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31화 (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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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 그녀가 나타났다.

-마이키, 카카오커 온(on)!

-메딕, 나이트롤 온(on)!

-블루볼 와이번 온(on)!

-로이 다크나이트 온(on)!

피쉬이이이이익!

서진은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의 파워를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인 50%까지 올리고 즉시 몸을 앞으로 날렸다.

지이잉!

그의 앞을 푸른 불빛으로 빛나는 카카오 색의 거대한 오거가 막아섰다.

숲속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오거의 강화마수판인 카카오커였다.

“크와아아앙!”

카카오커는 크게 함성을 내지르더니 들고 있는 거대한 철퇴를 서진을 향해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부웅!

팡!

서진은 부스터까지 사용해 급히 왼쪽으로 몸을 틀어 피하면서 레드볼을 날렸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띠링, 카카오커 왼쪽 무릎 경미한 부상! 허용수치 이내로 즉시 복구판정!

“이런 제길!”

붕붕 부웅 붕붕!

카카오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무릎을 한번 긁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곧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체구와는 달리 카카오커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서진은 아크로바틱(acrobatic)한 동작을 연속적으로 펼쳐내며 간신히 카카오커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한번 기회를 잡은 카카오커는 서진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아까보다 배는 더 빠르게 서진을 향해 달려들더니 마구 철퇴를 휘둘러댔다.

마이키가 만들어낸 훈련용 홀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아마 사방은 커다란 구덩이가 패이면서 초토화됐을 것이다.

붕 부웅 붕 부웅 붕붕!

한 대만 맞아서 최소한 중상을 입을 것 같은 카카오커의 연속공격이 쏟아지자 서진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며 최대한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인 상태로 움직였다. 그렇게 좌우로 정신없이 뛰어다니자 슬슬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대로 가면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의 파워팩이 먼저 나가버리겠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질지도 모르겠군.’

서진은 더 이상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반전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카카오커의 몸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머리 위로 카카오커가 휘두른 철퇴가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서진은 그 순간 카카오커의 가슴이 훤히 빈 것을 발견했다.

쐐애액!

그는 잽싸게 레드볼을 정면으로 집어던졌다. 레드볼은 정확히 카카오커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쾅!

-띠링, 카카오커 흉부손상 25%! 부상판정!

“흉부손상이 겨우 25%뿐이야?”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체크메이트!

서진은 불길한 마이키의 말에 급히 부스터를 켜고 뒤로 미끄러졌다. 나름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의 몸을 푸른색 홀로그램들이 차례로 스쳐지나간 뒤였다.

리얼한 효과음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며 서진에게 절망감을 선사했다.

쾅 쾅 펑 서걱!

-서진, 장갑손상 85%!

-서진, 흉부파괴 즉사판정!

-서진, 장갑파괴, 3도 전신화상 즉사판정!

-서진, 허리절단 즉사판정!

피시이이이이이!

서진은 제자리에 서서 전신장갑의 얼굴부분을 열고 소리쳤다.

“마이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중대형 마수를 하나도 아니고 그것도 넷이나 투입하는 게 어디 있어?

-이서진님의 한계를 테스트하기 위해섭니다.

서진이 억울하다고 항의를 하자 마이키는 마치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렇지. 카카오커, 나이트롤, 다크나이트 거기에다 와이번까지 투입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난 카카오커 하나도 상대하기 벅차단 말이야.”

-좀 과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로써 이서진님의 분명한 한계를 알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이서진님의 능력으로는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중대형마수와의 1:1 전투는 무리입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얘기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이서진님이 마루3호일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군요. 그때는 블랙 드레이크도 혼자 잡았었는데…….

“장난해? 그때는 말 그대로 내 머리와 척추를 빼고는 전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의 몸이었잖아. 어떻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어찌됐든 이번 기동훈련으로 이서진님은 대격변 때 반드시 새로운 능력을 하나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뒤에서 쥐 죽은 듯이 살아가야 할 겁니다.

“헐!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쏜 후에 대포로 확인 사살하는 격이군. 마이키! 아주 고맙다. 이 은혜는 안 잊을게.”

서진이 뽀드득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마이키가 서둘러 훈련종료를 선언했다.

-이것으로 제33차 기동훈련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이키도 수고했어. 메딕, 로이, 블루볼 모두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메딕, 로이, 블루볼이 서진의 말에 일제히 대답을 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팍 파파팟 파파팟!

거대한 훈련장 안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서진은 마이키, 메딕, 로이의 도움을 받으며 전신슈트와 전신장갑을 벗었다.

“아무래도 무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드볼이 강력한 일격필살의 무기이긴 합니다만 결국 둔기와 비슷한 타격효과를 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루3호라면 중대형마수 전용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만 지금의 상태로는 과부제조기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과부제조기? 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어. 어디서 그런 말을 주어들은 거야?”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무기를 개량하거나 바꾸실 것을 추천합니다.

“어떻게? 뭐로 바꿔?”

-차라리 날카로운 비도(飛刀)라면 어떨까요? 일격필살의 능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훨씬 다양한 공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중대형마수를 상대하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의 몸으로는 중대형마수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육체강화능력자도 중대형마수와 무식하게 1:1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마이키, 지금 나 무식하다고 놀리는 것 맞지?”

-거기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이서진님에게 맞는 무기를 한번 찾아볼까요?

“그래. 아직 시간 있을 때 나에게 맞는 무기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자.”

-네.

서진은 마이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은 더 이상 대 마수병기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마루3호가 아니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마루3호가 쓰는 무기가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비도라……. 잘 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이라곤 조그만 아공간을 소환하는 능력뿐이니……. 이거야 원, 어디 가서 능력자라고 말하기도 창피하네.’

그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폈다.

당구공만한 아공간이 스르륵 나타났다.

“에잇!”

쿵!

서진은 갑자기 짜증이 나서 오른발을 세게 구르며 소환한 아공간을 땅바닥을 향해 집어 던지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땅바닥에 떨어진 아공간이 꺼지듯 사라져갔다.

그런데 아공간이 사라진 땅바닥 한쪽이 너무나도 매끄러운 공 모양으로 깔끔하게 파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공 모양의 뭔가가 땅바닥 한쪽을 깨끗하게 씹어 먹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거대한 훈련장의 불이 차례로 꺼졌다.

또다시 칠흑 같은 암흑의 커튼이 드리워졌다.

관리실의 직원이 중장비를 동원해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그날까지 훈련장의 불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 * *

2011년 8월16일 화요일.

광복절 다음날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등교하는 것은 자신인데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더 흥분하시는 것 같다.

“아들, 벌써 방학이 끝났어!”

“그러게요. 왜요? 섭섭하세요?”

“응, 섭섭해. 우리 아들하고 같이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그건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일이 바빠서 그런 거잖아요. 전 괜찮아요.”

“이제는 엄마라고도 안 불러주네?”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중학교까지만 이라고 합의 봤잖아요?”

“히잉, 그래도…….”

손예진은 서진에게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그녀의 나름 귀여운 애교를 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벅벅 긁었다.

서진은 할 수 없이 손예진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가끔 봐서 엄마라고 불러드릴게요. 알았죠? 엄마!”

“오잉! 오호호호홋! 역시 내 아들은 진짜 효자야.”

손예진은 아들의 서비스에 만족을 했는지 목젖을 다보이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서진은 자꾸만 엉덩이를 치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 얼른 현관으로 내뺐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네.”

큰 소리로 대답을 하긴 했지만 사실 그가 차 조심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운전을 하는 오대호의 몫일뿐이다.

밖으로 나오자 한결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오대호가 새로 장면한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서진이 인사를 하며 차에 타자 오대호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편히 주무셨어요?”

“네, 잘 잤습니다.”

이민영이 활짝 피어난 꽃처럼 예쁜 얼굴로 생글거렸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아니요. 그냥 날씨가 좋아서요.”

“그래요?”

서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봤다. 비가 오려는지 잔뜩 구름이 꼈는데 무슨 날씨가 좋다는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오늘이 그날인가?’

여자가 마법에 걸리는 날인가보다 생각하고 서진은 시선을 탭으로 돌렸다.

“학교로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부우우우웅!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서진은 탭을 켜고 결제할 안건들을 살펴봤다. 매일 같이 열심히 결제를 하고 있었지만 결제해야할 서류는 결코 끊기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서진은 현재 보유한 자금과 자신이 소유한 기업들의 현황을 눈으로 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

‘현재 보유한 자금은 5조6779억 원. 오늘 환율로 52억2707만 달러. 매년 50% 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돈은 여전히 부족하구나. 이제 헤븐도 세계 각국에 11개의 자회사와 22개의 연구소를 보유한 대기업이 됐군.’

서진은 투자회사 헤븐으로 시작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기업이 된 헤븐을 생각하자 절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혼자 이룬 것은 아니다.

마이키와 메딕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사실 그가 한 것이라곤 마이키를 통해 그저 헤븐이 나가야 할 방향만 제시한 것뿐이다. 그것도 이미 미래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마이키가 다 분석해놓은 것을 결제만 해준 것에 불과했다.

‘우리 집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볼까?’

서진은 손가락으로 탭을 두드려서 아버지 이만수의 재산현황을 확인했다.

1969억 원.

십장생 건설회사 지분 20%를 뺀 순수하게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액수였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만수는 곧 2천 억대의 재산가가 될 것이다.

대외적으로 자신은 그런 아버지를 둔 부잣집 아들이 될 테고…….

“보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이따 뵙겠습니다.”

서진은 탭을 이민영에게 넘기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

서상고등학교의 정문이 눈에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서상중학교가 보였다.

그는 서상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상고등학교에 들어왔다. 서상중학교 바로 옆에 서상고등학교가 있어 뭔가 큰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다.

“서진아! 안녕!”

“서진아! 좋은 아침이야.”

“서진아! 이제오니?”

서진은 웃는 낯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같은 반 여학생들을 보면서 말없이 손만 한번 들어주고 말았다. 여학생들은 나름 예쁜 얼굴과 성숙한 몸매를 강조해서 강하게 어필을 하려고 했지만 풋사과 수준도 못되는 덜 익은 과일에 관심을 둘 서진이 아니었다.

‘확실히 여자들 하는 짓이 중학교 때와는 천지차이군.’

서상중학교를 다닐 때는 같은 반 여학생들이 제대로 말도 못 붙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오자 여자들은 훨씬 더 용감해졌다. 아니 뻔뻔해졌다.

이제는 서진의 관심을 끌려고 신체접촉을 하거나 일부러 더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여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하긴 전교1등, 서상고등학교 짱,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매, 부잣집 아들 등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는 서진이다 보니 어쩌면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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