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46화 (4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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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 실전테스트

지이잉! 철컥!

서진이 탄 차에 아무 이상이 없자 철문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갔다.

부우우우웅! 쿵!

로이가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철문이 아래로 툭 떨어져내렸다.

서진의 전용주차공간은 넓은 편이었다. 그곳에는 캐딜락 말고도 롤스로이스, 벤츠, BMW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최고급승용차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전용승강기 앞에 멈추자 로이는 재빨리 운전석에서 튀어나와 뒷문을 열었다.

“로이, 고마워.”

“천만에요.”

서진은 로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승강기 앞으로 걸어가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의 문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양쪽으로 열렸다. 서진이 잠시 버튼을 눌러 승강기를 잡고 있자 로이가 황송한 표정으로 총총걸음을 하고 잽싸게 들어왔다.

로이는 서진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

문이 닫히자 승강기는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건물 맨 위층,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승강기는 곧 스르륵 다시 문을 열어주었다.

“혹시 마실 것 필요하시면 제가 가져가 드리겠습니다.”

“아이스커피 한 잔 부탁할까?”

“네, 바로 만들어오겠습니다. 마스터.”

서진은 로이를 뒤로 한 채 카펫이 깔린 길을 따라 중앙을 똑바로 걸어갔다.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하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방안으로 걸어 들어서는 순간,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렸다. 사방 벽이 강력한 방탄기능을 가진 투명한 합금으로 만들어져 주변경관이 360도로 모두 들어오고 있었다.

서진은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2016년, 5160억 달러로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된 ‘구골’본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헤븐 인더스트리 본사가 있는 이 블록을 제외하고 주변일대의 수십 개의 빌딩과 블록은 전부 구골 소유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서진이 소유한 이 건물들도 구골의 소유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서진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골 본사 바로 옆의 블록 하나를 통째로 사들여 입주해버렸다.

구골은 헤븐 인더스트리의 존재를 마치 발톱에 박힌 가시처럼 생각하고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빌딩을 팔라고 제의했다. 하지만 서진은 절대로 팔지 않았다.

대격변이 시작되면 북쪽에 있는 구골 사커 필드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마수들이 쏟아져 나와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구골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본사를 이전하게 되는데 아무도 구골이 보유하고 있는 이 일대의 부동산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구골은 이때 입은 물적, 인적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경쟁기업에서 밀려났다. 시가총액이 백분의 일로 주저앉고 그저 그런, 고만고만한 기업의 하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서진은 대격변이 시작되면 구골과 곧바로 빅딜을 할 예정이었다. 헤븐 시큐리티의 미국 현지법인인 헤븐 디펜스를 바로 옆 건물에 입주 시킨 것도 모두 그때를 위함이다. 마수들이 그들의 본사와 주변 빌딩 안으로 난입해와 눈앞에서 학살극을 벌이면 아마 구골의 CEO는 그 어떤 조건도 다 들어준다고 애원을 할 것이다.

그동안 헤븐 투자는 구골 주식을 통해 짭짤한 수익을 챙겼다. 또한 구골에서 분사해나간 여러 벤처기업들에 남몰래 투자해놓은 돈도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서진은 한번 꽂은 빨대를 굳이 뽑고 싶지 않았다. 구골이라는 화수분에 더 깊이 빨대를 꽂아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단물을 빨아먹을 생각이다.

현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있다는 자들이니 이번 기회에 인재들의 생명도 좀 구하고 그 산의 일부도 가져가 써주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이키, 시작하자.”

-네, 마스터!

서진이 의자에 몸을 기대자 투명하던 창문이 모두 어둡게 변해갔다. 그가 앉은 곳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허공에 홀로그램들이 차례로 떠오르자 마이키가 본격적인 브리핑을 시작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현황부터 보고 하겠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웨덴, 이상 15개국은 기본적인 1차 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1차 작업은 무엇을 뜻하는 거지?”

-홀로그램을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대 마수전쟁에 꼭 필요한 주요 인사와 능력자들의 소재파악, 영입대상자 분류, 보호해야할 기업리스트, 제거대상자의 분류가 모두 완료됐다는 뜻입니다.

마이키의 말대로 홀로그램을 통해 보니 더욱 쉽게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계속해봐.”

-아이슬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체코, 칠레, 포르투갈, 폴란드, 이스라엘, 한국, 스페인, 헝가리, 뉴질랜드, 호주, 이상 15개국은 1차 작업 진행률이 75%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멕시코, 그리스, 터키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 많아 아직 반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뭐지?”

-일본은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야쿠자들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살생부 자체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음.”

한마디로 일본은 대가리가 다 썩었고 야쿠자들이 너무 설쳐대고 있다는 말이다.

마이키의 말이 이어졌다.

-멕시코는 아시다시피 중남미의 마약카르텔을 석권해 세계 제1위의 마약소비국인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멕시코의 남부지역은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고 제거해야할 대상이 너무 많아 도저히 기간 내에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미국이 캐나다와는 달리, 멕시코의 성장을 견제한 폐해가 이제는 거꾸로 미국인들의 피와 골수를 마약으로 채우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한때 중남미를 호령하고 미국 마약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콜롬비아의 마약카르텔들이 미국의 공습과 특수부대의 소탕전으로 박살이 났지만 뒤처리를 더럽게 못하는 미국의 고질적인 방관자세로 이번에는 멕시코가 중남미 마약카르텔을 일통하고 무시무시하게 성장해버렸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을 통해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자금으로 중화기와 전차, 헬기 심지어는 전투기까지 보유할 정도라 이제는 정부에서도 함부로 토벌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가 됐다.

특히 근본적으로 돈만 뜯어가는 부패한 정부와는 달리 지역주민에게 학교와 병원을 건설해주고 각종 사회사업을 펼쳐 민심을 얻고 있는 마약카르텔은 쉽게 뿌리 뽑을 수 있는 풀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질긴 잡초로 변해있었다.

“그럼 그리스와 터키는?”

-그리스는 이미 경제가 파탄이 난 상태라 가뜩이나 심한 부정부패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터키는 세속주의와 이슬람원리주의로 인해 국론이 양분되어 있는 상태고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 국가로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현 집권세력의 부정부패와 지도자의 독재로 인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상태입니다.

“으음. 이거 참 고민되는군.”

서진은 잠시 마이키의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섞인 상황은 아무리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마이키라고 해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모조리 다 제거해버리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서진이 태어난 조국도 아니고, 피에 굶주린 학살자도 아닌데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될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런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메디봇을 쓸 수밖에 없나?”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당장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들은 정부군과 반군의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인해 대격변이 오면 예전처럼 바로 마수들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아. 메디봇의 사용과 대량생산을 승인하지. 메딕 들었지?”

-네, 마스터! 들었어요. 미래에서 가져온 지원키트를 이용해 즉시 메디봇을 대량생산해서 마이키에게 전달할게요.

“고마워! 메딕!”

-천만에요. 마스터!

메딕의 부드러운 음성에 서진은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이키, 중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변국을 이간시켰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잘 사용해봐. 서로의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반대파를 줄이고 각 파벌의 영수들이 전격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 정치를 안정시키도록 해. 특히 마약카르텔은 라이벌 조직과의 분쟁을 유도해서 전면적인 전쟁으로 비화시켜.”

-알겠습니다. 일본과 멕시코는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리스와 터키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굳이 그리스의 경제를 책임질 필요는 없지. 최대한 능력자들을 영입하고 대격변을 이겨낼 수 있는 방향으로만 일을 잘 유도해봐.”

-알겠습니다.

서진은 로이가 가져온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번에는 터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독재를 하든 지들끼리 싸우든 내버려둬. 괜히 종교문제에 간섭했다간 오히려 일을 더 키우는 수가 있어. 대신 능력자법이 제대로 만들어져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시켜!”

-마스터의 뜻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확실히 마스터가 이렇게 지침을 정해주니 일이 한결 쉬워지는 군요.

마이키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자 서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침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기존의 S급, A급 능력자들을 영입하는 것은 그들을 모두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오려는 게 아냐. 영입한 능력자들은 기본적으로 각자 자기의 나라에 일어난 대 마수전쟁을 우선적으로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줘.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한민국으로 오겠다면 그건 말릴 필요가 없지.”

-그럼 S급 능력자가 될 잠재가능성이 높지만 불운하게도 비명횡사한 능력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도 자기 나라를 위해 먼저 싸우라고 할까요?

“그들이 대한민국으로 오겠다면 언제든 환영이야. 하지만 반대로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지.”

-이제야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 능력자는 그냥 내버려두고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데려오라는 거군요.

“맞아. 정확해.”

현재 서진은 헤븐 시큐리티를 이용해 S급, A급 능력자가 될 것이 확실한 자들과 A급까지 올랐다가 S급이 되지 못하고 아쉽게도 죽고만 자들을 열심히 영입하고 있었다. 대격변이 시작되면 곧바로 B급 이하의 능력자들도 쓸어 모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자집단을 만들어낼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초반에 차원의 균열에서 나온 마수들을 쓸어버리고 능력자들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10년 동안 차원의 균열과 마수의 행태를 연구했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 하나 있었다. 대격변이 일어난 첫해, 너무나도 많은 능력자들이 그처럼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지만 않았어도 마수들과의 전쟁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각국 정부의 대응매뉴얼이 없는 상태에서 군(軍)의 초동대처가 미숙했고, 능력자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무리한 법을 만들어 밀어붙인 것도 큰 실수로 봤다.

어찌됐든 서진은 대격변이 시작되는 첫 주가 마수와의 전쟁의 성패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이키와 메딕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첫 단추만 잘 끼우면 나머지는 의외로 손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나는 지구를 구할 구원자나 슈퍼맨이 아니다.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내고 싶을 뿐이야. 대격변이 시작되면 각국의 정부를 움직여 초동대처를 잘 하게 만들고, 헤븐 시큐리티 대원들을 대 마수용무기로 무장시켜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수를 상대하게 하는 거야. 특히 능력자들이 초반에 어이없이 마수들에게 죽지 않도록 잘 보호하기만 한다면 내가 회귀를 한 목적은 이미 달성하는 셈이지. 그다음은 능력자들에게 맡겨야해. 그들이 성장해 나가면서 대 마수전쟁을 주도해가겠지.’

서진은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처럼 지구를 정복하거나 세상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말이 쉽지, 누군가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은 진짜 피곤한 일이다. 오히려 적당한 권력과 넉넉한 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조용히 부모님을 모시고 연서와 한평생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진의 소박한 꿈이 잘 이루어질지는 끝까지 두고 봐야만 알게 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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