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74화 (7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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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 님은 먼 곳에

스스로 생각해봐도, 예전 자신의 모습은 인간 같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았으니……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쿨 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네 명은 무슨 억하심정이 그리 많은지 자신을 안주삼아 정말 끝도 없이 씹어대고 있었다.

특히 최강철은 이미 그 수위가 한계를 넘어 적개심에 다다라있었다.

“메딕, 그만보자.”

-네, 마스터!

메딕은 서진의 심기가 극히 불편해진 것을 깨닫고는 두말없이 바로 홀로그램을 꺼버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꺼냈다.

-마스터, 원하시면 연어팀을 조용히 제거해버리겠습니다. 이미 그들이 머물고 집 근처에 저격조를 배치해놓았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으음.”

서진은 메딕의 말을 듣는 순간, ‘그냥 싹 다 죽여 버리고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 버릴까?’ 하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내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회귀를 감행한 능력자들이었다.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욕 좀 했다고 다 죽여 버리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왠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자꾸 자신이 부러워서 질투를 하고 있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메딕, 일단 저들과 나는 서로 주고받을 것이 남아있어. 죽이고 살리는 것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 깔끔하게 계산을 끝내고나서도 나에게 이빨을 들이댄다면 그때는 정말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는 없겠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메딕은 미래의 최첨단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답게 서진의 말을 참 빨리도 알아들었다.

-마스터, 연서님에게 일단 감시를 붙여놓았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하는 저의 입장과 선택을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시를 붙였다면 클론볼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에 마스터의 명령으로 연서님에게 붙인 나노로봇과 메디봇을 철수해서 이번에 클론볼을 하나 붙여 놓았습니다.

“으음, 그건……. 일단 좀 더 두고 보자.”

서진은 메딕이 연서에게 감시를 붙였다는 말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감시로 붙인 클론볼은 쓰기에 따라서 도움을 주거나 보호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연어팀과 만나자고 했던 날이 언제지?”

-오늘 저녁 노량진 사육신공원에서 만나기로 하셨습니다.

“혹시 보라매던전 들어가 있는 동안 연서가 나를 찾지는 않았어?”

-전화 한 통 없으셨습니다.

“으음.”

메딕의 살짝 화난 말투에 서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오늘 연어팀을 만나기가 점점 싫어져가고 있었다.

“으음, 연어팀에게 넘겨야할 물건들, 하나도 빼놓지 말고 잘 챙겨줘!”

-네, 마스터.

“우면동저택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뵙고 난 후에 연어팀을 만나러가자.”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마이키의 백업은 끝났어?”

-완벽하게 백업됐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고했어.”

서진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피곤해서 잠을 자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우우우웅!

로이가 그의 기분을 눈치 챘기라도 했는지 빠르게 밴을 가속했다.

서진이 타고 있는 하얀 밴을 사방에서 호위하며 따라가던 경호실 요원들이 깜짝 놀라서 급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고 있었다.

* * *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올랐다.

사육신공원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주변을 밝히자 벤치에 앉아있던 사내 하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빨리 안 오니 짜증이 난 모양이다.

“범수야, 아직 시간 안됐다.”

“그래? 그래도 좀 일찍 오면 어디가 덧나나? 꼭 코리언타임 맞춰서 오려고 그러네.”

오공유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말하자 머쓱해진 원범수는 엉뚱하게 코리언타임을 들먹였다.

강무호는 그런 원범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 시선을 옆 벤치로 돌렸다.

그쪽은 이쪽과는 달리 핑크빛이 가득하고 깨가 쏟아지는 분위기였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던 최강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잃어버린 주인을 만나 신이 난 강아지새끼마냥, 민연서에게 애교를 떨어대고 있는 팔불출 최강철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 나 이거 참! 어디 여자 친구 없는 놈, 서러워 살겠나?”

강무호가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며?”

“내가 언제?”

원범수가 귀신같이 강무호의 말을 듣고 비꼬듯 말했다.

그러자 강무호는 시치미를 뚝 뗐다.

하지만 강무호는 원범수를 너무 물로 봤다. 그는 엉뚱한 곳에 묘하게 기억력이 좋은 인간이었다.

“회귀하기 전에 술 마시면서 얘기했었잖아. 과거에 아주 잘나가셨다면서? 그때 말했던 절세미녀들은 도대체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거야? 미녀들이 줄을 서고 동거를 밥 먹듯이 했다는 양반이 저걸 보고 푸념을 해?”

“그냥 해본소리야.”

강무호의 목소리가 한껏 풀이 죽은 말투로 변했다.

“그럼 소개팅 언제 시켜줄 거야?”

“소개팅?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너한테 소개팅시켜준다고 했어?”

“하아! 이래서 머리가 검은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라고 했구나. 엊그제 하는 말 내가 똑똒히 들었는데 어디서 오리발이야?”

“나 그런 적 없어.”

“후후후! 내가 이럴 줄 알고 녹음해놨지.”

원범수는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녹음파일 하나를 찾아 틀었다.

“…… 내가 누구야? 나 강무호야! 이제부터 너희들 걱정 다 붙들어 매. 내가 경국지색의 미인들만 골라서 하나씩 소개시켜줄게. 아니 그냥 잘될 때까지 이 형이 소개팅 전부 책임진다. 내가 누구야? 나 강무호야! 푸하하하!”

잔뜩 술에 취해 경국지색 미녀 드립을 난발하는 호기로운 강무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됐다.

“야! 그, 그만 틀어.”

“지금 나한테 큰소리치는 거야? 천하의 강무호가 이러면 곤란하지.”

“에이씨, 알았어. 내가 룸 한번 쏠게. 됐지?”

“올!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2차까지 확실하게 책임져라.”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꺼! 시끄러워 죽겠어.”

“크하하하! 이거 조만간 거하게 몸 풀게 생겼네.”

원범수는 플레이되고 있는 녹음파일을 천천히 끄며 참 얄밉게도 얘기했다.

“마루3호, 이 새끼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시간 거의 다 됐다.”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었다.

강무호가 짜증을 냈고 원범수가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부우우우웅!

그때, 어디선가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왔나보다.”

오공유가 그제야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입구 쪽을 바라봤다.

나중에 신궁이라는 별명을 얻는 A급 원거리딜러답게 그는 어둠속에서도 뭐가 다가오고 있는지 정확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응? 저건 스타밴인데……. 오늘 여기로 연예인이 오나?”

“연예인? 연예인 누구?”

오공유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의 옆에 원범수가 잽싸게 서더니 눈을 말똥거렸다.

오공유가 말한 대로, 달빛 아래 반짝반짝 빛을 내는 하얀색 스타밴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부우우우웅! 끼익!

스타밴이 벤치 옆에 멈춰 섰다.

그제야 다들 스타밴 꽁무니에 캠핑트레일러 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털컹!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로이가 운전석에서 나와 스타밴의 뒷문을 열어줬다.

역시 귀티가 주르르 흐르는 정장을 입은 서진이 스타밴에서 나와 그들의 앞에 섰다.

텅!

로이는 서진이 내리자 스타밴의 뒷문을 닫고 스타밴 뒤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캠핑 트레일러를 스타밴에서 분리시켜놓았다.

강무호가 조심스럽게 서진에게 말을 붙였다.

“혹시 이서진 씨?”

“네, 제가 이서진입니다.”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습이 바뀌셔서 바로 못 알아봤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강무호의 말에 서진은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그들은 빠르게 서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하듯 훑어봤다. 그리고 무척 조심스럽게 그를 대했다. 한눈에 봐도 서진은 있는 집 귀한 자식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이래서 대한민국에서는 겉치레가 중요하다.

좋은 차에 귀티 나는 정장을 입은 것만으로도 ‘이놈저놈’이 ‘이분저분’이 되니까 말이다.

“…….”

“…….”

그들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서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연어 프로젝트에 참여해 회귀한 능력자들을 한 명씩 쳐다봤다.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최강철!

확실히 예전에 봤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앳된 모습들이었다.

그의 시선이 최강철을 지나 그의 바로 옆에 서있는 민연서를 향했다.

서진의 눈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심장이 쿵쾅대며 온몸으로 빠르게 피가 돌았다.

이유 있는 분노가 솟구치고 말할 수 없는 배반감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숨 막힐 듯한 기세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갑작스런 몸의 이상신호가 감지되자 서진의 무의식은 바로 뇌정을 운용했다.

이제는 뜻이 일면 뇌정의 기운이 운행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뇌정이 정수리와 꼬리뼈사이를 빠르게 한번 왕복하자, 순간적으로 일어났던 거친 기세와 그의 몸의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과연 뇌정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옆에 서 있는데도, 아니 자신을 떠났는데도 이렇게 담담하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니 말이다.

서진은 지그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신성일이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죠. 차원의 지배자 신성일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다행입니다.”

“제가 회귀를 했는지 확인을 하시는 것이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잘 회귀했고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참 잘됐습니다.”

강무호는 혹시라도 서진이 회귀를 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얘기를 해보니 모두 자신의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서진이 자신들이 알던 예전의 서진이라는 것을 이제 확신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뒤에서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원범수가 끼어들었다.

“이서진 씨,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면 우리에게 주셔야 할 물건이 있다는 것도 잘 아시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준비해왔습니다.”

서진은 조급해 보이는 원범수를 쳐다보며 한손으로 캠핑트레일러를 가리켰다.

“저안에 우리 물건이 있단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시죠.”

“그렇게 하죠.”

원범수가 번개같이 달려와 캠핑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오오오! 있다. 마이 베이비…….”

원범수는 캠핑트레일러에서 주먹만 한 남색 정수가 달린 마법지팡이를 꺼내더니 마치 자신의 애인이라도 안 듯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그는 자신의 마법사전용 슈트와  아이템배낭을 꺼내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곤 아이템배낭에 자신의 물건들이 모두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른 분들도 확인해보시죠.”

“그럽시다.”

원범수가 자신의 무기와 장비를 꺼내는 것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캠핑트레일러로 다가왔다.

서진은 옆으로 몇 발짝 비켜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내 무기를 보고 이렇게 반가워할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네.”

“역시 손에 착착 붙는구나.”

“이제 레벨 좀 팍팍 올려보겠네.”

“어째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최강철은 우락부락해 보이는 탱커전용 슈트를 어깨에 걸치고 건틀렛 모양의 에너지옵서버를 옆구리에 끼었다. 직사각형 대형 타워실드와 전투도끼를 양손에 각각 들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강무호는 튼튼해 보이는 자신의 전신슈트와 거대한 그레이트소드를 꺼내더니 피식피식 웃음을 흘려댔다.

오공유는 날렵하게 생긴 전신슈트를 꺼내고 컴파운드 보우와 리커브 보우를 꺼내 확인했다. 화살통까지 잘 챙긴 그는 벤치로 달려가더니 활을 구부려 시위부터 걸었다.

민연서도 하얀색 힐러전용 슈트와 남색의 정수를 깎아 만든 마나오브를 들고 각종 포션이 담긴 포션백과 마나리차저를 챙겼다.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눈빛만은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듯 했다.

-마스터, 마이키를 초기화시켰습니다.

서진은 메딕의 말에 주머니에 들어있는 마이키를 꺼냈다.

============================ 작품 후기 ============================

* 캠프를 가는 관계로 내일 12시07분, 12시17분에 각각 예약걸어놓았습니다.

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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