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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 그녀가 나타났다.
팍!
갑자기 창고 안을 밝히던 전등이 일제히 나가버렸다. 거대한 창고는 순식간에 빛 한 점 볼 수없는 어둠에 휩싸였다.
촤아아아아악!
동시에 일제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비 오듯 물을 쏟아냈다.
“뭐야 이거?”
“누가 가서 불 좀 켜봐.”
“화재가 난 것도 아닌데 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지?”
“모두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좀 가만히 있어.”
창고 안은 삼합회 조직원들의 고함소리로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처럼 변해버렸다.
파지지지지지직!
“으어어어!”
“그어어어!”
“거어어억!”
그때였다.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져 내린 물로 인해 촉촉이 젖어버린 창고 바닥으로 푸르스름한 고압전류가 흘러들어왔다.
파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 같은 고압전류는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 삼합회 조직원들을 덮쳤다. 전기에 감전된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춤을 추듯 온몸을 덜덜 떨어대다가 곧 거품을 물면서 쓰러져갔다.
창고에 서있던 삼합회 조직원들 모두가 쓰러지자 허공에서 돌연 얇고 시뻘건 레이저광선이 비를 내리듯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붉은 레이저광선이 삼합회 조직원들의 몸을 한 번씩 맞출 때마다 그들은 자지라지듯 놀라 몸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쾅!
“천빙라이! 니지더! 아니 이 새끼들 지금 뭐하는 거야?”
사무실 문이 박살이 나며 자오난치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한손으로 바지를 잡고 어두운 창고 안을 눈을 가늘게 노려봤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빨리 아무나 불 좀 켜봐! 왜 대답이 없어?”
자오난치는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말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퓻!
그때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쿵!
자오난치는 뒷목이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몸이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지며 쓰러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들어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자신의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암습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기랄, 천빙라이와 니지더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쓸모없는 새끼들! 천하의 나 자오난치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고 말다니……. 내가 만약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그게 누구였던 간에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내장을 파낸 후 머리를 통째로 삶아버리고야 말겠다.’
자오난치는 마음속으로 무서운 저주의 맹세를 했다.
그것도 잠시, 이제는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눈을 뜬 상태로 몸이 마비가 되자 슬슬 눈이 시려왔다. 눈물이 저절로 솟구쳤다. 그는 이 황당한 사태에 망연자실했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허공에서 붉은 레이저광선이 떨어져 내렸다.
‘으아아아아악!’
자오난치는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를 불로 지지는 고통에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몸이 마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살짝 두려워졌다.
도대체 누굴까? 혹시 귀신일까?
누가 감히 자신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한단 말인가?
호랑이 간을 삶아먹지 않고는 삼합회 보스 중 하나인 자신에게 도저히 이런 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체도 보이지 않는 뭔가가 버젓이 자신의 몸을 희롱하듯 레이저로 지져대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잉!
이번에는 붉은 레이저광선이 떨어지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오른팔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크아아아아악!’
그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물론 소리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소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오른팔 다음은 왼발이 잘렸다. 그 다음은 한쪽 눈이 생으로 타들어갔다. 그리고 허리부근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더 이상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오난치는 서서히 공포에 물들어갔다.
‘성기가 잘리고 오른팔이 잘렸다. 왼발도 잘린 것 같고 한쪽 눈도 타버렸다. 마지막에 허리, 아니 척추를 다쳤으니 반신불수인가? 아! 이제 난 병신이 됐구나.’
그의 남은 한쪽 눈에서 마치 온천이라도 터진 듯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동안 사람을 수십 명이나 죽였고 수천 명을 납치해 통나무로 만들어 장기밀매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병신이 됐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도저히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오난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반신불수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갑자기 뭔가가 자오난치의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는 예의 그 붉은 레이저광선이 자신의 입속을 헤집었다.
지이이이이잉!
치이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자오난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붉은 레이저에 의해 그의 혀가 송두리째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증발되고 있었다.
‘끄으윽!’
자오난치는 극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의 벌린 입안으로 주홍색 레이저가 넘실거렸다. 그의 입안에서 탄내를 풀풀 풍기며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 * *
서진은 신문을 펼쳤다. 빠르게 훑어보고 나서 다른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을 활짝 펴서 살펴봤다. 그 어디에도 그가 기대하는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마이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저도 막 확인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사가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습니다.
“이번 일을 없던 일로 해달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사토 에이사쿠와 그의 부하들, 자오난치와 삼합회 조직원들 모두 한국에서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번 일은 절대로 매스컴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 자국의 체면을 존중해달라는 거겠죠.
“체면은 개뿔!”
서진은 짜증이 확 일어났다.
이렇게 끔찍한 초대형범죄사건이 어떻게 이리 간단히 묻힐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마이키를 시켜 인터넷을 통해 모든 사실을 까발려버릴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터넷에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 일을 비공개로 처리하는 대가로 대한민국 정부는 분명히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로부터 뭔가 큰 이득을 받아 챙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대형사건을 절대 덮을 수 없다.
‘하긴 꼭 매스컴에 터트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차라리 이번 일은 이렇게 넘겨버리고 대신 앞으로 일본과 중국의 총칼이 될 미래의 범죄자이자 능력자들을 하나씩 조용히 응징해버리자.’
서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접었다. 대신 마이키에게 부탁해서 일본과 중국의 능력자 리스트를 열심히 챙겼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범죄자들을 한명씩 반병신을 만들어 놓기 시작했다.
핵심은 설사 대격변에 무작위로 능력이 떨어져 내린다고 해도 절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이다.
주먹을 쓰거나 무기를 다루게 될 놈은 손과 팔을 망가뜨렸다. 빠른 스피드로 승부를 내는 민첩 계열 능력자들은 다리를 박살냈다. 마법사가 될 놈은 주문을 외울 혀를 잘라버렸고, 이능을 발휘할 초능력자들은 뇌의 일부를 살짝 태워버렸다.
그렇게 서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고독하고 지루한 싸움을 끈질기게 이어나갔다.
다음날, 전국으로 정체불명의 택배들이 쏟아져 나갔다. 그 안에는 1만 엔(円)권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다.
* * *
퉁!
칠흑 같은 어둠속을 가로지르며 한줄기 조명이 직선으로 내리꽂혔다. 한없이 부드러운 전신밀착형 내보호복으로 인해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잡힐 듯 드러났다.
위잉! 찰칵!
위이이잉! 찰칵 찰칵 찰칵!
수십 개의 피스로 나눠진 전신슈트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날아왔다. 피스 하나하나가 퍼즐처럼 빠르게 맞춰지고 결합되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내부장갑에 해당하는 전신슈트가 맞춰지자 곧이어 튼튼한 외골격을 자랑하는 묵직한 외부장갑이 날아왔다.
우잉! 철컹!
우이이이잉! 철컹 철컹 철컹!
전신슈트 위에서 수십 개의 외부장갑 피스들이 빠르게 서로를 밀고 당겨 합체해갔다. 전신장갑의 합체가 끝나자 그 자리엔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히어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의 합체가 끝났습니다. 마스터! 이제 움직이셔도 좋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기동훈련을 시작한다.”
-마이키, 임프 온(on)!
-메딕, 블러드울프 온(on)!
-블루볼 가고일 온(on)!
-로이 스켈레톤 온(on)!
서진은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의 파워를 30%로 올리고 즉시 앞으로 달려갔다. 몸에서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임프와 블러드울프, 가고일과 스켈레톤이 동시에 서진에게 달려들었다.
“쿠아아!”
“아우우우우우!”
“그아악!
“헬헬헬헬!”
임프가 그를 향해 불덩어리를 날리자 블러드울프가 그 위를 도약해 덤벼들었다. 가고일이 허공으로 치솟아 푸른빛의 창을 날리자 스켈레톤이 검을 들고 정면으로 쇄도했다.
서진은 급히 몸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며 달려갔다.
임프가 날린 불덩어리와 가고일이 던진 창이 그의 몸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오른손을 살짝 들면서 쫙 폈다. 당구공만한 아공간이 그의 손바닥 아래에 나타났다. 서진은 아공간에서 레드볼을 꺼내더니 곧바로 블러드울프를 향해 집어던졌다.
휘익!
‘질량증폭! 중력강화! 온(on)!’
서진이 마음속으로 강하게 의지를 전달하자 레드볼이 그의 파장을 감지하고 질량증폭 마법진과 중력강화 마법진을 동시에 활성화시켰다. 이제부터 바깥을 향해 뻗어나가는 모든 공격은 질량증폭과 중력강화가 자동으로 부가될 것이다.
퍽!
레드볼이 빨랫줄처럼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가 블러드울프의 머리를 지나갔다.
-띠링, 블러드울프 두부손상 90%, 즉사판정!
마이키가 블러드울프의 사망선고를 내리자 블러드울프가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 사이 임프는 다시 불덩어리를 하나 소환해 서진을 향해 날렸고 가고일도 조금 더 가까이 내려와 창을 내리찍었다.
치익! 도도도도!
서진은 급히 몸을 세우고 이번에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쿵!
임프가 날린 불덩어리가 그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가고일이 내리찍은 창도 땅바닥을 찍었다. 서진은 스켈레톤이 검을 들고 쫓아오는 것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쐐애액!
블러드울프의 머리를 박살내고 돌아온 레드볼이 A급 마수 ‘인비저블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질긴 투명한 줄의 장력에 의해 빠르게 돌아와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띠링, 스켈레톤 두부파괴! 즉사판정!
스켈레톤이 파란 빛으로 화해 먼지처럼 사라졌다. 서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한 바퀴 휙 돌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레드볼이 다시 위로 방향을 급격하게 꺾이며 솟구쳤다.
창!
-띠링, 가고일 방어성공!
서진은 그 말에 인상을 팍 쓰더니 돌아오는 레드볼을 자신의 팔에 한번 감으며 다시 위로 쏘아올렸다.
쾅!
-띠링, 가고일 흉부손상 75%, 전투불능 판정!
가고일이 푸른빛으로 화해 전장에서 퇴출됐다. 그러자 혼자 남은 임프가 허공에 불덩이를 만들어 놓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키, 이거 쓸데없이 너무 리얼한데?”
-이 정도는 돼야 최고의 훈련용 홀로그램이라는 소리를 듣죠.
“그렇군.”
저벅 저벅 저벅!
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임프를 향해 다가갔다. 임프가 놀라서 불덩어리를 날렸다. 하지만 서진은 오히려 그 순간을 노려 오른쪽으로 한 발짝 움직여 피하더니 앞으로 돌진했다.
쾅!
폭음이 들리고 땅이 진동했다. 그의 레드볼이 임프의 몸을 통과해 땅바닥을 세차게 후려갈긴 것이다. 레드볼이 질량증가 마법진과 중력강화 마법진으로 인해 땅바닥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버렸다.
-너무 쉽죠?
“쉽긴 뭐가 쉬워?”
-그럼 한 번 더 갈까요?
“그럴까?”
서진은 마이키의 유혹에 바로 넘어갔다.
마이키가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새로운 마수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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