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53화 (5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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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 폭풍전야

서진은 어거스트 파블로라는 사내에게 호감이 생겼다.

비록 마약조직의 조직원으로 일하기는 했지만 아내와 아이가 생긴 뒤 조직생활을 청산하려고 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거기에다 아내와 아이가 참수 당하자 호이쉬 카르텔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무척 사내다운 행동이었다.

-제가 어거스트 파블로를 언급한 것은 그를 석방시켜 멕시코 카르텔을 지배하게 만들자는 거예요.

“조직생활을 청산하려고 한 사람을 마약왕으로 만들자는 말이야?”

-어차피 중남미의 카르텔은 쉽게 뿌리 뽑을 수 없어요. 그런 일은 대격변이 일어난 뒤에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 차라리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카르텔을 없애기는 힘드니 차선책으로 카르텔을 지배하자는 거구나.”

-맞아요. 미국 정부도 중남미의 카르텔, 특히 멕시코 카르텔로 인해 골치를 썩이고 있어요.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어느 정도 선을 대서 적당히 견제하고 싶어 합니다. 저희는 그 점을 이용해서 미국 정보국과 안보국을 움직여 극비공작을 하게 만들면 됩니다.

서진은 메딕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마약은 미국에서도 꼭 필요한 필요악이니 완전히 근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마약을 제외한 납치 및 인신매매, 아동성매매, 민간인 보복 및 살해 등은 점차 줄여나가도록 유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악으로 큰 악을 대처하는 방법이라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민간인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마이키, 어떻게 생각해?”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노로봇과 메디봇을 연계시킨다면 효과가 극대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꼭 멕시코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든지 마약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다른 나라에도 응용이 가능한 계획입니다.

“좋아. 그럼 당장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대시켜서 세부계획을 만들어봐.”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마이키의 말을 듣는 순간, 서진은 바로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문제 아냐?”

-그렇습니다. 인천은 삼합회와 흑사회를 비롯한 중국의 조직이 점차 세력을 늘려가고 있고 부산은 야쿠자의 세력이 강성합니다. 사실 ‘동북아 초인전쟁’ 당시 인천은 삼합회와 흑사회가 부산은 야쿠자가 각각 자국의 전위부대역할을 해서 대한민국의 능력자들의 전력을 분산시켰습니다. 초반에 승기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이놈들 때문에 양쪽으로 전력이 분산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그럼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네. 쓸 만 한 놈을 앞세워서 인천과 부산을 접수시켜!”

-그러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건 마피아와 카르텔, 삼합회와 야쿠자가 숨겨놓은 검은 돈을 활용하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그동안 검은 돈들의 출처와 자료만 모아놓았는데 이제야 써먹을 일이 생겼습니다.

서진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 하나를 얘기하자 마이키는 바로 이 검은 돈을 캐내서 활용할 방안을 궁리했다.

-마스터, 이제 대격변이 2년 밖에 남지 않았어요. 세계평화도 좋지만 대한민국을 정화시키려면 슬슬 지금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의 칼날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김영란법이 통과되려면 아직 멀었지?”

-그건 2016년이나 돼야 통과가 됩니다.

“그럼 이왕 시작한 김에 고여 있는 썩은 물 좀 싹 빼내고 제대로 시원하게 물갈이 좀 하자.”

-네, 그럼 대한민국 정화를 위한 제1보(步)인 신당창당 프로젝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메딕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밝아졌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어도 권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다. 실질적인 무력이야 어차피 대격변 이후에 생기는 것이니 당장 걱정할 필요가 없다.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앞에서 일을 벌이고 밀고나갈 정치세력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신당을 창당해야 대격변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20대 총선에 끼어들 수 있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20대 총선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돌풍의 주역, 대한당이 창당된 날이다.

* * *

2016년 4월 11일 월요일. 우면산 저택.

“하하하!”

“호호호!”

아버지와 어머니가 웃는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기분 좋은 음악과 같다.

두 분이 환하게 서로를 바라보시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겹다.

서로의 손을 잡는 다정한 모습은 내 마음에 평화와 안정을 준다.

“서진아,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

“저요? 별 생각 안하는데요?”

“여자 친구 옆에 놓고 너무하는 거 아니니?”

“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연서가 볼을 부풀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말을 시키지 않아서 그런가?

제 딴에는 노려본다고 하지만 착한 연서가 자신에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녀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행동은 그저 귀엽고 예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너 정말 졸업한 거 맞아?”

“네, 맞아요. 제가 좀 머리가 좋잖아요.”

“그래도 2년 반 만에 스탠퍼드를 졸업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물론이죠. 저 같은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해요.”

서진이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을 천재라고 하자 어머니 손예진 여사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말하니 조금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지만 정말 잘났네.”

“하하하, 졸업하자마자 어머니 보고 싶어 귀국한 아들을 이렇게 미워하시기 에요?”

“엥? 누가 널 미워한다고 그러냐? 네 아버지가? 난 절대 아니야. 내가 우리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허, 나도 아니야. 왜 갑자기 날 끌어들이고 그래?”

손예진의 말에 이만수는 서둘러 손을 저었다.

그 모습에 연서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넌 그렇다 치고 연서는 어떻게 된 거냐? 휴학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서진이가 젊은 나이에 너무 공부만 하면 안 된다고 해서요. 1년만 쉬었다가 하려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넌 명문대를 잘 다니고 있는 애를 왜 갑자기 휴학을 시키고 그래?”

손예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서진에게 따지고 들었다.

“여름에 연서랑 세계일주여행 가려고요.”

“뭐야? 세계일주?”

손예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갑자기 이만수의 어깨를 때렸다.

“여보!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왜? 갑자기 그래?”

이만수는 날벼락을 맞은 표정으로 서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손예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감히 입을 열 생각을 못했다.

“아들은 자기 여자 친구랑 세계일주여행을 간다고 하는데 당신은 도대체 나 언제 세계일주여행 시켜줄 거예요. 맨날 나한테 돈 많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이제 그 많다는 돈 좀 나한테 써 봐요.”

“알았어. 알았다고. 세계일주여행 가면 될 거 아니야.”

“정말이에요?”

“그래.”

속사포 같은 손예진의 말에 이만수가 바로 백기를 들자 그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돌려 서진을 쳐다봤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넌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 이번 달에 우리 오붓하게 제주도로 가족여행이나 다녀올까요?”

“정말?”

“그럼요. 내가 언제 어머니한테 거짓말 한 적 있어요?”

“없지. 우리 아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나도 좋다. 무조건 가자.”

서진의 말에 손예진의 기분이 좋아지자 이만수는 바로 같이 묻어갈 생각을 했다.

“우리 아들이 정 이 어미와 같이 가고 싶다면야 한번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당연히 원합니다. 어머니와 꼭 같이 가고 싶어요. 제발 같이 가주세요.”

서진의 말에 손예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기분이다. 같이 가주지.”

“감사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하하!”

“호호호!”

“호호호!”

서진의 너스레에 이만수와 손예진 그리고 연서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가만 그런데 연서도 제주도 같이 가니?”

“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그으래?”

손예진이 묘한 시선으로 서진과 연서를 쳐다보자 연서는 놀라서 급히 두 손을 마구 흔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어머니. 세분이 오붓하게 다녀오세요.”

“그럼 넌 우리 가족이 아니니?”

“네?”

“그렇잖아. 가족여행인데 안가겠다면 그건 네가 가족이 아니라는 뜻이지. 안 그래?”

“그, 그게…….”

연서는 얼굴이 홍시처럼 변해 서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연서 놀랐잖아요.”

“넌 가만있어.”

“네.”

서진은 손예진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연서는 손예진의 앞에서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연서야, 어서 대답을 해봐.”

“전, 전 당연히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서진이가, 아니 서진오빠와 아버님, 어머님이 없는 가족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호호호, 그렇구나. 알겠다. 그럼 제주도 같이 가도록 하자.”

“어머님, 고맙습니다.”

“연서야, 내가 너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알지?”

“그럼요. 저도 어머님을 제 시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만수와 서진은 갑작스런 전개에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그런데 너희 동갑 아니니? 왜 서진이를 오빠라고 불러?”

“그, 그게 생일도 많이 차이가 나고 서진오빠가 자꾸 오빠라고 부르라고 시켜서 그랬어요.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연서는 막상 대답을 하고나자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손예진은 그런 연서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도대체 애가 왜 그래? 남자의 로망?”

“엄마, 이거 그만 좀 넘어가 주면 안 돼?”

“엄마? 엄마라고? 흐응!”

서진이 안 되겠다 싶어 ‘엄마’라는 필살기를 사용하자 손예진의 눈빛이 바로 흐물거렸다. 서진은 바로 자리를 옮겨서 손에진의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러주며 속삭였다.

“엄마, 아들이 며느리와 잘 살려면 위계질서가 있어야해. 엄마는 연서가 ‘서진아’ 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아니면 ‘서진오빠’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당연히 오빠가 낫지.”

“그럼 이 문제는 이걸로 끝내는 거다?”

“알았어. 아들!”

손예진은 서진의 콤보에 당해 그만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다른 것은 포기해도 오빠라고 부르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어. 이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란 말이야.’

서진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남자도 있을 것이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남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서진에게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

“연서야, 밥 먹고 가라.”

“네, 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럴래? 고맙다.”

점심시간이 되자 손예진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연서가 쫄랑쫄랑 쫓아갔다.

거실의 소파를 차지한 부자는 그제야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마음을 놓았다.

“가끔 해외여행이라도 같이 다니지 그러셨어요?”

“무슨 소리야. 1년에 한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는데. 작년에는 유럽 일주했다. 그것 때문에 돈이 얼마나 깨진 줄 알아?”

“그랬어요? 난 그냥 유럽의 몇 나라만 다녀오신 줄 알았는데…….”

서진은 손예진이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아서 몰랐었다.

“그나저나 헤븐 투자에서 정산 받은 돈으로 회사세우고 투자하라는 것 다하셨어요?”

“물론이지. 내가 네 말대로 해서 지금까지 손해 본 적이 없는데 왜 안했겠어. 1조5천억 원 정산 받아서 사라는 것 다 사고 지으라는 공장 다 지어놓았다.”

이만수가 투자한 돈이 어느새 1조5천억 원까지 불어나있었다.

서진은 이만수에게 그 돈을 정산 받아 일단 ‘헤븐 리사이클링’이라고 회사를 세우고 전국에 정육가공공장을 지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식량, 지하자원, 원료, 자재, 연료 등을 사서 비축해놓으라고 조언했다.

아들의 말을 신의 소리처럼 믿고 있는 이만수는 당연히 서진의 말대로 1조5천억 원을 몽땅 질러버렸다.

‘우리 아버지 성격 한번 화끈하시네. 그렇게 돈을 아끼시더니 내 한마디에 아주 뿌리째 질러버리셨네.’

서진은 이제 완연한 사업가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살짝 존경심이 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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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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