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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 피의 살육
“이렇게 지하통로를 통해 빠져나가야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어.”
“진짜요?”
“너 혹시, 내가 널 어떻게 할까봐 불안해서 그러니?”
“아,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제니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째 믿음이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마스터, 제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메딕이 그 믿음에 확인사살을 했다.
“나 혼자 탈출하려고 생각했다면 아마 밖으로 나갔을 거야. 하지만 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난 너를 보호할 자신이 없어. 사람에게는 눈이 둘이나 달려있지만 총알에는 눈이 없거든. 네가 아무리 예뻐도 눈 먼 총알에 맞은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거야. 어떻게 생각해?”
“그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제니는 다시 한 번 정색을 하고 대답을 했다.
-마스터, 제니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진은 메딕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제니, 난 너를 헤치지 않아. 아프게도 하지 않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때까지만 같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면 난 바람과 같이 사라지겠지.”
“정말이죠?”
“그래.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할게.”
서진의 말에 그제야 제니는 굳어있는 얼굴표정을 풀었다. 하긴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고 괴상한 복장을 입고 있는 사내의 말을 제니가 간단히 믿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마스터, 알파팀은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마이키, 수고했어.”
-천만에요. 밖으로 나오시면 하얀 랜드로버를 타십시오.
“응.”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탈출루트를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제니가 허겁지겁 그를 쫓아왔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그녀의 손에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거 내놔!”
“네?”
“이제 내 권총 돌려달라고.”
“그냥 제가 가지면 안 돼요? 나중에 돈 드릴게요.”
“안 돼. 그거 내 애장품이야.”
“치사하게.”
제니는 입술을 삐쭉이며 권총을 돌려줬다.
“이름이 뭐예요?”
“남의 이름은 왜 알려고 그래?”
“혹시 무슨 스파이나 비밀요원이에요?”
“그런 거 아니거든.”
“에이,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내가 정확히 맞춘 것 같은데?”
“흥!”
서진은 콧방귀를 끼며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제니가 다가와 그의 옆구리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이름이 뭐예요?”
“안 가르쳐줄 거야.”
“그럼 코드네임이 뭐예요? 그건 있을 거 아니에요.”
“코드네임?”
서진은 코드네임이라고 하자 갑자기 ‘마루3호’가 떠올랐다. 원래 그의 코드네임은 ‘둠 레이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의 버전이름인 ‘마루3호’로 훨씬 더 많이 불렸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알기로는 전혀 없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싫어했던 이름이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으니 오히려 조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마루3호는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었다.
그는 제니에게 알려줘도 굳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3호.”
“마루3호요? 코드네임 되게 특이하네요. 그런데 마루가 뭐죠?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런 건 나한테 묻지 말고 네가 직접 찾아봐. 그 정도 수고는 해야 되는 거 아냐?”
“호호호, 알았어요. 까칠하시긴.”
서진은 굳이 설명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제니는 서진이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오히려 더욱 생글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스터, 출구에 도착했어요.
메딕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진은 그녀의 팔을 잡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갈 거야. 그러니까 내 뒤에 바짝 붙어있어.”
“네, 알겠어요. 그런데 마루3호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나를 왜 만나려고?”
“당연히 만나야지요.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그, 그렇지.”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거 어떻게 하지. 만나면 정체가 탄로 날 텐데……. 괜히 쓸데없이 일을 만들지 말자.’
서진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정말이죠?”
“응.”
“꼭 연락하세요. 안 그럼 나 인터넷에다 ‘마루3호 바보’라고 마구 퍼트릴 거예요.”
“그건 안 돼.”
서진은 제니의 말에 크게 소리쳤다. 안 그래도 싫어하는 이름이었는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물론 맘만 먹으면 마이키나 메딕을 이용해 제니의 의도를 사전에 분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니의 앙탈에 마이키와 메딕까지 동원해서 막는다는 것은 어쩐지 자신이 좀 치사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호호호, 의외로 그런데 민감하시네요. 비밀요원이라서 그런가?”
“어휴! 이제 그만 그 입 좀 다물어라.”
“예썰!”
제니는 귀엽게 손을 들어 경례를 올렸다. 그 모습이 조금 얄밉기도 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쁘기도 해다.
서진은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조용히 따라와.”
“네.”
서진이 작게 속삭이자 제니는 웃음기를 지우고 긴장했다. 그녀는 서진이 어떤 나라의 비밀요원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의 말에 당장 반응을 보였다. 사실 출구 밖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었다. 서진이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괜히 위험한 척 연기를 한 것이다.
철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주택의 지하실이 나왔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그 집을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갔다. 도로로 나오자 입구에 마이키가 말한 하얀 랜드로버 한대가 서있었다.
“이건가?”
-네, 그렇습니다. 자동차 키는 오른쪽 바퀴 위에 있습니다.
“용케도 이런 차를 찾았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서진은 랜드로버 오른쪽 바퀴 위에서 자동차 키를 찾아 차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제니는 서진이 하는 행동을 보고는 ‘이 사람 틀림없이 비밀요원이야.’라고 단정 지었다.
부릉 부르릉 부르르릉!
시동은 시원하게 한 번에 잘 걸렸다.
차가 좋아서 그런지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게 잘 나왔다.
부우우우웅!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도로를 달리다 대로로 빠져나왔다.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 간의 전쟁으로 인해 시내곳곳에서 총소리와 폭음이 터지고 있어 도로 위는 경찰차와 군용차량을 빼고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제니가 창문을 열자 그녀의 연한 금발의 머리카락이 뒤로 휘날렸다.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지 그녀의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그려졌다.
서진은 피와 살육으로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는 과달라하라의 텅 빈 도로 위를 신나게 질주하고 있었다.
* * *
-베타팀은 시리아 ‘락까’에서 무사히 실전테스트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사망자는 없고 한명만 경상을 당했습니다. 현장에서 테러단체 아이에스의 수뇌 10명과 그들의 부하 120여명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아이에스가 숨겨둔 그들의 자금을 발견해 전부 소각시켰습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족히 10억 달러에 가까운 거액입니다.
“…….”
마이키의 보고에 서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파팀과 베타팀의 실전테스트 데이터를 통해 전신슈트의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보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과달라하라의 시날로아 조직 금고에서 발견한 지도와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작전명 ‘보물찾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률은 50%이고 현재까지 확보한 자금은 20억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작전이 끝나면 최대 50억 달러에 달하는 새로운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마리아라고 그랬던가?’
짐승 같은 놈들에게 수없이 유린을 당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참 맑고 깨끗한 파란 눈을 가지고 있던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식량, 지하자원, 원료, 자재, 연료 등의 비축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일소를 위해 검찰, 법원, 국회, 재계, 공무원의 사정대상도 뽑아 놓았습니다. S급, A급 능력자들의 영입은 현재 3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B급 이하의 능력자들의 선별작업도 마무리 됐습니다. 능력자들을 위한 지지 세력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또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태동을 위해 신당창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
“응?”
마이키가 몇 번이나 그를 부르자 그제야 서진이 반응했다.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전혀 집중을 못하고 계셔서 걱정했습니다.
“휴우우우! 단서는 찾았어?”
-계속 추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달랑 사진하나 올라온 것만으로 마리아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마리아를 더 빨리 찾을 수 있는 좀 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봐.”
서진은 자신의 새로운 사랑이라며 한 소아성애자가 인터넷에 올린 마리아의 사진으로 인해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포상금을 거는 것은 어떨까요?
“포상금?”
-네, 마리아가 어디 있는지 소재를 알려주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직접 데려오면 천만 달러를 준다고 하면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마리아가 위험해지지 않을까?”
-글쎄요.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썬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는 분명히 미국에 있습니다. 소아성애자가 그녀를 사간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참! 개 같은 경우네.”
서진은 조금 짜증이 났다.
마이키와 메딕을 양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어린 소녀 하나를 못 찾아서 쩔쩔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이키, 메딕!”
-네, 마스터!
-예, 마스터!
“이번에 멕시코에서 확보한 돈과 금괴 그리고 다이아몬드 다 풀어서 아동복지를 위한 재단하나 설립해.”
-네, 마스터!
-예, 마스터!
작전명 ‘보물찾기’가 끝나면 50억 달러에 가까운 현찰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다 금괴와 보석까지 전부처분하면 적게는 7~80억 달러, 많게는 10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이 만들어진다. 이 정도면 국내를 비롯해 세계 방방곡곡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서진은 앞으로 벌어들인 돈을 그냥 은행에 쌓아만 두지 않기로 했다. 써야할 때는 과감히 쓰고 도와야할 일이 있다면 돕기로 했다. 어차피 마이키와 메딕이 없었더라면 20조라는 거액은 꿈도 꾸지 못할 돈이다. 이것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면 그것도 나름 보람찬 일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투자금도 꾸준하게 늘어서 어느새 현금이 6645억 원이나 쌓여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정도만 해도 한평생 떵떵거리고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서진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대격변이 시작되면 굳이 마이키나 메딕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힘만으로 최하급마수를 사냥할 수 있다. 마수의 정수와 사체만 팔아도 억대연봉이 아니라 억대월봉은 벌 자신이 있었다.
마리아로 인해 서진은 왠지 자신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녀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근절시킬 좋은 방법을 다 같이 한번 강구해보자.”
-네, 마스터.
-마스터,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볼까?”
메딕이 즉시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어거스트 파블로라는 사람이 현재 미국 교도소에 복역 중입니다. 멕시코의 호이쉬 카르텔의 조직원이었던 사람인데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조직 그만 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가 집에 없는 사이 호이쉬 카르텔 조직원 세 명이 그의 아내와 아이를 무참히 참수해버렸죠.
“저런!”
서진은 점점 메딕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파블로는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피의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는 조직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동소총과 수류탄을 준비했어요. 호이쉬 카르텔의 마약왕 에드가르 발데스가 연회장으로 간다는 정보를 얻은 그는 연회장으로 가는 길목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놓고 매복을 했지요. 앞서가던 발데스의 호위차량이 부비트랩에 의해 폭발하자 그는 총격전을 시작했어요. 파블로는 에드가르 발데스를 포함한 27명을 총으로 쏴죽이고 9명에게 중상을 입혔어요. 그리고 미국 국경수비대에 체포됐습니다.
“으음, 정말 한편의 영화와 같은 스토리로군.”
============================ 작품 후기 ============================
*** 14장에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15장부터는 대격변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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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