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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 이지스
“어어? 왜들 이러세요?”
“서진, 진즉에 말을 하지 그랬어?”
“네?”
메탈리온의 입이 귀에 걸린 상태로 싱글벙글거렸다.
서진은 메탈리온의 뜬금없이 던진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이런 엄청난 능력이 있다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냔 말이야.”
“아!”
그제야 서진은 메탈리온과 아리아나를 비롯한 수십 명의 유사인류와 수인족이 왜 자신에게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번 전투는 내가 생각해봐도 장난이 아니었어. 수십 마리의 그리폰과 와이번을 떨어뜨렸으니 다들 놀랄 만도 하겠군.’
서진도 자신이 어떤 전공을 세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폰과 와이번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자신의 매직미사일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쏘아올린 익스플로전 마법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수도 없이 울린 레벨업 알림음으로 인해 개인적으론 지극히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허나 메탈리온과 아리아나를 비롯한 라인하르트 캐슬의 지휘부와 참모본부 그리고 마법사와 정령사들은 서진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치명적인 공격을 쏘아 올려도 정작 그리핀과 와이번이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리핀과 와이번들이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익스플로전 마법같이 눈에 확 뜨이는 공격을 순순히 맞아줄리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이들이 지금 서진에게 열광하거나 직접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서진이 직접적으로 그리핀과 와이번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날개를 매직미사일로 뚫어버린 것은 치명상을 입힌 거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다 매직미사일로 그리핀과 와이번의 눈과 날개를 공격해서 교묘히 사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익스플로전 마법을 맞고 추락하게 만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진의 공(功)이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덕분에 당분간 대형 비행마수들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어. 그동안 얼마나 그리핀과 와이번의 패악에 시달렸는지 몰라. 내 머리가 이렇게 다 빠진 것도 다 그놈들 때문이야.”
“아! 네.”
서진은 메탈리온이 쓰고 있는 모자를 벗어 자신의 대머리를 보여주자 소처럼 눈을 껌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여줘야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뭔가 좀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리핀과 와이번을 막아보려고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는지 몰라. 서진이 오늘 그놈들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해주니 내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야.”
“맞아요. 정말 엄청난 일을 하셨어요. 라인하르트 캐슬의 숙원이었던 그리폰과 와이번을 처리해주셨으니 오늘 전투의 제일 전공자는 서진이에요.”
메탈리온에 이어 아리아나까지 서진의 얼굴에 금칠을 칠해주자 그는 그제야 자신의 생각과 이들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서진의 얼굴에 금칠을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은 그 둘만이 아니었다.
“저희 참모본부에서도 메탈리온 성주와 아리아나 부 성주의 말에 동의합니다. 오늘 마수들이 전의를 잃고 빨리 물러간 것도 지상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대공전에서 참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볼 때 오늘 전투의 수훈갑은 당연히 지구인 서진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법사들이 비록 익스플로전을 열심히 쏘아 올렸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큰 전공을 세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익스플로전 마법의 위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폰과 와이번 같은 대형 비행마수들을 정확히 요격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진은 오늘 우리에게 그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줬어요. 또한 우리가 쓰고 있는 전략과 전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줬습니다. 우리 마법사들은 오늘 전투의 최고전공자로 서진을 추천합니다.”
서진은 참모본부의 장교들과 마법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칭찬을 해주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마음속이 살살 간지러워지며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모두의 의견이 이렇게 일치해버리니 더 이상 논의를 할 필요가 없군. 오늘 전투의 최고전공자이자 영웅은 서진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메탈리온이 커다란 목소리로 서진을 영웅이라고 부르고 최고전공자로 선언해버리자 타워위에 있던 모든 병사들과 전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른 곳에 있는 병사들은 보지 못했어도 같은 타워위에서 서진의 대활약을 지켜봤던 병사들과 전사들은 메탈리온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만큼 서진의 활약이 인상적이고 강렬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런 영광을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됩니다. 되고말고요.”
티라무스가 다가와 서진의 몸을 덥석 끌어안더니 그의 등을 팡팡 내리쳤다. 서진은 등짝이 마치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 급히 허리를 옆으로 틀었다. 하지만 이어 나온 티라무스의 말에 절로 고통을 잊어버렸다.
“최고전공자가 됐으니 전리품 선택의 우선권도 가지게 됐군요. 그리폰과 와이번 사체의 반은 챙길 수 있겠네.”
“네에? 그게 정말입니까?”
“몰랐습니까? 그건 당연한 건데…….”
티라무스는 놀라는 서진의 행동이 더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가만 그리폰이 A급이고 와이번은 S-급 맞지. 와이번의 가죽은 베히모스의 가죽에 비견될 정도로 비싸다고 하지 않았었나? 거기에다 가죽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폰과 와이번의 사체가 통째로 라인하르트 캐슬 바닥에 널려 있잖아.’
서진은 침을 한번 꿀떡 삼켰다. 그제야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대박!’
티라무스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서진의 얼굴에 결정타를 날렸다.
“참, 전투의 최고전공자에게는 라인하르트 캐슬의 성주가 포상을 해줍니다. 거기에다 영웅의 칭호를 받았으니 라인하르트 캐슬의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아티펙트 하나를 챙길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헤에에에!”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바보같이 해죽 웃고 말았다. 정말 갈수록 마음에 드는 라인하르트 캐슬의 전공포상 시스템이었다.
“다들 뭐하고 있어? 승전가를 울려라! 오늘 우리의 영웅과 함께 신나게 먹고 마시자!”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메탈리온이 커다란 목소리로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타워위의 병사들과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역시 승리 뒤에는 신나게 먹고 마셔야 제 맛인 법이다.
괜히 승리가 달콤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메탈리온은 승리를 핑계로 그동안 마시지 못했던 라인하르트 캐슬에 도착한 보급품 중 하나인 호미니드 산 맥주를 작살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러나 메탈리온을 빼고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드워프 종족이 맥주에 환장한 종족이라는 것은 이미 라인하르트 캐슬뿐만 아니라 전 유니언에 다 까발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메탈리온이 서진에게 다가와 한쪽 팔로 그의 어깨를 잡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악을 써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축제를 열자! 파티를 열자!”
“탁자위에 술통을 올리고 승전가를 부르자! ♫”
“♪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지르고 기쁨을 나누자.”
“우리는 라인하르트 캐슬의 용사! 위대한 승리자! ♩”
메탈리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라인하르트 캐슬의 곳곳에서 그에 화답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인하르트 캐슬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메탈리온은 서진을 앞장세우고는 그의 어깨를 뒤에서 밀고 타워를 내려갔다. 그의 뒤에 아리아나가 서서 메탈리온의 어깨를 잡자 곧바로 하옹, 티라무스, 유니스가 그 뒤를 줄지어 따라왔다.
노랫소리는 점점 커지고 나중에는 라인하르트 캐슬을 뒤흔들 정도로 변해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노래는 라인하르트 캐슬의 공식승전가로 메탈리온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빵빠라빵 빵빵빵 빵빠라빵!
라인하르트 캐슬 내성에 있는 거대한 연회장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들어찼다. 각 지역의 사령관과 장교 그리고 부관들이 서진의 소문을 듣고 오늘의 영웅을 보러 온 것이다.
“서진, 쭉 한잔 해!”
“네, 감사합니다.”
제일 안쪽 테이블 상석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메탈리온은 서진의 앞에 1000cc 쯤 되어 보이는 큼지막한 생맥주잔을 내려놓았다.
서진은 노란 맥주 위에 하얀 거품이 덮여져 있는 것을 보자 절로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생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 위장을 채우자 뱃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는 반쯤 마시다가 생맥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카아! 맛이 기가 막히네요.”
“하하하, 그렇지? 그거 우리 고향에서 보내온 특산품이야.”
메탈리온은 아주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자랑을 했다. 알고 보면 호미니드 행성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생맥주인데도 말이다.
“여기 내 잔도 좀 받으세요.”
그때 서진의 팔을 부드럽고 몰캉몰캉한 것이 압박해왔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키스라도 할 기세로 바짝 붙어 앉은 아리아나가 보였다. 얼굴이 살짝 붉어져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풀풀 풍겨대는 그녀는 가는 팔과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생맥주잔을 한손으로 잡고 앞으로 내밀었다.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한번 삼키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 이상은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겠어요.”
“그럼 이것 좀 드셔보세요.”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겠다는 서진의 말에 아리아나는 조금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고 바로 안주로 나온 꼬치구이 하나를 포크로 콕 찍어서 그의 입가로 가져왔다.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아잉, 자꾸 이러시면 내 손이 부끄러워지잖아요.”
안 그래도 새하얗고 풍만한 가슴이 반쯤 드러나 보이는 유혹적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리아나가 몸을 마구 흔들어 대자 서진의 시선도 그에 따라 절로 좌우로 흔들렸다.
“그냥 손 내리시면 되잖아요. 읍!”
“맛있게 드세요.”
서진의 말에 참다못한 아리아나가 그냥 그의 입에 포크를 쿡 쑤셔 박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꼬치구이를 이빨로 씹으며 포크를 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아리아나의 만행에 건너편 탁자에 앉아 있는 제니와 마리가 동시에 눈에 불을 켰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당장 탁자 위를 달려와 아리아나에게 사커킥이라도 날릴 흉흉한 기세였다.
서진은 한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는 동작으로 제니와 마리가 흥분하지 않도록 제어했다.
‘우린 지구의 대표로 이 자리에 온 거야. 흥분해서는 안 돼. 이게 모두 다 비즈니스차원에서 접대를 하는 거라고. 비즈니스!’
서진은 눈으로 제니와 마리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물론 그들이 알아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충성도 100% 찍은 제니와 마리는 절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제니와 마리의 옆에는 강백호와 우동면이 앉아 있었다. 둘 다 간만에 맛보든 시원한 맥주에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같이 싸운 동료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연어팀의 모습이 보였다. 연어팀 사인방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커다란 통구이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고 있었는데 벌써 탁자에 쌓인 빈 생맥주 병만 한 가득이었다.
민연서만 유일하게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생맥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로인해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오늘로 라인하르트 캐슬에 온 게 사흘째인데 왜 유니언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지?’
서진은 천천히 생맥주를 마시면서 생각을 해봤다.
그동안 메탈리온과 아리아나가 유니언 상층부에서 아직도 뭔가 모종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것을 귀띔해줬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흘 동안 아무런 얘기가 없이 지나가는 것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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