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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 트로이 목마
막상 회수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나자 서진은 마이키의 본체인 블랙볼이 조금은 걱정이 됐다.
“마이키를 회수하는 대는 문제없겠지.”
-제가 만약을 대비해 마이키의 코어 안에 원격조정이 가능한 나노로봇과 메디봇을 주입시켜놓았습니다. 연서님이 잠드시면 곧바로 마이키를 셧다운(shut down)시키고 회수하겠습니다.
메딕의 말에 서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메딕의 철저한 준비성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세심한 메딕의 주가가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 급상승하고 있었다.
서진은 엄지로 자신의 한쪽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혼잣말을 하듯 속삭였다.
“어쩌면 차원의 지배자 신성일은 연서를 위해 회귀를 준비했는지도 모르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연어팀은 그냥 껍데기고 연서가 모든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야.”
-그럼 연서님을 제외한 마스터와 네 명의 A급 능력자가 회귀의 들러리란 말씀이십니까?
“들러리라……. 단어가 적절치 못하네. 떨거지는 아닐까 모르겠다. 하하하!”
서진은 살짝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마스터,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판명나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글쎄, 일단 연어팀의 떨거지들을 모아 연서의 손에 쥐어줘야 하지 않을까?”
-레무리아 프로젝트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잡은 물고기들을 놓아주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메딕은 어떻게 생각해?”
-연어팀에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만 있다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트로이목마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딕의 말에 서진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트로이목마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트로이 목마라? 그거 괜찮은 이름이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이 네놈을 어떻게 잘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로군.”
서진이 문제의 핵심을 집어내자 메딕은 바로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습니다. 마리가 이들의 소프트웨어를 통제한다면 저는 이들의 하드웨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
-사실 방법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그래? 그럼 어디한번 들어보자.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지…….”
서진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메딕을 쳐다봤다.
메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지난번에 오 박사가 마스터에게 리모트봇을 주입하려다가 미수로 그쳤던 사건 기억나십니까?
“아! 마수에게나 쓰려고 했던 리모트봇이 있었군.”
서진은 메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즉시 간파했다.
“그간 마수를 통제할 수 있도록 연구 좀 해봤어?”
-아직 마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람을 통제하는 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으음.”
리모트봇은 양날의 검이다.
잘 사용한다면 다행이지만 잘못 쓰게 되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
그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서진은 그래서 조금은 망설여졌다.
원래 이런 무기는 한번 쓰고 맛을 들이면 결코 멈추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연어팀 사인방에게 메디봇을 이식하고, 나노로봇을 부착한 후, 나노폭탄을 몸에 심어 놓는다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 배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위에 오 박사가 개발한 리모트봇을 주사하고 세뇌보다도 더 강력한 맹약의 효과를 내는 마리의 능력이 더해지면 그들을 통제하기가 훨씬 용의해질 겁니다.
메딕의 명쾌한 설명에 서진은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좋아. 거기에다 하나만 더 추가하자. 내가 마루3호로 있을 때 썼던 신체강화제와 증폭제를 투여해.”
-마스터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일 때 투여 받았던 신체강화제와 증폭제를 네 명에게 투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그걸 인간에게 투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알고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이지.”
-오 박사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을 위한 신체강화제와 증폭제는 강력한 마약성분으로 인해 인간에게 한번 투여하면 절대로 끊을 수 없고 또 끊어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냥 그대로 계속 평생을 투여 받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알고 있어. 설마 내가 그걸 모를까봐 그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려는 거야?”
계속된 메딕의 확인에 서진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고 톤이 올라갔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그 약의 부작용에 대해 확인 하려는 것입니다.
“부작용? 무슨 부작용?”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을 위한 신체강화제와 증폭제를 네 사람이 계속 투여 받는다면 빠르게 신체가 강화되고 능력이 증폭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한 부작용도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부작용 말입니다.
“알고 있다니까.”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가 안드로이드 전투로봇 1호, 2호, 3호, 4호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잘 알고 있어. 저들이 그토록 멸시하고 천대했던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으로 변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돼봤으니까 모를 수가 없잖아.”
서진의 강경한 말투에 메딕이 두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마스터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봐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봤습니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메딕이 정중하게 사과를 하자 서진은 곧바로 화가 풀렸다.
“메딕이 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굳이 사과할 필요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확인이 필요하면 물어보도록 해.”
-네, 마스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메딕은 트로이목마 작전을 입안하도록 해!”
-네, 마스터. 당장 트로이목마 작전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겠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그녀가 가진 비밀의 열쇠가 무엇이던 간에 일단 우리 손에 넣고 보자. 계산은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하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서진은 메딕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허공에 떠 있는 두 개의 홀로그램 중 오른쪽의 것을 쳐다봤다.
손가락을 가져다대면 당장이라도 얼어버릴 것 같은, 냉정한 민연서의 얼굴은 그도 처음 보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연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을 까보니 양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왼쪽의 홀로그램을 향해 움직였다.
귀에 헤드폰을 꽂고 편안히 누워 음악을 듣고 있는 연서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천사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오른쪽 홀로그램에서 보이는 또 다른 얼굴과 대비되자 강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냉정한 시선으로 두 개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연서야!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이니?”
서진은 침중한 목소리로 감정을 절제하며 쥐어짜듯 질문을 던져보았다.
소리는 사무실 벽을 부딪쳐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원하는 대답은 결코 돌아올 줄을 몰랐다.
* * *
커피전문점 아자리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창가에 앉아있는 한 커플의 모습을 조용히 훔쳐보고 있었다.
남자는 어떤 여자도 호감을 가질 만큼 깨끗하고 잘 생긴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한눈에 봐도 명품이 분명한 정장을 입고 있어 품위와 격이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 여성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떠날 줄을 몰랐다.
여자는 연한 금발에 갈색의 눈을 가진 미모의 이국인이었다.
얼굴은 혹시 엘프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압도적인 가슴과 탄력이 넘치는 힙의 선은 정말 곡선의 극의를 보여주는 예술 그 자체였다.
그녀는 시종일관 눈에 하트를 뿅뿅 날리며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연신 애간장이 녹아내릴 것 같은 귀여운 애교를 난사해서 주변 남자들의 심금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호호호! 잘하시네요.”
세상이 다 환해지게 웃고 있는 제니를 보며 서진은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걸 내가 왜 따라해야하는 거지?”
“재미있잖아요.”
“뭐가 재미있어? 하나도 재미없네.”
“진짜 재미없어요?”
순간 세상이 다 무너져내려가는 슬픈 표정이 된 제니가 물었다.
서진은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도저히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홍길동이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심정과 매한가지였다.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고…….”
약간은 어벙벙한 표정이 된 서진의 말에 제니는 마치 선심을 쓴다는 표정을 지으며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제니는 요정인데 먼 여행을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뭐 대충 그 정도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분명히 그녀는 한국어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그 설명한 한국어가 전혀 이해가되지 않았다.
“자꾸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요. 오빠는 ‘쇼믿어보니’도 안보나 봐요. 그거 봤으면 내 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네가 그 힙합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아?”
“요새 한류가 대세인 것 모르세요. 중남미에서 한류모르면 간첩이라고 오해받아요.”
“그래?”
서진은 그녀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근본원인이 혹시 한류를 좋아해서가 아닐까 생각됐다.
“알았으면 다시 한 번 해봐요.”
“또?”
“안할 거예요?”
제니는 서진이 싫다고 할까봐 벌써부터 반쯤 울 것 같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는 서진은 자꾸만 확 덮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곤혹스럽기만 했다.
“할 게! 하면 될 것 아냐. 그러니까 제발 그런 야리꾸리 한 표정으로 날 좀 쳐다보지 마!”
“호호호! 알았어요. 자 그럼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쳐보는 거예요.”
서진의 말에 제니는 에너자이저 모드로 돌아가 금방 새로운 힘을 되찾았다.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이번에는 귀엽게 한손을 들어 올렸다가 몸을 흔드는 율동까지 섞어 넣으라는 압박에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그리고 랩인지 구호인지 모를 말을 몇 번 따라하다 보니 자꾸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에 씌운 게 분명해. 지금 이걸 내가 왜 따라하고 있는 거지? 이거 혹시 얘가 나 세뇌하고 있는 거 아냐? 최면이나 암시를 거는 주문으로…….’
서진은 제니가 만들었다는 자신만의 구호를 몇 번 따라하다 얼른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아메리카노가 참 맛있는 커피전문점 아자리아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오빠! 어디가요?”
밖으로 나오자 제니가 서진의 팔에 덥석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뭉클한 감촉의 진동이 깊고 오래가는 것이 확실히 라틴계의 풍요로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서진이 비딱하게 목을 뒤로 빼며 물었다.
“너 그런데 왜 자꾸 날 오빠라고 부르냐?”
“혹시 저보다 나이가 어리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저보다 나이 많죠?”
“물론이지.”
“그럼 오빠 맞네요.”
가만히 보니까 강남사거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레퍼토리였다.
“너 아무한테나 그렇게 오빠라고 부르냐?”
“내가 머리에 총 맞은 줄 아세요? 아무나 오빠라고 부르게?”
서진은 절로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과격한 단어를 꼭 집어 사용하는 것이 아무리 봐도 라틴계 미녀의 탈을 쓴 토종 한국여자가 분명한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럼 나한테는 왜 오빠라고 불러?”
“오빠가 아무나 에요?”
“그럼?”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제니의 당연한 말에 서진은 바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그렇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오빠이기도 하고요.”
서진은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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