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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 트로이 목마
“우와, 여기 경치 참 좋네요.”
“조용히 대화하기 좋은 곳이지.”
“난 거칠게 대화를 하는 것도 좋은데…….”
“그럼 거칠게 대화를 한번 나눠보자고.”
“정말요?”
“후후후!”
서진은 깜짝 놀라는 척하는 제니의 귀여운 볼을 슬쩍 잡아당기곤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정식 식당주인이 와서 손수 그들을 별채로 안내해줬다.
로이가 먼저 별채의 문을 열고 안을 한번 살펴보더니 곧 옆으로 비켜섰다.
서진과 제니가 안으로 들어가자 로이는 조용히 문을 닫고는 문 앞에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어서와!”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하하하! 반갑다.”
서진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보자 봄의 새싹이 피어나듯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서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 경쟁적으로 그의 몸을 끌어안더니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제니는 서진과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안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두 명의 사내들이 보이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이 하는 양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야?”
“얼마만이긴? 그동안 우리 가끔 만났었잖아?”
“그런가? 난 한 십년은 안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네놈은 여전히 싱거운 소리를 잘하는 구나.”
“그런데……. 같이 온 저 외국여자 분은 누구시냐?”
우동면의 말에 강백호의 시선이 서진의 뒤를 향했다.
셋은 서로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하다가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슬그머니 서로의 손을 놓고는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인사해! 여긴 제니야.”
“안녕하세요? 강백호입니다.”
강백호가 제니를 향해 차분하게 인사를 했다. 우동면은 자기차례가 돌아오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억지로 영어울렁증을 극복하고 평소에 라스베이거스 가서 써먹으려고 갈고닦은 영어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How are you? I’m Dongmyun. Nice meet you! You are so beautiful! I like beautiful woman.”
“전 제니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우동면의 얼굴이 심각하게 찌그러졌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영어실력을 뽐냈는데 제니가 너무나도 능숙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버리자 마치 해머로 얼굴을 한방 때려 맞은 기분을 느꼈다.
“커억! 한국말 잘하잖아?”
“그런 억울한 표정 나를 바라보지마라. 난 제니가 한국말 못한다고 얘기한적 없어.”
“그, 그건 그렇지만…….”
우동면이 아직도 혼자만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진은 일단 우동면을 내버려두고 허공에 두 팔을 흔들며 말했다.
“일단 좀 앉자. 그리고 아직 한명 안 왔어.”
“누가 또 오는데? 이번에도 외국인이야?”
“응, 우크라이나 출신이야.”
“그럼 그 여자도 제니 씨처럼 예쁘냐?”
다들 자리에 앉자 어느새 신색을 회복한 우동면이 눈을 빛내며 질문을 해왔다.
여전히 미녀에 관심이 많은 우동면을 보니 옛날생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제니처럼 예쁜 여자는 찾기 힘들지 않나? 어쨌든 이리 올 사람이 꽤 미인인 것만은 분명해.”
“올!”
“호오!”
그는 한마디 말로 일타삼피를 쳐버렸다.
제니의 입 꼬리가 눈에 띄게 위로 올라갔고 강백호와 우동면도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알기로 서진에겐 오직 민연서뿐이었다. 평소에도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장군의 말씀처럼 다른 여자보기를 돌처럼 봤던 서진이다.
그런데 자신들 앞에서 다른 여자를 칭찬하는 듯한 이런 소리를 버젓이 하는 것을 보자 둘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당장 제니가 있는 앞에서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물어보더라도 나중에 친구들끼리만 있을 때 조용히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물어봐야할 것이다.
똑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스르륵!
문이 열리자 타오르는 태양처럼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마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리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진을 보자마자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의 붉고 긴 생머리가 폭포수처럼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어서와! 마리는 이쪽으로 와서 앉아.”
“네, 감사합니다.”
마리는 서진의 왼쪽에 앉아있는 제니를 슬쩍 한번 쳐다보더니 그의 오른쪽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좌 제니, 우 마리!
서진의 양쪽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이국의 미녀들이 앉자 강백호와 우동면은 입을 떡 벌렸다.
일단 무조건 부러웠다.
두 미녀를 꼭 사귀지는 않더라도 한번 저렇게 미녀 사이에 앉아 밥을 먹고 싶었다.
시선을 도대체 누구에게 둬야할지 몰라 어리바리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미인들과 한자리에 있으니 눈이 시원해지는 것이 호강을 하는 기분이었다.
“식사는 한정식코스로 시키면 되지?”
“네가 살 거야?”
“응.”
“그렇다면 난 뭐든 좋아.”
“코스요리면 충분하지.”
강백호와 우동면이 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시선을 제니와 마리에게 돌렸다.
“저도 좋아요.”
“전 마스터가 먹는 것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오케이, 그럼 한정식코스 5인분으로 시킬게.”
서진은 테이블위에 있는 버튼을 눌러 식당직원을 불렀다. 그리고 한정식코스 5인분을 시켰다. 코스요리라서 그런지 주문을 하자마자 안으로 요리들이 차례로 쏟아지듯 밀려들어왔다.
커다란 테이블은 순식간에 온갖 요리와 반찬으로 가득 찼다.
테이블이 채워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네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서진을 향했다.
그 순간, 메딕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마스터, 마이키(블랙볼)를 회수해서 나노양자칩에 심겨진 절대명령코드를 삭제하고 소스코드를 이용해 마스터를 새로운 절대명령권한자로 등록시켰습니다. 백업해놓은 마이키도 본체(블랙볼)로 이동시켰습니다. 지금부터 트로이목마 작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서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대답했다.
“시작하자.”
-네, 마스터! 지금부터 트로이목마 작전을 시작합니다.
메딕의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네 명이 각자의 수저를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것 앞에 놓고 심각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좋지 않아.”
“그래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
“알았어. 자세한 얘기는 식사 끝나고 해줄게.”
“좋아.”
“일단 허리띠부터 풀고……. 아차차 그건 성희롱으로 오해를 할 수 있는 발언인가?”
“하하하, 바지만 안 벗으면 괜찮아.”
“그, 그렇겠지.”
우동면은 옛날부터 미녀에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
원래부터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서진과 강백호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를 모르는 여자들은 안 그래도 더러운 면상을 가지고 있는 우동면의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말투에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한정식코스요리는 훌륭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요리마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서진은 만족한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제니와 마리도 그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강백호와 우동면이 서둘러 밥그릇을 비우고 거의 동시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
다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서진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러자 서진은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일단 모두 와줘서 고마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결정을 내려줬으면 해.”
“알았어.”
“그래.”
“네, 오빠!”
“예, 마스터!”
이남이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희들과 같은 능력자야. 그리고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이기도 하지.”
“진짜?”
“정말?”
강백호와 우동면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서진이 설마 능력자가 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헤븐 가디언즈의 수장이라니…….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서진은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한 번씩 쳐다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공통점?”
“그래. 공통점!”
제니와 마리는 서진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강백호와 우동면은 그게 뭘까 열심히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헤븐 가디언즈에서 최고의 유망주들만을 모아놓은 제1공격대 소속이라는 거지.”
“아!”
“그래?”
역시 생각대로 제니와 마리는 서진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강백호와 우동면만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유망주 가운데서도 여기 있는 오직 네 명만이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인 내가 만들 파티에 속할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은 헤븐 가디언즈 내 최강의 파티가 된다는 말이야?”
“맞아.”
이번에는 네 명 모두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세계인의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는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둘 다 강력한 탱커이자 근접딜러고, 제니는 힐러이자 버퍼야. 마리는 보조능력자로 마수들에게 혼란을 걸 수 있고, 난 원거리딜러지. 우리 다섯 명이 한 파티가 되면 아마 어지간한 마수들은 순삭 할 수 있을 거야.”
“힐러면 힐러지. 힐러에다 버퍼라니?”
“마수에게 혼란을 건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강백호와 우동면은 제니와 마리의 능력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반대로 제니와 마리는 서진의 친구인 강백호와 우동면이 탱커와 근접딜러를 겸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사실에 크게 고무됐다.
“하지만 당장 파티를 맺고 마수를 사냥하러 다니기에는 서로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좀 곤란한 상황이야. 그래서 난 너희들을 전략적인 차원에서 버스를 태워주려고 해.”
“버스를 태워주다니?”
강백호가 서진의 말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서진은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고위능력자의 힘을 빌려 빠르게 레벨업을 하게 도와주는 행위를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헤븐 가디언즈에서 나를, 아니 우리를 빠르게 레벨업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이네.”
“딩동댕! 정답이야.”
“그렇게 해도 괜찮아? 나중에 문제가 없을까?”
이번에는 우동면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서진은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혀 문제없어. 어차피 힐러와 보조능력자도 길드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키워야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보다 강력한 마수가 나타났을 때 딜러들만 죽어나가게 될 거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다들 서진의 말을 듣고 나자 왜 길드차원에서 힐러나 보조능력자들을 전략적으로 키워야하는지 알게 됐다.
그때, 메딕이 서진에게 새로운 보고를 올렸다.
-마스터, 연어팀 사인방에게 각각 비밀지령을 하달하고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현재 연서님과 연락이 닿아 같이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앞으로 초단위로 감시하고 보고될 것입니다.
서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끼를 풀었으니 이제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때가되면 그들의 뒤를 덮쳐 비밀의 베일을 찢어발기게 될 것이다.
서진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한사람씩 눈을 맞추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제 내 파티에 들어올 건지 말건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결정을 해줬으면 좋겠어. 만약 거절을 한다고 해도 절대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거야. 이건 내가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로써 약속하는 거니까 믿어도 돼.”
“난 찬성!”
“나도 들어갈 거야.”
“오빠, 저 없이는 파티구성 안 되는 거 아시죠?”
“저도 마스터의 파티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름 단단히 마음을 먹고 말한 서진의 질문이 무색하게 다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티에 들어가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서진은 살짝 감동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내 파티에 들어와 줘서 정말 고맙다. 앞으로 우리 잘 해보자.”
“그래. 우리 한번 잘해보자.”
“파이팅!”
“오빠, 잘 부탁드려요.”
“마스터, 잘 부탁합니다.”
모두 서진에게 한마디씩 하고 나자 우동면이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파티장은 당연히 서진, 너지?”
“물론이지.”
“그럼 파티장 된 기념으로 한턱 쏴라. 설마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우동면이 파티보다 벌써부터 잿밥에 관심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서진은 그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천천히 지옥문부터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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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8130347): 끝부분에 메딕보고씬 삽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