이런 몸뚱이를 가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짱 내가 가져가야겠다.”
“그래? 좋아. 그럼 너 가져.”
“안된다면 내가 힘으로…….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네가 오늘부터 이 학교 짱! 하라고. 됐냐?”
“그, 그게 그렇게 쉽게…….”
우동면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서진의 반응에 버벅 댔다.
그 사이 서진은 그를 살짝 피해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식당을 향해 걸어가자 강백호와 장독대가 뒤따라왔다.
“우리 반에 웬 꼴통이 하나 들어왔네.”
“그러게 말이야.”
“서진아, 내가 치워줄까?”
“치우긴 뭘 치워? 넌 그냥 지금처럼 얌전히 조용히 살아.”
“응, 알았어.”
장독대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자 서진은 바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놀란 장독대가 찔끔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서진은 자신으로 인해 잠잠해진 장독대의 본성이 우동면으로 인해 괜히 깨어나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됐다.
사실 강백호와 장독대는 서진의 실력을 잘 알고 있어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서진이 이런 일을 귀찮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장독대가 서진을 적대하는 우동면에게 적개심을 품어서 좀 오버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식당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과 강백호 그리고 장독대의 자리는 언제나처럼 비어있었다.
아무도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으니 당연히 비어있는 것이다.
사실 서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보면, 전교1등이자 학교 짱인 서진에게 아이들이 알아서 예우를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뭐 지들이 알아서 기고 있는 것이거나…….
서진과 강백호, 장독대는 식판에 음식을 수북하게 담아왔다.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밥을 퍼먹었다.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빨리 먹고 한 번 더 먹기 위해서다.
-마스터, 우동면에 대해 조사를 해볼까요?
메딕의 말에 서진은 잠시 생각을 했다.
그의 이름은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한번쯤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응, 그렇게 해.”
-네, 마스터.
10분도 지나지 않아 서진의 귓속으로 메딕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스터, 우동면이 우동인입니다.
“뭐라고?”
-우동면이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바꿔서 우동인이 됐습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우동인?”
-네, 그렇습니다. 대격변이 일어난 후, 중국의 능력자와 벌인 ‘동북아 초인전쟁’때 중국의 수십 명의 A급 능력자들과 함께 장렬히 폭사한 대한민국의 A급 능력자 우동인입니다.
“대……박!”
서진은 메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서상중학교에 미래에 S급 능력자 0순위였던 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동면이 우동인이라면 무조건 잡아야한다. 좀 거친 놈이긴 하지만 전투력 하나는 정말 발군이었던 A급 능력자다. 미래를 생각해 자신을 희생해 중국의 수십 명의 A급 능력자들을 같이 지옥으로 데리고 간 것만 봐도 절대 못된 놈은 아닐 거야.’
서진은 우동인, 아니 지금은 우동면인 그에게 조금은 호감을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이나 할 겸 서진 일행은 농구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무 아래 벤치에서 쉬려고 하는데 커다란 나무 뒤 으슥한 곳에서 우동면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
“야! 이서진 너 얼굴 좀 보자.”
“응, 그래 얼마든지 쳐다봐라.”
서진은 그의 코앞에 다가가 가만히 섰다.
그러자 우동면이 뒷목을 잡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저쪽으로 가서 얘기 좀 하자고?”
“그러던지.”
“서진아!”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서진이 우동면의 말에 순순히 나무 뒤쪽으로 걸어가자 당장 강백호와 장독대가 흥분해서 소리를 쳤다.
우동면이 강백호를 보고 긴장한 표정을 짓자 서진이 고개를 돌려 딱 한마디만 했다.
“금방 갔다 올게.”
“아! 뭐! 응.”
“그, 그래.”
장독대와 강백호가 서진의 말에 그 자리에 딱 굳은 것처럼 서버렸다.
커다란 나무 뒤쪽으로 가자 주변의 대다수의 시선이 나무로 인해 가려졌다.
“나하고 겨뤄보자.”
“뭘 걸고?”
“응? 그, 그게…… 그러니까.”
“나 짱하기 싫어. 그러니까 너 짱해.”
“아니 이게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원하는 게 나와 싸워서 이기는 것 아니었어?”
“맞아.”
“그럼 됐네. 네가 이겼어. 그리고 난 졌어. 됐지?”
“어? 아니.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뭐가 곤란해?”
“보통 학교 짱은 이렇게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서진은 우동면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 은근히 순진하네. 원래 이런 스타일인가?’
서진은 더 이상 장난은 그만하기로 했다.
“동면아! 잠깐 여기 좀 봐봐!”
“응?”
퍽!
우동면의 눈이 돌연 휘둥그레졌다.
서진의 주먹이 순간적으로 나무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것을 본 것이다.
“못 믿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보여줄게.”
퍽!
“보이지?”
“응.”
“내가 왜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제 알겠지? 잘못 치면 너 죽어. 그래서 안 싸우는 거야. 안 믿겨지면 다시 한 번 보여줄까? 정 못 믿겠으면 팔다리 중 하나만 부러뜨려줄게.”
“아, 아니야. 이제 됐어. 충분히 봤어.”
“그럼 이제부터 네가 학교 짱해. 난 조용히 공부나 할게.”
“아, 알았어.”
“대신 나 앞으로 귀찮게 하면 안 된다. 알았지?”
“응, 알았어.”
서진은 우동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몇 번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곤 강백호와 장독대가 서 있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동면은 얼굴이 하얗게 탈색된 채 멍한 표정으로 서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급히 나무를 향해 다가가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봤다.
딱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나무가 움푹 패여 있었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는 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동면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결국 자신이 세운 ‘한강이남 중학교 통합 짱’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꿈을 잃은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이 상처 입은 나무를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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