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77화 (7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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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 트로이 목마

“진심이구나. 축하한다. 넌 드디어 우리와 같은 마스터의 그림자가 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

“감사합니다.”

원범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3개월간의 고생이 이 순간 모두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고마웠다. 자신의 말을 믿어준 교관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회를 준 마스터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새로운 삶의 목표도 생겼다.

마스터에게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마스터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다.

“훌륭하다. 넌 이제 영광스런 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서 마스터에게 영광을 바쳐라!”

“네, 교관님!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리가 믿는다.”

“마스터에게 충성을!”

“마스터에게 충성을!”

두 사람은 신뢰가 담긴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들만의 의식과도 같은 구호를 외쳤다.

“방으로 돌아가 임무에 투입될 준비를 해라.”

“네, 교관님.”

교관의 말에 원범수는 뭔가 큰일을 이룬 사람처럼 뿌듯한 표정을 한 채 밖으로 나갔다.

쿵!

원범수가 밖으로 나가자 철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 모습에 교관은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몸을 바로 했다.

스스스스슷!

순간, 교관이란 자를 제외한 모든 사물이 갑자기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교관을 향했다.

“원범수는 진심입니다.”

“그럼 제대로 세뇌가 된 건가?”

“세뇌라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한 말에 맹약을 건 셈이죠. 일종의 강한자기암시라고나 할까요?”

“어찌됐든 원범수가 한말은 진심이란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 수고했다.”

“아닙니다. 마스터에게 이렇게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정말다행입니다. 저를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교관은 서진에게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쓰고 있던 붉은 모자가 아래로 툭 떨어지며 붉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천천히 바뀌어갔다.

교관에서 붉은 원피스를 입은, 붉은 머리의 미녀로 변한 것이다.

서진은 마리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이렇게 내 일을 훌륭히 잘해주고 있는데…….”

“그런 말 마십시오.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 이거 도저히 말로는 못 당하겠군. 그럼 대신 내가 차를 대접하도록 하지.”

“차라면 저도 좋습니다.”

마리가 흔쾌히 승낙을 하자 서진은 손수 차를 타서 가지고 왔다.

“보성에서 가져온 녹차야. 마리가 녹차 좋아한다고 해서 타왔어.”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마리는 서진이 주는 찻잔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

시종일관 그녀는 서진을 무슨 생명의 은인처럼 대했고, 서진은 마리를 극진히 대접했다.

“이번에 가족들과 함께 국내로 이주했다는 얘길 들었어.”

“저희 가족 모두 서울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덕분에 가끔 이렇게 마스터와 차도 한잔 할 수 있고……. 좋네요!”

“마리와 같이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필요한 것 없어? 있으면 지체 없이 말해. 내가 사줄게.”

“아니에요. 그동안 충분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원주택도 하나 배정받았고 지금 나오는 월급도 사실 너무 많아요. 우리식구 먹고살기에는 이미 차고도 넘칩니다.”

마리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가족, 이주, 귀화, 입국, 등록, 장래 등 주제도 무척 다양했다.

그리고 마리의 능력에 대한 얘기도 결코 빼놓지 않았다.

“마리의 능력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 같아.”

“저는 그런 저의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마스터의 능력이 더욱 놀라워요.”

마리는 서진을 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스터는 자신의 환상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서진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그거 별거 아니야.”

“그렇다면 제 능력도 별거 아닌 거겠죠.”

그녀의 말에 서진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는 그런 서진의 얼굴이 무척 귀엽다고 느껴졌다.

밑바닥 인생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사람!

가족과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준 사람!

자신의 꿈을 듣자마자 학비를 전부 지원해준 사람!

그런 마스터가 원하는 일이라면 마리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격변이 일어나자마자 각성을 했다.

환상능력을 가지게 된 능력자 마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자신도 마스터를 위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마스터를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스터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마리는 서진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진은 그런 마리를 바라보며 마른기침을 했다.

“크흠,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뭔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물어보면 여자는 화를 낸다.

서진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제 능력 안에서, 하루를 한 달처럼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사흘이 지났으니 저들은 3개월이 흘렀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루만 더 주시면 3명 모두 확실하게 작업해놓겠습니다.”

마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 정도야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지. 그런데 정말 효과가 확실할까?”

“개인적으로 나름 테스트를 해봤어요. 아직까지 제 능력이 실패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환상능력만을 사용해서 작업하는 것보다 이렇게 현실과 적당히 섞어 쓰면 효과가 몇 배로 증폭됩니다. 지금 저들은 현실과 환상을 조금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서진은 고개를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 시간의 괴리를 느끼면 충격을 받아 깨어나지 않을까?”

“마스터가 소환한 특수한 공간, 이를테면 시간의 방에서 지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저들이 스스로 진심을 가지고 충성할 결심을 한다면 마스터가 무슨 말을 해도 결국 믿을 겁니다. 그래도 불안하시면 시간의 방에 대해서는 영원히 함구라라고 명령을 내리시면 봉인시킬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마리가 장담하는 말이니 아마 믿어도 좋을 것이다.

“마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다만 저들이 믿을 수 있는 자들인지 그게 의문이야.”

“마스터,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마스터 일거에요.”

“왜 나라고 생각하지?”

“제 환상능력이 통하지 않은 사람은 마스터가 유일하니까요.”

빈틈없어 보이는 마리도 가끔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한다.

이게 모두 메딕이 진행한 미래의 반복적인 암시와 교육의 효과다.

헤븐 가디언즈에서는 미래에 S급과 A급 능력자가 되는 자들을 영입한 후 모두 신입사원 교육을 시켰다. 그중에는 가끔 마리처럼 마스터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세뇌에 준하는 상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리! 그렇지 않아. 능력자들이 레벨업을 통해 강해지거나 마수를 잡다가 등급이 오르면 반드시 환상능력을 견딜 수 있는 자들이 나오게 될 거야.”

서지의 말에 마리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봤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큰일이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리도 레벨업해서 강해지면 되니까…….”

“저 같은 비전투능력자가 어떻게 마수를 잡아요?”

“내가 도와주며 되지. 마리의 레벨업은 내가 책임질게.”

“고맙습니다. 마스터.”

새하얀 그녀의 얼굴에 평화가 찾아왔다.

마리는 서진을 향해 다시 한 번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피처럼 붉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또다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간을 보니 서진이나 마리나 다시 일을 해야 할 시간이 됐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다.

마리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서진이 메딕을 불렀다.

“메딕, 마리가 헤븐 가디언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지.”

-네, 그렇습니다. 헤븐 가디언즈에서 비전투능력자들에게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잘했어. 우리에겐 꼭 싸움만 잘하는 능력자만 필요한 게 아냐. 마리 같은 비전투능력자들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해.”

-네, 그래서 지금 전 세계의 헤븐 가디언즈 지부에서 비전투능력자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까칠한 감촉이 손끝에 닿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참, 세계능력자협회와 각국의 능력자협회는 잘 만들어지고 있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격변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본격적인 갈등이 불거지기는 시기상조이긴 했다.

서진의 머릿속에 불현듯 잡아온 네 명의 남자들이 생각났다.

“연어팀의 네 놈에게서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됐어?”

-지난 사흘 동안 마리를 비롯해 전문가들을 대거 동원했습니다만 특별히 보고드릴 만한 내용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이 네 사람은 회귀를 해서 대한민국을 비롯한 지구를 구한다는 거창한 목표만 있었지 구체적인 방법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무래도 몸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몸통이 아니라면 깃털이란 말이야?”

-저는 연서님이 몸통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네 명 모두 공통적으로 연서님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서진이 놀란 표정으로 메딕을 쳐다보자 그의 앞에 홀로그램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그럼 대한민국을 구할 구체적인 방법을 연서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일단 홀로그램을 보시지요.

그는 반사적으로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홀로그램에는 자신의 방에 앉아있는 민연서의 모습이 보였다.

홀로그램이 순간 두 개로 나눠져 분화됐다.

왼쪽의 홀로그램은 그대로였지만 오른쪽 홀로그램은 빠르게 되감기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연서님의 방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메딕의 말을 한쪽 귀로 들으면서 서진은 홀로그램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민연서가 마이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봤다.

특별히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마이키를 향해 작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마이키! 절대명령코드를 입력할게.

-네, 말씀하십시오.

-YSREMURIA2016

-절대명령코드를 접수했습니다. 지금부터 민연서님은 저의 절대명령권자이십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레무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봉인을 해제하고 데이터를 추출해서 조합해줘!

-네, 연서님! 레무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봉인을 해제하고 데이터를 추출해서 조합합니다.

서진은 민연서가 하는 말을 듣자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레무리아 프로젝트라니?”

-마이키가 데이터를 추출해서 조합한 것을 확인한 결과 파일이 모두 암호화되어 있었습니다. 일부의 파일을 풀고 해독했는데 북한산에 있는 개연폭포의 좌표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개연폭포 던전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확한 것은 마이키를 회수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마이키를 회수하면 확실히 알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백업된 마이키는?”

-현재 패시브 모드 상태로 정보만 읽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으음, 그럼 연서가 가지고 있는 마이키를 당장 회수해서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참, 절대명령코드는 또 뭐야?”

-마스터권한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최고명령권자가 만들어놓은 백도어(back door)일 수도 있고요.

“그럼 절대명령코드도 삭제하거나 바꿔!”

-그렇게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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