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44화 (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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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 리미트리스(Limitless)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

캉!

타조 알만한 커다란 드라이버의 헤드가 골프공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하얀 골프공은 푸른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가 완만한 포물선을 굴리며 필드에 떨어지더니 데굴데굴 굴러갔다.

“나이스 샷!”

“나이스 샷!”

서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골프티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는 몸을 돌렸다. 연서가 다가와 그에게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혹시 아침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서 칼 갈았어?”

“아니.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런데 무슨 비거리가 300야드도 넘게 나와? 미국 남자 프로골퍼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도 290야드를 넘지 않는데…….”

“내가 원래 힘과 자세가 좋잖아.”

서진이 그녀를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연서는 볼을 부풀리며 눈을 예쁘게 흘겼다.

“치이, 그래도 이건 반칙이야. 드라이버의 비거리 차이가 너무 난다고.”

“그러는 너는? 여자 티에서 안치고 남자 티에서 치고 있잖아. 드라이버 비거리도 미국 여자 프로골퍼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인 250야드도 넘잖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보다는 너보고 몬스터라고 할 거야.”

연서는 서진의 논리적인 말에 결국 한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카트에 올라탔다.

골프백에 드라이버를 집어넣고 운전석에 탄 서진은 카트를 출발시켰다.

녹음이 우거진, 스탠퍼드 유니버시티 골프코스의 시원하게 뻥 뚫려있는 길을 따라 카트를 달리자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 골프공 저기 있다.”

연서가 자신의 공이 떨어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서진은 카트를 가장 가까운 길에 가져다댔다.

“못해도 250야드는 남았겠지?”

“아마도……. 3번이나 5번 우드(Wood)로 붙이고 피칭웨지(Pitching wedge)로 그린을 노려야 할 거야.”

“알겠어.”

연서가 골프백에서 3번 우두와 5번 우드를 챙겼다.

서진은 그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필드를 걸어갔다.

잘 정돈 된 잔디를 밟는 소리가 사박사박 거리며 귀를 간지럽혔다. 항상 콘크리트나 시멘트만 밟다가 이렇게 땅과 잔디를 밟으니 발바닥의 감각이 다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이번 홀은 파파이브로 500야드가 넘는 긴 홀이다. 거리가 조금만 짧았다면 연서도 투 온(two on) 그린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이미 그건 불가능했다. 최상의 선택은 그린에 바짝 붙이고 정교한 피치 샷으로 홀을 바로 노리는 것뿐이다.

연서는 신중하게 방향을 잡고는 거리계산에 들어갔다. 이윽고 확신이 서자 그녀는 서진에게 5번 우드를 맡기고 자신은 3번 우드를 들었다. 두 다리를 어깨넓이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자연스럽게 몸의 자세를 낮추더니 우드를 천천히 들었다가 힘차고 날카롭게 휘둘렀다.

딱!

3번 우드 헤드 가운데에 정확하게 맞은 골프공은 빨랫줄처럼 일자를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다가 힘을 잃고 이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자유낙하를 했다.

골프공은 필드 중간에 함정처럼 만들어놓은 샌드를 무사히 넘어 그린의 바로 앞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나이스 샷!”

“호호호! 고마워!”

연서는 방금 전 스윙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드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완벽한 샷이었어.”

“정말? 헤헤!”

엄지를 추켜세우자 연서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의 품속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서진은 그녀를 피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다. 뭉클한 여체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그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 가만히 그녀를 안았다.

‘흐음, 이제 다 자랐네. 예전의 사이즈를 다 회복했어. 아끼던 상급포션을 두 병이나 투자한 보람이 있네.’

포션백은 원래 미래의 민연서의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연서에게 좀 투자한다고 아깝진 않았다. 비록 그의 머릿속에는 ‘포션백은 내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흐뭇한 미소(라고 쓰고 음흉한 미소라고 읽는다)를 지으며 그녀의 한 줌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허리를 어루만졌다.

“연서야, 이제 슬슬 출발할까?”

“응.”

서진이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하자 연서는 뭔가 아쉬운 뉘앙스를 솔솔 풍기며 그의 품에서 떨어져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카트를 향해 걸어갔다.

“수업은 어때? 힘들지 않아?”

“이제 겨우 시작인데 뭐?”

“내말 듣고 프리메드(pre-med: 의과 대학 예과 과정)를 선택한 것 후회하지 않아?”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어. 과연 내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더라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인체에 대해 흥미도 생겼고 생물학(Biology)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

미래에 A급 힐러가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녀가 굳이 다른 과목을 전공할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서진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제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성실히 밟아나가고 있었다.

“다행이네. 어차피 본격적인 시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학원과정인 메디컬스쿨(Medical school)로 들어간 후라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들었어.”

서진은 연서가 생각보다 스탠퍼드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상급포션을 두 병이나 복용했고 메딕이 매일 밤 그녀의 뇌를 자극해서 활성화시켜주고 있는데, 이정도도 못 따라가면 곤란했다.

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서진과 연서는 오순도순 그동안 있었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팰로앨토 하이스쿨로 전학을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년이나 흘렀네.”

“시간 참 빨리 간다. 그치?”

“그러게 말이야.”

서상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서진은 연서와 같이 미국 스탠퍼드에 있는 팰로앨토 하이스쿨로 전학을 왔다. 어머니 손예진이 결사반대를 해서 한동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스탠퍼드 대학교를 목표로 유학을 가겠다는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난 팰로앨토 하이스쿨하면 졸업파티가 제일먼저 생각나. 아마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을 거야.”

연서가 마치 꿈을 꾸는 소녀처럼 눈이 몽롱하게 풀리자 서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이고 머리야. 졸업파티에서 퀸에 등극한 너한테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난 너 때문에 일어난 싸움 뒤치다꺼리한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헤헤, 그건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그때 애들이 전설의 부활이라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미식축구부 애들과 18 대 1로 싸워서 묵사발을 만들어버렸으니까.”

서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연서의 얼굴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때는 18 대 1의 주먹다짐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존과 제임스가 술에 취해 총을 들고 설치던 것을 쫓아다니며 해결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두 놈은 나중에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서진의 처절한 응징을 피해가진 못했다. 결국 그들은 다시는 입에 술을 대지도 않겠다는 맹세를 하며 금주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렸다. 물론 금주하기까지 겪은 그들의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뒤끝 넘치는 서진의 응징에 관한 얘기는 지면 관계상 이만 넘기도록 하자.

툭! 탱그랑!

“나이스 버디!”

“땡큐!”

연서가 마지막 홀을 기분 좋게 버디로 잡고 퍼터를 휘돌리며 폼을 잡았다.

서진은 그녀에게 아낌없이 양쪽 엄지를 세워 보여줬다.

둘은 즐겁게 웃으면서 카트 탔다.

클럽하우스로 카트를 몰고 가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에게 통째로 넘겨버리고 나자 배가 출출한 느낌이 들었다.

“클럽하우스 안에 있는 카페에서 뭣 좀 먹고 갈까?”

“아니. 배가 좀 고프긴 한데…….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먹을래.”

“어디 특별히 가고 싶은 데가 있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씨푸드(Seafood) 레스토랑으로 가자.”

“좋아.”

서진은 연서의 말에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삐빅!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버튼을 누르자 2014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슈퍼카로 알려진 람보르기니 베네노(Lamborghini Veneno)의 양쪽 도어가 위로 올라갔다.

메탈실버 컬러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람보르기니 베네노는 작년에 서진이 4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그의 첫 번째 슈퍼카였다.

서진은 연서를 먼저 태우고 운전석에 앉아 차문을 닫았다.

부아아아아앙!

아벤타도르의 6.5 L V12 엔진을 튜닝·장착해 최고출력 750마력, 제로백(0-100km/h 도달시간) 2.9초, 최고속도 355km/h를 내는 람보르기니 베네노가 묵직한 엔진소리를 내며 총알처럼 달려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람보르기니 베네노의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부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 * *

푸타타타타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샌프란시스코 만(灣)의 정경은 아름다웠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 주택가와 공원, 잘 보호된 자연환경은 시(市)와 주(州)에서 그동안 얼마나 도시계획에 신경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헬기는 스탠퍼드를 가로질러 남서쪽으로 날아갔다.

포르톨라 밸리(Portola Valley)를 지나자 기수를 남쪽으로 꺾고 포르톨라 밸리 랜치(Portola Valley Ranch)를 만나자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마스터, 곧 알파인 연구소에 도착합니다.”

“응.”

옆에 앉은 로이의 말에 서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숲속 한가운데에 세워진 하얀색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헬기가 헬리포트에 안전하게 착륙하자 곧 헬기의 문이 열리고 검은 선글라스에 정장을 갖춰 입은 경호원들이 먼저 내려 주변을 살폈다.

서진과 로이는 헬기에서 내려 경호원들을 따라 알파인 연구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입니다.”

알파인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자 로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서진을 인도했다. 보안검색대가 나타나자 경호원들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서서 대기하기로 했다.

서진과 로이는 그곳을 통과해 지하로 연결된 통로로 향했다. 입구에 또 다른 보안검색대가 나타나자 둘은 다시 한 번 빠르게 통과했다.

지하로 내려오자 그들의 앞에 하얀 가운을 입은 50대 후반의 백인남자가 나타나 정중히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의 연구소장 해리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로이입니다. 이쪽은 저희 회사 부사장입니다.”

“서진입니다.”

“해리스입니다.”

해리스는 로이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파인 연구소를 소유하고 있는 ‘헤븐 인더스트리’의 부사장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이 어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연륜이라는 것이 있어서 금세 신색을 회복하고 로이와 서진에게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회의실에 브리핑을 준비해뒀습니다.”

“먼저 연구결과부터 확인하고 브리핑을 듣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로이의 말에 해리스는 두말없이 그들을 승강기 앞으로 이끌었다. 지하1층에서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정확히 지하 몇 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봐도 꽤나 많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해리스는 오른쪽 복도로 일행을 이끌었다. 복도를 따라 30m 쯤 걸어가자 맨 끝에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다. 문 옆에는 ‘테스트 에이리어(Test Area)’라고 쓴 팻말이 붙어있었다. 해리스는 자신의 목에 걸린 보안키를 보안장치에 삽입하고 자신의 손을 댔다. 그러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탕 탕 탕 탕 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부와아아아악 부와아아아악…….

펑 펑 펑 펑 펑!

쾅 콰앙!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소화기(小火器)가 발사되는 소음과 유탄이 터지는 폭음이 들려왔다.

해리스는 그들을 데리고 제일 안쪽에 있는 사격장으로 갔다.

사격장은 커다란 방탄유리로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거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저희가 이번에 개발한 KM시리즈입니다.”

해리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자동권총과 소총을 비롯한 각종 총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진과 로이는 테이블에 다가가 KM시리즈를 살펴봤다.

해리스는 그들을 상대로 열심히 KM시리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스터, 이것은 2025년 당시 미국이 대마수용병기로 양산해 사용했던 AM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해서 만든 KM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서진은 해리스의 말을 듣는 대신 마이키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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