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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베히모스는 마수들의 피 냄새가 가장 심하게 나는 넓적한 바위가 있는 곳 정확히 다가왔다. 사방에 헬독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자 배가 고팠는지 몇 놈을 집어 바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와드득 와드드득 쩝쩝 쩌억 쩝쩝!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헬독 서너 마리가 잘다져진 고깃덩어리로 변해서 베히모스의 목구멍 속으로 통째로 넘어갔다.
베히모스는 헬독을 계속 집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많은 헬독을 잡아 죽이고도 먹지 않고 내뺐을까?
분명히 그놈이 헬독보다는 더욱 큰 포만감을 줄 것이다.
베히모스는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며 자신의 감각을 사방으로 넓혀나갔다.
킁킁!
몇 번 코를 킁킁대자 어디선가 묘하고 이질적인 냄새가 났다. 절대 마수의 냄새는 아니었다. 살과 피의 냄새가 무척이나 달콤한 인간의 냄새가 분명했다.
크르릉 킁킁!
베히모스는 마치 웃는 것처럼 그렇게 킹킹 대더니 헬독을 먹는 것을 중단하고 강물 쪽을 쳐다봤다.
뭔가 얼핏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더 이상 그쪽으로는 시선조차 돌리기 싫어졌다.
베히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배를 더 채울 생각으로 헬독 몇 십 마리를 집어 먹었다.
그러다 다시 냄새를 한번 맡아봤다.
킁킁!
분명히 자신이 봤던 그 강가 근처에서 달콤한 인간의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역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곳을 쳐다보는 것에 대해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강한 거부감이 생겼다.
베히모스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 자연스런 모습이 아닌 뭔가 인위적인 현상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쿠웨에에에호오오오오!
베히모스는 자신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이 기묘한 기운에 대항하여 크게 포효를 터트렸다.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은 베히모스의 포효에는 근원적인 공포가 담겨있었다.
베히모스의 피어가 강물을 향해 정면으로 쏘아져나가자 시선이 닿는 사물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크게 출렁거렸다. 그러더니 뭔가 얼핏 보였다가 다시 사라졌다.
쿠웨이잉!
베히모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강가로 몸을 움직여 확인해보기로 했다.
쿵쾅 쿵쾅 쿵쾅!
베히모스의 머리에는 황소의 뿔 같은 것이 길게 돋아있었다. 네 개의 발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고 이빨은 무엇이든 다 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이 날카로웠다. 긴 꼬리는 예리한 가시가 돋아있어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고깃덩어리처럼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베히모스는 강가로 다가가면 갈수록 자꾸만 마음속에 심한 거부감이 드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거부감이 드는 걸까?
도대체 강가에 뭐가 있는 거지?
혹시 달콤한 피와 살로 된 인간들이 무슨 수작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정상일까?
생각이 많아지자 베히모스는 더욱 강하게 자신의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드는 거부감을 배격하고 전의를 불태웠다.
한편, 베히모스의 바로 앞에서 마리의 환상능력에 기대 숨을 죽이고 있는 서진과 연합파티원들은 백척간두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스터, 위험합니다. 차라리 지금 당장 강물 속으로 도망가세요.
“안 돼! 베히모스는 수륙양용마수라고 했잖아. 일단 마리를 끝까지 믿어보자.”
서진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베히모스를 눈으로 보고도 결코 현장을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사력을 다해 베히모스의 감각을 교란시키며 싸우고 있는 마리가 서있었던 것이다.
강백호와 우동면은 이미 반쯤은 넋이나가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제니도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며 마리를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버프를 집중시켰다.
연합파티원 대부분은 베히모스가 뿜어내는 엄청난 포스에 질려 오줌을 지리거나 강물 속에 주저앉았다.
민연서는 패닉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다행히 그녀의 옆에 최강철이 있어 그녀의 행동을 만류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입은 최강철의 두툼한 손으로 꽉 틀어막혀 있었다.
연합파티원들은 혹시 놀라서 소리라도 지를까봐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숨 막히는 공포와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그들은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베히포스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펑 펑 펑!
그때 멀리서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베히모스의 고개가 폭음이 난 곳을 향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순간 마리의 코에서 코피가 팍 터졌다.
대형마수이자 상급마수인 베히모스의 정신력과 싸우느라 마리가 심하게 무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제니가 힐을 해줬지만 이미 흘러내린 코피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킁킁!
베히모스는 마수 중에서도 후각이 매우 발달한 놈이라 눈앞에서 흐르는 피 냄새를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베히모스의 고개가 거의 반사적으로 홱 돌며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마리는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베히모스에게 환상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베히모스는 자신에게 계속 거부감이 들게 하는 이 요상한 기운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후각을 믿었고 또한 본능에 충실했다.
크르르릉!
베히모스가 으르렁거리며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앞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펑펑펑 퍼퍼퍼펑!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베히모스의 고개가 살짝 움직이려다 급히 다시 돌아왔다.
베히모스는 좌우로 고개를 마구 흔들렸다. 그러더니 눈에 강한 살기를 띄고 정면을 무섭게 노려봤다.
마리의 몸이 휘청하더니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제니가 급히 마리에게 힐을 넣어줬지만 이미 베히모스의 고개는 마리가 서있는 곳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베히모스의 시선이 정확히 마리를 향했다. 베히모스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높이 치켜든 앞발을 그대로 내려쳤다.
‘안 돼!’
서진은 마음속으로 강하게 소리치며 번개같이 달려갔다. 그는 마리의 허리를 한 팔로 잡고는 급히 옆으로 뛰어 올랐다.
하지만 베히모스의 앞발이 서진의 움직임보다 배는 더 빨랐다. 베히모스의 앞발에 달린 날카로운 다섯 개의 발톱이 눈부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뇌정!’
서진은 위기의 순간 뇌정을 극으로 운용했다. 정수리에서 뇌정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더니 서진의 정신과 육체를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웅!
그 순간, 묘한 공명음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세상의 시간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서진은 단박에 진짜로 시간이 느려진 것이 아니라 뇌정으로 인해 자신의 두뇌와 신체의 반응속도가 극한을 넘어서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뚱뚱한 버섯모양의 매직미사일 다섯 발을 소환하여 자신과 마리의 몸에 실드처럼 겹겹이 둘러쳤다. 비록 모양이 조금 우스꽝스러웠지만 위력까지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뭔가 많이 부족해보였다.
베히모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형마수이자 상급마수인 놈이라 뚱뚱한 버섯모양의 매직미사일 다섯 발로 실드를 쳐도 막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잘해야 중상이고 잘못하면 바로 사망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빨라진 사고력을 이용해 자신의 상황을 냉철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베히모스의 발톱은 시시각각 자신과 마리의 몸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공간에 클론볼을 담고 베히모스의 입안에다 내 아공간을 열수만 있다면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텐데…….’
서진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방법 외에 특별히 베히모스를 상대할만한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슬쩍 베히모스의 입안으로 향했다.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보이는 베히모스의 음습한 입안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죽음의 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고유능력인 영혼의 아공간이 잠깐 열렸다가 닫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지?’
서진이 자신의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다시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력을 다해 몸을 피했다. 하지만 피하면서도 자신과 마리의 몸을 뒤덮는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며 결국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했다.
지금 서진이 바로 그 짝이었다.
0.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서진의 머릿속에 미래의 기구했던 삶과 회귀해서 나름 화려하게 살아왔던 현재의 삶이 거의 동시에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회귀하고 나서는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어. 연서가 회귀하고 나서 일이 틀어져버렸지만. 제니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 것이 좀 미안하긴 하네.’
그는 이게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며 놀란 모습을 하고 있는 제니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생생하게 보였다. 서진은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활짝 미소를 지어줬다.
서진과 마리의 몸이 베히모스의 날카로운 앞발톱에 반 토막이 나버릴 절체절명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촤아아아악!
콰지직!
쿵!
놀랍게도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가 강물 속에서 튀어나와 베히모스의 목을 정확하게 물고 땅에 처박혔다.
해일 같은 강물의 범람으로 인해 서진과 마리는 물론 모든 연합파티원들이 수십 미터나 옆으로 쓸려 내려갔다.
“꾸웨웨에에엑!”
정통으로 목을 물려 반쯤 거대한 분홍생 범고래의 이빨이 가득 박혀버린 베히모스는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바동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덩치보다 배 이상은 큰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의 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는 베히모스의 목을 문 채 지느러미를 쓱쓱 움직여 강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로인해 베히모스의 한쪽 다리가 잘려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베히모스는 뭐라고 크게 비명을 지르려다 입안으로 밀려드는 강물로 인해 꼬르륵 거리며 숨만 막히고 괴로워했다.
세상에는 누구나 천적이 있다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쳐대던 베히모스가 오늘 상상도 하지 못할 천적을 만나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첨벙!
쏴아아아아!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가 다시 강물 속으로 들어가자 다시 한 번 해일 같은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 강가를 휩쓸었다.
하지만 연합파티원들은 모두 그 물결을 신의 은총처럼 환영하고 있었다.
“살았다.”
“기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베히모스를 잡는 범고래가 있다니…….”
연어팀 사인방은 하나같이 놀라서 감탄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와 마리는 그 와중에도 제자리에서 방방 뜨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꾸잉이다.”
“꾸잉이 우리를 도와 준거야.”
서진은 제니와 마리의 말에 시선을 강물로 돌렸다.
“꾸잉 꾸잉!”
놀랍게도 정말 분홍색 돌고래 꾸잉이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의 옆에서 한쪽 지느러미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는 베히모스의 목을 흔들어 부러뜨리고는 하품이라도 하듯 커다란 아가리를 한번 쩍 열었다가 닫았다.
그 박력에 서진과 연합파티원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대단하다.”
“꾸잉의 엄마인가 봐요.”
“그렇다면 꾸잉은 돌고래가 아니었네. 범고래였어.”
“아빠일수도 있잖아?”
“엄마가 분명해요.”
“그런가?”
제니와 마리는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가 꾸잉의 엄마라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강백호와 우동면은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의 말을 수긍해야했다.
“꾸잉! 잘 가!”
“꾸잉! 고마워!”
제니와 마리는 거대한 분홍색 범고래와 같이 사라져가는 꾸잉을 향해 한없이 손을 흔들어댔다. 꾸잉도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자꾸만 엄마(?)를 한번 쳐다보고 서진 일행을 한번 쳐다보며 잠깐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살아야할 곳은 강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쉬움을 삼키며 엄마의 뒤를 따라 강물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들 수고했다.”
“아닙니다. 마스터가 제일 수고하셨죠.”
서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 작품 후기 ============================
***100회 축하해주신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더욱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즐겁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시원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