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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응징
“마이키, 당장 이놈의 소재를 파악해줘!”
-알겠습니다.
서진은 사토 에이사쿠의 사진을 노려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모니터에 자오난치의 환하게 웃는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자오난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이자 범죄단체인 중국의 삼합회(三合會)의 보스다.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인터폴에 지명수배된 범죄자로 대격변 때 능력자가 되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한 후 사면되어 광명을 되찾았다.
능력자가 되기 전에도 잔인하고 포악한 성정으로 유명했던 놈인데 능력자가 되고나자 그 잔혹함이 극에 달해 ‘동북아 초인전쟁’ 당시 대한민국 능력자들을 산채로 찢어 죽이고 내장을 파헤치는 등 악명이 자자했다.
역시 중대형마수를 사냥하다 허무하게 죽은 후, 그의 극악한 범죄사실이 알려져 크게 이슈가 됐던 인물이다.
“마이키, 자오난치가 지금 국내에 들어온 이유가 장기밀매 때문이지?”
-네, 기록에 의하면 국내의 폭력조직과 연계해서 대량의 장기밀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놈도 당장 소재를 파악해봐.”
-네, 이서진님.
서진은 사토 에이사쿠와 자오난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가만히 놓아두자니 나중에 후환이 두렵고 제거하자니 마이키가 반대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구나. 마이키가 반대를 해도 이놈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 문제는 곳곳에 깔린 CCTV인데……. 이건 마이키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서진이 그렇게 마음을 굳혔을 때, 마이키가 사토 에이사쿠와 자오난치의 행적을 추적해 소재를 파악해냈다.
-이서진님, 사토 에이사쿠와 자오난치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그래? 그들이 지금 어디 있지?”
-사토 에이사쿠는 광장동에 있는 워킹힐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자오난치는 인천항 부두에 있습니다.
“잘했어. 마이키!”
-천만에요.
서진은 일단 마이키를 칭찬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마이키, CCTV나 몰래카메라, 도청장치나 감지장치 같은 것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인식방해장치를 가지고 다니시면 됩니다.
“인식방해장치? 그건 어디서 구하지?”
-이미 두 개나 가지고 계십니다. 메딕과 블루볼이 쓰고 있는 스텔스 & 클로킹 모드의 하위 파생형이 인식방해장치입니다.
“그럼 메딕과 블루볼에게 부탁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인식방해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이서진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하루 24시간, 인식방해장치를 활성화시켜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마이키에게 아쉬운 소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이키, 나는 저 극악무도한 놈들이 우리나라 안방까지 쳐들어와서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빼앗는 것을 그냥 눈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그럼 기어코 저들을 죽이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될 거야. 이것은 몸에 들어온 병균을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야. 또한 길어진 손톱을 깎아 버리는 행위와 일맥상통하지.”
-그렇게 꼭 목숨을 빼앗지 않더라도 저들의 행사를 방해하거나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서진은 마이키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이키가 인간인 자신보다 더욱 인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마이키는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꾸 죄의식이 생기고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자는 거지?”
-팔다리를 모두 잘라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던가, 뇌에 충격을 줘서 지능을 낮추는 방법을 쓰면 어떻겠습니까?
마이키의 말에 서진은 입을 딱 벌렸다.
‘야! 이놈아! 팔다리를 다 잘라버리면 음식은 뭐로 먹고 생활은 어떻게 하니? 거기에다 뇌에 충격을 줘? 아예 바보, 천치로 만들어버리자는 얘기잖아. 이제 보니 마이키! 이거 아주 무서운 놈일세.’
마이키는 자신이 제안한 방법들이 오히려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서진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호통을 꾹 눌러 참고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마이키가 생명을 빼앗는 방법을 제하면 어떻게든 자신을 도와주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 아주 나쁜 방법은 아니네. 그럼 일단 팔다리 중 하나를 못 쓰게 만들고 척추에 손상을 줘서 하반신을 마비시키자. 어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드디어 마이키가 넘어왔다.
서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작전을 시작하자.”
-네, 이서진님.
극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본 마이키는 서진의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 * *
부우우우웅!
마이바흐가 빠른 속도로 올림픽대로를 타고 달렸다.
주변에서 달리던 차들이 마이바흐를 발견하자 혹시라도 차에 스크래치를 낼까봐 멀찌감치 옆으로 물러났다.
천호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넌 차는 강변북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신한강호텔로 들어갔다.
끼이익!
“신한강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대호 대리가 호텔 정문에 차를 세웠다.
벨보이가 다가와 차문을 열어주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민영 대리가 밖으로 나와 그를 슬쩍 옆으로 밀어내더니 대신 차문 옆에 섰다.
이민영은 서진과 눈을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이비블루 정장을 갖춰 입고 도수 없는 안경을 쓴 서진은 차 밖으로 나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민영은 서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호텔 로비로 걸어갔다.
오대호가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러간 사이, 서진은 로비 앞 소파에 앉아 창밖을 쳐다봤다.
잠시 후, 이민영이 예약해놓은 스위트룸의 카드키를 가지고 다가왔다.
“보스, 들어가시죠.”
“오케이.”
이민영이 앞장을 서자 서진은 벌떡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승강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스위트룸에 서자 이민영이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서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그의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제부터 그녀는 서진이 방밖으로 나올 때까지 입구에서 대기하게 될 것이다.
서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커다란 베드가 놓여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촤아아악!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자 한강을 비롯한 강 건너의 도시전경이 한아름 눈에 들어왔다.
“전망이 아주 좋네.”
서진은 침대를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마이키!”
-네, 이서진님.
“시작하자.”
-네, 메딕과 블루볼을 연결하겠습니다.
허공에 마이키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이키는 서진의 앞에 커다란 홀로그램 하나를 띄워 올렸다.
홀로그램은 곧 두 개의 화면으로 나눠지고 각각 다른 시야에서 본 장면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왼쪽의 화면을 쳐다봤다.
아까 신한강호텔 정문에서 차를 세웠을 때 날아간 메딕과 블루볼이 어느새 북쪽에 있는 워킹힐 호텔에 도착해있었다.
“메딕, 거기가 위킹힐 호텔이야?
-네, 마스터. 사토 에이사쿠는 현재 워킹힐 호텔에서 아차산 안에 별장처럼 만든 독립된 스위트 빌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서진은 메딕의 설명을 한쪽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메딕이 말하는 단층 빌라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사토 에이사쿠가 머물고 있는 곳은 2610호.
블루볼이 주변을 빠르게 한번 도는 사이, 메딕은 창가로 가서 커튼 사이로 보이는 안을 살펴봤다.
-마스터, 타깃을 확인했습니다. 안에 사토 에이사쿠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지금부터 스위트 빌라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좋아.”
서진이 주먹을 꼭 쥐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메딕이 출입문을 향해 다가가자 마침 문이 덜컹 열리며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여행용 대형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밖으로 나왔다.
메딕과 블루볼이 그 틈을 노리고 동시에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어? 저 캐리어 아주 수상하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캐리어를 스캔합니다.
메딕이 자신 있게 대답을 하고는 즉시 여행용 대형캐리어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우욱,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서진은 메딕이 캐리어를 스캔한 화면을 보여주자 순간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캐리어 안에는 토막 난 여자들의 시체가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젊은 여자들의 시체입니다.
“그럼 스캔한 4개의 캐리어 모두 시체로 채워져 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메딕의 대답은 최소한 4명의 젊은 여자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는 뜻이 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이로군. 마이키! 이래도 저놈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야 해? 너는 사토 에이사쿠 한 놈의 목숨이 중요한 모양이지만, 난 지금 저렇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우리나라 여자들의 목숨이 더 소중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저런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은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저런 참상을 보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인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꼭 죽여야만 되는 건 아니야.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삶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서진은 메딕이 보내온 영상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사토 에이사쿠의 부하로 보이는 자들이 여행용 대형캐리어를 두 대의 차에 나눠싣고 시동을 걸었다.
“마이키, 저들의 차를 추적해줘. 어디로 가는지 꼭 알아야겠어.”
-네.
마이키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딕, 스위트 빌라에 몇 사람이나 있지?”
-사토 에이사쿠를 빼고 둘이 더 있습니다.
“좋아. 일단 그 둘을 기절시켜!”
-네, 마스터.
서진의 명령에 메딕은 즉각 반응했다.
메딕은 거실 소파 위에 앉아 TV를 틀어놓고 웃고 있는,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야쿠자 둘에게 다가갔다.
파직!
“억!”
갑자기 왼쪽 소파에 앉아있던 야쿠자 하나가 움찔하더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니무라! 왜 그래?”
오른쪽 소파에 앉아있던 야쿠자가 늘어진 니무라를 보더니 몸을 벌떡 일으켰다.
파직!
“윽!”
하지만 그는 몸을 채 반도 일으키지 못하고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신도 니무라처럼 소파위에 쓰러져 몸을 축 늘어뜨렸다.
메딕이 6만 볼트의 고압전류로 야쿠자 둘의 뒷목에 전기충격을 가한 것이다.
-마스터, 둘을 기절시켰습니다.
“사토 에이사쿠를 찾아라.”
-네, 마스터.
메딕은 욕실로 날아갔다.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사토 에이사쿠가 커다란 욕조 안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놓고 반신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엔카(演歌: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진한 피 맛을 보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타깃을 찾았습니다. 기절시킬까요.
“물론이지.”
-네, 마스터.
메딕은 서진의 말에 곧바로 사토 에이사쿠에게 다가가 6만 볼트의 고압전류를 일으켜 뒷목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파직!
“억!”
사토 에이사쿠는 눈을 커다랗게 한번 뜨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의 몸이 욕조 안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메딕은 얼른 욕조 안으로 퐁당 빠져 들어갔다.
그가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기 직전, 골반 밑으로 들어간 메딕은 그이 몸을 위로 세게 밀어 올렸다. 그러자 사토 에이사쿠의 몸이 욕조 밖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며 빠져나왔다.
철퍼덕!
사토 에이사쿠가 욕실바닥을 굴러 대자로 뻗어버리자 서진은 메딕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메딕, 저놈의 몸을 마비시키고 오른쪽 팔을 잘라라.”
-마스터, 그렇게 하면 고통이 극심해서 견디지 못할 겁니다.
“메딕, 방금 전 여행용 대형캐리어에 젊은 여자들이 토막 나서 실려 나가는 것 못 봤어? 사토 에이사쿠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극악한 사이코패스에 강간살인마라고. 난 지금 저놈을 응징하는 거야. 일부러 최대한 고통을 주려는 거라고.”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메딕은 마이키처럼 더 이상 따지거나 두 번 물어보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서진은 시선을 살짝 위로 들어 마이키를 쳐다봤다.
마이키는 서진의 시선을 인식하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서진의 행동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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