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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 대격변의 시작
생방송중이라서 경찰과 대테러부대가 마수를 향해 쏘고 있는 소총과 기관총의 소음이 귀청을 울려왔다. 사람들이 마수들에게 씹혀죽고 기관총에 맞은 마수들의 머리통이 퍽퍽 터져나가는 모습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되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생방송을 뜻하는 ‘LIVE’표시가 떠있었고 화면 왼쪽 상단에는 현재까지 보고된 공식적인 사망자 숫자가 벌써부터 네 자리를 넘기고 있었다.
이만수와 민정식은 그래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고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손예진과 구혜란은 연신 깜짝깜짝 놀라며 짧은 비명을 질러대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서진은 해외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저 어린아이 정도의 몸에 전신이 새까만 마수는 영국의 전설에 나오는 숲에 사는 요정이자 악마에서 분리된 소악마라고 여겨지는 임프를 닮았다고 해서 현재 매스컴과 인터넷에서 임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붉은 눈에 뾰족한 귀 그리고 갈고리로 된 긴 꼬리를 보면 아마 다들 그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임프는 불덩이를 소환해서 던지는 마수라 사람을 불에 태워죽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임프를 보시면 절대로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멀리 피해서 돌아가십시오. 청력은 안 좋은 편이라서 어지간한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진즉에 마이키와 메딕이 개입해서 전 세계의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해 마수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덕분에 일부 방송사는 마수의 이름과 피하는 요령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나타난 마수 오르그로 인한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다니고 있는 바람에 뉴욕경찰은 도저히 이들을 막을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그저 뒤만 졸졸 쫓아다니고 있는 형편입니다. 뉴욕시장은 뉴욕주지사에게 주방위군 출동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당장 주방위군도 뉴욕주 곳곳으로 출동해 마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맨해튼의 시민들은 지금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과연 주방위군이 언제 맨해튼으로 들어와 오르그를 소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총을 맞아도 전투력이 거의 떨어지지 않는 마수들을 상대로 뉴욕경찰이 선전을 해주기를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God Bless America!”
‘God Bless America!’를 외치는 CNN 기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맴돌았다.
채널을 돌리자 이번에는 중국의 관영통신인 CCTV에서 이례적으로 생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피처럼 붉다고 해서 블러드울프로 불리고 있는 마수들이 드디어 천안문 광장을 점령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숫자가 불어나는 바람에 정부에서는 현재 폭격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쾅! 콰콰콰쾅!
리포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력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놀란 리포터의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당황한 카메라맨으로 인해 화면이 흔들렸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중국정부다.
그들은 천안문이 부서지건 말건 천안문 광장을 향해 지체 없이 폭격을 퍼부었다. 하늘에는 WZ-10 공격헬기 대대가 30mm 기관포를 난사하고 57mm 로켓을 마구 쏘아댔다. 멀리서 전투기가 날아와 소이탄을 떨어뜨리고 휙 지나갔다.
엄청난 폭격으로 인해 일대가 지진이 난 듯 흔들렸고 천안문 광장 주변이 화염으로 뒤덮이며 초토화되는 모습이 여과 없이 그대로 TV를 통해 전 세계로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세상에, 천안문이 초토화됐어요.”
“천안문을 폭격할 정도로 마수들에게 입은 피해가 크다는 말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말세라고 그러더니 정말 말세가 도래했네요.”
서진은 잠시 그들과 같이 TV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당장 손예진이 그의 한쪽 팔을 꼭 붙들었다.
“서진아! 너 지금 어디가려고 그러니?”
“지금 전 세계에 차원의 균열이 생기고 그 안에서 마수들이 쏟아져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이고 있어요. 당장 사무실로 가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아봐야겠어요.”
“밖으로 나가려는 것은 아니지?”
“지금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바로 이 빌딩입니다. 무장을 한 경호원만 수십 명이 지키고 있으니까 안심하세요.”
손예진은 서진의 강한 어투에 슬그머니 그의 팔을 놓았다.
서진이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연서가 서진의 뒤를 쪼르르 쫓아왔다.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 거렸다. 하지만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서진은 그녀가 각성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A급 힐러가 된다고 해도 지금은 그저 힘없는 연약한 여자의 하나일 뿐이다. 힐러는 전략적으로 옆에서 누가 키워주지 않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없는 포지션이다. 지금은 잠시 모른 척 해도 될 듯싶었다.
“연서야, 잠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알아보고 올 테니까 너는 여기서 부모님들과 같이 기다려!”
“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서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연서의 눈빛에, 역시 A급 힐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서진은 밀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정장을 벗고 전신슈트를 걸쳤다.
양쪽 허리에 KM1 자동권총으로 무장하고 허벅지에 군용대검대신 크기가 조금 더 큰 38cm의 보위나이프를 장비했다.
레드볼을 꺼내 확인을 한 그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위장으로 전신슈트 위에 펑퍼짐한 옷을 하나 걸쳐 입었다.
벽에 걸려있는 전신거울을 보자 거기엔 웬 불량기가 다분한 택배알바 한명이 오토바이헬멧을 쓰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서진은 피식 웃음을 한번 흘리곤 몸을 돌렸다.
“마이키, 메딕, 가자.”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마이키와 메딕이 동시에 대답을 하고는 그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둘은 서진이 입고 있는 전신슈트의 어깨부분과 결합해 고정됐다. 항상 스텔스 & 클로킹 모드 상태로 있는 마이키와 메딕으로 인해 그의 모습까지 마치 물이나 젤리처럼 변해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전신슈트 위에 옷을 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릉!
한쪽 벽에 숨겨진 버튼을 누르자 밀실의 창문이 통째로 옆으로 밀려났다.
휘이이잉!
빌딩을 맴도는 바람이 날카롭게 그의 몸을 한번 할퀴고 지나갔다.
서진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뛰어내렸다.
스카이다이버처럼 온몸에 공기의 저항이 한아름 느껴졌다.
십여 층 아래로 빠르게 떨어져 내린 서진은 순간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더니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아 옆 건물인 헤븐 가디언즈 빌딩 옥상 끝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쿵!
생각보다 둔중한 소리가 옥상 바닥을 울렸다.
몸을 일으킨 그는 북동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헤븐 가디언즈 빌딩 옥상 위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질풍같은 속도로 질주를 했다.
헤븐 가디언즈 빌딩 모서리에 다다르자 그는 발로 힘차게 바닥을 밟고 허공 위로 뛰어올랐다.
도도도도도도 탓!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몸이 20m도 넘게 날아갔다.
그는 옆 빌딩인 KTB 빌딩 옥상 끝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궁!
옥상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확실히 아까보다는 좀 작아졌다.
만족한 미소를 짓는 그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전보다 더욱 힘차게 KTB 빌딩 옥상 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도도도도도 탓!
서진은 순식간에 가속도를 붙여 총알 같은 속도로 옥상 끝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순간 그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을 맞볼 수 있었다.
서진은 마치 농구의 황제라 불렸던 마이클조던처럼 두 발을 번갈아 교차해 허공을 밟으며 걸어가는 동작을 하더니 SH 빌딩 옥상 끝에 떨어져 내렸다.
쿵!
“오오오! 이번엔 좀 아슬아슬했네.”
-마스터, 27m 가 조금 넘었습니다.
마이키의 말에 서진이 시껍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리자 2IFC 빌딩의 높고 모던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메탈실버 색으로 빛나는 2IFC 빌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SH 빌딩 옥상 위를 빠르게 가로지른 그는 힘차게 발을 굴러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가 날아오르는 힘과 지구 중력의 힘이 정확히 서로 상쇄되는 순간, 그의 손에서 레드볼이 거침없이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레드볼의 목표는 바로 2IFC 빌딩 옥상에 살짝 튀어나와 있는 기중기였다.
쐐애액!
A급 마수 ‘인비저블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들어져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질기다는 투명한 줄이 레드볼에 연결된 채 빠르게 날아올랐다. 옥상에 대가리를 살짝 내민 기중기 끝에 레드볼이 정확히 걸리자 그대로 한 바퀴 휙 돌아 자동으로 묶였다.
이제 막 하강을 시작하던 서진이 두 손으로 줄을 잡고 몸을 곧게 펴자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의 몸은 아름다운 원형의 곡선을 그리며 다시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줄에 매달린 서진의 몸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거의 12시에 가깝게 올라가자 그의 몸이 창공을 향해 쭉 솟구치더니 멋지게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2IFC 빌딩 옥상 위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척!
“10점 만점에 몇 점?”
-10점입니다.
-마스터, 당연히 100점이죠.
“메딕이 이겼구나.”
-10점 만점에 10점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메타포(metaphor, 은유, 상징, 비유)잖아.
서진의 말에 마이키가 볼 멘 소리를 냈다.
메딕은 자신이 승리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여유를 보이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마이키와 메딕이 나누는 말을 들으면서 실소를 흘렸다.
어느새 이렇게 농담을 할 정도로 둘의 인공지능이 발달해있었던 것이다.
가볍게 팔을 한번 흔들자 기중기에 묶인 줄이 파도처럼 흔들리며 풀려나왔다.
-마스터,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일단 여의도공원으로 가서 마수를 때려잡으며 스킬을 확인해봐야겠어. 어느 쪽이 사람 눈에 안 띄고 제일 좋지?”
-여의도공원이라면 여의정 너머의 한국전통의 숲이 좋겠습니다. 직선거리로 500m도 안되고 그나마 거기가 제일 나무가 무성하니까요.
“그럼 그쪽으로 간다.”
-네, 주변의 CCTV를 정리하고 인식방해를 위해 그 일대를 전자기펄스벨트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가볍게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북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옥상 끝에 서서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더 이상 뛰어 넘을 빌딩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건너편엔 IFC서울 빌딩이 있었지만 거기까진 100m 도 넘는 거리였다.
-마스터, 더 안 뛰십니까?
“더 뛸 곳이 없네.”
-그럼 내려가셔야지요.
“내려가야겠다.”
-내려갈 것을 왜 올라오셨습니까? 아까 옥상으로 올라오시지 마시고 그냥 그래도 내려가시지 그러셨어요.
마이키는 서진의 실수를 뼈아프게 지적했다.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내가 왜 이 빌딩 옥상으로 올라왔지?”
-항상 위만 보시면 안 됩니다. 가끔은 아래도 좀 보고사세요.
“하하하, 너 그거 지금 아까일로 나한테 복수하는 거지?”
-천만에요. 제가 마스터에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이키는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서진은 마이키의 말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중기에 레드볼을 살짝 걸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옥상에서 지상으로 뛰어 내렸다.
퍼러러러럭!
전신슈트 위에 입은 옷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레드볼에 연결된 투명한 줄이 끝도 없이 풀리다가 100m 가 넘어가자 팽팽하게 당겨지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진은 한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고 하중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최저점에 도달해 잠깐 멈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시점에 손바닥에 연결된 줄을 탁 풀어버렸다.
휘리릭! 척!
그의 몸이 3층 높이에서 툭 떨어져 내렸다. 서진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를 하고는 빌딩 꼭대기를 한번 쳐다봤다. 높이 176m에 29층 건물인 2IFC를 옥상에서 지상까지 단번에 내려온 것이 은근히 뿌듯했다.
서진은 길을 건너서 부지런히 걸어 여의도공원 출입구12로 들어갔다. 그 사이 레드볼이 빠르게 줄을 회수한 후 그를 향해 날아왔다.
세종대왕동상을 지나 여의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뒤쪽에서 유탄이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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