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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 레무리아
“레무리아라니?”
“말 그대로 레무리아 행성이에요.”
“레무리아 행성?”
“그럼 우리 진짜 차원이동을 한 거야?”
연어팀의 사내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짓자 원범수가 끼어들었다.
“그럼 여긴 더 이상 던전 안이 아니라는 소리네?”
“그건 이제부터 슬슬 알아봐야지요.”
민연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강무호는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정면으로 다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더 이상 비밀을 감추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어. 당장 레무리아 프로젝트가 뭔지 얘기해줘.”
“좋아요. 레무리아에 도착했으니 전부 말해줄게요.”
그녀의 말에 다들 반색했다.
오직 최강철만 조금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들과 연서의 사이를 살짝 가로막았다.
“자자, 우리 모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저기 넓적한 바위 위로 올라가서 앉자. 그리고 느긋하게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고.”
“좋아.”
“그렇게 하지.”
그들은 민연서가 어떤 얘기를 할지 무척 궁금했지만 최강철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선히 그의 말에 동의했다.
연어팀 다섯 명은 동굴 입구와 조금 떨어진 절벽 끝 공터 위에 놓인 거대한 넓적한 바위위로 올라갔다.
민연서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자 그녀는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연어팀이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하기 직전, 신성일과 저는 국정원의 모 차장을 만나 극비정보 하나를 입수했어요.”
“…….”
“북한산 개연폭포 앞에 있는 차원게이트를 통해 북한산던전으로 들어가면 가장 심처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다는 말이었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우리는 직접 확인해볼 수는 없었어요. 다만 같이 나온 국정원 소속의 정탐 능력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사실을 하나 알게 됐죠.”
“그게 뭔데?”
강무호가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민연서에게 물었다.
“그것은 대격변이 우리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광활한 우주에는 지구의 인류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야? 차원의 균열에서 마수들이 나타나고 가끔 마족까지 나타났다는 뉴스도 있었잖아.”
“맞아요. 하지만 제 말은 그런 단편적인 얘기가 아니라 대격변을 일으킨 세력들과 그에 맞서는 세력들이 우주를 양분하고 서로 격렬하게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 말이에요.”
강무호는 갑자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이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설마 우주전쟁을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무슨 공상과학 영화라도 찍고 있는 줄 아나보지?”
“믿건 안 믿건 그 증거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잖아요.”
“어디? 혹시 여기?”
“네, 맞아요. 레무리아 행성이 바로 그 증거에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네.”
강무호가 미간을 확 찌푸리자 최강철이 그를 향해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강무호, 이제 그만 그 입 좀 닥치고 있을 수 없어? 너 때문에 연서가 제대로 얘기를 못하잖아.”
“그래. 질문은 나중에 하고 일단 연서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냥 넌 입 다물고 있어라.”
최강철에 이어 원범수, 오공유까지 나서서 한마디씩 하자 강무호는 그만 뻘쭘해져서 고개를 옆으로 슬그머니 돌렸다. 그 모습에 최강철이 얼굴을 풀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민연서를 쳐다봤다.
민연서는 최강철이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고맙다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목이 타는지 입에 침을 바르고 빠르게 얘기를 이어갔다.
“워낙 황당한 얘기인지라 신성일과 저 모두 반응이 여기 있는 누구와 상당히 비슷했어요.”
민연서가 살짝 강무호를 쳐다봤다. 강무호는 뜨끔한 마음에 괜히 하늘을 살피는 척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생긋 미소를 짓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국정원 소속의 정탐 능력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레무리아 행성에 대한 비밀을 말해줬는데 그 내용이 정말 엄청났어요. 하지만 그는 어떻게 그 비밀을 알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어요.”
“비밀?”
최강철이 자신도 모르게 비밀이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민연서는 최강철을 쳐다보며 드디어 레무리아 프로젝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 광활한 우주는 현재 호드(Horde)와 유니언(Union)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어요. 양 진형은 각각 신과 악마의 대리자를 자처하며 신마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바로 이 호드의 침공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호드와 유니언?”
“신마전쟁?”
원범수와 오공유가 혼잣말처럼 작게 속삭이자 민연서는 크게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
“호드는 여섯 개의 세력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전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차원의 균열을 만들어 타차원의 세계를 침공하고 있어요. 반대로 유니언은 이런 호드의 침공을 받아 전쟁을 벌였던 여섯 개의 세력이 연합한 것으로 호드의 야욕을 분쇄하는 것을 연합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있어요.”
“그럼 레무리아 프로젝트는 뭐야?”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죠. 호드와 싸우고 있는 유니언과 연합해 지구를 침공한 호드의 야욕을 물리치는 작전이에요.”
“그러니까 유니언을 끌어들여 마수들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받겠다는 말이군.”
“맞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레무리아 행성에서 호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유니언과 접촉해야 돼요.”
그때, 강무호가 또다시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어디를 봐도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여기가 주(主)전장이 아닌가보지.”
원범수가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강무호가 다시 그의 말에 꼬리를 이어 붙였다.
“아니면 어느 한쪽의 세력권 안 이라던가…….”
“어느 한쪽이라면? 유니언?”
“호드일수도 있겠지.”
“그거야 이 숲에서 뭐가 나오는지 알면 되잖아.”
그때였다.
치리릿 치리리릿 치치리릿!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의 앞에 몸통이 코뿔소만한 커다란 도마뱀들이 나타났다.
“마수가 나타났다.”
“저건 중대형마수 자이언트 리자드야.”
“동굴로 도망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렇게 동굴로 가는 길을 딱 틀어막고 있는데 무슨 재주로 들어가?”
원범수의 말에 오공유가 바로 희망의 싹을 잘라버렸다.
“이런 젠장, 그럼 여긴 호드 진형 한복판이라는 거잖아.”
“우리가 차원이동 한 이곳이 마수들의 영역인가 봐.”
다들 갑작스런 마수들의 등장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최강철이 안되겠다 싶은지 팀원들을 향해서 호통을 쳤다.
“모두 뒈지고 싶어? 다들 정신 안 차려!”
“저건 척 보기에도 중대형마수야. 우리가 무슨 재주로 중대형마수를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나 상대해?”
“아가리 닥치고 당장 전투대형으로!”
“빌어먹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탱커인 최강철의 말을 따라 일단 진형을 구축했다. 어차피 자이언트 리자드 다섯 마리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외에 다른 뾰족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전의를 잃는다면 바로 죽는 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야. 싸워보기 전에는 저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그러니까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전투에 집중해!”
최강철의 말을 듣자 다들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이 맞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다.
싸우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한때 A급 능력자였던 그들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행동일 것이다.
“나는 철벽의 탱커다.”
휘익 쾅!
자이언트 리자드가 긴 혓바닥을 날카롭게 뿌리자 최강철은 마치 중2병처럼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타워실드로 막았다.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최강철은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연어팀의 사기가 소폭으로 상승했다.
기분이 나빠졌는지 자이언트 리자드 다섯 마리가 차가운 눈을 빛내며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범수는 넓적한 바위를 향해 자이언트 리자드 다섯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파이어볼 두 개를 소환해서 전면으로 달려드는 자이언트 리자드 두 마리의 얼굴에다 던졌다.
화르르르 화르르륵!
펑 펑!
캬아악! 캬아아아아!
얼굴에 파이어볼을 정통으로 맞은 자이언트 리자드 두 마리가 놀라서 허공으로 펄쩍 뛰어 오르더니 자신의 얼굴을 두 발로 마구 비볐다.
그 모습에 회심을 짓고 있는 원범수를 노리고 자이언트 리자드 한 마리가 처음 생각했던 목표를 바꿔 난입했다.
최강철은 미끄러지듯 빠르게 움직여서 힘차게 땅을 밟고 바위위로 뛰어오른 자이언트 리자드의 얼굴 옆면을 대형 타워실드로 후려갈겼다.
카앙!
자이언트 리자드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가며 시원하고 통쾌한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언트 리자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급히 몸을 비틀어 꼬리를 매섭게 휘둘러 공격해온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최강철이나 원범수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강무호라는 것이었다.
휘익! 퍽!
“으아악!”
강무호는 자이언트 리자드의 날카로운 꼬리공격을 일단 그레이트소드로 잘 막았다. 하지만 워낙 힘과 체중이 실린 공격이라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서 날아가더니 거목에 정통으로 등이 부딪치며 나동그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옆에서 누가 도와주거나 어쩔 틈이 없었다.
강무호의 입에서 울컥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힐 힐!”
하지만 연어팀에는 민연서가 있었다. 그녀는 급히 강무호에게 연속으로 힐을 넣어주었다. 강무호의 안색이 붉게 달아오르며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무호가 당장 전투에 나서기에는 부상이 심했다.
강무호가 떨어져나가고 거기에다 원범수의 파이어볼에 정통으로 얼굴이 맞은 자이언트 리자드 두 놈이 멀쩡한 얼굴로 다시 공격을 해왔다.
대뜸 연어팀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정신없이 방어하기에 급급해졌다.
역시 중대형마수와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오공유가 주홍빛으로 살짝 빛나는 화살로 결정적인 순간에 자이언트 리자드들의 공격을 견제하지 않았다면 아마 연어팀은 이미 자이언트 리자드 무리의 뱃속으로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안되겠다. 튀자.”
“어디로 튀어? 뒤는 절벽이고 앞은 자이언트 리자드 무리가 가로막고 있는데…….”
“절벽 아래를 봐봐!”
“설마 저 아래로 뛰자고?”
“그래.”
원범수는 최강철의 말에 미친놈이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침을 넘기듯 도로 삼킬 수 있었다.
“잘 봐! 절벽 아래에 강물이 흐르고 있잖아.”
“그, 그래도…….”
원범수는 최강철의 생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부터 물을 무서워하는데다가 강물 안에 마수가 살지 않는다고 감히 누가 보장하겠는가?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달려오고 있는 강무호로 인해 그만 깨져버리고 말았다.
“닥치고 그냥 뛰어!”
휘익!
강무호는 최강철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자이언트 리자드 두 마리 사이를 귀신처럼 빠져나오더니 곧바로 절벽을 향해 온몸을 날렸다.
“이런 미친 새끼!”
결국 원범수는 최강철 대신 강무호를 향해 욕을 하고야 말았다.
“연서 씨! 뛰어요.”
“네.”
원범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연서가 최강철의 손을 잡고 절벽 위에서 뛰어 내렸다.
“살다 살다, 이젠 정말 별짓을 다해보네. 먼저 간다.”
강무호, 최강철, 민연서가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자 오공유도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절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오공유는 점프를 하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는 원범수를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야! 이 새끼들아! 나 수영 못한다고……. 플레임버스터!”
원범수는 이를 갈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이언트 리자드 다섯 마리를 향해 플레임버스터를 뿌렸다.
휘익 쾅!
후우웅!
그런데 워낙 빠르게 달려드는 자이언트 리자드로 인해 생각보다 훨씬 앞에서 플레임버스터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마법의 발현한 주체인 자신에게까지 그 후폭풍이 밀려들었다.
“어어어?”
그는 얼떨결에 뒤로 밀려나다가 결국 허공을 밟고는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확 넘어가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
원범수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공포와 강물 속에 처박히는 공포가 합쳐져 자신도 모르게 처절한 비명을 길게 내질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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