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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 힘이 진리다.
연어팀 일행은 헤븐 리사이클링 여직원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들은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 정릉던전 입구 한쪽에 쭉 세워놓은 파라솔 아래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자신들처럼 마수사냥을 마치고 나온 능력자들이 모여 뜨거운 태양아래서 시원한 공짜음료수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파라솔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 곧바로 여직원하나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헤븐 리사이클링 회사는 능력자들을 상대하는 여직원을 뽑을 때 미모를 기준으로 하는지 하나같이 귀엽고 예쁘고 늘씬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민연서의 말에 최강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과장되고 바보 같은 모습에 민연서는 그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회귀 전에 비해 무지막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만큼 덩치가 커진 사내지만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그가 가끔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속정이라도 생긴 건가?
그녀는 정릉던전 입구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는 손을 씻고 밖으로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게 개어 마치 하얀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새파란 물이 들어있었다. 한여름,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가자 이제 조금은 숨통이 트일 만큼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있었다.
민연서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 민정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연서니?
“네, 아빠!”
-지금 어디니? 혹시 다치진 않았지?
민정식은 혹시라도 금쪽같은 딸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부터 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지자 민연서는 살짝 목이 매여 왔다.
“네,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지금 정릉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를 드리는 거예요.”
-어휴! 네 고집은 정말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냐? 어지간하면 위험한 일은 좀 안했으면 좋겠구먼.
“아빠, 저 힐러에요. 다른 능력자처럼 마수와 직접 싸우는 일은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전혀 안 위험해요.”
-그래 알았다. 그 얘긴 나중에 집에 와서 다시 하도록 하자. 집엔 언제 들어올 거니?
“곧 들어갈 거예요.”
-그럼 집에서 보도록 하자.
바쁜 일이 있는지 빨리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민정식의 행동에 민연서는 급히 다시 그를 불렀다.
“아빠, 잠깐만요.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그래? 그럼 어서 물어봐라.
“지난번에 서진이가 헤븐 투자의 대주주라는 소리 했었잖아요.”
-그렇지.
“헤븐 투자의 대주주라면 그 회사의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글쎄다. 정확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얘길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10% 이상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데? 그리고 이런 질문은 서진이한테 직접 물어보지, 왜 나한테 물어봐? 네가 물어보면 서진이가 전부 얘기해줄 텐데…….
민정식의 말을 듣고 보니 서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그를 떠나보내기로 마음을 정한 이상 이런 민감한 문제를 전화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그냥 뭣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물어봤어요.”
-으음, 그래? 어쨌든 정확히 알고 싶은 게 뭐냐?
“헤븐 투자는 어떤 회사에요?”
-헤븐 그룹의 지주회사지.
“그럼 그 회사의 대주주면 힘이 엄청나겠네요?”
-당연하지. 헤븐 그룹의 자회사치고 대기업이 아니거나 다국적기업이 아닌 게 없어. 헤븐 그룹의 일개 자회사의 주식을 10%만 보유해도 어디 가서 무시는 당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헤븐 그룹의 지주회사인 헤븐 투자의 대주주라면 그건 헤븐 그룹의 오너 일가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야. 너도 재벌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테니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지?
“아! 그게 그 정도였어요?”
민정식은 조금 답답해졌다. 과년한 딸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것은 참 좋은데 이거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니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절로 걱정이 됐다.
-내가 뭐라고 얘기를 해봐야 실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밖에는 안 될 거다. 네가 무엇을 상상하던지 헤븐 그룹은 그 이상이 될 게 분명해.
“그럼 헤븐 가디언즈, 헤븐 시큐리티, 헤븐 디펜스는 어떤 회사에요?”
-그야 당연히 헤븐 그룹의 자회사지.
“정말요?”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니? 하긴 그딴 것 다 몰라도 된다. 그냥 지금처럼 서진이와 사이좋게 잘 지내기만 하면 돼. 그럼 그게 최선인 게야.
민연서는 아버지 민정식의 말을 듣고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아빠, 혹시 헤븐 리사이클링이라는 회사 아세요?”
-당연히 알지. 그거 네 시아버지 될 사람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 아니냐?
“그래요? 그럼 그것도 결국 서진이 거구나.”
민정식은 딸의 말에 기가 막혔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할 아이가 누구보다도 그런 중요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넌 도대체 서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냐? 그런 중요한 사실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나 돼? 너! 너무 서진이 믿고 있는 것 아니냐? 아직 매스컴에 노출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서진이는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야. 얼굴 잘생겼지. 키 크고 몸 다부지지. 매너 좋고 머리 똑똑하지. 너 잠깐 한눈팔면 그놈 채가겠다는 여자들이 수도 없이 나타날 거야. 헤븐 리사이클링 하나만해도 이미 거대한 다국적기업이나 마찬가지야. 그것도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는……. 내가 알고 있는 헤븐 그룹의 자회사만 해도 벌써 세 자리수가 된다. 괜히 엉뚱한 짓 하면서 밖으로만 돌아다니지 말고 서진이 옆자리 좀 잘 지키고 세심하게 챙겨줘. 내가 서진이라면 아마 너한테 많이 섭섭해 했을 거다.
“…….”
민정식의 말에 민연서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이 잘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을 걱정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지? 왜 나 좋다고 목을 매는 세계적인 재벌을 걷어차고 뇌에 근육만 가득 찬 바보들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미래의 확실한 A급 파티인 연어팀보다 서진을 택하는 게 좋을 뻔 했나?’
“크윽!”
민연서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날카롭고 강렬한 통증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 밀려왔기 때문이다.
서진을 생각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떠올릴 때마다 이처럼 심장을 칼로 푹푹 쑤시는 통증이 일어났다.
‘요새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자주 일어나네. 지금까지 서진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아가 아직도 나와 하나가 되지 않은 건가?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그리고 가끔 머릿속을 헤집는 이 고통은 또 뭐야?’
민연서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씻은 듯이 바로 사라졌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다른 이상이 없는지 살펴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행이 있는 파라솔을 향해 걸어갔다.
최강철이 그녀를 향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스켈레톤 나이트가 크게 한손을 휘젓자 스켈레톤 실더들이 즉시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카이트실드를 땅에 박듯이 세워 빠르게 벽을 쌓았다. 스켈레톤 실더 대열 뒤로 스켈레톤 솔저들이 날카롭게 빛나는 검을 꼬나 쥔 채 도열해있었다. 그들은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게 준비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그들의 뒤로 스켈레톤 아처들이 대열을 이룬 채 신나게 서진과 로이를 향해 화살을 날려댔다.
피핑 피피핑 피피피핑…….
쏴아아아아!
“로이!”
“네, 마스터.”
서진은 급히 로이를 불렀다. 로이는 대답을 하는 것과 동시에 방패를 세워 살짝 기울였다. 서진은 그런 로이의 뒤로 가서 몸을 숙였다.
스켈레톤 아처들이 날리는 화살 따위는 자신이 입고 있는 전신슈트를 결코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화살을 맞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다. 그리고 간혹 화살에 특이한 기운을 불어넣는 돌연변이 같은 놈도 있기 때문에 재수 없으면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었다. 역시 화살은 그냥 맞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캉 카카카캉 카카캉캉캉!
파파파팟 파파팟 팍팍팍팍…….
로이가 들고 있는 방패위로 수십 개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수백 개의 화살이 빽빽이 떨어져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자리를 채웠다.
-적이 100m 안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때 클론볼이 하늘에서 서진의 허드를 통해 스켈레톤 나이트가 이끄는 스켈레톤 군단이 이지스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줬다.
서진은 막간을 이용해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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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
등급: E-
칭호: 회귀자(올스탯+5), 한계를 넘어서(E, 올스탯+5)
고유능력: 뇌정(EX), 영혼의 아공간(EX), 이지스(E-)
레벨: 39 / 99%
생명력 400/400 마나 980/980
스탯(5+39): 근력 10(+10), 민첩 10(+10), 체력 10(+10), 지력 25(+10), 마력 25(+10)
스킬: 레이더(E-), 탐지(E-, 100m), 매직미사일(E-, 4개, 뇌정인챈트), 감정(E-), 감별(E-), 감지(E- 3.1m), 탄두강화(E-, 3배), 투시(E-), 마나부스터(E-, 40%)
장비: 강철검, 원형방패, 레드볼, 전신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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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등급이 F+에서 E-로 오른 것이 보였다.
등급이 한 단계 오르자 ‘한계를 넘어서’라는 새로운 칭호가 생겼다. 올스탯+5’효과가 있어 보너스 스탯을 25개, 그러니까 레벨을 무려 25개나 올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자신의 레벨은 39로 40대 고지를 겨우 1% 남겨둔 상태다.
마나는 마나부스터(E-)의 영향으로 40%가 증가된 980이나 됐다.
고유능력 이지스(E-)의 등급도 올랐다. 덕분에 모든 스킬도 같이 등급이 따라올라 보다 사정거리가 멀어지고 보다 강력해졌다.
탐지(E-)는 사정거리가 100m로 대폭 올랐고, 매직미사일(E-)도 마나소모가 줄어들고 한번에 4개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
감지(E-)의 거리도 3.1m로 증가했고, 탄두강화(E-) 3배 효과로 물리데미지와 마법데미지가 3배나 강력해졌다.
무엇보다 레이더(E-)라는 새로운 스킬이 생겼는데 탐지거리 안에서 실시간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효용성을 발휘했다.
서진은 만족한 미소를 짓더니 상태창을 닫고 레이더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레이더 스킬은 일단 활성화를 시켜놓으면 가볍게 온(on), 오프(off) 스위치를 켜고 끄듯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핑!
서진만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반경 100m에 3차원, 입체적으로 퍼져나갔다. 레이더가 켜진 것이다. 이제 서진은 굳이 보지 않아도 레이더의 탐지거리 안에 있는 모든 적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됐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지휘능력이 보통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전면만 틀어막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매직미사일!’
서진은 즉시 매직미사일의 뇌정인챈트 옵션을 활성화시키고, 매직미사일 네 발을 소환해 하늘 위로 높이 띄워 올렸다. 최대치로 솟구친 매직미사일은 곧 스켈레톤 나이트의 정수리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내리꽂혔다.
쐐애애액!
쿠궁쿵쿵!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린 매직미사일은 스켈레톤 나이트의 정수리를 찍어 누르며 둔중한 소리를 냈다. 스켈레톤 나이트는 연속으로 때려 맞은 매직미사일로 인해 투구와 해골이 동시에 박살나고 목이 부러져 타고 있던 팬텀호스에서 낙마했다.
스켈레톤 군단은 스켈레톤 나이트가 전투불능이 되자 당장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서진의 화려한 원맨쇼가 펼쳐졌다.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
매직미사일이 네발씩 그의 머리위에서 차례로 솟구치더니 후면으로 날아가 전면을 향해 거꾸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탄두강화 스킬 때문인지…… 서진의 매직미사일은 신기하게도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마수에게는 관통효과가 생겨났다.
그래서 매직미사일은 F+ 급의 마수 스켈레톤 솔저, 스켈레톤 아처, 스켈레톤 실더 등을 사정없이 관통해 뚫고 지나갔다.
겨울바람에 낙엽이 쓸리듯, 스켈레톤 군단은 서진의 매직미사일에 그렇게 마구 쓸려나갔다.
두개골이 뻥뻥 뚫리고 가슴뼈가 박살나고 척추가 툭툭 부러져나갔다.
그 충격에 스켈레톤의 핵도 견디지 못하고 사정없이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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