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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 대격변의 시작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잔잔한 클래식 뮤직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우자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양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아주 잘 익었어요.”
“뭔 스테이크가 이렇게 크냐? 나 이거 다 못 먹는다.”
“그럼 반만 드세요. 나머지는 어머님 드시기 좋게 제가 여기 접시에다 잘라 놓을게요.”
“서진아! 우리가 알아서 먹을 게. 배고플 텐데 어서 가서 식사해라.”
“네, 어머님.”
서진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도 바로 앉지 않았다.
얼굴에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연서의 아버지 민정식의 접시 위에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올려주고, 연서의 어머니 구혜란 여사의 접시 위에 먹기 좋게 스테이크를 잘 썰어서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서진이 연서의 부모님을 알뜰히 챙기자 연서도 이에 질세라 서진의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기 시작했다.
“아버님, 조개스프 좀 드셔보세요. 참 맛있어요.”
“고맙다. 연서야! 역시 우리 연서가 최고다.”
이만수는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래의 며느리, 연서가 자기 먹으라고 조개스프를 예쁘게 그릇에 담아서 가져오자 좋아서 입을 헤벌쭉 벌렸다.
“어머님, 아티쵸크 샐러드 좀 가져왔어요. 이게 그렇게 몸에 좋대요.”
“호호호, 우리 며느리가 가져온 거니 많이 먹어야겠네.”
“네에, 많이 드시고 더 예뻐지세요.”
“그래 고맙다.”
연서의 말에 손예진은 활짝 웃으면서 연서의 엉덩이 위를 토닥거렸다. 연서는 그녀의 손길에 새색시처럼 얌전히 옆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어머, 정말 스테이크가 너무 부드럽고 맛있어요.”
“호호호, 스테이크를 씹기도 전에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것 같아요.”
마주보고 있는 손예진과 구혜란이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아주 좋아했다.
“하하하, 저는 이렇게 맛있는 조개스프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습니다.”
“싱싱한 게살로 만든 이 스프가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이만수와 민정식도 서로를 쳐다보면서 스프가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서진아, 고맙다. 이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게 해줘서.”
“나도 고마워. 덕분에 헤븐 투자 펜트하우스에서 식사를 다해보네.”
구혜란의 말에 민정식이 바로 옆에서 거들었다.
“아닙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서진이는 어째 하는 말마다 저렇게 예쁘니.”
서진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구혜란은 아예 대놓고 칭찬을 했다.
직접 요리를 한 것은 헤븐 투자회사의 구내 레스토랑 요리사인데 어째 칭찬은 전부 서진에게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적당히 배를 채우자 웨이트리스들이 와서 빈 그릇을 치우고 과일과 디저트를 내왔다. 싱싱한 과일을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서진과 연서의 부모님은 서로 덕담을 나누고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아이들이 저렇게 서로 좋아하니 적당한 때에 날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안사람들끼리 한번 의논을 해보라고 하지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연서가 대학을 빨리 졸업해야 집으로 데려올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하하하, 졸업할 생각을 안 하고 세계 일주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러십니까? 저는 서진이와 같이 다녀온다고 해서 오히려 안심했습니다만…….”
“우리 자식을 그렇게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위될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며늘아기를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이만수와 민정식의 대화가 묘하게 흐르자 서진과 연서의 얼굴이 봉숭아 빛으로 발갛게 물들어갔다. 구혜란이 남편 민정식의 옆구리를 툭 치자 그제야 눈치 챈 민정식이 말을 살짝 돌렸다.
“제가 이번에 헤븐 투자회사의 VIP고객이 됐는데 혹시 들으셨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희를 펜트하우스로 초대하셨군요.”
“아닙니다. 저도 헤븐 투자회사에서 초대를 받고 온 겁니다.”
“네? 그럼 오늘 이 점심은 헤븐 투자회사에서 준비한 겁니까?”
“글쎄요?”
이만수와 민정식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서진을 쳐다봤다.
“제가 초대한 겁니다.”
“그래? 네가? 혹시 너 헤븐 투자의 지분도 가지고 있니?”
“네, 그렇습니다.”
서진이 담담히 대답하자 이만수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민정식은 이만수 보다 더욱 놀랐다. 헤븐 투자라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국내 최대의 순수투자회사였기 때문이다.
“서진아, 정말이야? 네가 헤븐 투자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네, 제가 헤븐 투자 대주주입니다.”
“뭐야? 그냥 지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대주주라고?”
“헤븐 투자의 규모가 40조가 넘는다는 말이 있던데……. 대주주라고?”
“국내의 자체투자규모만 그렇습니다. 중국법인과 일본법인도 비슷하고 미국법인과 유럽법인은 훨씬 규모가 더 큽니다.”
서진의 별것 아니라는 말투에 이만수와 민정식을 비롯한 손예진, 구혜란 그리고 연서까지 입을 딱 벌리며 놀라워했다.
“너 도대체 이걸 언제 다 키웠냐?”
“하하하, 제가 키웠다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죠. 좋은 경영전문가를 만났거든요.”
“세상에!”
“맙소사!”
다들 너무 놀라서 말을 제대로 다물지를 못하자 서진은 민정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님, 좋은 아이템이 하나있는데 사업 하나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투자는 제가 하겠습니다.”
“사업? 무슨 사업을 말하는 거니?”
“독점에 가까운 사업이에요. 아버님이 이 사업을 이끌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헤븐 투자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줄 테니 자금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요.”
“그렇다면야, 이거 구미가 당기는데.”
“그럼 제가 사업계획서를 들고 조만간 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난 좋아. 우리 따로 만나서 차근차근 얘기해보자.”
이만수와 손예진, 구혜란과 연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도대체 그게 무슨 사업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대놓고 다시 물어보지는 않았다.
“커피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잠시 바람 좀 쏘일 겸 옥상에 좀 올라갔다 올게요.”
“그래. 천천히 다녀와라.”
서진은 부모님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연서의 팔을 잡고 살짝 자리를 빠져 나왔다.
“어디 가는 거야?”
“옥상 간다고 했잖아.”
연서는 서진의 말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뭔가 잔뜩 기대를 한 것 같은데…… 진짜로 옥상을 데려갈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아까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전망 좋았지?”
“응.”
“옥상에서 보면 전망이 끝내줘. 그리고 이 빌딩의 옥상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못 올라가게 되어있어.”
“정말?”
연서는 자신이 뭔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얼굴이 환해졌다.
항상 그를 쫓아다니는 경호원들도 정말 둘이 옥상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우와! 멋있다.”
“내 말 맞지?”
“응, 정말 눈이 다 시원해지네.”
서진과 연서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천천히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여의도공원을 시작으로 국회의사당, 여의도한강공원, 한강밤섬, 마포대교, 63빌딩 등 주변의 경치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빌딩옥상에서 이렇게 360도를 돌아가면서 보니 마치 여의도를, 아니 서울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연서야!”
“서진아!”
서진과 연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치더니 부드럽게 얽혀 들어갔다.
연서의 두 눈이 먼저 스르르 감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진이 다가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쪽!
입술을 살짝 뗀 그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급하게 다시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부드러움은 전혀 없었다.
이미 설왕설래를 많이 한 사이라서 그런지……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그들은 그저 강한 흡입력으로 서로 상대의 설육을 빨고 희롱하기에 바빴다.
템포가 점점 고조되자 그들은 서로의 몸을 강하게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이러다가 조금만 더 뜨거워지면 당장 서로 벗고 달려들 기세였다.
뚝!
그런데 돌연, 연서의 두 눈에서 맑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연서야, 왜 그래?”
“응?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전혀. 나한테 울 일이 어디 있어?”
연서는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지. 울 일이 없지. 그런데 왜 울어?”
“나도 모르겠어. 나 그만 내려갈래.”
“그래 그만 같이 내려가자.”
“아니야. 나 먼저 내려갈게. 화장실 가서 거울 좀 보고 갈게. 그러니까 자긴 여기서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다 내려와.”
“어, 알았어.”
멀쩡히 말을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서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줄줄 흐르며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무슨 눈물 알레르기라도 생겼나?’
연서가 옥상 문을 통해 내려가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서진은 방금 전에 좋았던 분위기를 아쉬워하며 마이키를 불렀다.
“마이키, 지금 몇 시지?”
-2016년 7월7일 목요일 3시18분입니다. 대격변이 시작되는 3시33분까지 정확히 15분 남았습니다.
헤븐 투자 본사 빌딩옥상에 홀로 우뚝 선 서진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한 서울의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이키! 메딕! 마지막으로 최종점검을 해보자.”
-네, 마스터.
-예, 마스터.
서진은 팔짱을 낀 채 오연한 자세로 국회의사당을 쳐다봤다.
먼저 마이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헤븐 투자 본사 빌딩에는 마스터를 포함한 가족들의 경호를 위해 경호실요원 48명이 완전무장한 채 대기 중입니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점심식사를 마친 오후 2시부터 비상대기상태에 돌입했습니다.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의 모든 대원들은 현재 실전에 준하는 종합훈련과 평가를 핑계로 완전무장한 채 대기 중입니다. 오늘 하루 헤븐 그룹 전체 계열사와 현지법인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각종 안전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메딕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서로 차례차례 교대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헤븐 투자 본사와 각국 현지법인은 현재 모든 주식투자에서 자금을 회수했습니다. 대신 세계 각국의 증시에 대량의 풋옵션을 걸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성공할 경우 투자한 자금의 몇 십 배의 대박을 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입된 미래의 S급, A급 능력자들이 헤븐 투자 본사 빌딩 바로 옆 빌딩에 입주한 헤븐 가디언즈 본부로 모여 워크샵(workshop)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입된 미래의 B급 능력자들과 C급 이하 능력자들도 각국의 지부에서 나라별로 위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진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한강과 그 너머에 있는 강북지역을 쳐다봤다.
-끝까지 회유를 거부한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들은 현재 호화유람선을 타고 동지나해를 건너고 있습니다.
-너무나 악질이라 구제불능판정을 내린 미래의 능력자들을 삭제 대기시켜놓았습니다. 중남미 카르텔,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 야쿠자 등의 보스와 중간보스들, 그리고 악명 높은 아프리카 반군지도부와 테러리스트 지도부 들입니다.
이번에는 강남 쪽을 살펴봤다.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있는 아파트의 물결이 거세게 자신을 향해 밀려올 것만 같았다.
-마스터의 친구이신 강백호와 우동면을 헤븐 가디언즈에서 특채형식으로 뽑았습니다. 현재 뛰어난 친화력을 무기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장독대는 요새 어떻게 지내지?”
-장산그룹의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아니 왜”
-장산그룹에서 이만수 사장님이 2조원대의 현금을 가지고 계시다는 정보를 입수한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스터의 주변에서 떠도는 돈 냄새를 맡았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돈 냄새를 피웠어?”
-뭐 꼭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그래? 어! 잠깐! 이게 뭐지?”
그때였다.
서진은 뭔가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정상이되 정상이 아닌 느낌!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
있으면서도 없는 느낌!
그리고 지독한 악의가 폭발적으로 거세게 타오르는 것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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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대격변이 시작됐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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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 가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