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72화 (7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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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 보라매던전

똑똑똑!

걱정스런 하얀 손이 문을 두드린다.

“…….”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다시 용기를 내어 노크를 해본다.

똑똑똑!

“…….”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다. 들어가도 되니?”

구혜란은 조심스럽게 방안을 향해 소리쳐본다.

아무런 인기척조차 없다.

길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결국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탈칵!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고 안을 들여다봤다.

커튼이 닫혀있어 어두운 방안은 그저 미약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침대를 살펴봤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이 누워있는 것처럼 봉긋하게 이불이 위로 올라와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과년한 딸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오늘처럼 조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촤르르륵!

구혜란은 일단 창가로 가서 커튼을 활짝 열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여름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안을 환하게 비쳐줬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걸어서 침대로 다가갔다.

“연서야! 좀 일어나봐. 엄마와 얘기 좀 하자. 응?”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침대 한쪽 끝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이불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한쪽 끝을 꽉 잡고 있는지 이불은 내려가지 않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엄마, 그냥 나 좀 혼자 내버려두면 안 돼요?”

“안 돼! 네가 이렇게 방에 콕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게 벌써 사흘째야. 도대체 왜 이러니? 혹시 너 서진이와 싸웠니?”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럼 왜 그래? 사춘기도 다 지난 녀석이 평생 안하던 짓을 하고……. 네가 이러니까 엄마가 자꾸 무서워지려고 그래.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응?”

계속된 구혜란의 사정조의 말에 이불 한쪽 끝을 잡은 힘이 스르르 풀려갔다.

구혜란은 이때다 하고 얼른 이불을 걷었다.

“어머! 너 얼굴이 왜 그러니? 잔뜩 부었잖아? 혹시 너 울었니?”

“후우우우!”

구혜란은 딸의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연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너 이러다가 얼굴 흉해지면 어쩌려고 그래? 안되겠다. 얼음찜질이라도 해야지.”

“엄마, 괜찮아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연서의 말에 구혜란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미모는 어릴 때 잘 지켜야해. 네 나이 때는 그런 것을 몰라서 대충 막 관리하다가 나중에 나이 먹어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는 거야.”

그녀는 연서에게 상냥하게 충고를 했다. 방안에 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안에서 얼음을 꺼냈다. 비닐봉지에 얼음을 담고 잘 싼 다음 급한 대로 헤어밴드를 집어 묶자 그럴듯한 얼음주머니가 됐다.

“앗! 차가워!”

“그럼 얼음이 차갑지. 뜨겁겠니?”

연서는 얼굴에 닿은 차가운 얼음주머니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구혜란은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나라고 더욱 가까이 얼음주머니를 들이밀었다.

연서는 잠시 반항을 해봤지만 결국 엄마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구혜란은 딸이 얌전해지자 연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부은 얼굴 곳곳에 세심하게 얼음찜질을 해줬다.

“…….”

“…….”

잠시 두 모녀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러갔다.

참다못한 구혜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에요.”

“너 거짓말 하는 애 아니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하려고 그래?”

“거짓말 아니에요.”

“별일 맞잖아.”

“어휴!”

연서는 구혜란의 다그침에 결국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얘기 안 해줄 거야?”

“…….”

“무슨 일인지 알아야 엄마가 도와주지. 혹시 서진이하고 관련된 일이니?”

“후우우!”

구혜란은 평소같지 않은 연서의 행동을 보더니 딸에게 뭔가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혹시 임신했니?”

“엄마!”

“아이유, 깜짝이야! 엄마, 귀청 터질 뻔 했잖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자꾸 왜 그러세요.”

“네가 얘기를 안 해주니까 자꾸 내가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잖아. 혹시라도 서진이 애라도 가졌으면 이참에 빨리 날을 잡자.”

“자꾸 그러실 거예요?”

“그럼 뭣 때문에 네가 이러는지 얘기를 해주던가.”

연서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구혜란은 아무리 물어도 말을 해주지 않자 딸자식의 입에서 진실을 듣기는 글러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쉽게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엄마, 무지하게 섭섭하다. 같은 여자로써 내 딸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지는 몰랐어.”

“…….”

구혜란은 작전을 새롭게 바꿨다. 하지만 연서는 예전의 그녀가 알던 20살짜리 연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일단 입을 다물기로 하자 구혜란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연서의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 내가졌다. 이 나쁜 기집애야.”

구혜란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때 연서가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처녀 때로 돌아가서 첫사랑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으응? 그건 비밀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집에 아빠 있어요?”

“아니. 볼일 있다고 밖에 나가셨다.”

“밖은 아직 위험할 텐데요.”

“아니야. 차원의 균열인가 뭔가 하는 곳에 방벽을 세워서 이젠 괜찮대. 탱크와 장갑차까지 동원했으니 마수들도 이제는 별 수 없을 거다.”

연서는 엄마의 말에 연한 미소를 지었다.

TV에서 하는 말만 듣고 순진하게 그냥 그대로 믿어버리신 모양이다.

“집에 아빠도 안 계시니까 안심하시고 얼른 대답해보세요.”

“으음.”

구혜란은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더니 결심을 섰는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첫사랑은 참 아름다운거야. 그리고 좋은 추억이 되지. 여자한테 있어서 첫사랑만큼 가슴 설레고 뜨거운 열병이 따로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처녀 때로 돌아가면 다시 네 아빠를 만날 거다. 그리고 널 꼭 다시 낳을 거야. 세상에 그 무엇도 내 딸 연서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구혜란은 더 이상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서는 구혜란의 말에 서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다.

학교에서 처음 그를 만난 날, 자신은 그를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큐피드가 쏜 사랑의 화살이라도 맞았는지, 그는 정말 운명처럼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 그의 생각, 그의 말투, 그의 손길, 그의 매력, 그의 몸, 그의 행동, 그의 사상, 그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는 사랑할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첫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그딴 헛소리를 했는지, 만나기만하면 꼭 비웃어 주고말리라 다짐했었다.

그는 자신에게 완벽한 남자였다.

아니 자신을 완벽한 여자로 만들어주는 하늘이 내린 동반자였다.

그런 그를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그를 단지 가슴 설레고 뜨거웠던 열병으로 치부해야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주르륵!

누군가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자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상(像)에 맺혔다.

‘서진을 첫사랑으로 추억하고 강철 씨에게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녀는 단지 그 생각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때, 구혜란이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연서야, 도대체 네가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내 딸을 믿는다. 네가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확신해. 서진이가 혹시 너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니? 그래도 죽을죄가 아니라면 한번쯤은 용서해줘라. 내가 볼 때 너한테는 서진이 만한 천생연분도 없지 싶다.”

“엄마는 서진이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마다. 솔직히 말해서 난 네 상대로 서진이 외에는 다른 남자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집안, 학벌, 능력, 뭐 이런 것들을 다 제쳐놓고 얘기한다고 해도…… 지난 5년 동안 서진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렴. 난 그것만으로도 서진이가 내 사위이자 내 딸, 연서의 남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느껴져.”

“…….”

딸을 진정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더 울리려고 하는 것인지…….

엄마의 말에 연서는 이슬방울 같은 맑은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구혜란은 아무 대답 없이 눈물만 흘리는 딸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딸의 몸을 안는 그녀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연서는 그렇게 엄마의 품에 안겨 한참동안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역시 눈물은 여자의 무기이자 친구인가보다.

어느 정도 울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 고마워요.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래? 다행이다. 배고프면 밥 차려줄까?”

“아니에요. 그냥 좀 씻고 싶어요.”

“그럼 반신욕이라도 할래?”

“네.”

“그럼 엄마가 욕실에 뜨거운 물 받아놓을 테니까 좀 이따 들어와.”

“네, 엄마.”

구혜란은 연서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딸의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며 욕조를 빠르게 채워갔다.

그녀는 수온을 적당하게 맞추고 딸의 피부미용을 위해 천연암염으로 만든 스톤솔트 반신욕입욕제를 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휙휙 휘저어 본 후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됐다. 들어가서 반신욕으로 스트레스를 쫙 풀어주렴.”

“네, 엄마. 고마워요.”

“그래. 우리 딸! 빨리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 줄 것으로 믿는다.”

“그럴게요.”

구혜란은 딸의 몸을 다시 한 번 꼭 안아주고는 방을 나갔다.

연서는 구혜란이 밖으로 나가자 냉장고에서 와인을 한 병 꺼냈다. 능숙한 솜씨로 와인을 딴 그녀는 와인 잔을 하나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 옆 의자에 와인과 와인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욕실 문을 잠그고 천천히 옷을 벗었다.

욕실 벽 전체가 전신거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체가 욕실 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름다운 여체였다. 부모님의 온갖 좋은 유전자만 골라서 가지고 태어난 몸매종결자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고작 사흘 동안의 고민만으로는 그녀의 예쁜 얼굴을 도저히 망가뜨릴 수 없었다. 매끈한 피부는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보드랍고 광채가 나는 듯 했고, 호수처럼 깊은 눈빛은 그윽한 커피 한잔의 향기가 느껴졌다.

유선형의 실한 가슴은 천도복숭아와 같았고 쭉 뻗은 두 다리는 대리석기둥을 세워놓은 것처럼 각선미가 돋보였다. 건강미가 살아 숨 쉬는 복근 아래쪽에 귀엽고 작은 배꼽이 자리 잡았고, 잘 정돈된 밀지는 부끄러움에 다리 사이로 자꾸만 숨으려고 들었다. 정말 숨 막히게 풍요롭고 관능적인…… 아름답기 그지없는 몸매였다.

“하아!”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꽃핀 육체도 이제는 다 소용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한손으로 자신의 천도복숭아를 가만히 쥐었다.

모양이 살짝 찌그러졌다.

하지만 힘을 풀자 탱탱한 탄력으로 인해 곧장 다시 원형을 회복했다.

“아음!”

만지기만 해도 그의 짜릿한 손길이 기억나 저절로 몸이 뜨거워졌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다른 한손을 아래로 내렸다.

은밀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살짝 손가락으로 쓸었다.

“아흑!”

사랑하는 그가 자신의 바로 앞에서 뜨거운 눈길로 올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사흘을 울고도 모자라, 아까 그렇게 또 울고도 다시 흘릴 눈물이 어디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보고 싶은 그의 얼굴이 떠올라 당장 보러가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슬퍼졌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욕조에 앉자 뜨거운 물이 온몸을 따뜻하게 환영해줬다.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은 정염의 화신은 자꾸만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생각났다.

그의 입술의 감촉이 온몸에 화인처럼 박혀 강제로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야릇한 생각에 몸을 비틀자 다리 사이가 자꾸 찌릿 거리고 뜨거워졌다.

숨이 가빠지고 천도복숭아가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가버릴 것 같은 나의님인데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모른 척 할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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