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66화 (6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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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불일치(不一致)

푸타타타타타타!

메탈실버의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VIP 전용헬기 한 대가 헤븐 투자 본사 옥상, 헬리포트에서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력한 트윈엔진의 힘으로 돌아가는 로터로 인해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그의 전신을 두들겼다.

무더운 여름이건만, 몸을 스치는 바람은 어쩐지 한겨울의 삭풍처럼 차갑게만 느껴진다.

헬기의 창문에 어른거리는 여자의 얼굴들……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서진을 바라보고 있다.

뒤쪽은 어머니 손예진 여사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앞쪽은 틀림없이 연서일 것이다.

서진은 헬기를 향해 한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일부러 더 환하게 미소도 지었다.

아무리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어도 어머니를 걱정시켜드리고 싶지는 않다.

시선이 뒤쪽 창문에 머물다가 서서히 앞쪽으로 옮겨져 간다.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연서는 창문에 한손을 댄 채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서진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그녀를 보면 당장 그가 어디 죽으러 간줄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녀는 모를 것이다.

지금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서진의 애간장을 끓게 만들고 있는지를 말이다.

푸르르르르르!

헬기가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다.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로터의 소음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창문에 비친 그녀의 모습도 점점 작아져간다.

헬기가 헤븐 투자 본사 상공을 한 바퀴 선회했다. 서진도 헬기를 따라 360도 제자리에서 회전을 했다.

헬기는 이내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는 헬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마침내 그의 눈에 헬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앉자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메딕, 우면동 저택은 안전하지?”

-물론입니다. 중형마수 두 마리가 미친척하고 저택에 뛰어 들지 않는 이상, 위험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대격변 첫 날이다. 중형마수가 나타날 일은 없다.

고로 부모님과 연서 그리고 연서의 부모님은 안전할 것이다.

서진은 펜트하우스로 내려가면서 메딕에게 물었다.

“연서의 반응은 어땠어?”

-확실히 마스터를 보면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메딕의 말에 서진은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완전무장을 하고 복도에 서있는 경호원들이 그를 향해 살짝 목례를 했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서자 메딕이 문을 열어줬다. 비서실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아직도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두 주먹에 지그시 힘을 줬다.

‘지금은 감정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그렇다. 지금은 자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당장 여의도공원만 해도 차원의 균열을 통해 쏟아져 나온 마수들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다.

그것도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가디언즈의 대원들이 빠르게 초동대처를 한 덕분에 이만큼 피해가 준 것이다.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차원의 균열이 열리면서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국내에서만 수만 명의 사상자가 생긴 것이니 결코 작은 피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입은 피해와 비교를 해보면 이게 또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방을 한 것이었다.

대한민국과 인구수가 비슷한 스페인의 경우만 봐도, 벌써 수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현재 대격변의 상황은 어때?”

-마스터의 개입으로 인해, 1억 명을 넘어섰던 예전의 대격변과 비교해보면 인명피해가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럼 앞으로 1주일 만에 100만 명이 죽는다는 말이야?”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사망자가 그 정도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74억 명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 전체의 인구를 봤을 때 100만 명이란 숫자는 작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전쟁에서 100만 명이나 죽어나갈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그만큼 100만 명의 목숨은 무거운 의미를 지닌 숫자였다.

“각국의 상황은 어때?”

-차원의 균열을 틀어막고, 마수들이 더 이상 시내로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봉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정규군은 이미 동원된 지 오래고 예비군을 조직하거나 심지어는 벌써부터 징병을 실시한 나라도 있습니다.

“가장 피해가 심한 나라는 역시 중국과 인도겠지?”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마수들에 의해 극심한 사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메딕은 사무실 한쪽 공간에 지구를 활짝 펴놓은 것 같은 홀로그램을 띄워놓고 서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브리핑을 했다.

“헤븐 가디언즈의 능력자들은 잘하고 있겠지?”

-현재 헤븐 가디언즈의 능력자들은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 대원들의 철저한 호위 속에 꾸준히 마수들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들이 마수를 잡는 모습을 노출시켜 대중에게 영웅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격변은 오늘 하루만 마수를 쏟아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최소한 일주일동안은 차원의 균열을 통해 지속적으로 마수를 쏟아낸다.

마수가 전멸한 차원의 균열은 서서히 사라져가지만, 전체 차원의 균열 중 10%는 안정화가 진행되어 던전으로 변한다.

안정화가 끝나면 양방향으로 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데 이것을 차원게이트라고 부른다. 능력자들만 차원게이트를 출입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그때부터 능력자들을 부추겨 차원게이트 안의 각종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마수의 정수와 사체는 연구하면 할수록 써먹을 곳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다. 특히 강한 마수의 정수와 사체일수록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다. 그래서 차원게이트를 출입해 마수를 잡을 수 있는 능력자들은 대부분 큰돈을 벌게 된다. 보다 강한 마수를 잡을 수 있는 중·상급 능력자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1인 대기업으로 불릴 정도로 부자가 된다. 무력과 금력을 손에 거머쥔 능력자들은 차츰 새로운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해 신흥세력으로 부상한다.

대격변 이후에는 강대국의 판도도 곧 바뀔 것이다.

전에는 핵무기를 보유하기만 하면 강대국처럼 행세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능력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 특히 A급과 S급 능력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곧 강대국이 된다.

대격변 이후, 지구에 무슨 저주라도 걸렸는지…… 정도 이상의 핵반응(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핵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핵무기!

이런 것을 어디에다 써먹겠는가? 무용지물이다.

산업폐기물로 분류해 당장 폐기처분해야할, 예산만 잡아먹는 골칫덩이일 뿐이다.

능력자가 곧 국력인 세상!

대격변 이후의 세상이 바로 그렇다.

능력자의 등록과 발굴, 훈련과 던전 출입, 마수의 정수와 사체처리가 곧 국가의 주요전략과 정책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능력자들을 특별대우해줄 수밖에 없다.

차츰 돈을 벌어 배가 부른 능력자들에게 갖은 당근정책과 혜택으로 유인해 던전을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주요일과가 되기도 한다.

능력자는 기본적으로 마수의 침공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던전으로 들어가서 마수를 잡고 마수의 정수와 사체 등을 가지고 나와 나라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무엇보다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놓으면 점점 마수들이 불어나 언젠가는 꽝! 하고 던전이 폭발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대격변의 하위축소판인 마수웨이브가 일어나 큰 인명피해가 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져도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다. 당장 마수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도 인간은 절대 헤게모니 쟁탈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때를 대비해 헤븐 가디언즈 소속 능력자들은 좋은 이미지, 특히 영웅의 이미지를 꼭 가지고 있어야한다. 마수와의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를 위해서도 이런 공작은 꼭 필요하다.

“마수영역화가 된 지역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지역이 몇 곳 있어서 지원팀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어때?”

-인명피해가 엄청나지만 아직까지는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신의주가 마수영역화가 되지 않도록 중국을 통해 은밀하게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서진은 메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대 마수전쟁은 마스터 플랜대로 진행해! 능력을 각성한 세계 각국의 능력자들을 헤븐 가디언즈의 이름아래 모으고, 능력자협회를 통해 등록시켜!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도 계속 확장해서 헤븐 가디언즈의 뒤를 지키는 확실한 지원부대가 되도록 해! 그리고 헤븐 그룹도 계획대로 대격변 이후의 세계경제를 주도해나가도록 만들어!”

-알겠습니다. 모든 것은 마스터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스터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당분간 메딕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고생 좀 하게 될 거야.”

-아닙니다. 전 마스터를 돕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메딕!”

-저야말로 믿고 중용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서진과 메딕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따로 보고해야할 일은 없지?”

-구골과 빅딜을 성사시켰습니다. 지주회사의 지분을 일부 넘겨받기로 하고 헤븐 디펜스에서 전폭적으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니 윈윈(win-win)이 되겠군.”

-아고스트 파블로가 드디어 중남미 카르텔을 통합·지배하게 됐습니다.

“파블로가 벌써 중남미 카르텔을 통일했어?”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가 뒤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파블로를 통해 중남미 카르텔의 성향은 온건하게 조절해야해. 더 이상 민간인을 괴롭히지 않고 악질적인 범죄행위도 가급적이면 줄이는 방향으로 가자고.”

-물론입니다. 궁극적으로 중남미에 카르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마스터의 진정한 목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메딕은 그동안 서진과의 대화를 통해 중남미 카르텔을 비롯해 삼합회, 마피아, 야쿠자 등 범죄조직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방침을 세워놓았다.

지금은 안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단 민간인을 상대로 한 범죄율을 극감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삼합회와 마피아, 야쿠자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거대범죄조직들은 아고스트 파블로처럼 이미 메딕이 대리인들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연어팀과는 언제 만나기로 했지?”

-사흘 뒤, 노량진 사육신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사흘 뒤라…….”

서진이 고민을 하는 것 같자 메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빠른가요?

“아니야. 그쯤이면 적당한 것 같아.”

굳이 빨리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쉬운 것은 연어팀이지 서진이 아니란 말이다.

‘사흘 동안 뜸을 들이면 아주 안달이 나겠군.’

서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일부러 복수를 하려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회귀 전에 그들이 자신을 은근히 무시한 대가로 사흘 정도면 준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레벨 10을 올리고 나자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사나이의 욕망도 치밀어 올랐다.

“메딕, 지금 내 수준에 레벨업이 적당한 곳이 어디지?”

-아직은 최하급마수 중 강한 축(F+)에 들어가는 놈들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레벨 15부터는 하급마수 중 제일 약한 놈(E-)을 잡도록 하시지요.

“그래서 어디로 가라는 건데?”

-보라매공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보라매던전!”

서울에 생겨난 10개의 차원의 균열 중 3개는 안정화가 진행된다.

그중 보라매던전은 특히 안정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랐다.

초반에는 하급마수들이 나와서 능력자들이 많이 기피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초보능력자들이 레벨을 올리는데 최적의 장소라고 각광을 받던 곳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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