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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 마지막 일탈
강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 아이들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허공에 한번 휘돌린 후 앞을 향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뒤를 돌아보고 있는 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몇몇 아이들에게 눈짓을 해서 김민선을 감시하도록 했다. 비록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지시를 받은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의 뜻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민선 때문에 우리의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지. 서진과 연서는 무조건 맺어져야한다.’
강백호는 주먹을 꼭 쥐고 그렇게 다짐했다.
우동면이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려 서진과 연서를 확인했다.
둘은 마치 연인처럼 다정해보였다. 그 모습에 우동면도 주먹을 꼭 쥐었다.
‘잘하고 있다. 너희 둘은 계속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 우리의 아름다운 파티를 훼방하는 악의 축들은 내가 어떻게든 모두 막아낼 테니…….’
우동면은 고개를 돌려 강부자와 김민선을 차례로 쳐다봤다. 그가 거사를 위해 강부자를 움직여 김민선을 막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물론 그로인해 강부자가 그에게 쓸데없는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됐지만…… 하지만 그것은 대를 위한 작은 희생이라 여겼다.
‘다들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군.’
장독대는 강백호와 우동면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교실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그가 계획한 대로다.
이제 디데이를 정해 미팅을 하고 클럽에서 신나게 놀다가, 그들의 원대한 계획에 화룡점정을 찍는 별장파티를 열기만 하면 완벽해진다.
장독대는 주먹을 꼭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서진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올 만큼 멋진 하루를 만들고 말겠다고 말이다.
서진과 연서는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 백조처럼 우아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수면아래 물속에서 세 쌍의 오리발이 졸라 열심히 물살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생각나는 하루다.
* * *
-마스터, 방배동 저택 안의 CCTV의 권한을 가져왔습니다.
-이서진님, 방배동 저택 안에 나노로봇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수고했다. 이제 화면을 띄워봐!”
서진은 통제실 중앙테이블 앞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댔다. 전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됐다는 의자는 더럽게 비싸기만 할뿐 편하지 않아 중고가구점에 팔아치웠다. 이번에 사장님들이 앉는다는 검은색으로 된 가죽의자 하나를 장만했는데 확실히 이게 편하긴 되게 편했다.
특히 중앙테이블 위로 두 다리를 꼬아 올려놓으면 의자가 자동적으로 뒤로 눕혀져서 마치 해먹에 누운 기분이 들었다.
“마스터, 아이스커피를 가져왔습니다.”
“로이, 고마워.”
“천만에요. 이렇게 마스터를 모시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서진은 로이의 얼굴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받아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다. 로이의 인공지능도 갈수록 발전을 하는지 이제는 이렇게 아부 비슷한 말도 곧잘 한다.
“오오오, 나온다.”
서진은 삼면의 벽에 부착된 초대형 모니터에 각각 화면이 떠오르자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왼쪽의 모니터는 방배동에 있는 한 저택의 풍경이 나왔다.
오른쪽의 모니터는 저택 안을 보여주고 있다.
정면의 모니터는 온통 분홍색으로 도배가 된 누군가의 방의 모습이 나왔다.
“파란색을 좋아한다더니 방은 아예 분홍색으로 도배를 해놓았네.”
서진은 아이스커피를 다시 집어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다.
민연서가 침대 위에서 책을 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일기장은 뒤져봤어?”
-네, 마스터. 일기장을 살펴봤지만 과거로 회귀했다는 내용이나 암시는 일체 없었어요.
“주변 인물들을 살펴봤고?”
-네, 이서진님. 민연서의 주변 인물들을 모두 살펴본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혹시 잠꼬대나 무의식적으로 한 얘기도 없고?”
-없었어요. 마이키와 저의 판단으로는 99.99% 민연서 능력자는 회귀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회귀에 성공했는데 단지 기억이 안돌아왔을 수도 있잖아?”
-메디봇을 통해 기억과 잠재의식을 더듬어봤어요. 키워드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었고 뇌파도 지극히 안정적이었어요. 99.99% 민연서 능력자는 회귀에 대한 기억이나 잠재의식 존재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민연서는 회귀한 게 아니군.”
-그렇게 판단하고 있어요.
“마이키, 넌 어떻게 생각해?”
-저도 메딕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민연서 능력자를 명령권자 리스트에서 삭제하겠습니다.
마이키의 말에 서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민연서가 회귀에 실패했다면 당연히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모두 회귀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서진님, 나머지 네 명의 능력자의 상황을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서진은 마이키의 조언에 잠시 생각을 해봤다.
지금 상황을 봐선 특별히 무리가 없는 요청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한 명이라도 회귀를 했다면 그는 당장 마이키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조금이라도 모험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한 가지 확신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고 찾으려고 시도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회귀에 성공했다면 당연히 자신을 찾아와야한다. 직접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미리 약속한 프로토콜대로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연락은 취했어야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프로토콜대로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 모두 회귀에 실패했다는 결론의 반증이다.
‘막상 그들이 회귀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니 기분이 참 묘해지네.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난 그저 뒤에서 좀 거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의 임무를 내가 대신 맡아서해야하는 상황이잖아.’
서진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잠시 멍한 상태가 됐다.
마이키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쓰기 위해 그들이 회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떻게든 그들이 회귀해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지키는 임무를 완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이키에게 대답했다.
“마이키 말대로 나머지 네 명의 능력자의 소재를 파악하고 나노로봇과 메디봇을 동원해 회귀에 성공했는지 확인하도록 하자.”
-네, 이서진님. 고맙습니다.
-네, 마스터.
마이키가 고맙다는 말을 하자 서진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마이키는 자신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기다려줬다는 생각이 들자 서진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이키, 그동안 고마웠어. 오래 참았다.”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볼 때 이서진님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천만에요.
모르긴 해도 마이키는 다른 네 명의 능력자들에 관해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서진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니나 다를까?
5분도 지나지 않아 마이키는 나머지 능력자들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렸다.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모두 회귀에 실패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약속한 프로토콜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회귀는 99.99% 실패했습니다.
“그럼 저들도 명령권자 리스트에서 삭제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네 명의 능력자를 명령권자 리스트에서 삭제합니다.
결국 회귀에 성공한 것은 서진이 유일했다.
서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남의 것을 훔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이키, 혹시 저들에게 이미 나노로봇을 부착했어?”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건 없어. 그래도 마지막에 확인을 하는 것은 내 허락을 받으려고 했잖아. 이제 확실한 것은 마이키의 명령권자는 오직 나뿐이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마이키에게 명령을 내리려면 성인이 돼야겠지?”
-맞습니다.
“알았어. 그때까지 한 가지만 고쳐줘!”
-네? 무엇을 말씀입니까?
“앞으로 나를 마스터라고 불러!”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마이키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제는 어지간한 그의 부탁은 다 들어줄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시간이 가면 마이키의 마스터는 서진이 되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중앙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서진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작은 화면에는 민연서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여보세요?”
-서진아, 나야. 연서!
“응, 알아.”
-히잉,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물론이지.”
-뭐해?
“나? 그냥 이것저것 하고 있었어. 그러는 너는?”
-나는 침대에서 책 읽고 있어.
“그렇구나.”
서진은 고개를 들어 전면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런데 침대 위에 있다는 민연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위로 들어 빙빙 돌렸다.
그러자 마이키가 그의 뜻을 알아듣고 바로 민연서가 있는 욕실의 모습을 보여줬다.
“헉!”
서진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전면의 벽을 가득채운 초대형 벽걸이 모니터에 민연서의 뽀얀 우윳빛 나신이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서진아, 왜 그래?
“아, 아니야. 뭘 좀 떨어뜨렸어.”
-그랬구나. 조심하지 않고.
“그러게 말이다.”
-다치진 않았니?
“응, 전혀.”
꿀꺽!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민연서는 지금 욕실에서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꿔놓은 채 샤워를 준비 중이었다.
그녀는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으로 전신거울 앞에 당당히 서서 묶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었다.
손대기만 하면 바로 분이 묻어날 것 같은 하얗고 뽀얀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벌써부터 굴곡이 완연해지기 시작한 바디라인은 아찔한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아직은 소담스럽기만 한 봉긋한 가슴위에 분홍색 열매가 부끄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버들가지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에 반전의 묘미가 돋보이는 풍요로운 엉덩이는 마치 사과처럼 힙업(hip up)되어있어 이미 동양인의 한계를 넘어 국제적인 규격을 가지고 있었다.
파파팟!
서진의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자 마이키와 메딕이 장난을 치려는지 좌우에 있는 화면까지 그녀의 나신의 모습으로 뒤덮였다.
360도 회전화면은 물론 그녀의 몸을 부분별로 확대해서 보여주자 서진의 몸이 급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하복부를 꾹 누르면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우리 스파게티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응, 그랬지.”
-그거 엄마가 허락했어. 이번 주말은 곤란하고 다음 주말에 다녀오래.
“그래? 잘됐다.”
-그치? 잘됐지?
“응, 그럼 다음주말은 널 위해 스케줄 싹 비워둘게.”
-나도 널 위해 다음주말은 비워둘 거야.
“크흠.”
서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필사적으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가 전신거울을 쳐다보면서 이리저리 자신의 가슴을 만져대는 것을 보자 갑자기 사래가 걸린 것처럼 목이 탁 막혔다.
그는 급히 아이스커피가 담긴 컵을 집어 벌컥벌컥 마셨다.
-서진아, 왜 그래?
“아이스커피 마시다가 사래가 걸렸나봐.”
-호호호, 너 의외로 하는 짓이 아기 같다.
“아기?”
-응, 물건도 잘 떨어뜨리고 아이스커피 마시다 사래도 걸리잖아. 난 네가 완벽한 사람인줄 알았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네.
“그래서? 실망했어?”
-아니, 이제야 좀 인간 같아서 더 좋아졌어.
“더 좋아졌다는 말은 전에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좋아졌다는 말이지?”
-뭐, 뭐라고? 아니 그, 그게 말이야. 내가 사실은……. 나 급한 일이 있어서 엄마에게 가봐야겠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응, 그래.”
어쩌다보니 민연서는 서진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당황한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아마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서 그랬나 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서진은 당장 코피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마이키, 그만 보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마스터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다.
-맞아요. 마스터의 몸은 더 보고 싶다고 격하게 반응하고 계세요.
서진의 말에 마이키와 메딕이 곧바로 반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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