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96화 (96/225)

0096 / 0225 ----------------------------------------------

제24장 - 레무리아

“마이키, 어때? 우리 잘 가고 있는 거야?”

-뗏목 뒤쪽에 키를 만들어놓아 방향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주효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 언제쯤 연어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둘 다 거의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서 당장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들도 쉬어야할 테니 그때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주변에 마수는 없고?”

-현재 연어팀의 뗏목과 마스터의 뗏목 앞에는 위협이 될 만한 마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마수는 야행성이 많아서 강력한 중대형마수들 중 상당수가 야행성이다. 지금처럼 태양이 떠 있는 시간에는 잠을 자고 해가지면 배를 채우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놈들이 상당하다. 마수들은 먹이를 잡아먹고 물을 마시기 위해 강가로 나온다.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 뗏목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마스터 마수존 제로에서 900km 떨어진 곳에 있는 클론볼이 새로운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허드에 영상을 띄우겠습니다.

“이건 또 뭐야?”

서진은 허드에 뜬 영상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대한 평원!

수백만에 달하는 마수들이 평원 중앙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하얀 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본능적인 적의와 소름끼치는 살기가 합쳐져 거대한 하나의 악의를 이루고 있는 마수의 진형에 맞서 성벽에는 수십만의 무장한 병사들이 기치창검을 드높이며 목청이 터져라 악을 쓰고 있었다.

기세와 기세의 싸움에서지지 않으려는 것인지, 병사들의 두 눈에서도 마수들을 향한 강한 적개심과 전투의지가 점점 고취되고 있었다.

수백만의 마수가 성벽에 다다르자 곧이어 치열한 공성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대형마수들이 성벽을 향해 독과 불덩이를 토해내고 중대형마수들이 성벽을 타고 꾸역꾸역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거기에 맞서 하얀 성의 성벽 위에서는 온갖 찬란한 마법진이 펼쳐지며 성벽을 공격해오는 마수들을 향해 불꽃을 뿜어내고 얼음창을 날리고 벼락을 떨어뜨리고 칼날바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히 판타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엄청난 스케일의 공성전이었다.

-마스터, 마수들을 움직여 공격을 펴고 있는 자들이 호드, 흰색의 거대한 성에서 방어전을 펴는 자들이 유니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가 가야할 곳이 바로 저 하얀 성인가?”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클론볼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규합해봤을 때 여기가 유니언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네, 마스터.

“파티원들에게 아까 연어팀이 나눈 대화와 지금의 정보를 모두 공유해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이키는 서진의 말에 파티원들에게도 똑같이 정보를 공유해줬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허드에 떠오른 두 개의 영상을 보며 깜짝 놀랐다. 제니와 마리도 그 둘에 못지않게 놀라고 무섭다며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마스터, 전방에 이 강의 본류가 있습니다. 곧 이곳의 지류와 합쳐질 것입니다.

“그쪽의 상황은 어때?”

-아직까지 강물 속에 서식하는 중대형마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합니다.

“알았어.”

출렁 출렁!

강물의 지류가 본류와 합쳐지자 뗏목이 크게 흔들리고 유속이 급격히 감속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뗏목이 강물의 본류와 합쳐진 후 중앙으로 빠져나가자 다시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까지 연결이 되어있는 거지?”

-마수존 제로에서 북동쪽으로 700km까지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꺾입니다.

“마수존을 벗어날 때까지는 뗏목을 타고 갈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물의 방향이 꺾이는 지점에서 내려서 저 하얀 성까지 200km는 도보로 걸어가야 합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사이에 마수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으음.”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가슴이 좀 답답해졌다. 마수존을 빠져나온 다음 다시 마수들의 무리 사이를 뚫고 하얀 성까지 가야한다는 말이었다. 과연 유니언이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는 당장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금으로써는 답이 없다. 마수존을 벗어난 후에 천천히 고민해보자.’

당장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자 서진은 일단 마음을 비웠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마스터, 뒤쪽에서 돌고래만한 크기의 어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수야?”

-어류로 보입니다.

“그럼 일단 허드에 타깃을 지정해줘!”

-네, 마스터.

마이키에게 지시를 내린 서진은 먼저 레이더부터 확인했다. 레이더는 이미 활성화되어있는 상태로 반경 180m 안의 모든 존재가 느껴지고 있었다.

“전투준비!”

“전투준비!”

서진이 파티통신을 열어서 말하자 다들 그의 말에 복창을 하면서 허드를 통해 뒤에서 접근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어류에 집중했다.

“공격준비!”

“공격준비!”

서진이 점점 다가오는 어류를 향해 공격준비를 외쳤다.

파티원들은 각자 자신의 스킬을 떠올리며 큰 것 한방을 준비했다.

육지가 아닌 강물 위라서 첫 공격으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응?”

그때, 마리가 급히 한손을 들었다.

서진은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고개를 돌려 마리를 쳐다봤다.

“마스터, 어쩐지 적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호기심?”

서진은 마리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다가오는 어류를 향해 레이더를 집중시켰다. 그의 레이더 스킬은 반경 180m 안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정보를 읽어 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한쪽 방향을 지정해 45도 각도이하로 좁히면 탐지거리가 10배로 늘어난다.

그는 마리의 말대로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어류가 적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레이더를 통해 스캔해봤다.

‘으음, 정말 적의가 없네. 이런 느낌이 호기심일까? 하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공격을 해오면 낭패인데……. 그래도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서진은 레이더를 통해 어류를 스캔한 결과 마리가 말했던 호기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을 먹자마자 즉시 지시를 내렸다.

“경계태세로 전환한다.”

“경계태세!”

강백호와 우동면이 동시에 그의 말에 복창을 했다.

서진은 안면가리개를 위로 들어 올리고 뗏목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그의 옆으로 마리가 오더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잠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정체불명의 어류가 가까이 다가왔다.

꾸잉 꾸잉!

물속에서 분홍색 돌고래 같이 생긴 녀석이 올라와 소리를 질러댔다.

겉모습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귀여워보였다.

가만히 질러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무슨 강아지가 낑낑대는 것 같았다.

-마스터, 아무래도 돌고래 새끼로 보입니다.

“강물에서 돌고래가 자라?”

-여긴 지구가 아니라 레무리아입니다. 뭐든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서진의 의문 섞인 말을 마이키가 단칼에 싹을 잘라버렸다.

“으음, 그럼 돌고래라고 치고……. 이미 다 자란 돌고래 같은데?”

-스캔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생후 6개월도 안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다 자라면 얼마나 큰 놈이 된다는 거야?”

-범고래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마이키의 말을 듣고 분홍색 범고래 상상해봤다. 뭔가 굉장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서진이 마이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분홍색 돌고래는 마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핥으며 계속 낑낑댔다.

“나는 마리야? 너는?”

“꾸잉 꾸잉!”

“꾸잉이라고?”

“꾸잉 꾸잉!”

“그렇구나. 우리는 앞에 있는 친구들을 쫓아가고 있어.”

“꾸잉 꾸잉!”

“뭐 도와주겠다고? 정말? 고마워!”

서진은 마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분명히 분홍색 돌고래는 ‘꾸잉’이라는 소리밖에는 하지 않았는데 마리는 녀석의 말을 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 마침 마리가 고개를 돌려 서진을 쳐다봤다.

“마스터, 꾸잉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 그래?”

“뗏목을 끌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던지…….”

서진은 혹시 마리가 살짝 더위를 먹은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홍색 돌고래와 말이 통한다는 것을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가 뗏목에 묶여있는 넝쿨을 풀어 분홍색 돌고래, 꾸잉에게 묶어주자 더 이상 그녀의 말을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꾸잉 꾸잉!”

분홍색 돌고래 꾸잉은 마리를 향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뗏목 앞으로 쏜살같이 나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이 타고 있던 뗏목에 점점 속도가 나더니 나중에는 마치 모터라도 단 것처럼 빠르게 강물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서진은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마리, 혹시 테이밍 스킬 있어?”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저 분홍색 돌고래와 소통을 하는 거지?”

“글쎄요. 그냥 느껴졌어요.”

“뭐가?”

“꾸잉의 생각과 감정이요.”

“그래?”

마리가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레이더를 통해 분홍색 돌고래, 꾸잉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리가 꾸잉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꾸잉! 잘한다.”

“야호! 더 빨리 달려라 달려!”

제니와 마리는 뗏목 앞에 서서 꾸잉을 향해 환호성을 쳤다. 꾸잉은 그동안 서진이 알던 돌고래 같지 않게 팬 관리를 하는 차원에서 머리를 좌우로 한번 흔들어주더니 더욱 빨리 속도를 내 강물 위를 쏜살같이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지쳐버린 꾸잉은 뗏목 옆으로 와서 귀엽게 지느러미로 자신의 배를 툭툭 쳐댔다.

“확실히 지친 것 같아.”

“꾸잉이 배가 고픈가봐.”

“그럼 뭔가 먹을 것을 줘야하지 않을까?”

“마스터가 마수의 사체 챙기지 않았어?”

“맞아. 챙겼어. 좀 달라고 해볼까?”

제니와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서진을 향해 돌렸다.

“다 들리거든!”

“헤헤, 그래요?”

“히잉, 마스터, 마수의 고기 좀 주세요.”

서진은 마리가 자신을 향해 큰 눈을 깜빡이며 애교가 듬뿍 섞인 몸동작을 보이자 깜짝 놀랐다.

‘호오, 마리도 이렇게 애교를 부릴 줄 아는구나.’

그는 내심 마리의 새로운 모습에 기뻐하며 블루볼 안에서 나이트롤 사체를 꺼냈다.

“백호야! 이놈 팔다리 좀 잘라줘!”

“응.”

강백호는 서진의 말에 즉시 바스타드소드를 집어 들고는 나이트롤의 사체 앞으로 다가왔다.

휘익 휙휙휙!

썩 서걱 서걱 서걱!

살아있을 때는 생체실드로 인해 어지간히 블레이드가 먹히지 않았는데 죽은 사체라서 그런지 팔과 다리가 아주 쉽게 잘렸다.

마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이트롤의 한쪽 팔을 집어 들더니 꾸잉을 향해 집어던졌다.

“꾸잉, 이거 먹어.”

철퍼덩!

나이트롤의 한쪽 팔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쑥 올라오자 분홍색 돌고래 꾸잉은 냄새를 맡는지 몇 번 코로 툭툭 쳐봤다.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자 꾸잉은 안심한 기색으로 이내 입을 벌리고 한입에 나이트롤의 한쪽 팔을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

우직우직 까드득 까득!

살과 뼈를 동시에 씹어 먹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나이트롤의 한쪽 팔을 씹어 먹는 분홍색 돌고래 꾸잉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고 섬뜩했다. 만약 저 이빨로 자신을 문다면 단번에 팔다리가 잘려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니와 마리는 꾸잉의 먹는 모습까지 귀엽다며 난리를 피워댔다.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저건 절대 귀여운 모습이 아닌데…….

구시렁거려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서 서진은 깨끗하게 그녀들의 특이한 반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꾸잉에게 나이트롤의 사체를 먹인 효과는 탁월했다.

덕분에 힘을 회복한 꾸잉은 다시 뗏목과 연결된 넝쿨을 입으로 물고 뗏목을 빠르게 앞으로 끌어주었다.

촤아아아아아!

아까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뗏목은 힘차게 강물을 헤치고 나아갔다.

나이트롤의 팔다리를 준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속도였다.

-지금 상태로만 간다면 머지않아 연어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주 다행스런 일이야.”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니와 마리를 쳐다봤다.

둘은 꾸잉에게 완전히 필이 꽂혔는지 연신 칭찬을 해댔다. 그리고 꾸잉은 둘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또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그렇게 서진파티는 분홍색 돌고래로 인해 지루하지 않은 이계의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 * *

============================ 작품 후기 ============================

* 몸살이 걸렸습니다. 온몸이 너무 쑤시네요.

여러분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추천 한방씩 꽝꽝 찍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악플 사절][욕설 & 반말 사절][불순의도, 선동글 & 문제 댓글 자동삭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