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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 폭풍전야
“마지막으로 살생부 좀 보자.”
-네, 마스터! 먼저 왼쪽은 미래에 ‘동북아 초인전쟁’때 이 땅에 발을 디딘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 리스트입니다. 오른쪽은 그 당시 그들을 뒤에서 사주하고 조정했던 양국의 위정자들의 명단입니다. 아래쪽은 대한민국을 망하게 만들었던 당시의 무능하고 이기적인 매국노들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얼굴 옆에 파란불이 들어온 것은 뭐지?”
-이번에 회유에 성공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원수라고 해도 그것은 엄연히 미래의 일입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그들을 모두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회유해서 우리의 장기 말로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복수는 없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하하! 뭘 어떻게 해? 잘했어. 메딕의 말이 맞아. 그냥 다 죽여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대격변 전까지 최대한 회유를 해봐. 마지막까지 안 넘어오는 놈들은 계획대로 제거하거나 전투불능을 만들어줘야지.”
여기서 전투불능이라는 말은 서진이 언어를 순화해서 쓴 것이다.
식물인간, 병신, 치매가 되도 전투불능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입니다.
“메딕, 얼굴 옆에 빨간불은 뭐지? 회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자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회유불가판정을 받은 미래의 능력자들은 일단 국가와 정부에 반감을 가지도록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이민을 가도록 공작하고 있습니다. 세금폭탄, 고소고발, 불법체포 및 감금, 해고, 대출회수, 보험해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전부 동원하고 있습니다.
“세금폭탄이라? 그거 한방 맞으면 어지간한 놈은 다 나가떨어지겠군.”
-반대로 어려울 때마다 일본에 세운 한국구호단체를 통해 도움을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리 은혜를 베풀어두는 전략이군. 계속해봐!”
-중국과 일본의 위정자들은 인터넷과 SNS에 비리를 폭로하고 부정부패 단속에 걸리게 만들어서 모두 공직과 현직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중국의 일부 위정자들은 이번 부정부패 일제단속에 걸려서 본보기로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인명경시풍조가 만연한 중국다운 과감한 형 집행이었다.
“그럼 국내의 매국노들은?”
-현재 공직이나 현직에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간의 노력으로 모두 비리와 부정으로 실형을 받거나 해고되었습니다. 현재는 이들의 불법행위를 여러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고발해서 형사입건을 시킨 상태입니다. 이중의 태반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입니다.
“그 걸로는 부족해. 그간 비리와 부정으로 축재한 것, 세금 포탈한 것, 남의 특허를 도용한 것, 사기 친 것 등 철저하게 조사해서 모조리 탈탈 털어버려. 정보는 검찰과 인터넷에 동시에 제공하고…….
-네, 마스터!
파란불이 들어온 게 3분의 1,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 3분의 1, 아직 아무런 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3분의 1쯤 됐다.
대격변이 오기 전에 과연 이중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 귀추가 주목됐다.
그때, 마이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연서님이 일어나셨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하지. 다음보고는 총선이 끝나고 듣자. 마이키, 메딕, 둘 다 수고했어.”
-마스터도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마스터가 더 수고하셨죠.
서진은 마이키와 메딕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준 후 서재를 나섰다.
연서가 눈을 비비고 나와 그를 찾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뒤에서 꼭 안아줬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연서의 몸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입에서 행복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서진은 눈을 꼭 감고 잠시 그렇게 그녀를 안고 섰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 * *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저녁.
“……이렇듯 20대 총선의 결과는 한국당의 참패, 민주당의 선방, 대한당의 돌풍과 국민당의 약진으로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비례대표를 포함한 각 당의 의석수는 민주당 83석, 한국당 82석, 대한당 80석, 국민당 38석, 정의당 6석 그리고 무소속 11석입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한당의 돌풍에 크게 놀란 모양이지만 사실 대한당의 돌풍은 이미 예고된 드라마였습니다.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은 벌써부터 대한당의 참신한 후보들과 현실성 있는 정책, 강력한 부정부패척결의지를 높이 사고 있었습니다. 종로에 출마한 대한당 김민국 대표가 민주당의 5선 의원 정소군 후보와 서울시장을 역임한 한국당의 오정현 후보를 따돌리고 근소한 표차이로 당선된 것은 시민들이 얼마나 새 정치에 목이 말라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한당의 의석수는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수직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부터 무소속 당선자들이 대한당의 입당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고 이미 대한당의 입당을 결정한 무소속 후보도 최소한 다섯 명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한당과 연합전선을 펼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을 하고 있는 국민당이나 아직은 우호적인 제스처를 쓰고 있는 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대한당은 대한민국 정치의 폭풍의 핵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합니다.”
팟!
서진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초대형 LED TV를 차례로 껐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정장을 입은 비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시원한 마스크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이었다. 비서는 서진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오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도록 하세요.”
“네.”
비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육감적인 몸매를 하얀 가운 한 장으로 가린 농염한 매력의 중년여자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오 박사님. 이서진입니다.”
“반가워요. 오희명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얼굴 한번 보는 게 참 쉽지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만나지 않았습니까?”
서진은 오 박사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 박사는 서진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더니 그가 가리키고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는 뭐로?”
“필요 없어요. 바쁜 사람들이니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그러시죠.”
오 박사는 거침없이 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더니 서진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공돌이가 사주(社主)를 만나 할 얘기가 뭐가 있습니까? 연구에 필요한 거 사달라는 얘기 빼고……. 아차, 난 공돌이가 아닌가? 공순인가?”
서진의 물음에 대답을 하던 오 박사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웃긴지 혼자 킥킥댔다. 확실히 보통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건넨 서류를 받아 슬쩍 눈으로 훑어봤다. 그녀가 요구하는 장비와 연구자금이 천문학적인 액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걸 드리면 제가 얻게 되는 것이 뭡니까?”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이죠.
“언제 양산할 수 있습니까?”
“2025년이요.”
“오늘부로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프로젝트는 폐기하도록 합시다.”
“네? 뭐라고요?”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 박사는 서진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났는지 자세까지 바로하고 앉았다.
“다른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주세요.”
“어? 이게 아닌데…….”
오 박사는 입을 떡 벌리더니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저기 사장님, 2025년은 확실히 조금 늦죠? 제가 최대한 노력해서 2020년까지 만들어보겠습니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이네요. 지금도 이미 충분한 연구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최소한의 투자지, 절대 최대한의 투자가 아닙니다.”
“제가 최대한의 투자를 해야 할 이유가 뭐죠?”
“그거야 당연히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으로 마수들을 쳐부숴야하니까요.”
“미래의 오 박사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하던가요?”
“네?”
오 박사는 순간 붕어라도 된 듯 입만 뻐끔거렸다.
서진은 오 박사의 한 마디말로 미래의 오 박사가 과거의 오 박사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마스터, 오 박사님의 생체리듬이 굉장히 특이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로이를 안으로 들여보내겠습니다.
갑자기 메딕이 오 박사의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는 경고를 발했다. 그리고 곧바로 로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 박사가 깜짝 놀라더니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오 박사님의 생체리듬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 박사님의 전신을 스캔하겠습니다. 오 박사님의 왼쪽가슴에 꽂혀있는 볼펜에 메디봇이 들어가 있는 주사기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메디봇 ID BW-2549 리모트봇입니다. 즉시 오 박사님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하겠습니다. 허락해주세요.
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 박사님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합니다. 금고에서 공간확장 마법진이 인챈트 되어 있는 그린볼을 발견했습니다. 마스터가 가지고 계신 블루볼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모델입니다. 그린볼의 보안코드들 해킹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오 박사님이 사용했던 암호를 조합합니다. 보안코드를 해제합니다. 성공했습니다. 그린볼 안에서 대량의 데이터가 담긴 나노저장장치를 발견했습니다.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습니다. 데이터의 내용을 분석합니다. 일기장의 내용을 분석합니다.
메딕은 시시각각, 움직이는 그대로 서진에게 보고했다.
서진은 귓속으로 들려오는 메딕의 말을 들으며 오 박사를 쳐다봤다.
“저런 엄청난 장비들과 연구자금은 나사에서도 못 받으셨을 텐데, 나한테 요구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를 데려왔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한 것 아니었나요?”
“무슨 각오 말입니까? 오 박사님에게 호구 될 각오 말입니까?”
“장비가 부족해요. 연구자금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요.”
“그게 아니겠죠. 미래에서 보내준 데이터를 다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초조해지신거겠죠. 자존심 때문에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든 것은 장비와 연구자금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오 박사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자신도 놀랄 정도의 큰소리가 나오자 금방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서진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그 리모트봇을 나에게 주사하면 나를 원격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 그건…….”
서진의 일격에 오 박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미래의 오 박사가 그걸 주사하라고 시켰나요?”
“아, 아니에요.”
“그럼 그건 왜 가져왔습니까? 말을 안 들으면 강제로 듣게 하려고 가져왔나요?”
“…….”
오 박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메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미래의 오 박사님은 리모트봇을 주사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오 박사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충동적으로 저지를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 박사님의 집과 사무실을 원상복귀 합니다. 마스터를 위협할 수 있는 리모트봇과 컨트롤박스 일체 그리고 그린볼을 압수합니다.
서진은 로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볼펜을 로이에게 주고 돌아가세요. 그리고 머리를 좀 식히세요. 내가 아는 오 박사님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정도를 벗어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번 일은 없던 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연구소로 돌아가 주세요.”
“당신은 정말 미래에서 왔군요.”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
오 박사는 순순히 왼쪽 가슴에 꽂힌 볼펜을 꺼내 로이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쿵!
문이 닫히자 서진은 메딕을 불렀다.
“메딕, 지금 이 순간부터 24시간 오 박사님을 감시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로이가 그에게 볼펜을 건네더니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서진은 잠시 볼펜을 살펴보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메딕, 이런 것도 있었어?”
-그건 국방부에서 요청한 비밀프로젝트를 하다가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 박사님은 리모트봇의 위험성을 알고 따로 은밀한 장소에 숨겨두셨습니다. 저도 이게 왜 여기 와있는지 모르겠네요.
“가져가서 마수에게 쓸 수 없는지 연구 좀 해봐.”
-네, 마스터.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빌딩 바로 앞에 여의도공원이 보였다.
녹음이 우거진 모습이 심신을 안정시켜주었다.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한강도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위로 살짝 들었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옹기종기 모여 흘러가고 있었다.
황사가 없는 날이면, 헤븐 투자 빌딩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여의도의 풍경은 이토록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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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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