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67화 (67/225)

0067 / 0225 ----------------------------------------------

제17장 불일치(不一致)

-밤이 되면 보라매공원에 있는 차원의 균열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부드러운 메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레벨업을 위한 동선을 그렸다.

“그럼 저녁 먹고 여의도공원가서 레벨업 좀 하다가 밤이 되면 보라매공원으로 가야겠다.”

-혼자 가실 계획이세요?

“응, 혼자 갈 생각이야.”

-헤븐 가디언즈의 제1공격대와 같이 가시는 게 안전할 것 같은데요.

“제1공격대라면 미래에 S급, A급 능력자가 될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이잖아?”

-네, 맞아요. S급 50명, A급 500명으로 제1공격대를 편성했어요. 자정을 기해 이들을 보라매던전으로 투입시킬 계획입니다.

메딕의 말을 듣자 예전에 이렇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 기억났다.

“그럼 거기에 강백호와 우동면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잘 지내고 있지?”

-둘 다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마수와의 전투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히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특히 강백호는 그중에서도 발군입니다.

“하긴, 전에도 가장 먼저 S급 능력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몸이니…….”

서진은 말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빠졌다.

언제나 강백호와 우동면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대격변이 시작되자마자, 어쩌면 그들과 자신의 입장이 정 반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능력자의 세계에서만큼은 타고난 천재다.

아무리 범재가 노력한다고 해도 타고난 클래스를 뛰어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지금 자신은 강백호와 우동면을 헤븐 가디언즈에 특채하는 형식으로 데려다놓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최단코스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시작점이 다른 상황에서 미래를 생각해보자 그는 더 이상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메딕, 안되겠다. 저녁이고 뭐고 당장 여의도공원으로 가서 마수를 잡아야겠다.”

-그래도 구내 레스토랑에 가셔서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그렇게 시간 많이 안 잡아먹을 거예요. 괜히 마수를 잡다가 중간에 배가 고파지면 그것도 고역이랍니다.

“으음, 그럼 메딕의 말대로 해볼까?”

생각해보니 메딕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최고급 한우로 만든 육포와 초콜릿 바를 비상식량으로 가지고는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설렁탕만큼 배가 든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결국 구내 레스토랑에 들려 설렁탕을 먹고 가기로 했다.

역시 남자는 큰일을 하려면 먼저 배가 든든해야만 한다.

* * *

여의도공원 그라운드제로를 기준으로 반경 100m 밖에 방벽이 설치됐다.

‘빨리빨리’가 입에 배인 민족답게 폭 1m, 높이 3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순식간에 이곳을 세상과 단절시켜버렸다.

서울시는 헤븐 시큐리티의 조언대로 북동쪽과 남서쪽에 각각 하나씩 출입구를 만들어 놓아 마수들이 안에 너무 많이 쌓이지 않도록 유도했다.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는 더 이상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기갑부대의 전차와 장갑차의 차가운 쇳덩이들만 보일 뿐이다.

태극기게양대 앞, 몇 겹으로 튼튼한 바리게이트가 세워져있고 뒤쪽에는 중기관총과 고속유탄발사기로 무장한 감시탑이 세 개나 보였다. 감시탑은 남동쪽 출입구를 기준으로 정확히 역삼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중기관총의 교차사격을 통해 화망을 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치해놓은 것 같았다.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완전무장한 병사들 사이로…… 오토바이 헬멧 보다 얇고 상당히 날렵한 디자인의 헬멧과 시가전에 특화된 회색계열의 디지털 문양이 그려진 전신슈트를 장비한 이질적인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벅 저벅 저벅!

서진은 출입구1을 통해 여의도공원 안으로 들어가 그라운드제로로 가는 남동쪽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스터, 어서 오십시오.”

“로이! 여기 있었구나.”

로이가 어느새 다가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수 잡으러 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너도 같이 가자.”

“네, 마스터.”

로이는 두 말하지 않고 그의 어깨와 나란히 줄을 맞춰 걸어갔다.

커다란 전투도끼와 대형타워실드가 무겁지도 않은지 로이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부상을 입지는 않았겠지?”

“최하급마수를 상대로 부상을 입을 만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서진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로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등을 몇 번 토닥거렸다.

남동쪽 출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둘의 모습을 발견한 병사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짓을 하며 경외에 찬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헤븐 가디언즈의 능력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진은 그 모습에 괜히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바리게이트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자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서진과 로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가십니까?”

“보면 모릅니까? 마수 잡으러 갑니다.”

“이 저녁에요?”

“저녁에는 마수 잡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저희는 민간인들의 출입을 허용하라고 명령 받은 적 없습니다.”

“그건 댁의 사정이죠.”

병사들은 민간인의 출입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서진과 로이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서진과 로이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둘은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병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 가운데 눈치 빠른 한 명의 병사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상부에 보고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키가 크고 훤칠하게 잘 생긴 병사 하나가 냉랭한 목소리를 내며 총구를 세웠다는 것이다.

“멈추십시오. 더 이상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상부에 보고나 잘하세요.”

“더 이상 들어가시면 정말 발포합니다.”

“이거 미친 놈 아니야? 민간인에게 발포를 하겠다니…….”

서진은 살짝 짜증이 났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키가 큰 병사를 한번 노려보고는 안면가리개를 내리고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는 자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타타탕!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총소리가 들려왔다.

키가 크고 잘생긴 병사가 소총을 발사한 것이다.

다행히 그 병사가 서진과 로이를 향해 총을 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한 옆의 다른 병사 하나가 급히 그의 총구를 위로 치켜들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서진과 로이가 동시에 뒤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총구를 위로 치켜든 병사가 키 크고 잘생긴 병사를 향해 소리쳤다.

“야! 너 미쳤어? 어디에다 총을 쏘는 거야?”

“시발, 나보고 미친놈이라잖아. 그리고 민간인 절대 못 들어가게 하라는 명령 못 들었어? 그때 옆에 같이 있었잖아.”

“이 새끼야. 그렇다고 민간인을 등 뒤에서 쏘면 우린 뭐가 되냐? 우리 적이 마수지 민간인이야?”

백번 들어도 옳은 말에 총을 쏜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씩씩대기만 했다.

서진은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어딜 가나 꼭 이런 또라이 새끼 한 놈은 있게 마련이다.

“메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능력자가 마수를 잡으러 그라운드제로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병사가 못 들어가게 막고 총을 쏘다니?”

-마스터, 죄송합니다. 분명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차은혜 대통령이 국방부에 명령을 내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시 이 상황을 청와대에 알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으음.”

저벅 저벅 저벅!

서진은 메딕의 말을 한쪽 귀로 들으며 자신에게 총을 쏜 병사에게 걸어갔다.

키가 큰 병사가 놀라서 다시 총구를 들이댔다. 하지만 그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서진은 자신을 향한 총구의 끝을 잡고는 오히려 확 잡아당겨버렸다.

자신의 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을 줬던 병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죽고 싶어?”

“죽고 싶지도 않고 너한테 죽을 일도 없어. 잘 봐둬라.”

서진은 땅바닥에 쓰러진 병사를 차갑게 한번 쳐다보더니 소총을 들어 로이의 몸을 겨냥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쏴버렸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으아악!”

“허억!”

갑작스런 서진의 행동에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했다.

그들은 모두 로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피를 철철 흘리는 로이가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서진이 탄창하나를 다 비웠는데도 불구하고 로이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디를 다치거나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방탄복을 입고 있는 거야?”

“능력자라서 총이 소용없는 것 아니야?”

병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해마지 않았다.

서진은 병사들의 모습을 슬쩍 한번 쳐다보더니 자신을 발사됐던 소총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발로 세차게 밟아버렸다.

팍! 와지직!

소총은 단숨에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버렸다.

“다시는 능력자들의 행사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 이건 경고일 뿐이야.”

서진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로이는 자신의 전신장갑 가슴부분을 손으로 한번 쓱 쓸어내리더니 서진의 뒤를 쫓아 빠르게 달려갔다.

-마스터, 국방부 라인 하나가 아무래도 불순한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가디언즈는 물론이고 헤븐 투자를 비롯한 헤븐 그룹 전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대격변이 시작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경계를 하는 놈들이 생겼군. 국방부 장관이라고 해도 헤븐 그룹 전체를 조사하는 것은 무린데……. 도대체 우두머리가 누구야?”

-현재 몸통을 추적중입니다. 내일까지는 온전한 실체를 파악해놓겠습니다.

“일단 청와대를 움직여서 압박을 가하도록 해. 국정원과 국방부에 심어놓은 라인을 전부 움직여서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려! 우리에게 칼을 들이댄 놈들에게 굳이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으니까.”

-네, 마스터.

서진의 단호한 목소리에 메딕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사람 잘못 건드렸다.’

서진은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살짝 이를 갈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요새 여기저기 어깨에 힘 좀 준다는 놈들이 헤븐 그룹을 툭툭 건드리며 간을 보는 있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있어 누구하나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가만히 놓아두지 않으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렇게 알아서 먼저 건드려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제는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몸통이고 깃털이고 모두 찾아서 자근자근 짓밟아주는 일만 남았다.

사실 서진에게 싸움은 일상이나 마찬가지다.

수십 번의 대수술, 수백 번의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수천 번의 재생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그는 누구보다도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겪어왔다.

마수를 죽이고, 마수에게 거의 죽임을 당하고, 수술을 받아 다시 살아나고, 다시 마수와 싸워 죽이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투쟁의 사이클 속에 그는 싸움, 공포, 상처, 고통, 죽음 등에 누구보다도 익숙해져갔다.

원래 많이 맞아본 놈이 잘 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싸움도 많이 해본 놈이 잘 싸우는 법이다.

거기에다 서진은 싸울 때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통에 척추 한줄 달고 사는 놈에게 뒤를 돌아볼 일 따위가 뭐있겠는가? 그건 그냥 사치일 뿐이다.

마수와의 싸움은 반드시 먼저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되어있다.

그래서 싸움은 봐주고 말고가 없다.

그저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

한순간의 망설임과 인정이 파국을 불러오는 것이다.

사실 서진에게 싸움이란 자신이 아직도 인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는 의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사람 잘못 건드렸다.

-마스터, 세종대왕동상이 자리 잡기가 가장 좋습니다.

“그래? 그럼 그리로 가자.”

일단 자리를 잘 잡아야한다.

적당한 숫자의 마수가 와야 하고 너무 많은 마수들이 몰리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여의도공원 상공에 수십 개의 클론볼이 떠있는 상태라 메딕은 수월하게 서진을 위한 가장 좋은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으응, 여기 정말 좋은데?”

막상 세종대왕동상 앞에 와보니 이곳이야말로 마수를 잡는 최고의 명당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유쾌한 하루 보내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