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07화 (107/225)

0107 / 0225 ----------------------------------------------

제27장 - 라인하르트 캐슬

유니언이 빛이라면 호드는 어둠이다.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가를 수는 없겠지만, 일단 분위기상 그렇게 나누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호드의 여섯 행성동맹과 유니언의 여섯 행성연합이 서로 대치를 하는 상황가운데 호드에서 지구를 발견하고 침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처럼 유니언에게 지구의 존재를 알리고 잘 설득한다면 서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유니언과 호드가 싸우고 있는 전장은 현재 레무리아 행성 하나뿐인가?”

-그건 아닙니다. 현재 6개의 행성에서 전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로 봐서는 최소한 6개 이상일 것입니다.

“6개의 행성에 전장이 있다면 유니언과 호드가 보유한 행성이 각각 6개는 아니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유니언과 호드는 각각 십여 개의 콜로니 행성을 따로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전장이 유니언과 호드가 보유하고 있는 콜로니 행성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서진은 콜로니 행성에 전장이 집중되어 있다는 말에 뭔가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당장 뭔가를 결정하거나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 메탈리온이 서진에게 다가왔다.

“서진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그의 눈은 자신에게 할당된 클론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명색이 라인하르트 캐슬의 성주라서 여기서 시간을 다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혈관 속에 흐르는 강한 드워프의 창작욕구와 연구욕구를 억지로 찍어 누르며 자신의 일을 대신할 일족의 명장과 장인을 대거 불러들였다.

“이쪽은 우리 드워프 일족의 명장 란돌프이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이 서진입니다.”

“난 란돌프다. 흥미로운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 네.”

란돌프의 이름을 듣자마자 서진은 머릿속에 루돌프 사슴 코가 생각났다. 물론 그의 코가 밝게 빛나지는 않았다. 다만 술을 많이 마셨는지 살짝 붉은 주기가 코끝에 서려있었다.

“서진, 나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네. 이제부터 란돌프와 그가 이끄는 장인들이 자네를 도와줄 거야.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란돌프에게 얘기하게. 그리고 뭐든지 그와 상의를 해주면 고맙겠네.”

“네, 잘 알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인데…….”

메탈리온은 란돌프에게 잠시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쿨 하게 한쪽 손을 흔들고는 휑하니 드워프 공방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참 솔직담백한 성격이구나. 드워프들은 모두 다 저런 성격을 가지고 있나?’

서진은 왠지 이런 심플한 마인드를 가진 드워프들이 마음에 들었다. 시선을 돌려 란돌프를 쳐다보자 란돌프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서진, 머리에 쓰고 있는 그 헬멧 좀 볼 수 있을까?”

“네?”

“차라리 그냥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다 벗어보게. 무슨 용도로 그렇게 만들었는지 좀 살펴봐야겠어.”

“아! 네.”

서진은 란돌프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던 헬멧과 입고 있던 전신슈트 그리고 신발을 벗어줘야 했다.

“가지고 온 무기가 있다고 하던데……. 설마 칼 한 자루와 방패 하나만 달랑 들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쓰는 무기와는 좀 많이 달라서…….”

“그런 것은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 일단 전부 여기 꺼내봐.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네, 그렇게 하죠.”

서진은 란돌프의 말에 블루볼을 한손에 쥐고 안에서 KM1 자동권총, KM2 7.62mm 소총, KM3 자동샷건, KM4 고속유탄발사기, KM5 7.62mm 중기관총, KM6 12.7mm 중기관총, KM14 12.7mm 저격소총 등을 몽땅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신기한 무기들이 차례로 등장하자 호기심에 먹혀버린 장인들이 뭣도 모르고 무조건 만지려고만 들었다. 그러자 클론볼 하나가 날아와 급히 그들을 제지를 시키더니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을 띄워서 무기의 설계도를 보여주고 작동원리를 설명해줬다.

“이야, 이 마법공이 마법으로 영상을 만들 줄도 아네.”

“원거리 무기 같은데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잖아?”

“보기보단 아주 정교한 부품이 들어가는 무기야.”

“이런 무기를 대량생산을 한 건가?”

“이걸 투석기에 응용하면 뭔가 근사한 게 나올 것 같은데…….”

란돌프와 장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눈으로 홀로그램의 영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면서도 서로 빠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분석과 연구를 병행해나갔다.

“지구에도 공간확장마법진을 인챈트한 아티펙트를 만들 줄 아는군. 좀 볼 수 있을까?”

“네? 블루볼을 말입니까?”

“그게 무슨 이름이건 간에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물론이죠.”

서진은 란돌프가 이제 블루볼까지 욕심을 부리자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고개는 마치 고객을 맞이하는 신입사원처럼 바로 위아래로 끄덕였다. 블루볼 안에 담아둔 캡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한쪽에 쌓아놓고 서진은 란돌프에게 블루볼을 넘겼다.

“잠깐! 이건 우리가 보는 게 좋겠어요.”

옆에서 갑자기 달콤한 체향이 풍기며 하얗고 긴 손가락이 빠르게 다가와 란돌프에게 넘기려던 블루볼을 가로챘다.

고개를 돌려보자 어느새 아리아나가 그의 옆에 다가와 바짝 붙어 서있었다.

란돌프가 입을 삐죽대며 아리아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우리가 보면 뭐가 달라지나?”

“당연하죠. 이건 공간확장마법진을 인챈트한 아티펙트가 아니에요. 아공간마법진이 인챈트 된 거에요.”

“아공간마법진이?”

그제야 란돌프는 입맛을 다시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드워프 장인들도 공간확장마법진 정도는 쉽게 인챈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공간마법진을 인챈트 하는 것은 엘프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아리아나는 란돌프를 향해 가볍게 한번 승리의 미소를 지어주고 서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공간의 크기가 얼마나 되죠?”

“이 블루볼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m x 3m x 3m 인 아공간마법진이 인챈트 되어 있습니다.”

서진이 블루볼의 아공간 크기를 말하자 옆에서 클론볼이 3미터가 얼마나 되는지 길이를 보여줬다. 아리아나는 클론볼이 설명하는 미터 단위를 금방 이해했다.

“네에? 아공간마법진을 인챈트 했는데 용량이 겨우 그거밖에 안 돼요?”

“그, 그렇습니다.”

아리아나는 대놓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용량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서진은 아리아나의 그런 태도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아리아나는 서진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놀리려는 마음은 없었어요. 다만 아공간마법진을 인챈트했는데 그것밖에 용량이 나오지 않아서 좀 놀랐던 것뿐이에요.”

“괘, 괜찮습니다.”

아리아나는 솔직히 사과를 했지만 사실은 그녀의 사과가 더 가슴을 찌르는 비수로 작용했다. 이 블루볼을 만든 자는 미래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S급 능력자였던 것이다.

란돌프는 그런 서진의 마음도 모른 채 아리아나의 말을 거들었다.

“아공간마법진을 인챈트했는데 그 정도의 용량을 보인다면 아마 누구라도 아리아나처럼 놀랐을 거야. 우리 드워프들이 공간확장마법진을 인챈트해도 그것보다는 훨씬 더 큰 용량을 뽑을 수 있으니까.”

서진은 란돌프가 확인사살까지 해주자 오히려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 됐다. 아공간의 용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에게 무조건 더 유리해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등에 쓸모도 없는 자존심 따위가 아니었다. 이렇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블루볼의 아공간 용량을 대폭 늘리는 게 그것보다 몇 배는 더 중요했다.

“혹시 제 블루볼의 아공간 용량을 더 늘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아공간이라면 적어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0m x 30m x 30m 는 돼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은 지금 언급한 것보다 더욱 큰 아공간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네요?”

“네, 맞아요. 재료만 충분히 받혀준다면 못 만들 것도 없죠.”

아리아나는 서진이 급 관심을 보이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아름답고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서진의 심지는 뇌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뇌쇄적이고 마력적인 미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참 미소가 예쁘구나!’하고 느낄 정도였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0m x 100m x 100m 정도 되는 아공간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글쎄요. 재료를 구해주시면 아공간마법진은 저희가 그냥 인챈트 해드릴 게요.”

“재료라면 저희가 당장 구할 수 없는 것이겠죠?”

“아마도 그럴 거예요. 아니면 재료는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것을 쓸 테니 대신 베히모스의 가죽으로 그 값을 쳐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아리아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당장 넘어올 것 같았던 서진이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드는 제안을 란돌프에게 던졌다.

“란돌프, 드워프가 자랑하는 공간확장마법진을 제 블루볼에 인챈트하면 얼마나 공간을 확장할 수 있습니까?”

“당장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m x 10m x 10m 정도 되는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지.”

“그럼 그 이상도 가능할까요?”

“물론이네. 시간만 넉넉히 준다면 최대한으로 늘려주지.”

“최대한이라면 어느 정도나 됩니까?”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0m x 30m x 30m 정도 되는 공간이 될 거야.”

“그거면 충분하겠군요.”

서진은 란돌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아리아나를 쳐다봤다.

얼핏 보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진의 눈에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베히모스의 가죽이 그렇게 탐이 나나? 아니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은 것인가? 이렇게 되면 남는 가죽을 전부 드워프에게 넘기는 것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네.’

그는 머릿속으로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굴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을지 결정을 내렸다.

“란돌프, 저희가 베히모스의 한쪽 다리를 얻은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으응?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거 지금 어디 있나?”

란돌프는 아직 베히모스의 가죽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대놓고 놀랍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저희가 도축을 해서 부위별로 가지고 있습니다.”

“설마 베히모스의 가죽을 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무사히 잘 벗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오오! 그거 참 천만다행이군. 베히모스의 가죽은 부르는 게 값인 보물이네. 조심 또 조심해서 다뤄야하네.”

“그렇군요.”

란돌프가 아무 생각 없이 베히모스의 가죽에 대한 가치를 정해주자 결국 아리아나는 포기했는지 길게 한숨이 내쉬었다. 그녀가 상심한 얼굴이 된 만큼 오히려 서진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역시 그랬군. 그래서 베히모스 가죽을 나한테 빨리 얻어가려고 했구나. 그렇다면 굳이 베히모스의 가죽을 써서 연합파티의 파티원들의 전신슈트를 전부 업그레이드 해줄 필요는 없겠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서진의 머릿속에서 강백호와 우동면, 제니와 마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일단 자신의 파티원을 위해 베히모스의 가죽을 쓰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서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뒤를 이어 연어팀 사인방의 얼굴이 떠올렸다. 얼마든지 다른 마수의 가죽으로 전신슈트를 업그레이드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베히모스의 가죽을 반만 써도 되지 않을까? 최소한 반은 남을 것 같다.’

재단을 해서 옷을 만드는 것에는 젬병인 자신이라 서진은 자신과 자신의 파티원을 위해 정확히 베히모스의 가죽을 얼마나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략 반 정도는 소모된다고 봐야했다. 나머지 반 중에서 다시 반, 그러니까 전체 베히모스의 가죽에서 25%는 드워프에게 무조건 넘기기로 했다. 그들의 성향 상 그게 훨씬 효율적이란 직감이 들었다. 문제는 남은 25%인데 이것을 굳이 엘프들에게 넘겨야할 이유를 그는 찾지 못했다.

“서진, 베히모스의 가죽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

“일단 저와 제 파티원 네 명의 전신슈트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베히모스의 다리 한 짝에서 얻은 가죽의 양이라면 반 정도는 쓰겠군.”

============================ 작품 후기 ============================

시원하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