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58화 (5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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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 대격변의 시작

지이이이이잉!

뇌를 갈아버릴 것 같은 기묘한 이명이 들려왔다.

잔뜩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들자 또다시 강한 기시감이 밀려들었다.

‘뭐지? 마치 세상이 그대로 멈춘 것만 같잖아. 어라! 그러고 보니 진짜 시간이 멈춰 섰네!’

그제야 서진은 자신이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세상이 멈춰 서자 항상 들려오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올림픽대로를 빠르게 달리던 차들이 모두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다삼아 두둥실 떠가던 구름 배들이 모두 사고가 났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공중을 나는 새도 얼어붙은 듯 허공에 정지해있었고 흐르는 바람도 숨을 멈췄다.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쳐다봤다.

‘아!’

2016년 7월7일 오후 3시 33분!

대격변이 시작된 시간이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멈춰진 세상의 모습은 그 어떤 수사를 동원해서 표현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만큼 괴이하고 지랄 맞았다.

고오오오오오!

놀랍게도 지구 상공의 거대한 공간이 가로로 쭉 찢어지며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 불길하게 회색빛으로 빛나는, 지구보다 약간 커 보이는 거대한 행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콰아아아아아!

벌어진 거대한 공간을 통해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오색 빛과 함께 지구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서진은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장관을, 멈춰진 세상에서 오롯이 홀로 살아남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엄청나다.’

그것은 그의 평생 처음 보는 찬연히 아름답고 몸서리쳐지도록 장엄한 광경이었다.

‘세상의 시간이 멈췄는데 난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지?’

놀란 마음 한편에 의문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러자 마치 그의 놀람을 눈치 채기라도 하듯 뇌정(雷霆)이 미친 듯이 빠르게 운행을 하며 폭발적인 속도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서진의 영격(靈格)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한 단계 상승하는 엄청난 행운을 맞이했다.

서진은 영격의 상승으로 인해 머리가 시원해지고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순간도 잠시, 마치 회색의 불길한 눈동자를 가진 거대한 악마의 눈처럼 보이는 저 기분 나쁜 행성의 모습에 진저리를 쳐야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순수한 악의가 이처럼 똘똘 뭉쳐져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게 대격변의 시작이자 모든 일의 원흉이로구나.’

서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순수한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시간이 멈춰진 가운데 시간이 물처럼 흘러 지나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오색 빛의 향연이 끝나자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공간이 서서히 닫혔다.

시간이, 아니 세상이, 천천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 몇 초 만에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싶었다.

하지만 서진의 눈에는 아직도 사방에 회오리모양의 기이한 와류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와류의 끝에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짙은 흑암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번쩍!

순간 온 세상이 환하게 빛났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방방곡곡에서 하늘을 꿰뚫어버릴 것 같은 하얀 빛의 기둥들이 무수히 쏘아져 올라가 마치 온 세상을 환한 빛으로 물들일 것만 같았다.

[띠링!]

어디선가 맑은 고운 차임벨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서진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각성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상태창!’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불러봤던 이름이다.

다행히 지난 20년 동안 불러도 대답 없었던 그 이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팟!

허공에 홀로그램과 비슷한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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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서진

등급: F-

고유능력: 뇌정(EX), 영혼의 아공간(EX), 조합(S)

레벨: 0 / 00%

생명력 100/100 마나 100/100

스탯(60): 근력 5, 민첩 5, 체력 5, 지력 5, 마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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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대격변 때와 똑같은 모양의 상태창이다. 하지만 그 안에 적혀있는 내용은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름, 등급, 고유능력, 레벨, 생명력과 마나 그리고 스탯!

이제 시작이라서 그런지 단 여섯 줄에 불과한 단출한 상태창이었다.

이름을 지나 등급을 확인했다.

일단 자신의 등급이 ‘F-’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했던 바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고유능력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고유능력이 무려 세 개?’

고유능력에 지난 대격변 당시 얻은‘영혼의 아공간’ 외에도 ‘뇌정’과 ‘조합’ 이라는 고유능력이 두 개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뇌정도 고유능력으로 인정을 받은 것인가? 그런데 EX 등급은 뭐지? 저런 것이 있었나? 가외등급이라는 소리인가?’

그는 한번도 ‘EX’란 등급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2025년 회귀한 날까지도 그런 게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일단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패스!

고유능력 ‘조합’을 살펴봤다.

당당하게도 무려 S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궁금했다. 절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킨 서진이 큰 기대를 가지고 상세설명을 확인했다.

[조합 – 고유능력, 등급: S , 인스턴트 스킬로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 후 자동으로 삭제된다. 조합할 두 개의 스킬을 등록할 수 있다. 조합된 스킬은 랜덤이며 고유능력으로 대체된다.]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팍 썼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새로 얻은 고유능력이 인스턴트 스킬이라니…….’

인스턴트 스킬은 말 그래도 딱 한번 사용하고 사라지는 스킬을 말한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조합 스킬에 대한 설명을 정독했다. 그러자 특이한 조합 스킬의 효용이 느껴져 절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합할 두 개의 스킬을 등록할 수 있다. 조합된 스킬은 랜덤이며 고유능력으로 대체된다.’

바로 이 부분에 그의 모든 사고가 정지된 듯 멈춰서버렸다.

그러다 문득 연어 팀이 회귀하면서 가져온 초능력시드가 생각났다.

‘그렇구나. 내겐 초능력시드가 있었어. 대격변으로 인해 이제 나도 다시 능력자가 됐다. 초능력시드는 능력자의 피에 반응을 하니 반드시 내 피에도 반응할 거야.’

마수를 잡다보면 극악의 확률로 랜덤하게 초능력시드가 드랍된다. 초능력시드는 어빌리티 스톤(Ability stone) 또는 능력스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신과 상성이 맞는 것을 복용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능력을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격변 초기에는 상성이 있는 것도 모르고 마구 먹어 대서 최악의 쓰레기 템이라고 악명이 자자했다. 그러나 수년 뒤 한 연구원에 의해 초능력시드에 상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 복용하기 전에 먼저 피로 상성반응을 살피게 됐고 나중에는 간단하게 상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약까지 개발됐다.

서진은 급히 메딕을 불렀다.

“메딕, 즉시 내피를 채혈해서 초능력시드의 상성반응을 살펴줘! 양성반응이 나오는 것은 바로 나한테 가져오고.”

-네, 마스터.

메딕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진의 팔에 달라붙어 채혈을 했다. 그리고는 쌩하니 서진의 사무실로 날아갔다. 서진의 사무실에는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밀실이 하나 있었는데 메딕은 그 밀실로 들어가 블루볼을 호출해 초능력시드를 꺼냈다. 그리고 서진의 명령대로 초능력시드를 하나씩 그의 피에 반응시켜보기 시작했다.

메딕이 초능력시드의 상성반응을 살피고 있는 사이, 서진은 자신의 스탯을 살폈다.

근력 5, 민첩 5, 체력 5, 지력 5, 마력 5.

그냥 보면 정말 허접하기 그지없는 스탯이다. 하지만 모든 능력자는 이처럼 동일한 스탯으로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스탯 옆에 쌓여있는 보너스 스탯이다.

서진은 마력을 제외한 근력, 민첩, 체력, 지력 네 가지 스탯에서 큰 보정을 받아 보너스 스탯이 무려 60이나 쌓여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뇌정을 수련했고, 이날 이때까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수련을 마다하지 않은 보람이 눈앞에 나타나있었다.

이때만큼은 서진도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받은 느낌!

아마 그런 것이리라. 그 느낌 잘 아니까…….

레벨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스탯이 하나 증가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서진이 이번에 보정 받은 보너스 스탯 60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일단 보너스 스탯은 잠시 그대로 두자. 조합 스킬로 뭐든 고유능력을 하나 제대로 뽑아내고 나면 그 스킬에 맞춰서 스탯을 올리도록 하자.’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이번에는 마이키를 불렀다.

“마이키, 현재 상황을 보고해줘.”

-네, 마스터. 현재 전 세계에 7400여개의 차원의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에만 50개의 차원의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음, 예상대로군.”

-먼저 마스터와 연서님의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 헤븐 투자 본사빌딩은 즉시 폐쇄시켰습니다. 경호실요원 48명에게 1급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일단 이 빌딩 안은 안전합니다.

“계속 보고해봐!”

-네, 헤븐 그룹 전체에도 1급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입주한 빌딩을 즉시 폐쇄시키도록 명령했습니다. 모든 직원들을 안전한 회사에 있게 조치했고 그들의 가족들에 한해 원하는 사람은 회사로 피신할 수 있도록 조처했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키의 말을 경청했다.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의 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차원의 균열을 향해 출동했습니다. 마수가 나올 때까지는 일단 근처에서 대기하라는 명령도 내렸습니다.

“잘했어. 다음.”

-저희가 영입된 미래의 S급, A급 능력자들은 모두 무사히 각성에 성공했습니다. B급과 C급 이하의 능력자들도 거의 대부분 능력을 각성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 대원들은 즉시 이들을 안전하게 호위해서 차원의 균열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자들을 성장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지 결코 차원의 균열에서 나오는 마수들을 상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마수를 막는 것은 각국의 군대와 협력한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 대원들이 맡습니다.

“맞아. 정확히 알고 있군.”

마이키가 확실히 말을 하자 서진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이제는 마이키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회유를 거부한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들이 탄 호화유람선을 즉시 침몰시키겠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허락해야지. 그놈들이 살아있으면 대한민국의 능력자들이 피를 보게 되니까. 침몰시켜!”

-네, 마스터. 동지나해를 지나던 호화유람선이 침몰했습니다. 생존자는 0명입니다.

호화유람선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폭발로 인해 정말 순식간에 침몰해 동지나해의 깊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계획된 거대한 재난 앞에 방금 각성한 인간 따위는 조금도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서진은 비록 대한민국의 능력자들을 무수하게 죽이고 죽일 원수이긴 했지만, 자신의 단 한마디로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 수백 명이 수장되자 속에서 절로 욕지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죽을 준비를 마치고 그의 절대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구제불능판정을 받은 미래의 능력자들을 제거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들은 중남미 카르텔,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 야쿠자 등의 보스와 중간보스들로 현재도 죽일 놈들이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살인, 강간, 납치, 약탈 등 각종 악랄한 중범죄를 저지를 놈들입니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한 악질이자 악명이 높은 아프리카 반군지도부와 테러리스트 지도부 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휴! 대격변의 시작을 내가 피로 장식하는구나. 제거해.”

마이키는 서진을 생각해 그들이 앞으로 저지를 악행을 열거했지만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서진 길게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제거명령을 내렸다.

-마스터. 제거명령을 내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천 명의 목숨이 그의 한마디로 인해 지옥행 특급열차를 탔다.

서진은 절대 자신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몸을 돌렸다.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가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경호원들이 하나같이 KM1 자동권총과 KM2 소총을 들고 사방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잔뜩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한 채 계단을 걸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마치 계단의 끝에 지옥으로 향하는 죽음의 문이라도 열려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명품구두가 유난히 무겁기만 하다.

* * *

============================ 작품 후기 ============================

** 드디어 대격변이 시작됐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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