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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 연서의 히든카드
한편, 차원게이트로 들어간 서진파티는 차원게이트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연어팀이 어디로 갔는지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진은 그 틈에 얼른 숲속으로 들어가 블루볼에서 캡슐을 꺼내고 다시 그 안에서 로이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밖으로 나오면서 마이키에게 물었다.
“마이키, 연서가 어디로 갔지?”
-서쪽입니다.
마이키는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그의 허드에 연서가 밟았던 길을 따라 화살표를 띄워줬다. 서진은 서쪽을 향해 몇 발짝 걸어가다가 땅에 눌린 작은 발자국 하나를 발견했다. 순간 깜빡하고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지나 감별 스킬을 써보면 어떨까?’
마음이 일자 곧바로 감지와 감별 스킬을 차례로 써봤다.
감지(感知)는 문자적 의미로 느끼어 아는 것이다.
감별(鑑別)은 예술작품이나 골동품 따위의 가치와 진위를 보고 식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가 발자국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지와 감별 스킬을 차례로 쓰자 이미 활성화시켜놓은 레이더에 변화가 일어났다.
고유능력 이지스의 특성이 살아나 발자국을 목표로 삼아 탐지·추적이 시작된 것이다.
‘오호! 이것 봐라!’
결과는 한마디로 놀라웠다. 비록 탐지거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연서의 발자국이 어디서 어떻게 찍혔는지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서진의 머릿속에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어 그려졌다.
‘만약 미리 대상을 마크해놓는다면 이지스의 특성으로 인해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자동으로 락인(lock-in)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서진은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모두 이리로 모여.”
“찾았어?”
“응, 서쪽으로 간 것 같아.”
“오케이. 그럼 어서 빨리 가보자.”
“그래.”
우동면이 제일 먼저 달려와 서진의 옆에 섰다. 그러자 강백호가 달려와 흔적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서진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흔적을 찾았어?”
“응, 저기 봐봐.”
“으음, 여자의 발자국이네.”
“맞아. 이곳에 여자가 들어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니 아마도 연서가 아닐까 싶다.”
“정말 연서일까?”
강백호는 아직도 메딕을 통해 들은 작전브리핑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변해도 어찌 그렇게 딴판으로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착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연서가 그렇게 엄청난 비밀을 남모르게 가지고 있다니…….
메딕에 의해 살짝 각색이 되기는 했지만 다들 서진이 뭔가 큰 비밀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진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지를 눈빛으로 물었다.
“추적한다.”
“네.”
“오케이.”
“알았어.”
“가자.”
서진이 결정을 내리자 다들 두말없이 그의 뜻에 따랐다. 제일 먼저 로이가 앞장섰다. 로이의 뒤를 강백호와 우동면이 따라갔다. 그들의 뒤를 다시 제니와 마리가 쫓아갔다. 맨 뒷자리는 서진의 몫이 됐다.
그의 머리 위에는 스텔스 & 클로킹 모드로 모습과 존재감을 숨긴 마이키가 둥둥 떠서 움직이고 있었고 하늘 높이 마이키와 연동되는 클론볼들이 매의 눈처럼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서진 자신만 해도 레이더를 항상 켜둔 상태로 움직이고 있어서 마수의 기습을 예방하는 대는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서진파티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이미 마이키와 클론볼의 도움으로 허드를 통해 정확히 움직일 방향을 정해줬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열심히 숲속을 헤치고 가는 연어팀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저들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자.”
“응, 좋아. 이 이상 더 가까이 접근하면 들킬 가능성도 있으니까.”
강백호가 서진의 의견에 동의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여 자기의사를 표했다.
그때부터 지겨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연어팀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그들의 쉬면 같이 쉬었다.
밥을 먹으면 따라서 먹고 잠을 자면 그들도 잠을 잤다.
그렇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사흘이나 흘렀다.
신기하게도 그 사이 단 한 마리의 마수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연어팀의 이런 행운도 서서히 끝을 보고 있었다.
“이거 은근히 지치네.”
“원래 누구를 추적하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해.”
강백호가 작게 속삭이자 우동면이 전문가의 포스를 풍기며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몰라. 내가 우리 아버지 사기 친 새끼를 6개월 동안 쫓아서 잡은 거 몰라?”
“너 그거 뻥이지.”
“지랄! 내가 이 나이에 뻥칠 것이 없어서 그런 뻥을 치냐?”
우동면의 강력한 반발에 강백호는 일순 뭐라고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구워어어어!
숲속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마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마수다.”
“연어팀이 마수를 만났어.”
“연서가 위험하겠어.”
“이건 중대형마수잖아.”
“으음.”
서진과 그의 파티원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허드를 통해 연어팀 앞에 나타난 중대형마수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나이트롤!
대격변과 마수웨이브를 통 털어 단 몇 마리만 살짝 모습을 드러낸바 있는 C급의 중대형마수였다.
같은 C급 마수라도 소형이냐 중형이냐 대형이냐에 따라 전투력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나이트롤 같은 중대형마수는 절대 연어팀이 만나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아직 그들의 힘으로 상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말이다.
-마스터, 어떻게 할까요?
“일단 좀 더 두고 보자.”
마이키의 말에 서진은 연어팀이 어떻게 하는지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강철아! 막을 수 있겠어?”
“장난 하냐? 이놈 나이트롤이야? 내가 A급이라고 해도 막을까말까 하는 놈이라고.”
“큰일 났네.”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지금의 대형을 유지해.”
탱커인 최강철이 난색을 표하자 연어팀의 다른 능력자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이대로 나이트롤에게 죽어줄 마음은 없었던지 그들은 그래도 하는데 까지 해보자는 마음에 전의까지 잃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트롤이 배가 부른 상태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장 연어팀을 죽이지 않고 가지고 놀려는 눈치가 보였다. 그것이 연어팀의 명줄을 조금은 더 길게 늘려주고 있었다.
그르르르릉!
어둡고 탁한 진녹색의 피부에 붉은 혈광을 줄기줄기 뿌려대고 있는 나이트롤의 눈빛은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잘 발달된 근육이 온몸을 갑옷처럼 뒤덮고 있는 나이트롤은 연어팀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에 최강철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첫 방은 막아볼 테니까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여서 저놈의 왼쪽 다리를 작살내라.”
“알았어.”
“강철아! 잘 부탁한다.”
최강철은 그들의 위로나 격려 따위는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연서를 구하기 위해 단 한 번의 격돌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신체강화제와 증폭제의 봉인을 풀자. 나중에 후유증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최강철은 대형 타워실드로 자신의 몸을 가린 후 품속에서 신체강화제와 증폭제가 담긴 볼펜 형 주사기를 꺼내더니 자신의 팔을 빠르게 찌르기 시작했다.
퓨욱 퓨욱 퓨욱 퓨욱 퓨욱!
모두 다섯 번!
뒤쪽에 있는 연서는 보지 못했지만 양쪽 뒤 대각선 방향에 있던 강무호와 오공유는 최강철의 행동을 똑똑히 봤다.
‘저 새끼 저거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다섯 방이나 맞으면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지?’
‘강철이가 진짜 목숨을 걸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인데…….’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나이트롤의 왼쪽 다리 한 짝은 걸레짝으로 만들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크링!
나이트롤은 연어팀이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자 그게 재미있었는지 장난삼아 슬쩍 최강철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물론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서 피 떡이 되는 법이다.
나이트롤이 아무리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이 자리에서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이트롤의 한쪽 팔이 위협적으로 공격해오자 그 순간 최강철은 온몸을 돌고 있는 신체강화제와 증폭제의 힘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온몸의 근육을 폭발시켰다.
캉!
최강철의 온몸이 무섭게 부풀어 오르면서 그의 타워실드가 나이트롤의 오른팔을 무섭게 후려갈기자 놀란 나이트롤은 얼른 팔을 도로 거두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 순간, 강무호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거대한 그레이트소드를 휘둘렀다. 거의 동시에 원범수의 손에서 새파란 불덩어리 하나가 날아갔다. 그 뒤를 오공유의 파워샷이 따라갔다.
휙! 화르르륵! 피잉!
강무호의 그레이트소드가 나이트롤의 무릎에 닿는 순간 노란빛이 일렁였다. 나이트롤이 생체실드를 펼친 것이다. 그 때문에 강무호의 그레이트소드는 나이트롤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피부 위만 살짝 긁고 스쳐지나갔다.
그 위에 떨어진 새파란 불덩어리가 나이트롤의 몸을 후려갈기면서 화악 불길을 일으켰다. 그에 맞춰 노란 생체실드가 더욱 진하고 강렬해졌다. 새파란 불길은 나이트롤의 온몸을 휘감고 타오르다 허공으로 점차 사그라졌다.
마지막으로 날아온 오공유의 회심의 파워샷도 결국 노란 생체실드의 벽에 막혀 바로 튕겨져 나갔다.
카가가가가각!
펑!
피잉 텅!
나이트롤은 연어팀의 연속공격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가 떨어져 내렸다.
쿵!
나이트롤의 몸에는 생채기하나 보이지 않았다.
과연 중대형마수인 나이트롤다웠다.
나이트롤의 눈빛이 당장 분노로 인해 붉게 타올랐다.
자신은 슬쩍 장난을 한번 친 것인데 상대는 목숨을 걸고 달려드니 놀라기도 하고 열도 좀 받은 것이다. 정말 이걸 묵과해서는 이 숲속에 자신의 체면이 서질 않았다.
쿠워어어어어어!
나이트롤은 진심으로 분노했다는 심정을 포효로 전달했다. 중대형마수의 포효를 정면에서 받은 연어팀은 순간 공포로 몸이 굳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제기랄, 상처하나 없네.”
“이놈은 생체실드를 제대로 쓸 줄 아는 놈이야.”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어.”
“어떻게 하지? 도망갈까?”
“절대 안 돼. 뒤를 보이는 순간 우리는 이놈에게 각개격파당해 전멸할 거야. 숲속에서 이놈보다 빨리 도망갈 자신 있는 놈은 그렇게 하시던가.”
“빌어먹을, 정면승부 밖에 없다는 말이잖아.”
강무호는 울화통을 터뜨리며 품속에서 신체강화제와 증폭제가 담긴 볼펜형태의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자기 몸에 다섯 방을 찔러 넣었다. 그도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던 것이다.
강력한 마약성분으로 인해 긴장이 확 풀린 강무호는 그 즉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팽배해졌다.
나이트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쥐뿔도 안 되는 녀석들이 감히 자신이 분노한 것을 뻔히 알고도 도망을 치려하지 않았다. 이런 놈들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고 발로 밟아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이 지역의 패자인 자신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트롤이 눈에 힘을 주며 슬슬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연서를 제외한 연어팀 네 명의 귓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승부를 해라!
연어팀의 네 명의 사내는 동시에 가슴이 울컥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순간, 이렇게 마스터가 직접 나타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런 오지까지 행차하신 마스터에게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뭔가 많이 오해한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상황자체를 본다면 그들의 생각이 아주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이런 벅차오르는 자신들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스터가 그걸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 일단 연서와 나이트롤의 눈에서 우리 존재를 감춰줘!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마리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지긋이 연서와 나이트롤을 노려봤다.
연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트롤은 갑자기 숲속에 숨어있는 서진파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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