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17화 (11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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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 유니언

아리아나라고 이름을 불러줘서 그런지 그녀는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아 끌었다.

그 모습에 서진도 괜히 그녀와 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리아나는 엘프 공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어느새 마치 숲속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자 그녀의 손이 파랗게 빛났다.

스르륵 스르륵!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빛이 나무와 넝쿨을 비추자 저절로 움직이며 장정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길이 하나 생겨났다.

“이쪽이에요.”

“네.”

서진은 얌전히 그녀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마법으로 열린 길을 걸어갔다.

길이 좁아서 그런지 아리아나는 자연스럽게 서진의 옆구리로 파고들더니 한 팔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의 실한 육체의 한부분이 짓눌리며 뭉클한 감동이 일어났다.

그는 옆구리에 느껴지는 감각에 일부러 딴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냥 입구에서 블루볼을 줘도 될 텐데……. 날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거지?’

서진은 차마 입 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투덜댔다.

그런 서진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리아나는 그의 품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원래 엘프에게는 이런 달콤한 꽃향기가 나는 걸까?

그는 아리아나의 몸에서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달콤한 체향을 맡았다.

꽉 조이고 단단하게 닫혀있던 서진의 마음이 천천히 풀어졌다.

긴장하고 경계했던 마음의 무장이 조금씩 해제되어갔다.

조금이라도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향이였다면 뇌정이 바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뇌정은 아리아나의 몸에서 나오는 향기가 서진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향기를 적극적으로 들이마셔 몸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했다.

그러자 뇌정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 기운이 크게 증폭되어 갔다.

서진은 그 기분 좋은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아리아나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서진과 아리아나는 서로 몸을 꼭 부둥켜안은 채 넝쿨과 나뭇가지로 둘러싸인 마법으로 만든 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그들의 뒤로 넝쿨과 나뭇가지가 다시 꽉 채워지며 그들이 걸어간 흔적을 하나씩 지워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노란 달빛이 대낮인데도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 * *

“서진!”

“어? 아! 네.”

“여기 있어요.”

애정이 가득담긴 달착지근한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묵직한 블루볼이 올려졌다.

그는 블루볼을 보자 자신이 왜 엘프 공방에 왔는지 생각났다.

서진은 아리아나를 쳐다보며 살짝 눈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저희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요. 뭘!”

아리아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순간 서진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찌르르 울려대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도 뒤이어 느껴지는 것은 알 수없는 위화감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데자뷰인지도 몰랐다.

분명히 전에 한번 이 엘프 공방에 와본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뭔가 좋은 꿈을 꾸고 시원하게 낮잠이라도 한 숨 자고난 기분이 드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찡찡 울리지?’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아나는 그런 서진을 쳐다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공에 대한 포상공지는 받아보셨죠?”

“네, 알고 있습니다.”

“최고전공자인 서진에게 할당된 마수의 사체는 와이번 사체 12마리, 그리핀 사체 24마리입니다. 가장 상태가 좋은 것으로 블루볼 안에 넣어놓았어요. 지금 확인해보세요.”

“네.”

그는 그녀의 말에 즉시 블루볼 안의 아공간을 살펴봤다.

정말 와이번 사체 12마리와 그리핀 사체 24마리가 블루볼 안에 고이 잘 들어있었다.

“공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군요.”

“약속한데로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0m 인 아공간으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뵐게요.”

“네,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아리아나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진에게 다정한 눈빛을 전했다.

서진은 아리아나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엘프 공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몸이 엘프 공방에서 점차 멀어지자 아리아나가 작게 소곤거렸다.

“무정한 사람!”

그때 그녀의 뒤로 그란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아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내 운명이에요.”

아리아나는 오빠인 그란데가 나타났음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생 후회하며 살지도 몰라.”

“그럼 그렇게 사는 것도 내 운명이겠지요.”

“흐음, 난 네가 이렇게 무모한 도박을 벌일 줄은 정말 몰랐구나.”

“난 세계수가 보여준 나의 길을 갈 뿐이에요.”

“휴우우우!”

그란데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그의 기척이 들리지 않자 아리아나의 눈빛이 돌연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슬처럼 맑은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눈에서 똑 떨어지더니 또르르 굴러 발갛게 익은 것 같은 그녀의 복사꽃 뺨을 흘러 내려갔다.

“תחזור אלי!”

아리아나는 이미 점이 되어 버린 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애절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결국 그녀의 턱에서 떨어져 엘프 공방의 차가운 바닥을 적시고 말았다.

* * *

탕탕탕 탕탕탕탕!

KM1 자동권총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탄환이 빠르게 날아가 과녁을 때렸다.

“어때?”

-뚫지 못했습니다.

서진은 KM1 자동권총을 내려놓았다.

대신 한쪽 테이블 옆에 놓인 여러 종류의 마법총기 중 마법권총을 집어 들었다.

호미트 공방에서 KM1 자동권총을 보고 만들었다는 마법권총이다.

겉모습만 봐선 일반 권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틱틱틱 틱틱틱틱!

그러나 막상 쏴보니 뭐가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이키?”

-뚫었습니다.

“과녁을 가져와!”

-네, 마스터.

마이키가 클론볼을 시켜 과녁을 가져왔다.

가운데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게 멀리서도 보였다.

과녁을 손에 쥔 서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가 만든 대마수용탄약과 비교가 되는군.”

-정수의 가루를 가공해서 코팅을 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기술은 확보했어?”

-뭐 기술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습니다. 재료만 있으면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내 말은 나중에 호미트 공방과 문제가 될 게 없냐는 말이야.”

-없습니다. 오히려 호미트 공방에서 저희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서진은 마이키의 말을 들으며 마법권총을 분해했다.

툭 철컥 틱 티딕 찰칵!

마법권총은 몇 초 만에 완전히 분해됐다.

그는 마법권총의 부품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봤다.

“마이키, KM1 자동권총과 비교 해줘!”

-네, 마스터.

마이키는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한눈에 KM1 자동권총과 마법권총의 다른 점이 보였다.

-마법권총은 KM1 자동권총을 보고 만들었지만 기본적인 작동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마이키는 서진이 살펴보고 있는 마법권총의 부품을 레이저포인터로 비췄다.

-여기 이 부분에 마법진이 새겨진 것 보이시죠?

“응, 혹시 파이어 마법인가?”

-아닙니다. 익스플로전 마법의 하위축소버전인 블래스트 마법을 더욱 단순화시킨 마법진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총탄에 들어가는 뇌관역할을 한다는 말이군.”

-거기에다 장약역할도 겸하고 있지요.

“그럼 마법권총에 들어가는 탄약이 다르겠군?”

-그렇습니다.

서진은 마이키의 말에 마법권총의 탄창과 총탄을 살폈다.

확실히 작았다.

총탄은 탄환, 장약, 뇌관, 탄피로 이뤄진다.

마법권총을 위한 총탄은 탄환(총알)만 있고 장약, 뇌관, 탄피가 없었다.

그러니 탄창과 총탄 모두 KM1 자동권총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이건 더 많은 탄환을 보유하고 더 많이 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마법권총에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마법진이 인챈트 됐습니다.

“사일런스마법진, 충격흡수마법진이 인챈트 됐겠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탄창에 공간확장마법진입니다.

“음, 이렇게 마법진을 많이 인챈트 하면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겠는데…….”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뜻이지?”

-최하급마수는 기존의 무기에 저희가 개발한 대마수용탄약을 쓰면 됩니다. 하급마수부터는 호미트 공방에서 개발한 마법총기를 사용하면 굳이 대량생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음, 그렇게 하면 되겠군.”

마이키의 말이 맞다.

꼭 모든 병사에게 마법총기를 쥐어줄 필요는 없다.

최하급마수는 대마수용탄약으로, 하급마수부터는 마법총기를 쓰면 된다.

-마법권총을 비롯한 마법소총, 마법산탄총, 마법유탄발사기, 마법중기관총, 마법저격총 등이 모두 같은 원리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발이 다 끝난 게 아니었어?”

-아직 아닙니다. 마법총기의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연구와 개발은 지금부터입니다.

“그럼 내 앞에 있는 이건 다 뭐야?”

-그거야 마스터를 위해 특별히 미리 하나씩 만들어 준 거죠.

그제야 서진은 마이키의 말을 이해했다.

-마스터, 호미트 공방에서 마법총기 개발을 같이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해야지. 이거 이계에서 로열티를 받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럼 로열티를 받는 방향으로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상황이 조금은 황당했다.

하지만 클론볼 하나만 지원하면 되는 일이다.

로열티라는 빨대만 꽂아두면 앞으로 두고두고 꿀을 빨 수 있을 것이다.

“저기요. 배달 왔습니다.”

“네? 저한테요?”

화기시험장 안으로 작고 귀엽게 생긴 호미트 장인 하나가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낑낑대며 수레를 끌고 오는 또 다른 호미트 장인의 모습이 보였다.

서진은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보다 못해 수레를 향해 걸어갔다.

수레 안에는 기다란 나무상자 하나가 들어있었다.

서진이 번쩍 들어 꺼내자 호미트 장인은 그제야 손을 들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누가 보낸 거죠?”

“드워프 공방의 란돌프 명장이 보냈어요.”

“아!”

서진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무상자 안에 든 것이 자신의 무구라는 것을.

“여기까지 가져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서진은 호미트 장인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베베 꼬았다.

특이한 종족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진이 상자를 열자 호미트 장인들은 수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대로 상장 안에는 란돌프의 전신갑주와 내부강화복이 들어 있었다.

“벌써 손을 봤네.”

-딱 1시간 걸렸습니다.

“어디 한번 입어볼까?”

서진은 주변을 살펴봤다.

로이와 마이키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입고 있는 옷을 훌러덩 벗었다.

그리고 내부강화복과 란돌프의 전신갑주를 장비했다.

“어때?”

-멋있으십니다.

“멋지십니다.”

“하하하!”

역시 마이키와 로이에게서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다.

‘마왕의 날개! 나와라! 앞으로는 그냥 날개라고 할까?’

서진이 마왕의 날개, 아니 이제 그의 날개를 생각했다.

촤라라락!

펄럭펄럭!

우윳빛 반투명한 날개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내부강화복과 란돌프의 전신갑주를 뚫고 나온 것이다.

“마이키, 뒤를 확인해줘.”

-네.

서진은 뒤를 볼 수 없어 마이키를 거울 대용으로 사용했다.

마이키는 서진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먹고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지잉!

홀로그램은 마치 거울처럼 그의 등 뒤를 보여줬다.

서진은 날개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곧바로 날개가 그의 등속으로 파고들었다.

촤라라락!

신기하게도 날개가 사라지자 내부강화복과 란돌프의 전신갑옷에 난 틈이 상처가 아물 듯 빠르게 하나로 메꿔졌다.

서진은 몇 번이나 날개를 펼쳤다가 접기를 반복했다.

그의 마법무구는 그때마다 빠르게 아물었다.

“오! 이거 신기하네.”

-과연 란돌프 명장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틈을 메꿔버렸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서진은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의 무구에 대해 감탄했다.

생각해보니 란돌프가 예언한대로 그대로였다.

역시 괜히 그가 명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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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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