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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나비의 꿈
둘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자신들의 숫자가 네 명이나 되니 그냥 하나쯤은 재껴버리자고 합의를 봤다.
그 순간 장독대의 천둥치는 듯한 고함소리가 VIP룸을 울렸다.
“야! 이 시발 놈아. 당장 그 손 못 놔!”
“이런 호로새끼들! 어딜 기어 들어와서 행패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이 개 좆만 한 새끼들아!”
장독대가 파란 남방을 향해 미친놈처럼 달려들자 놀란 파란 남방은 급히 수지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강백호와 우동면이 들어와 서진의 옆에 섰다. 그들의 걸쭉한 욕에 놀란 네 명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 시발, 일행이 있으면 있다고 할 것이지?”
“이 미친 새끼야! 아까부터 백번도 넘게 일행 있다고 했어.”
수지가 자신의 팔을 주무르면서 거칠게 욕을 했다. 이제는 좀 해볼 만하다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의 기가 살아났다. 하나도 방금 전만 해도 벌벌 떨고 있다가 서진 일행이 돌아오자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려놓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하얀 와이셔츠를 노려봤다.
“당장 사과하고 꺼져.”
장독대가 서진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차갑게 소리쳤다. 그러자 뒤에서 보고 있던 검은 깍두기 머리와 검은 남방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거 좆만 한 새끼! 졸라 시끄럽게 빽빽대네.”
“형들이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래? 내가 화해주 한잔 살 테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같이 놀자. 응? 형이 술값 대신 내줄게.”
장독대는 그들의 말에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들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우리 서진이 말대로 좀 얌전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시발! 협조를 안 해주네.”
검은 남방은 장독대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줄기줄기 퍼져 나오자 깜짝 놀랐다.
‘뭔 놈의 애새끼 눈빛이 저렇게 독사처럼 살벌하냐? 이 새끼 혹시 맛이 간 거 아냐?’
장독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청객 네 명은 서진 일행에게 다가와 일자대형으로 나란히 섰다. 한판 붙어보자는 도발이었다. VIP룸엔 곧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님,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손님 여기서 왜 이러세요?”
“어? 형님들 여기 계셨네요.”
그때 웨이터 둘이 동시에 VIP룸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장독대에게 형님 소리를 난발하던 ‘원빈’이었고 또 한명은 불청객 네 명을 서빙 하는 ‘장동건’이었다.
쫘악!
장독대가 웨이터 원빈의 뺨을 찰 지게 갈겼다.
“이 시발 놈아! 내가 이러라고 너한테 팁을 찔러준 줄 알아. 네가 어떻게 했기에 VIP룸에 저런 개새끼들이 난입을 해?”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원빈은 장독대의 말에 두말없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더니 즉시 가슴에 손을 대고 경비를 불렀다.
“야! 원빈! 경비를 호출하면 어떻게 해? 여기 형님들 누군지 몰라서 물어?”
“너야 말로 이분들 누군지 모르면 좀 닥치고 있어!”
원빈의 호통소리에 웨이터 장동건은 물론이고 불청객 네 명까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불청객 네 명의 몸에 OTF 나이프가 있습니다.
“OTF?”
-버튼을 눌렀을 경우 스프링에 의해 앞으로 칼날이 자동 사출되는 구조로 작동되는 나이프를 말합니다. 모델을 확인해보니 명품 OTF 나이프로 유명한 Microtech 사(社)의 Halo V 입니다. 개당 70만 원을 호가하는 물건입니다.
-마스터, 불청객 네 명의 몸을 스캔하니 마약 반응이 잡힙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로이를 보내겠습니다.
“응.”
마이키와 메딕의 정보를 받은 서진은 일단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려 흥분한 장독대와 우동면을 막아 세웠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장독대와 우동면이 서진의 간단한 몸짓에 잠잠해지자 검은 남방의 사내가 흠칫하며 서진을 쳐다봤다.
그때,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가 산만한 놈들이 우르르 VIP룸으로 들어왔다.
“여기 왜 이래?”
“무슨 일이야?”
“아니 조진하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키가 제일 작으면서도 그들의 앞에 서있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검은 남방의 사내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송 과장, 별일 아냐. 오해가 좀 있어서 그래.”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중재를 하도록 하죠.”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들의 수작에 화가 난 장독대가 소리를 쳤다.
“중재고 나발이고 빨리 사과나 하고 꺼지라니까? 내말이 말 같지 않아?”
장독대의 말에 송 과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웨이터 원빈이 즉시 송 과장에게 달려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송 과장은 조진하와 장독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서진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채고 기침을 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살짝 막았다.
“마이키, 조진하라는 놈의 정체를 알아봐.”
-네, 마스터.
마이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곧바로 조진하에 대해 브리핑했다.
-마스터, 조진하는 재벌순위 10위인 진한그룹 회장 조호영의 조카로, 지병으로 사망한 막내 동생의 외동아들입니다. 조진하는 비록 재벌가의 자식이지만 무능하고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고뭉치입니다. 미국 유학중 마약으로 인해 교도소에 복역한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는 백수로 다 망해가는 진한해운의 주식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진한그룹에서는 그를 이미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서진은 아무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조진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재벌이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장독대도 재벌가의 자식이다. 생각 같아서는 둘이 원 없이 한번 싸워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장소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십중팔구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두고두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아직은 대놓고 밟아버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혼을 내주는 것도 꼭 눈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게 전부는 아니지.’
서진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송 과장이라는 사람을 불렀다.
“거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네, 손님.”
송 과장은 안 그래도 두 재벌가의 자식들 사이의 다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한쪽의 주도권을 쥔 것으로 보이는 서진이 자신을 부르자 잘됐다 생각하고 얼른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일이 어떻게 됐던 간에 VIP룸에 허락도 받지 않고 난입해 들어와 여자 친구들에게 실수를 했으니 오늘 술값을 저쪽에서 내는 것으로 마무리 합시다. 본인 입으로도 화해주를 산다고 했으니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겁니다.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갈 때 그냥 명함 하나 주시면 나중에 따로 한 번 연락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송 과장은 서진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조진하에게 다가간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비볐다.
조진하는 송 과장의 말을 다 듣고는 서진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잠시 고민을 한 그는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송 과장은 환한 얼굴로 다시 서진에게 돌아왔다.
“조 사장님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십니다.”
“그럼 이제 우리끼리 조용히 있게 자리를 좀 정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송 과장은 다시 조진하에게 걸어가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조진하는 마치 금일봉이라도 하사하는 것처럼 온갖 똥 폼을 다 잡으면서 지갑을 꺼냈다. 그는 지갑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카드 하나와 명함 한 장을 꺼내 송 과장에 넘기곤 몸을 돌렸다.
“어이, 동생! 나중에 한번 꼭 연락해.”
“봐서 전화하죠.”
“하하하, 어쨌든 오늘 미안하게 됐다.”
“…….”
조진하는 마치 동네 형이라도 되는 듯 서진을 향해 환하게 한번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뒤를 곧 불청객 세 명이 따라나섰다.
-마스터, 조진하가 미안하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에요. 나중에 연락하라고 했을 때는 복수를 다짐하는 것 같았어요.
메딕의 말에 서진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생각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다. 능력은 없고 재벌의 자존심만 드높은 조진하에게 서진이 따로 연락을 해서 만난다고 좋게 술이나 사주고 보낼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서진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아! 시발, 기분 좆같네.”
“그렇게 흥분만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너 저 새끼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재벌순위 10위인 진한그룹 회장 조호영의 조카 조진하야.”
“뭐 조진하? 아! 그 개망나니새끼?”
“알고 있었어?”
“아니. 내가 저딴 새끼를 어떻게 알아? 그냥 약쟁이라는 소문만 들었지.”
재벌가의 소식통은 정통하기로 유명하다. 장독대가 아직 어리다고 하지만 장산그룹 회장의 손자다. 미래에 장산그룹을 이어받을지도 모를 장독대는 이미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경영자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재벌들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두루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까 그 사람 재벌3세였어?”
“무늬만 재벌인 놈이야.”
수지가 놀라서 말하자 장독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는 잠시 한 호흡 쉬었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여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서 계속 놀기는 틀린 것 같고……. 우리 자리를 좀 옮겨볼까?”
“어디로?”
“근사한데로 내가 준비해놨어. 너희들을 모셔가기 위해 특별히 리무진도 준비했고…….”
“리무진? 나 리무진 꼭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리무진이라는 말에 하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장독대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자 가자.”
“야호! 좋아. 얼른 나가자.”
하나가 장독대의 말에 혹해서 설레발을 치자 수지와 나연 그리고 가인이 못이기는 척하며 따라나섰다. 그녀들도 실은 리무진을 꼭 한번 타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 만난 자신들의 파트너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고 말이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VIP룸을 빠져나왔다.
클럽 밖으로 나가자 웨이터 원빈이 귀신같이 알고 쫓아 나왔다.
“형님, 오늘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제가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아까 손찌검을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잘해라.”
“네, 형님.”
장독대는 수표 한 장을 꺼내 웨이터 원빈의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일행은 모두 병아리 새끼처럼 장독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마스터, 조진하가 밖으로 나와 차를 탔습니다. 아무래도 마스터 일행을 미행하려는 것 같습니다.
“역시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군. 작전명 ‘산화(散花)’를 시작한다. 마이키와 메딕은 이따가 조진하가 우리를 쫓아오면…….”
서진은 일부러 제일 뒤로 쳐져 걸어가면서 마이키와 메딕에게 자신이 생각해놓은 작전을 설명했다. 마이키와 메딕은 그의 말을 한번 듣더니 곧바로 세부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우와, 이게 리무진이구나.”
“어때 근사하지?”
“정말 그러네. 하지만 이걸 매일 타고 도심을 돌아다니기는 좀 힘들겠다.”
“원래 리무진은 미국에서 많이 타고 다니지, 국내에서는 쉽지 않아.”
하얀 색으로 반짝거리는 기다란 리무진을 보자 하나의 눈이 몽롱해졌다. 수지와 가인은 리무진 증명사진을 찍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하나도 그 대열에 뛰어 들었고 우동면은 바로 찍새로 전업을 했다.
나연은 조용히 서진의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서진아, 아까 고마웠어.”
“고맙긴, 내 파트너인데 당연히 널 보호해줘야지.”
“네 여자 친구라고 해줘서 고마웠다고…….”
“응, 그, 그게…….”
서진은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나연은 서진이 얼굴을 붉히자 그가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그의 뺨에 키스를 해줬다.
쪽!
서진은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느껴지자 자신도 모르게 솜털이 일어섰다.
그녀의 체향은 뭔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발동을 걸고 난리야.’
서진은 괜히 좋으면서 아닌 척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찍고 출발하자.”
“좋았어.”
“우리 둘은 앞에 탈 테니까 너희들은 모두 뒤에 타라.”
“알았어.”
장독대는 수지의 손을 잡고 앞좌석으로 갔다. 수지는 뒤에 타고 싶었지만 여덟 명이 함께 타면 좁을 까봐 장독대와 같이 뒷자리를 양보했다.
운전기사가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고 다시 앞으로 와서 조수석을 열어줬다.
“도련님, 타시지요.”
“고마워요. 차 과장.”
“천만에요. 그럼 별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줘요.”
리무진 운전기사는 알고 보니 장산그룹 사람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장독대의 아버지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모른 척 묵과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 제목으로 정한 '나비의 꿈'은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도 하는 장자의 꿈을 뜻합니다. 즉 사물과 내가 한 몸이 되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죠.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자신은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니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꿈을 깨어보니 자신은 장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
는 ‘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자라는 인간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로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의
미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야말로 도가사상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자가 꾼 이 꿈을 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고도 부릅니다. 장주(蔣周)는 장자의 이름이지요. 또 자신을 잊는 그 경
지를 가리켜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고도 합니다.
[출처: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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