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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 전공포상
‘아니야. 괜히 내가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데리러올까……. 그것보다 그리폰과 와이번의 사체를 대량으로 확보한 것을 어떻게 처분할지 생각해봐야해. 무조건 파는 것이 능사가 아니지. 거기에다 성주에게 포상을 챙기고 영웅칭호로 인해 라인하르트 캐슬 보물창고에서 해서 한 가지 보물을 고르는 게 더 급해. 그런데 뭘 고르지. 미리 보물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쓸 만한 것을 챙길 것 아냐. 으음, 그에 대한 정보를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지구라면 라인하르트 캐슬 보물창고라는 곳으로 마이키라도 들여보내 정보를 수집했을 텐데 여기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발각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서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마법사가 다가왔다.
‘마법사다. 그것도 상당한 고위마법사의 향기가 난다.’
서진은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새파랗게 젊은 엘프 마법사를 보더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위마법사는 걸어 다니는 대량살상무기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라인하르트 캐슬의 성주 메탈리온과 비견될,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존재일지도 몰랐다.
“반갑습니다. 마법사 그란데입니다.”
“이 서진입니다.”
“잠시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서진은 두 말하지 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강백호와 우동면, 제니와 마리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서진은 그들에게 앉으라고 오히려 손짓을 했다. 자신의 뒤는 든든한 로이가 지키고 있었다.
“여기는 제 호위인 로이입니다. 같이 가도 되겠지요?”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물론 같이 가셔도 문제없습니다.”
그들은 라인하르트 캐슬 성주인 메탈리온의 묵인 하에 연회장 한쪽에 있는 소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소연회장의 문이 닫히자 그란데는 자신과 같이 온 마법사 네 명을 직접 소개했다.
“이쪽은 미키, 루크, 릴리, 모하브입니다. 모두 저와 같은 마법사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서진입니다.”
서진은 엘프 마법사인 미키와 루크, 호미트 마법사인 릴리와 모하브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명씩 얼굴을 마주보며 각각 악수를 나눴다. 인사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 앉자 그란데가 부드러운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제가 서진을 찾아온 이유는 오늘 전투에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의 대답에 그란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그런데 사용하신 게 마법인가요? 아니면 이능인가요?”
“제가 사용하는 것은 스킬이라고 부르는 초능력에 가깝습니다.”
“역시 매직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군요.”
“매직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것이 스킬이라는 형태로 발현을 하는 겁니다.”
그란데는 서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흐음, 희한하군요. 호드와 전쟁을 벌이면서 호미니드 행성의 일부 형제자매들이 갑자기 각성을 하더니 이능을 사용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종류겠지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군요.”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제가 마법에는 문외한이라 가르쳐드리기 힘들겠네요.”
서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그란데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그 말은 마법에 대해 알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힌트라도 말해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깨달음이 됐건 힌트가 됐건 마수들과 싸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전 전혀 그것을 숨길 생각이 없습니다.”
서진의 대답에 그란데는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많은 인간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란데는 대화를 나누면서 서진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엘프의 피에 흐르고 있는 고유능력 ‘진실의 눈’과 고위마법사가 되면서 얻은 직감이 그걸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아!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역시 영웅이 된 것이 우연은 아니었네요.”
“예? 아니 그,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서진이 겸손하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네? 누구한테요?”
“아리아나에게 들었습니다.”
“아리아니요? 부 성주 아리아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리아나는 제 여동생입니다.”
“아!”
일이 참 묘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아나가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오빠가 나타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다니…….
어째 이 엘프 집안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서진은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 있습니까?”
“혹시 마법을 배우면 능력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서진은 일단 소극적으로 나갔다. 괜히 마법을 배웠다가 능력이 깎이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마법사 중에도 각성한 친구가 있었는데 마법과 능력 양쪽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다른 사람들처럼 단계를 밟아 서클마법을 배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위력은 좀 약하지만 의지만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학파도 있으니까요.”
“의지만으로 마법을 쓴다고요?”
“당장 설명하려면 복잡하니까 그냥 새로운 마나연공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란데가 마나연공법이라는 말을 하자 서진의 머릿속에는 즉각적으로 오러연공법이 생각났다.
“마나연공법이라……. 그럼 혹시 오러연공법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마나를 연공하는 방법이 있는데 오러를 연공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저희 아이보리타워에 있는 고대의 마나연공법과 오러연공법을 복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그래도 됩니까?”
서진은 그란데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설마 자신에게 마나연공법과 오러연공법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될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우리 엘프나 호미트는 사용할 수도 없는 고대의 마나연공법과 오러연공법입니다. 물론 등급도 꽤 높습니다. 그 당시 인간의 왕과 귀족들만 배웠다고 하니 S급은 못 되도 A급은 될 것입니다.”
“하겠습니다.”
“네?”
“마법을 배우겠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방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그때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서진과 그란데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의 손을 꼭 마주잡고 흔들었다.
‘굳이 내가 마법을 배워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배우는 시늉만 해도 마법이 스킬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아. 제대로 배울지 말지는 그때 결정은 내려도 된다. 그리고 혹시 마나연공법과 오러연공법을 배우면 지금 쓰고 있는 고유능력에 플러스 요인이 될지 몰라. 꼭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나연공법과 오러연공법을 복사해서 헤븐 가디언즈에게 나눠주면 분명히 뭔가 도움이 될 거야.’
어느 쪽을 선택해도 서진에겐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그란데는 서진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깨닫고 덩달아 눈이 시릴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잘 생긴 놈의 마력적인 미소였다.
만약 자신이 여자라면 그의 미소에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란데를 비롯한 마법사들과 헤어지고 나자 곧바로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라인하르트 캐슬 참모본부의 장교들이 소회의장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진은 나왔던 소회의장으로 도로 들어가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라인하르트 캐슬 참모본부의 작전장교 오마하입니다.”
“이 서진입니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가진, 각이 진 제복을 입은 엘프 하나가 그에게 먼저 인사를 해왔다. 서진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둘이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자 오마하가 즉시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이쪽은 같은 참모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작전장교들입니다. 왼쪽부터 딘, 볼렌, 해리먼, 캐넌, 로벳, 맥클로이입니다.”
“영웅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서진입니다.”
서진은 엘프와 호미트로 구성된 일곱 명의 라인하르트 캐슬 참모본부의 작전장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다들 서진을 무슨 괴물을 보듯 하는 눈빛이 영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눈빛에는 분명한 호감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마냥 피하는 것도 좋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이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다들 자리에 앉자 작전장교 오마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서진이 지구에서 능력자들을 대표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전체는 아니지만 능력자들의 대부분이 속해있는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를 맞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거 저희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 예우에 벗어나는 일이 되겠군요?”
오마하는 서진의 위치가 자신들이 상대할 만큼 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참 다행입니다. 어찌됐건 충분한 예우를 갖추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오마하를 비롯한 작전장교들은 모두 일제히 일어나 서진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서진은 급히 맞절을 하듯 자신도 고개를 숙여야했다.
다시 자리에 앉고 나자 그들은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
한참동안 그들의 얘기를 들어본 결과, 서진은 그들의 제안이 결코 자신과 지구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구가 유니언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면 제일 먼저 호미니드 행성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맺자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물론 당장은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능을 쓰는 능력자와 마법사, 정령사와 전사들만이라도 서로 협력을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최악의 경우 서진이 마스터로 있는 헤븐 가디언즈와 저희 라인하르트 캐슬의 지휘부라도 동맹을 맺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원하신다면 동맹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동맹 그 이상이라면 혈맹을 말하는 겁니까?”
“서로 믿는다면 충분히 그것도 가능하겠지요.”
서진은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면서 슬쩍 마음을 떠봤다.
“이거 너무 지구의 능력자를 높이 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드워프 공방의 장인들로부터 이미 지구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뛰어나고 효율적인지 얘기를 들었습니다. 양쪽에서 기술교류만 제대로 해도 당장 라인하르트 캐슬의 전력이 30%는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서진은 오마하의 말에 눈을 빛냈다.
‘역시 이들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내가 이들을 분석하고 있는 만큼 이들도 나와 지구에 대해 나름 분석을 하고 있었어.’
그는 살짝 교만해지려던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에게 해가 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진은 지금 당장 정보가 부족했다. 나중에 이들과 교류를 가지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이들에게서 유니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중요했다. 서진은 그냥 솔직하게 얘기를 해서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보교류도 가능하겠지요?”
“유니언에 대한 정보라면 이미 이렇게 준비해왔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오마하가 서진에게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서진은 오마하에 대한 판단을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미 상대가 뭘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자들과 얘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이 쓰이고 주의를 요하게 된다. 정곡을 찔린 서진은 결국 오마하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제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서진과 오마하는 서로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하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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