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37화 (37/225)

0037 / 0225 ----------------------------------------------

제9장 - 마지막 일탈

“뭐하고 있어? 들어오지 않고?”

“응, 지금 들어가.”

장독대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수지가 얼른 그의 곁으로 걸어가 찰싹 달라붙었다.

“여기 술값이 엄청나온다고 하던데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기나 해.”

“호호호, 알았어.”

수지는 나름 그를 위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장산그룹 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이 VIP룸 안으로 들어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장독대가 입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얘네 들은 왜 안 들어와?”

“플로어 구경하고 있어.”

“이런 촌놈들…….”

장독대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쿵쿵 쿠쿠쿵쿵 쿵쿵 쿠쿠쿵쿵!

하우스 음악(House Music)에 이어 이번에는 조금 하드 한 일렉트로 하우스(Electro house) 음악이 클럽 안을 진동시켰다.

서진과 백호, 동면은 나란히 난간에 기대어 플로어를 내려다봤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옷을 입은 건지 만 건지, 헐벗은 성형미녀들이 경쟁적으로 몸을 흔들어 대며 마음껏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있었다.

일부러 섹시하게 보이려는지 옷, 아니 천조각 사이로 성형보조물이 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하얀 살덩이들이 너무나도 선정적인 자태를 숨기지 않은 채 출렁이고 있었다.

그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자극적이기도 한 여자들의 그런 모습을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아마 그게 불만이었는가 보다. 수지를 비롯해 나연과 가인 그리고 하나까지 모두 그들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바짝 몸을 들이대고 말했다.

“우리 춤추러 가요?”

“그, 그래요.”

나연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며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서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서진은 속절없이 나연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플로어로 내려오지 않고 계단이나 2층의 난간에 기대어 춤을 추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연은 굳이 서진을 끌고 사람들이 가득한 1층 플로어로 내려갔다. 그것도 플로어 한가운데를 향해 꾸역꾸역 인파를 뚫으며 나아갔다.

쿵쿵 쿠쿠쿵쿵 쿵쿵 쿠쿠쿵쿵!

일렉트로 하우스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뮤직이 온몸을 후려치는 플로어는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를 뚫고 나연이 서진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 그 뒤를 나머지 세 쌍의 남녀들이 뒤쫓아 들어왔다.

“우와!”

“야호!”

“끼야아아악!”

“올레!”

플로어 한가운데를 점령한 네 명의 여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누가 보면 마치 전쟁에서 큰 승리라도 거둔 줄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런 자극적인 행동에 강백호와 우동면은 크게 흥분해서 같이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우와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여덟 명의 청춘남녀는 그때부터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수지와 나연은 누가 무용과 아니라고 할까봐, 이미 일렉트로 하우스 음악에 푹 빠진 채 상체와 하체가 완전히 따로 노는 절정의 댄스 실력으로 플로어를 초토화시켰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운동과 무용으로 단련된 늘씬하면서도 탄력 있는 몸매가 강한 비트에 딱딱 맞춰 흔들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무용을 보는 것 같았다.

가인과 하나도 만만치 않았다. 더운 여름이라 핫팬츠와 티셔츠, 반바지와 민소매를 각각 입고 있는 둘의 모습은 유난히 사람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몸에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는 가인과 하나의 격한 춤동작은 클럽 안의 남자들의 혼백을 분리해 넋을 잃고 쳐다보게 만들만큼 유혹적이었다.

장독대는 이럴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었는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스텝을 밟고 있었지만 서진과 백호, 우동면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클럽에 들어오자 더 이상 남자들은 주류가 아니었다. 이곳은 여자들이 메인이고 그녀들의 주 무대였다.

서진과 강백호, 우동면은 잠시 그녀들의 춤을 구경하더니 이내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점프와 꺾기, 막춤이 마구 튀어 나왔다. 그들은 남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정말 미친 듯이 신나게 춤을 추며 흥겹게 놀았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오히려 주변여자들이 홀린 듯 다가와 부비부비 몸을 비벼대며 야한 춤을 춰댔다.

쿵쿵 지잉징징 쿵쿵 지잉징징…….

네 쌍의 남녀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그동안 싸인 스트레스를 모조리 날려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플로어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 짓도 1시간이 넘어가자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장독대를 시작으로 수지 일행이 손짓을 하자 그들은 일제히 플로어를 빠져 나왔다.

VIP룸으로 돌아온 그들은 일단 시원한 맥주부터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몸에서 수분을 보충해달라고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우와, 역시 VIP룸이네.”

“여긴 정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온다.”

“시원하다. 천국이 따로 없어.”

“너 정말 춤 신나게 잘 추더라.”

“아냐, 너야말로 춤이 예술이던데…….”

어느새 그들은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있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여자들은 연신 맥주를 마시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물수건 없니?”

“여기 있어.”

“그걸로 뒷목 좀 닦아줄래.”

“그, 그래 알았어.”

하나가 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가리키자 우동면은 침을 한번 꿀떡 삼킨 채 물수건을 들었다. 우동면은 마치 예술가가 정성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닦는 것처럼 하나의 목을 물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 모습에 서진과 강백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만들어놨네!”

“VIP룸 처음이야?”

“응, 여긴 처음이야.”

“그렇구나. 그럼 네가 먼저 노래하나 해봐.”

“그래도 될까?”

수지는 장독대의 말에 한쪽 벽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벽걸이 TV를 켜고 노래방기계를 작동시켰다.

“이거 무료지?”

“응, VIP룸 가격에 이용요금이 포함되어 있어. 마음껏 불러도 돼.”

“그럼 너 나하고 허곽과 정운지가 부른 ‘바다’ 같이 부를래?”

“좋아. 나도 그 노래 좋아해.”

장독대의 말에 수지는 마이크 두개를 냉큼 집어 들더니 하나를 장독대에게 넘겼다. 그는 한손으로 마이크를 척 받더니 다른 한손으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윽, 뭐야?”

“우리 연인처럼 서로 애정을 담아서 불러보자고.”

“킥킥킥, 좋아.”

수지는 장독대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살살 어루만지고 있는 그의 손길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음악이 시작되자 서진은 급히 리모컨을 조정해 VIP룸에 한쪽 벽에 블라인드를 쳤다. 밖에서 온갖 조명이 반짝거릴 때마다 VIP룸도 정신없이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장독대와 수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마치 진짜 가수처럼 폼을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

나를 안고서 그렇게 잠들면 돼 ♬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

난 너를 사랑해 ♪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 널 ♬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다들 하던 짓을 멈추고 두 사람의 노래에 집중했다.

장독대와 수지의 듀엣은 생각보다 훨씬 멋있고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노래실력도 뛰어났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 부르는 마음이 노래 사이사이마다 절절이 느껴졌던 것이다.

둘은 노래가 끝나자 만족한 듯 웃으면서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잘했어.”

“너야말로 잘했어.”

“아냐, 진짜 네가 잘 불렀어.”

“아니야. 네가 완벽하게 불렀어.”

둘은 서로 잘 불렀다고 칭찬하기 바빴다.

그 모습에 질투를 느꼈는지 우동면이 하나에게 우리도 듀엣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하나는 작은 주먹을 꼭 쥐고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막상 노래가 시작되자 이건 감미로운 듀엣이 아니라 무슨 군가처럼 들렸다.

하나와 우동면은 절대음치였던 것이다.

강백호와 가인이 도전을 했고 이어 서진과 나연이 함께 듀엣을 불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장독대와 수지 커플보다 더 잘 부른 커플은 클럽에서 나갈 때까지 결코 나오지 않았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나도.”

장독대가 일어나자 강백호가 잽싸게 따라나섰다. 그러자 서진이 눈치를 채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럼 나도 갈까?”

“난 가고 싶지 않아. 그냥 하나 옆에 있을게.”

하지만 우동면이 눈치 없이 하나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서진이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눈치를 챈 우동면이 하나에게 굳이 안 해도 될 보고를 하고 일어났다.

“하나야, 나 화장실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라. 호호호!”

그들은 VIP룸을 나와 남자화장실로 직행했다.

소변을 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자 3차인 별장파티에 대한 최종작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들 마음에 들어?”

“물론이지. 장독대! 사랑한다.”

“이렇게 괜찮은 애들이 나올지는 상상조차 못했어.”

“난 하나와 결혼할 생각이야.”

빡!

강백호가 우동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 왜 때려?”

“이 새끼가 꼭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네. 너 혹시 하나한테 결혼하자고 했냐?”

“아직 안했어.”

“뭐 아직 안했어?”

“그래. 아직 안했다고.”

강백호가 자신의 뒷목을 잡자 서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결혼하자고 해도 아마 농담으로 들을 거야. 누가 처음만난 남자가 결혼하자고 말하면 그걸 진심으로 듣겠어.”

“아냐. 나 진심이야.”

퍽!

이번에는 서진이 참지 못하고 우동면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다.

“너 지금부터 술 더 마시지마. 알았어?”

“응, 알았어.”

우동면은 서진의 실력행사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얘 잘 감시해. 잘못하면 오늘 이 새끼 진상 짓에 바로 파토난다.”

“알았어. 내가 옆에서 잘 볼게.”

장독대가 웃으며 대답하자 우동면이 엄지를 위로 척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강백호가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잘하면 오늘밤 우리들은 모두 동정에서 탈출하게 될 거야.”

“화이팅 한번 하자.”

빡!

“이 새끼가 또 헛소리를 해서 분위기 다 깨네.”

“자꾸 내 머리 때리지 마. 안 그래도 머리 나쁜데…….”

“머리 나쁜 것은 잘 아네. 아이고, 이 돌대가리 새끼!”

강백호는 자꾸 헛소리를 해대는 우동면의 뒤통수를 치다가 손가락이 삐끗한 느낌이 들어 인상을 팍 썼다.

“자자, 흥분하지 말고 우리 끝까지 유종의 미를 잘 거두자.”

“그래.”

“차는 있어?”

“리무진을 대기시켜놓았어.”

“리무진? 그거 돈 많이 들 텐데…….”

“돈 걱정은 하지 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거야. 그게 제일 중요해.”

“맞아. 난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어.”

“좋았어.”

“모두 최후의 한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오케이.”

그들은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며 화장실을 나섰다.

-마스터, VIP룸으로 빨리 가보십시오.

“응?”

-시비가 붙었습니다.

마이키가 다급한 소리로 말하자 서진이 즉시 VIP룸을 향해 달렸다.

“서진아!”

“왜 저래?”

“몰라 빨리 가보자.”

강백호가 뒤늦게 달려가자 우동면과 장독대도 같이 그의 뒤를 쫓았다.

VIP룸에 도착하자 문이 활짝 열려있고 건장한 사내가 네 명이나 들어와 있었다.

“아아! 팔 아파요. 이거 놔요.”

“거참 왜 이렇게 말길을 못 알아먹어? 오빠들이 재미있게 해주겠다잖아.”

파란 남방을 입은 사내가 수지의 팔목을 잡아당겨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놈은 하나의 가슴을 보더니 눈이 뒤집혀 손으로 잡으려고 들었다. 그러자 나연이 중간에 끼어들어 팔을 쳐내고 그의 몸을 힘껏 밀어버렸다. 하지만 하얀 와이셔츠의 덩치가 너무 커서 옆으로 한 발짝 밀려나다 말았다.

“아니 이 년이 미쳤나?”

하얀 와이셔츠는 화가 나서 나연의 뺨을 향해 후려쳤다.

“까아악!”

나연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턱!

“이건 또 뭐야?”

나연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눈을 살짝 뜨고 앞을 봤다.

서진이 하얀 와이셔츠의 손목을 단단히 틀어쥐고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서진아!”

나연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서진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서진을 향했다.

“넌 뭐야?”

“남의 방에 들어와서 지금 제 여자 친구에게 뭐하는 짓입니까?”

“여자친구?”

파란 남방과 하얀 와이셔츠는 그제야 여자들이 일행이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