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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불일치(不一致)
세종대왕동상은 검은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돌이 정사각형 형태로 5m 정도 쌓인 곳 위에 올려져있었다. 마치 세종대왕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정면과 옆으로 삐쭉 튀어나온 용머리 의자 위까진 높이가 족히 10m 는 될 듯했다. 이 말은 서진이 용머리 의자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마수들이 공격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촤아아악!
서진은 세종대왕이 앉아있는 의자 옆으로 삐쭉 튀어나온 용머리를 향해 레드볼을 던졌다. 용머리에 레드볼이 사뿐하게 걸려 한 바퀴 돌자 저절로 고정이 됐다.
그는 손을 오른쪽으로 가볍게 한번 튕겼다. 그러자 레드볼이 빠르게 줄을 잡아당겨 그의 몸을 순식간에 10m 위로 끌어올렸다.
서진은 세종대왕동상 어깨위에 턱하니 주저앉아 로이를 쳐다봤다.
“로이, 너도 이리 올라와.”
“네, 마스터.”
로이는 서진의 명령에 따라 위로 훌쩍 뛰어올라 세종대왕동상의 발끝을 한손으로 잡았다. 몸을 살살 흔들더니 순간적으로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아 가볍게 위로 올라갔다. 누가 보면 전직 체조선수가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메딕, 이제 시작하자.”
-네, 마스터. 등급에 맞게 오르그나이트나 헬독을 유인해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볍게 몸을 한번 푸는 것이 좋겠네요.
“하하하, 그래 부탁한다.”
메딕은 처음부터 오르그주술사를 완전히 배제했다.
원거리공격이 가능한 하급마수라 아직은 마스터가 상대하기에 위험할 수도 있었다.
역시 가장 만만한 것은 오르그와 블러드울프의 상위개체다.
세종대왕동상 위에 올라간 마스터를 공격할 수단이 거의 없는 놈들이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메딕은 곧바로 주변 상공에서 대기 중인 클론볼을 이용해 마수들을 하나씩 꾀어 세종대왕동상 앞으로 유인해왔다.
처음 시작은 오르그전사들이었다.
“오르르르!”
“오르르르!”
오르그전사들이 세종대왕동상 앞으로 다가오더니 사람의 냄새를 맡기라도 했는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오르그전사 여덟!
스타트치고는 나름 화끈한 전력이었다.
서진은 일단 탐지부터 걸었다. 레벨10이 되면서 탐지거리는 반경 20m로 늘어나 있었다.
어두운 밤, 여의도공원에 붉은 색 역삼각형 여덟 개가 나타나 뱅글뱅글 돌면서 그의 눈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500에서 10이 줄면서 490이 됐다.
매직미사일을 19방 쓸 수 있는 마나의 양이다.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서진은 매직미사일을 차례로 발사했다.
휙휙, 휙휙, 휙휙, 휙휙!
크악, 커억, 케엑, 큭, 꺼억, 꿰엑…….
매직미사일이 허공으로 쭉 솟아올랐다가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내리꽂혔다. 정수리를 찍힌 오르그전사들은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머리통이 수박처럼 박살나고 돌대가리를 가진 단단한 대가리들은 모조리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오크전사 여덟이 자신을 공격한 서진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서진은 결과가 마음에 드는지 씨익 입 꼬리를 위로 치켜들었다.
-마스터, 이번에는 헬독입니다.
메딕이 조금의 시간차도 주지 않고 바로 헬독 두 마리를 끌고 왔다.
‘탐지!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서진은 헬독이 탐지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바로 탐지부터 걸고 매직미사일을 난사했다.
휙휙, 휙휙, 휙휙, 휙휙, 휙휙, 휙!
깽 깨갱 깽 케엥…….
닥치고 공격부터 날린 서진의 선택은 탁월했다. 헬독 한 마리의 대가리가 깨져 어이없이 죽어버렸고 다른 한 마리는 순식간에 빈사상태에 빠져들었다.
“마나가 또 오링이네.”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제는 뭔가 제대로 수를 내야만할 것 같았다.
‘연서의 것을 탐할 수는 없고……. 역시 마나리차저(mana recharger)를 빨리 만들어야겠다. 그동안은 버퍼라도 한명 달고 다녀야하나?’
서진의 머릿속에 갑자기 제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흔들었다. 뭔가 의문의 1패를 당한 느낌에 서진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마나만 넉넉하다면 매직미사일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럼 원거리에서 거의 무한사냥을 할 수 있게 되고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최하급마수나 하급마수의 한에서다.
휘익 퍽!
빈사상태에 빠진 헬독은 제대로 비명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띠링!]
[레벨업!]
그때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레벨업 알림음이었다.
서진의 몸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갔다.
마나도 다시 풀로 차고 보너스 스탯도 하나 생겼다.
헬독 두 마리를 잡고 오르그전사 여덟 마리를 잡았더니 레벨업을 했다.
‘다음 레벨업을 위해서는 최소한 헬독 네 마리 이상을 잡아야겠군.’
서진은 레벨업을 한지 몇 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다음번 레벨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레벨업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저렙 때는 등급에 맞춰 마수를 잘 잡기만 하면 그럭저럭 레벨업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레벨30만 넘어가도 아마 레벨업이 상당히 빡세게 느껴질 것이다.
-헬독 한 마리가 곧 도착합니다.
언제 들어도 귀가 즐거운 부드러운 메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이처럼 충성스런 부하가 따로 없었다.
메딕은 월급도 안 받고 참 열심히 일을 잘한다. 쉬는 날도 없고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람처럼 욕심을 내지도 않고 꾀를 부리거나 파업을 일삼지도 않는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메딕은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서진이 벌려놓은 일들을 한꺼번에 동시에 빠르게 처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딕은 한쪽으로 부지런히,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국방부 라인 하나를 파헤치고 있다. 청와대를 움직이고 국정원의 라인을 통해 정보를 불러온다. 국군기무사령부로 ‘명령불복종’혐의로 이들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려놓고 국방부 라인을 움직여 배후를 찾아본다. 내일 아침이 되면 국방부 라인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고 이들에게 사주한 배후세력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아마 곧 찾게 될 것이다. 원래 배후 찾기는 마이키의 전공분야나 마찬가지니까.(현재 마이키는 메딕의 명령체계 아래에 들어와 있다.)
메딕은 참으로 훌륭한 녀석이다.
-마스터, 보라매공원에 있는 차원의 균열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화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얼마나 빨리?”
-늦어도 1시간 안으로 진입이 가능해질 겁니다.
“그럼 이놈 한 놈만 마저 잡고 가자.”
-네, 차량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부탁해.”
서진은 헬독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탐지를 걸고 매직미사일을 난사했다.
‘탐지!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휙휙, 휙휙, 휙휙!
깽 깨갱 케엥!
클론볼이 쏘아대는 전자기파에 이끌려온 헬독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느닷없이 대가리를 마구 후려 패는 매직미사일 세례에 정신없이 당하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픽 쓰러져버렸다.
“메딕, 잊지 말고 마수사체 잘 챙겨라.”
-네, 물론입니다.
서진은 세종대왕동상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렸다.
척!
그는 자신이 들어왔던 출입구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3m 높이의 방벽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뒤를 로이가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도도도도도 탓!
휘익 쿵!
서진은 빠르게 달려가다 방벽을 만나자 그대로 벽을 발로 밟으면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방벽을 넘어갔다.
-마스터, 바로 앞 도로에 모시고갈 차량을 준비했습니다.
“K사(社)의 소형전술차를 말하는 거야?”
-네, 맞습니다. 운전은 로이가 하면 되겠네요.
보도를 가로질러 도로로 다가가자 회색도장을 한 K사(社)의 소형전술차 세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헤븐 시큐리티에서 한꺼번에 수십 대를 구입해 쓰고 있는 방탄차량이었다.
서진은 로이와 중간에 있는 소형전술차를 탔다.
앞뒤의 소형전술차에는 이미 경호실 요원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타고 있었다.
부릉 부르르릉 부우우우우웅!
소형전술차 세 대가 천천히 여의대로를 출발해 의사당대로를 만나자 좌회전해서 달렸다. 여의교오거리에서 여의대방로를 타고 달리자 어느새 보라매공원 입구교차로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를 따라 쭉 아래로 내려가자 보라매공원 운동장에 도착했다.
여의도공원이나 보라매공원이나 눈에 보이는 상황은 비슷했다. 보라매공원 그라운드제로를 기준으로 반경 100m에 폭 1m, 높이 3m의 콘크리트 방벽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도 헤븐 시큐리티의 조언을 토대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고 각각 세 개씩 감시탑도 세워놓았다.
한쪽에 수방사의 전차와 장갑차가 보였고 다목적운동장에는 병사들이 쉴 수 있는 막사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서진은 로이를 데리고 서쪽 출입구로 걸어갔다.
동쪽 출입구에는 헤븐 가디언즈 제1공격대 550명이 모여 있어 상당히 복잡했다.
이미 여의도공원 출입구에서 일어났던 불미스런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는지, 이번에는 그 누구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메딕이 그의 허드에 보라매공원 안에 열린 차원의 균열이 있는 곳을 표시해줬다.
-마스터 3시 방향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같이 들어갈 거야?”
-아닙니다. 제가 들어가면 밖의 일이 올 스톱(all stop)됩니다. 마이키와 같이 가세요. 클론볼을 가져가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알았어.”
서진은 메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얼마 걷지 않아, 당장이라도 먹물이 뚝뚝 흘러 떨어질 것 같은 검은 공 모양의 구체가 눈에 띄었다. 차원의 균열이었다.
그는 안면가리개를 올리고 직접 자신의 눈으로 차원의 균열을 살펴봤다. 확실히 허드를 통해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모습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회오리모양의 기이한 와류 같은 것이 보이고 짙은 흑암이 그곳에서부터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끝에는 허드로 본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공 모양의 구체가 연결되어 있었다.
안정화가 막바지에 달해서 그런지 공 모양을 한 차원의 균열은 테두리가 점점 주홍색으로 변해가며 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 완연한 주홍색 테두리가 만들어지면 차원의 균열은 안정화를 끝내고 던전으로 변해 차원게이트를 개방하게 될 것이다.
-블루볼의 제어권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메딕이 블루볼의 제어권을 돌려주자 그는 즉시 블루볼을 한손에 쥐었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어 캡슐을 꺼냈다. 매끄러운 곡선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묵직한 캡슐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튼을 눌러 투명한 강화금속으로 만들어진 캡슐의 덮개를 열었다.
푸쉬이이이익!
적당한 기압으로 조정된 캡슐의 덮개가 열리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이, 들어가.”
“네, 마스터.”
로이가 캡슐 안으로 들어가 똑바로 누웠다. 그는 로이가 들고 있던 전투도끼와 타워실드를 그의 몸 위에 살짝 올려놓고 캡슐의 버튼을 눌러 투명한 강화금속으로 만들어진 캡슐의 덮개를 닫았다.
서진은 캡슐을 블루볼 안에 집어넣고 검은 당구공 모양을 한 블랙볼, 마이키도 집어넣었다.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자신을 봐달라고 돌고 있는 클론볼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었다.
-마스터, 드디어 차원의 균열이 안정화됐습니다.
“으음, 그럼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겠군.”
-블루볼에 각종 무기와 포션, 한우로 만든 최고급육포, 생수, 비상식량, 텐트, 서바이벌 키트 등을 넣어놓았습니다. 그럼 마스터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맙다. 돌아올 때까지 잘하고 있어.”
-네, 마스터.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메딕이 잠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인사를 했다. 하얀 당구공처럼 생긴 메딕의 몸체에는 붉은 색 십자가 모양이 연하게 물들어있었다.
서진은 메딕을 향해 손을 몇 번 흔들고는 몸을 돌려 안정화를 이룬 보라매공원의 차원의 균열, 즉 보라매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안정화를 이룬 덕분에 이제 양방향통로, 즉 차원게이트가 열리자 능력자의 몸인 서진의 몸은 검은 구체에 몸이 물들 듯 자연스럽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몸이 꺼지듯 차원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대격변이 시작된 후, 최초로 능력자가 차원게이트를 통해 던전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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