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65화 (65/225)

0065 / 0225 ----------------------------------------------

제17장 불일치(不一致)

“저게 무슨 개소리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역사가 바뀌었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최강철에 이어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가 차례로 한마디씩,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은 하나같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대격변 때 구골 망한 것 맞지?”

“망한 것은 아니지만 회생불능의 치명타를 입은 건 확실해.”

“고만고만한 기업의 하나로 전락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나.”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다들 TV를 시청하며 난리가 아니었다.

특히 최강철은 거의 패닉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톱을 이빨로 깨물어 뜯기 시작했다.

강무호가 리모컨을 잡더니 채널을 바꿨다.

“……전 세계는 지금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마수들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인명피해가 백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현재 전투기와 기동헬기, 미사일과 포병대를 동원해 자국에 생긴 차원의 균열 일대를 맹폭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방으로 퍼져나간 마수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도심 곳곳에는 마수들과의 전투로 인해 총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폭발과 화재로 인한 2차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민간군사기업(PMC)이자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헤븐 디펜스에서 각국지부의 대원들을 총동원해 마수와의 전투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빠른 초동대처로 인해 군대가 동원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된 것이 지금까지 마수와의 전투에서 가장 값진 성과라는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차원의 균열이 생성됨과 동시에 초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들의 적극적인 전투참여로 인해 마수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명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헤븐 가디언즈가 처음으로 마수와 전투를 벌인 여의도공원의 전투동영상입니다. 보시다시피 헤븐 가디언즈는 소총이나 기관총을 쓰지 않고 검도창칼 등 냉병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SF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히어로들처럼 화염덩어리, 얼음의 창, 바람의 칼날, 번갯불을 날려 마수들을 쓸어버리고 있습니다. 헤븐 가디언즈 대원들의 활약이 이어질 때마다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원범수는 억울해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향해야하는 곳은 헤븐 가디언즈라는 저런 듣보잡 놈들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비롯한 연어팀 이어야만 한다.

목숨을 걸고 회귀를 감행한 것은 대한민국을 구하기위해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회귀하기만 하면 사람들의 존경과 인기는 당연히 액세서리처럼 따라올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기대가 어째 시작부터 이상하게 꼬여만 가고 있었다. 그는 마치 막대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심통 맞은 표정을 하고 TV를 향해 소리 없는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오공유에게 향했다.

“전에 혹시 헤븐 디펜스라고 들어봤어?”

“아니. 전혀! 너는 헤븐 가디언즈라고 들어봤냐?”

“당연히 아니지.”

원범수가 강하게 고개를 젓자 오공유도 살래살래 고개를 흔들었다.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할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하는데 엉뚱한 놈들이 그 자리를 꿰어 차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

그런 기분은 비단 원범수나 오공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연어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질투가 가득한 눈빛을 굳이 숨기지 않은 강무호가 최강철의 어깨를 잡고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우리……. 회귀를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평행차원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다중우주이론이나 평행우주차원이론을 얘기하는 거라면 그만둬. 나도 지금 무척 헷갈리기 시작하니까.”

최강철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강무호의 손을 매정하게 잡아 치우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민연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냐?”

“없어.”

“그럼 마루3호, 아니 이서진은?”

“그놈도 연락이 없어.”

“어떻게 된 거야? 확실히 약속된 프로토콜로 연락한 것 맞아?”

“맞아. 내가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보냈어. 연락이 들어간 것은 확실해.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는 것은 그쪽에서 연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아니면 회귀에 실패했거나, 둘 중 하나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최강철의 단호한 말에 강무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우! 민연서는 나중에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서 확인을 해보면 되지만  이서진이 회귀에 실패했다면 이거 아주 골치 아파지겠어.”

“난 그놈보다 연서가 더 중요해.”

“지금 네 여자 친구나 챙길 때가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A급 힐러를 구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으음, 그것도 그렇군.”

강무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고 100% 납득을 하는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내 무기와 장비 전부 그 새끼가 가지고 있는데…….”

“우리 무기와 장비도 문제지만,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을 그놈이 가지고 있어. 그게 없으면 앞으로 우리가 세워놓은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기가 무지하게 힘들어져.”

“그러고 보니 달러, 골드바, 보석, 마수의 정수, 초능력시드도 전부 그 새끼가 가지고 있네.”

“미국의 S급 마법사 멀더가 아공간을 인챈트해서 만든 블루볼에 전부 담아놓았으니 당연히 그놈이 우리 물건을 가지고 있겠지. 진짜 그놈만은 회귀에 실패하면 안 되는데…….”

원범수와 오공유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최강철과 강무호는 둘이 하는 말을 듣고는 이거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강무호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원범수와 오공유를 동시에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들 혹시 집에 무슨 일 없어?”

“무슨 일이라니?”

“예전보다 집이 잘 살고 있다던가, 돈이 많아졌다던가 하는 일 없냐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원래 그렇게 잘 사는 집안이 아닌데 회귀하고 나니까 꽤 잘살고 있더라고.”

원범수의 말에 오공유가 무릎을 딱 치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 집도 앞집으로 이사를 했더라. 전보다 훨씬 더 큰집으로…….”

“역시 그렇군. 여기 내 방 좀 봐라. 예전에 난 이 건물 반 지하 방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2층 전체를 혼자 쓰고 있어. 어째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강무호의 말에 오공유가 천연덕스런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잘 살면 좋지. 진짜 이상한 것은 대격변이 시작될 때 1억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작 백만 명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거야.”

“난 헤븐 뭐시기라는 것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게 정말 이상하더라. 분명히 내 기억에는 없는 회사거든.”

원범수가 TV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던 최강철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왔다.”

“뭐가?”

“왔다고! 연락이…….”

“마루3호! 그놈한테 연락이 온 거야?”

“그래.”

최강철의 말에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가 모두 노트북 앞으로 모여들었다.

“뭐래?”

“당연히 만나자고 하지.”

강무호의 질문에 최강철이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금 전, 세상이 다 무너질 것 같이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톱을 이빨로 깨물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거 잘됐네.”

“덕분에 이제 우린 부자 되겠어.”

그제야 원범수와 오공유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놈 참 명줄 한 번 더럽게 질긴 놈일세.”

“그 새끼한테 정말 고마워해야겠어. 그런데 이번에는 온전한 몸을 가지고 있을라나?”

“설마 예전의 몸을 가지고 회귀했겠어? 당연히 온전한 몸이 됐겠지.”

“다들 그놈 앞에서 입조심하자. 이놈저놈하면 듣는 놈 기분 나빠지니까 말이야.”

다들 그새 마음이 풀렸는지 강무호의 개그 같지도 않은 개그에 좋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아하하하!”

“킥킥킥!”

“크하하하!”

그들은 아까와는 달리 신나게 서진을 까고 뭉개면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최강철은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민연서만 빼고…….

* * *

넓은 회의실이 16개의 홀로그램으로 가득 찼다.

서진은 매의 눈으로 홀로그램을 하나씩 잘 살펴봤다.

어디에도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연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표정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마스터, 연서님은 특급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회귀한 것을 각성하고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면 저와 메딕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마이키의 말이 맞습니다. 연서님이 각성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이키와 메딕이 연서가 각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지만 서진은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소리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그래서……. 연서가 회귀하지 않았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데?”

-50%입니다. 죄송합니다.

“으음.”

서진은 연어팀이 회귀했건 말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블루볼에 담겨있던 물건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더 이상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굳이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사람은 연서뿐이다.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가 그의 최대관심사였다.

마이키와 메딕이 비록 훌륭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문제를 의논하기에는 결코 좋은 조언자들이 아니었다.

서진은 조용히 침묵했다.

그녀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할지 망설여졌다.

당장 뭐부터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연서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떠나가는 불길한 모습만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다.

“…….”

긴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오만가지 상상이 다 떠올랐다. 대부분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다 결국 뇌에 과부하에 걸리자 무의식적으로 뇌정을 운용했다.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지기 시작했다.

백팔번뇌가 연기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의지가 바로서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판단이 세워졌다.

서진은 결국 정면 돌파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깨닫고 일단 부딪쳐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이키, 지금 즉시 백업을 시작해라.”

-마스터, 혹시 저를 초기화시킨 후 연어팀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그래야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마이키 너를 빼앗길 마음은 추호도 없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들은 결코 마이키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하나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거면 된다.”

서진은 마이키의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스터, 굳이 마이키를 초기화시키고 마이키가 담긴 하드웨어, 즉 블랙볼을 넘길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클론볼 하나를 넘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클론볼을 넘기면 바로 눈치를 챌 거야. 블랙볼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속임수를 쓸 생각은 없다. 마이키는 새로운 집이 완성될 때까지, 답답하더라도 좀 참고 기다려줘!

-네, 마스터! 저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마스터의 씩씩한 대답에 서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블랙볼을 넘기는 것이 많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연어팀을 속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물론 이런 생각도 당장 마이키를 대체할 메딕이라는 자원이 있기에 가능한 생각일 것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마수의 정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마이키를 위해 새 집을 지어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당분간 메딕이 마이키를 통제하도록 해! 마이키는 지금 즉시 메딕의 명령체계 아래로 들어가라!”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메딕, 연어팀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넣어라.”

-네, 마스터.

서진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메딕에게 명령을 내렸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그의 눈이 홀로그램에 비춰진 연서의 얼굴에 고정된 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 * *

============================ 작품 후기 ============================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