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2 / 0225 ----------------------------------------------
제23장 - 연서의 히든카드
“혹시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건가?”
“아닙니다. 뭔가 위화감을 느낄지언정 저희를 발견하지는 못할 겁니다. 특히 자신이 제일 싫어한 것들이 이쪽에 모두 모여 있다고 암시를 걸어놓았기 때문에 변태 나이트롤이 아니고선 절대 이쪽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으음.”
마리의 능력은 역시 대단했다. 비록 그것이 직접적으로 중대형마수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진과 그의 파티의 존재감을 중대형마수 앞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수준급의 능력자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마리, 연서는 왜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
“그녀에게 마스터와 저희들에 대한 존재감을 의식적으로 지워버렸습니다. 마스터가 바로 앞에 있어도 그녀는 보지 못할 것이고 또한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었지만 마리의 설명만으로도 서진은 연서가 자신들을 보지 못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선을 이제 마리에서 제니로 옮겼다.
“제니, 연서를 제외한 연어팀 전원에게 버프를 걸어줘! 가능하겠지?”
“물론이죠. 저에게 그 정도야 껌 씹는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 그래?”
서진은 제니가 혹시 전에 껌 좀 씹고 다니던 녀석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게 아니라면 단어선택에 처음으로 실패한 케이스라던가…….
어쨌든 제니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녀는 연서를 제외한 연어팀의 네 명의 사내에게 즉시 자신이 자랑하는 각종 버프를 걸어주기 시작했다.
“힘이 불끈! 머리가 찰랑! 우사인 볼트! 담다디 담담! 샘물이 콸콸…….”
그녀가 마치 서진에게 시위를 하듯 각종 버프를 쏟아 붙자 서진은 연어팀 네 명의 사내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하하하, 이제 좀 해볼 만해졌군. 각오해라.”
“오랜만에 나이트롤 한 번 잡아보겠네.”
“이 마수새끼야. 너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
“끼요오오! 넌 지금 바로 끝이야.”
제니의 버프가 쏟아지자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는 마치 자신들이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감이 폭발했다. 그들은 이런 힘이 생긴 것이 전능하신 마스터께서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자신감은 곧 나이트롤과의 전투에서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쾅!
카카캉 카카캉!
펑 퍼펑!
핑 피피핑!
나이트롤은 갑자기 시작된 네 사내의 선공에 정신없이 공격을 당하자 크게 당황했다.
방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과 스피드가 빨라진 이들의 공격에 생체실드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과는 달리 생명의 위험을 감지한 나이트롤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즉각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나이트롤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찍어대기 시작했다.
퍽 퍼퍼퍼퍽 퍼퍼퍼퍼퍽!
자신의 막강한 생체실드가 빠르게 증발을 하듯 쭉쭉 빠져나갔다.
나이트롤은 아프고 놀라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이며 옆으로 피했다.
그 순간 정수리를 치던 어떤 강력한 힘이 자신의 두 손까지 짓이기고 있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렇게 머리만을 보호하려다보니 얼굴 아래가 연어팀 네 명의 사내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죽어랏!”
“이얏!”
“가랏!”
“이잇!”
미래에서 A급 능력자로 잔뼈가 굵은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는 지금 자신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 최고의 비기를 이 한수에 쏟아 부었다.
부우우웅!
쐐애액!
푸슝!
핑!
최강철의 전투도끼가 수평으로 휘둘러지자 도끼날에 주홍색의 빛이 서렸다. 강무호의 그레이트소드가 직선으로 찔러 들어가자 블레이드 끝에 주홍색 서기가 맺혔다. 원범수의 마법지팡이가 흔들리자 수박만한 주홍색의 플레임버스터가 날아갔다. 오공유가 이를 갈며 날린 화살촉이 주홍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쾅! 푸욱! 펑! 퍽!
각기 다른 네 번의 파열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나이트롤의 몸이 노란색 생체실드에서 초록색으로 빛났다.
“이제 보니 이놈 완전한 C급 나이트롤이 아니었어.”
“상처를 입었다. 우리 공격이 먹힌 거야.”
“피를 흘린다.”
“화살이 박혔다.”
최강철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들떴고 강무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나이트롤을 쳐다봤다. 원범수는 냉정하게 나이트롤의 부상정도를 파악하고 있었고 오공유는 자신의 화살이 박히기 시작하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이트롤은 자신의 몸이 도끼에 찍히고 소드에 찔리고 마법에 당해 피를 흘리며 화살이 박히자 놀라서 급히 뒷걸음질을 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를 향한 공격은 단지 그것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진이 은밀히 서포트를 해주고 있는, 매직미사일이 그의 정수리를 쉬지 않고 두들겨대고 있었다.
사실 몸에 난 상처도 나름 부상이 컸지만 머리통이 깨지면서 흘리는 피가 모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어휴! 제니, 나 버프 좀!”
“네, 마스터! 최대로 강력한 버프를 걸어드릴게요.”
아무리 매직미사일을 날려도 나이트롤이 쓰러질 생각을 않자 결국 열이 받은 서진은 제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차피 연서에게만 안 걸리면 된다는 생각에 그는 사실 조금 무리를 하고 있었다. 제니는 드디어 서진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자 신이 난 표정으로 버프를 걸었다.
“힘이 졸라 불끈! 머리가 완전 찰랑! 후세인 볼트! 위풍당당! 온천수 펑펑…….”
여전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름의 버프들이지만 그 위력만큼은 결코 유치하지 않았다. 온몸에서 폭포수처럼 힘이 솟구치는 강렬하고도 짜릿한 자극에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어째 중독되겠는데……. 잘못하면 싸버릴 뻔 했잖아!’
서진은 다행히 실례를 하지는 않았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즉시 매직미사일을 소환했다. 확실히 조금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해진 매직미사일이라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가라!’
서진이 매직미사일을 발사하자 하늘로 치솟아 오른 다섯 발의 매직미사일이 곧장 나이트롤을 향해 빗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쐐애애애액!
쾅 콰콰콰쾅!
순간적으로 음속의 속도를 넘어서는 강력한 매직미사일의 공격에 나이트롤은 기겁을 하고 피하려고 했지만 유도기능이 있는 매직미사일을 중대형마수가 피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꾸웨에에엑!
나이트롤은 참혹한 비명을 흘리며 쓰러지더니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미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꺾인 채 보라색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이트롤은 아직 죽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과연 재생의 아이콘이라는 나이트롤다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마무리는 저들이 알아서 지을 수 있겠군.’
서진은 더 이상 나이트롤을 향해 매직미사일을 날리지 않았다. 아무리 마리의 능력으로 연서를 속인다고 해도 이 이상 개입하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형세가 불리해진 것을 깨달은 나이트롤이 다리를 쩔뚝거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잡아라.”
“절대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
“동족을 몰고 오면 우린 전멸이야.”
“다리를 공격해요.”
연어팀 다섯 명은 한마음으로 나이트롤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들은 정말 사력을 다해 나이트롤을 공격하고 진로를 방해했다.
서진이 제니의 버프까지 받아 강력해진 매직미사일로 맹폭을 해서 나이트롤을 거의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그들은 한 시간도 넘게 전투를 지속해야만했다.
꾸워어호오오오!
쿵!
결국 나이트롤은 연어팀의 집중공격에 구슬픈 비명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무리 강력한 중대형몬스터라도 해도 목이 꺾이고 팔다리가 부러진 채 온몸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 곳곳에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겼다.”
“우리가 나이트롤을 잡았어.”
“우와, 정말 대단해요.”
최강철과 강무호가 나이트롤의 머리를 밟으며 환호하자 민연서가 달려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민연서는 매직미사일이 맹폭을 한 모습만 빼고, 어떻게 나이트롤이 죽었는지 그 생생한 장면을 눈으로 똑똑히 봤다.
‘역시 최강철을 선택한 게 옳았어. 레벨 20대인 최하급 능력자의 몸으로 C급의 중대형몬스터를 잡다니…….’
민연서는 나이트롤을 잡은 수훈갑이 최강철이라고 생각했다.
최강철이 나이트롤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면 연어팀은 바로 전멸했을 것이다.
그녀는 마리의 능력으로 인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됐다는 사실을 결코 눈치 채지 못했다.
민연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최강철을 비롯한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의 능력을 크게 칭찬을 하자 네 사내는 어디선가 보고 있을 마스터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자리를 뜨자. 곧 다른 마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거야.”
“그래. 바로 자리를 뜨도록 하자.”
“나이트롤의 사체는 어떻게 하고?”
“지금 그게 문제야? 잘못하면 더 무서운 중대형몬스터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
“맞아. 다음에도 지금처럼 운이 좋으리라고 기대하면 안 돼.”
최강철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서둘러 전장을 정리하고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나이트롤의 사체 앞에 서진과 로이 그리고 그의 파티원들이 나타났다.
서진은 나이트롤의 사체를 블루볼 안에 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연어팀의 뒤를 쫓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고 난 직후, 어디선가 각종 중대형마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수들은 이미 어떤 놈이 벌써 죽은 마수의 사체를 들고 튄 것을 깨닫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마수들은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하면서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다가 분이 좀 풀리자 서로 먼 닭을 보듯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한 시간 뒤, 나이트롤 가족이 나타나 실종된 큰 아들의 행방을 찾아 온 숲속을 들쑤셔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진의 블루볼 안에 들어있는 나이트롤의 사체를 그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덕분에 주변의 중소형마수들만 이들의 분풀이 상대가 되어 한차례 거센 피바람을 견뎌야만했다.
* * *
북한산던전은 한마디로 거대한 수해(樹海)로 이루어졌다. 둘레가 수 미터에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는 거목들이…… 정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를 봐도 초록색으로 흔들리는 물결은 이제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거기에다 이곳은 잠시만 방심하면 어느새 중대형마수의 한 끼 식사로 전락된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위험천만한 던전의 깊숙한 곳이다.
쏴아아아아!
일순 하늘을 뿌옇게 덮어버리는 소나기가 초록의 바다 위에 축복을 내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막을 뚫고 걸어가야 하는 모험자들에게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이었다.
“어? 지형이 바뀌었다.”
“정말이네!”
“여긴 어디지?”
빗속을 걷고 있던 서진파티는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모두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욕지기가 올라올 것 같던 초록의 숲이 끝나고 붉은 적토가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붉은 바위들이 지천에 널린 붉은 적토의 대지!
그 특이하고 독특한 풍경에 다들 감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멋진 곳이네.”
“미국의 네바다사막을 차를 타고 질주할 때 본 풍경과 느낌이 비슷하네요.”
“그 사막에 이런 풍경도 있었어?”
“아니요. 제 말은 느낌이 비슷하다고요.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는 많이 달라요.”
서진과 제니가 전면에 시선을 고정시켜놓은 채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옆으로 강백호와 우동면이 오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우! 어찌됐든 이제 저 지겨운 숲은 통과한 거네.”
“어휴! 나는 앞으로 절대 숲에 오지 않을 거야. 캠핑도 이제 바다로 가야지.”
“숲도 숲이지만 그동안 나타난 중대형마수들 때문에 몇 번이나 도망친 것을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린다.”
“응? 나중에 나 등급 오르면 꼭 다시 와야겠다.”
“갑자기 왜? 숲이 싫어질 것 같다며?”
“나를 가지고 놀았던 중대형마수들 내가 다 잡아 죽일 거야.”
“그, 그러시던지…….”
우동면의 말에 강백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시원한 하루 되세요.
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