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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 힘이 진리다.
원범수가 소리치며 주먹만 한 남색 정수가 달린 마법지팡이를 들어 오르그나이트를 가리켰다.
화르르르르!
주먹만 한 불덩어리가 허공에 소환되더니 오르그나이트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오르그나이트는 재빠르게 몸을 이동해 파이어볼을 피해버렸다.
엄한 땅바닥만 후려갈긴 파이어볼의 잔영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오르그나이트는 파이어볼을 피하자마자 최강철을 향해 달려들어 다시 한 번 워해머를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워해머가 소리가 살벌하게 들리며 무서운 바람이 일어났다. 최강철은 이번에도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오르그나이트의 워해머를 피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계속가면 도대체 언제 전투가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강철 씨! 힘내요! 내가 지원해줄게요.”
“오케이!”
그때, 뒤에서 민연서가 힘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미녀의 응원은 없던 힘도 생기게 만드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최강철은 그녀의 말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곧바로 오르그나이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더니 대형 타워실드로 힘껏 후려쳤다. 동시에 그의 온몸의 근육이 스킬이라도 썼는지 갑자기 거세게 팽창을 하며 부풀어 올랐다.
쿵!
워해머를 힘껏 휘두른 뒤라 살짝 중심이 엇나가 있었던 오르그나이트는 최강철의 실드차지에 밀려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기회다. 밀어붙여!”
오공유가 소리치자 최강철은 알고 있다는 듯 차가운 비웃음을 날리며 목을 향해 전투도끼를 짧게 후려쳤다. 크게 힘이 실린 공격은 아니었지만 오르그나이트는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는지 급히 몸을 틀더니 위해머의 자루를 들어 최강철의 전투도끼를 간신히 막았다.
캉!
최강철은 그 모습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오르그나이트의 공격을 봉쇄할 수 있는 선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철벽의 탱커라고 불렸던 최강철의 노련미가 발휘됐다. 대형 타워실드를 이용해 오르그나이트를 치고 밀면서 중심을 흩트려 놓고 전투도끼를 이용한 빠른 연속공격으로 워해머를 휘둘러 강한공격을 할 수 없게 틀어막았다.
그워어어어!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이 난 오르그나이트는 위협적인 포효를 질러 일단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최강철만 죽일 듯이 바라보며 싸우기 시작했다.
캉카카캉 캉캉캉!
“어그로 잡혔다.”
“이제야 좀 몸을 풀 수 있겠네.”
“본격적인 시작이다.”
최강철이 어렵게 오르그나이트의 어그로를 끌자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셋은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러면서도 각자 자신의 무기와 스킬로 오르그나이트에게 공격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았다.
휘익 서걱! 휘익 사각!
화르르륵 펑!
피잉 팍! 피잉 팍!
강무호의 거대한 그레이트소드가 오르그나이트의 팔다리의 근육을 그었다. 원범수의 파이어볼이 오르그나이트의 등판에 작렬했다. 오공유의 날카로운 화살이 오르그나이트의 전신에 하나씩 파고들었다.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동시에 맹공이 퍼부어대자 오르그나이트는 전신이 빠르게 보라색피로 덮여갔다. 그리고 피를 흘리는 만큼 빠르게 지쳐갔다. 하지만 오르그나이트는 조금도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다. 아직도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이 줄기줄기 뻗혀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방 속에서 꾸준히 우윳빛 광채가 최강철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민연서의 힐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 짓자!”
최강철이 돌연 크게 외쳤다.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는 최강철이 준 신호에 맞춰 극딜을 준비했다.
오르그나이트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안간힘을 내어 최강철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다들 그것이 오르그나이트의 마지막발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겨우 E급 능력자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미래에 A급 능력자가 되기까지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들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실드차지!”
“파워슬래시!”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트리플 파워샷!”
최강철의 실드차지를 시작으로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의 스킬이 차례로 오르그나이트의 몸을 향했다.
쾅!
휘이익 콰직!
펑 펑 펑!
퍽 퍽 퍽!
오르그나이트는 최강철의 실드차지에 충격을 입고 뒤로 밀렸다. 그러자 강무호의 파워슬래시가 가슴에 작렬해 깊은 상처를 남겼고, 원범수의 파이어볼에 연속으로 적중당해 팔다리가 꺾이고 가슴이 움푹 함몰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오공유의 트리플 파워샷에 심장과 양쪽 폐를 찔려버렸다. 오르그나이트는 피를 토하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죽은 오르그나이트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어나고 전신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다가 잠잠해졌다.
“쓰러졌다.”
오공유가 소리치자 최강철이 대형 타워실드를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두 눈을 부릅뜬 오르그나이트는 죽고 나서도 자신의 무기를 결코 놓치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그는 오르그나이트의 손목을 한쪽 발로 밟고 거대한 워해머를 반대쪽 발로 툭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투도끼 끝으로 오르그나이트의 한쪽 눈을 푹 찔렀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확실히 죽은 게 분명했다. 살아있다면 눈이 찔리는 고통에 의해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휴! 죽었다.”
“와아아아!”
“거 새끼, 더럽게 세네.”
“오르그나이트 한 마리를 잡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예전에는 어떻게 이놈을 쓸어버리고 다녔는지 몰라?”
“레벨이 깡패라고 무조건 A급에 올라야 되겠다. 이거 짜증나서 못살겠어.”
최강철이 안도의 한숨을 쉬자 다들 그제야 무기를 내려놓고 한마디씩 푸념을 해댔다. 대부분 과거의 힘에 대한 그리움과 당장의 약함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었다.
“차원의 지배자 신성일이 같이 있었다면 이렇게 마수사냥이 어렵진 않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의 차원을 왜곡하는 공격과 디버프는 정말 일품이었어.
“백날 없는 사람 얘기해봐야 답도 안 나온다.”
“오늘 사냥은 이쯤해서 그만 접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프라이드치킨 전문점에 가서 시원한 맥주나 마시도로 하자.”
“좋지. 나도 슬슬 지겨워지려던 참이었는데…….”
역시 마수사냥을 하고 난 뒤에는 치맥이 좋다. 갖가지 양념이 섞인 프라이드치킨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당장 풀릴 것만 같았다.
다들 침을 삼키고 입맛을 다시자 강무호가 오르그나이트 사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놈은 강철이가 들어야겠다. 덩치가 커서 나는 못 들겠어. 대신 워해머는 내가 들어줄게.”
“어휴! 마수를 잡고 나서도 일이 끊이지가 않네. 예전처럼 빨리 마수사체를 처리해주는 전문회사가 생겨야하는데…….”
“그거 벌써 생긴 것 아냐?”
“그래?”
최강철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강무호를 쳐다봤다.
“정릉던전 밖에 항상 마수사체를 싣고 갈 트럭이 대기하고 있잖아. 걔네들이 마수사체처리전문회사에서 나온 얘들이야.”
“아! 그 뭐지? 헤븐 리사이클링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헤븐 리사이클링!”
두 사람의 말에 민연서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헤븐 리사이클링이면 서진이네 아버지가 세운 회사 아닌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민연서는 미래에 마수사체처리업체가 얼마나 대호황을 누렸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능력자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마수사체처리업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는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해내자 자신이 왜 서진을 멀리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대해줘도 되는데 말이다.
‘가만 서진이 헤븐 투자의 대주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헤븐 투자면 헤븐 그룹의 핵심이자 지주회사인데……. 혹시 헤븐 가디언즈도 헤븐 그룹에 속해 있는 건가? 그렇다면 헤븐 시큐리티와 헤븐 디펜스도 헤븐 그룹의 자회사?’
민연서는 갑자기 자신이 뭔가 큰 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자신의 심장에 찌르르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그녀의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몸이 가르쳐주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헤븐 그룹에 대해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자! 출발!”
최강철이 호기로운 목소리가 주변을 울리자 연어팀은 일제히 정릉던전의 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지난 3주간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눈을 감아도 다닐 수 있는 익숙한 지형이었다.
민연서는 최강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용히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헤븐 그룹에 대한 생각으로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울창한 수림을 벗어나자 눈이 시원해지는 들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들판 한쪽에 시커먼 먹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차원게이트이 검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었다.
차원게이트 바로 옆에는 돌로 만든 튼튼하게 생긴 작은 요새의 모습이 보였다. 헤븐 가디언즈에서 만든 것으로, 출입구를 통해 수십 명의 능력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원범수와 오공유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 차원의 균열과 차원게이트 어디를 가도 헤븐 가디언즈 능력자들을 볼 수 있네.”
“저들이 장비하고 있는 무기와 슈트도 우리 것과 비슷한 것 같아.”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겉모양만 비슷하게 만든 거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저 요새 안에는 뭐가 있을까?”
“모르지. 헤븐 가디언즈 소속이 아니니 들어가서 볼 수도 없고.”
강무호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저들이 없었다면 대격변이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맥주 마시러갈 여유도 없이 마수들을 소탕하러 진땀을 빼며 돌아다녀야 했을 거야.”
“그건 그러네. 그러고 보니 우린 저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반대로 말하면 긴장감이 떨어지잖아.”
“그래서 넌 맥주 마시기 싫다는 거야?”
“아니야. 그런 뜻은……. 마수들은 던전 안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해. 밖으로 나가면 역시 평화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이 좋은 거지.”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차원게이트를 통해 정릉던전 밖으로 나갔다. 묘한 기운이 전신을 빠르게 훑는 느낌이 지나가자 그들은 어느새 정릉던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그들을 기쁘게 환영해주는 것은 역시 눈에 확 뜨이는 유니폼을 입은 헐벗은 미녀들이었다. 마수사체처리전문회사 ‘헤븐 리사이클링’에서 나온 그녀들은 마수사냥을 마치고 나오는 능력자들에게 무료로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그들은 미녀들의 환대를 받자 다들 모두 헤벌쭉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민연서만 그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녀도 미녀들이 나눠준 음료수를 따서 마시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 유니폼으로 민소매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미녀 한명이 강무호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머 이것은 하급마수인 오르그나이트 아니에요?”
“오르그나이트 맞아요.”
강무호는 살짝 어깨에 힘을 주면서 대답했다.
“와아아! 오빠들 정말 강하시네요. 5인 파티로 오르그나이트를 잡으시다니요. 이건 돈 좀 되겠는데요?”
“힘을 너무 써서 잡느라 사체훼손이 심해서 그리 가격이 많이 안 나갈 텐데…….”
강무호는 벌써부터 미인계에 홀려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실토하고 말았다. 미녀직원이 다른 상대를 놔두고 강무호를 선택한 것도 아마 가장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마수사체처리전문회사 헤븐 리사이클링은 결코 능력자들에게 사기를 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독점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나날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최고경영자의 철칙은 제일 아래 말단 사원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잘 지켜지고 있었다.
“어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이놈 연구하겠다고 잡아만 달라고 부탁하는 연구소가 지금 한 두 개가 아니에요. 말씀하신 데로 조금 가격이 깎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최하급 마수와 비교하면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가격을 쳐드릴 수 있어요.”
“그래요?”
“어떻게 지금 바로 알아봐드릴까요?”
“네, 부탁합니다.”
“그럼 모두 이쪽으로 오셔서 잠시 쉬고 계세요. 마수사체는 저희 직원들이 가져가서 바로 정산해드릴게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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