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19화 (1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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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 유니언

연서는 거울을 쳐다보며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민연서! 안 돼!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그러면 안 돼!”

하지만 거울 속의 그녀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까지 흘렸다.

“크윽!”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런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마치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바닥으로 푹 꺼지듯 쓰러져버렸다.

우두둑!

기괴한 모습으로 몸이 반쯤 접히며 쓰러진 그녀의 육체!

안타깝게도 자신의 가녀린 팔목을 눌러 부러뜨려버렸다.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다 드러낸 채……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욕실 바닥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30분 쯤 지났을까?

민연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더니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클라우드를 만나자.”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찌르르! 팔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그녀는 부러진 팔목을 잡아 쭉 뽑았다.

그리고는 팔목에 힐을 퍼부었다.

부러진 뼈가 서로 붙었다.

부은 팔목이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팔목을 몇 번 돌려본 다음 거울을 쳐다봤다.

흑진주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색이 사라진 것 같았던 욕실!

마치 총천연색의 꽃들이 피어오르듯 다시 생기가 차올랐다.

* * *

짝짝짝짝짝!

짧은 박수소리가 회의실은 뒤덮었다.

의원들은 다들 만족스런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진은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지구에서도 승전의 나팔소리가 울리기를 기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원총회 때 봅시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열 명의 의원들은 각각 한마디씩 서진에게 던지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썰물 때의 바다와 같았다.

빈 의자, 텅 빈 회의실!

갑작스런 고요가 찾아왔다.

“휴우우우우!”

서진은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이키의 위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지?”

-지난 사흘 동안, 유니언 의원들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3번입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비공식적인 만남은 정확히 28번 있었습니다.

“이제 회의라면 아주 지긋지긋하다.”

-유니언 의원총회 때까지만 참으십시오.

“그래야겠지.”

이제 유니언 의원들과의 공식회의나 비공식회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저녁에 있는 유니언 의원총회만 참석하면 그의 일은 모두 끝나는 것이다.

‘연서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지구특사 역할을 다 해보는군.’

서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혀를 찼다.

-마스터,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마이키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이제 마이키의 목소리 톤만 들어도 일의 중요도가 느껴졌다.

지금 이런 목소리는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뭔데?”

-민연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연서가?”

-유니언의 의원 한 명과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언의 의원? 누구?”

-마스터께서도 이미 한번 만나본 클라우드 의원입니다.

“클라우드 의원?”

마이키의 말에 서진은 유니언 의원들과 가진 첫 번째 공식적인 회의가 생각났다. 그때 유난히도 자신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중년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유니언에서 온건파의 대표적인 실세 중 하나라는 클리프 행성의 마법사를 얘기하는 것 아니야?”

-맞습니다. 마법의 행성이라 불리는 클리프 행성의 최고지도자 중 하나이자 바벨탑의 마탑주인 대마도사인 클라우드 의원입니다.

클라우드 의원은 클리프 행성에서는 물론 유니언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연서가 어떻게 클라우드 의원을 알고 접촉을 했지?”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녀가 무슨 목적으로 클라우드 의원을 만나고 있는지 당장 알아보자.”

-네, 마스터.

서진은 연서가 클라우드 의원과 접촉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뒷골이 서늘했다.

뭔가 더럽고 끈적끈적한 음모가 어둠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연서가 왜 온건파의 실세인 클라우드를 만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일단 리몬을 만나봐야겠다.’

그는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리몬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몬!”

“서진! 수고했어요.”

리몬은 서진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지난 사흘 동안, 리몬과 서진은 인간적으로 꽤 친해졌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서로의 이름을 격의 없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리몬이 인간은 아니다.

반은 인간, 반은 정령인 존재다.

보통 유니언에서는 반정령이라고 부르고, 그의 출신 행성에서는 나이아드라고 불린다.

리몬은 유니언의 여섯 연합행성 중 하나인 정령의 행성 나이아드 출신이었다.

“리몬, 잠깐 의논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괜찮아요?”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야지요.”

서진은 리몬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같은 말을 해도 참 듣기 좋게 얘기한다.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뛰어난 재주다.

아니 어쩌면 훌륭한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잠깐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해요.”

“음, 여기보다는 조금 더 분위기가 괜찮은 곳을 알고 있어요.”

“그럼 거기로 가죠.”

“탁월한 선택이에요.”

리몬은 서진의 말에 벌써부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서진은 리몬의 반응에 괜히 기대가 됐다.

리몬은 서진을 데리고 마법승강기를 탔다.

위로 몇 십층을 올라가자 돌연 하늘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유니언 본부 구조물 최상층부에 도착한 것이다.

“아!”

서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 층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카페이자 레스토랑이었다.

그것도 위쪽 전체가 거대한 투명유리 같은 것으로 뒤덮인…….

투명한 하늘을 통해 쏟아질 것 수많은 별들과 아름다운 은하들이 환상적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어때요? 멋지죠?”

“정말 근사한 곳이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 은하에요.”

“정말 이름 그대로인 곳이네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카페를 서진도 마음에 들어 하자 리몬은 신이 났다.

서진의 소매를 잡더니 북쪽에 있는 자리로 그를 데려갔다.

넓고 푹신한 소파가 사각형의 자리!

그곳에 도착한 리몬은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린아이 같은 리몬의 행동에 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 가끔 이곳에 와서 이렇게 하늘을, 아니 우주를 바라봐요. 그럼 모든 고민이 전부 없어지는 것 같거든요.”

“네에.”

서진은 리몬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힐끗 시선을 던졌다.

태양이 두 개라는 특이한 환경 때문인지, 모리티아 행성의 하늘은 파랗지 않다.

그냥 투명하다.

그래서 구름이 없는 날은 우주가 훤히 보였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곳에 오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소문이 생긴 것이…….

‘아니지. 내가 이렇게 멍 때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리몬 때문인지…….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렸다.

지금은 이런 자연적, 아니 우주적 장관을 즐길 때가 아니었다.

“리몬! 얘기 좀 해요.”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요.”

서진의 말에 리몬이 바로 소파에 누운 몸을 일으켰다.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미안해요.”

리몬은 서진의 반응에 마음이 한결 편했졌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생겼어요.”

“그게 뭔데요.”

“얘기가 좀 긴데 괜찮아요?”

“물론이죠. 저 이야기 듣는 것 아주 좋아해요.”

이야기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리몬의 얼굴은 순진무구했다.

서진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천천히 연서와 클라우드 의원에 대해 얘기했다.

서진의 말을 다 들은 리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

“대충 짐작이 가네요. 하지만 제 직책상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를 해줘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말해줄 수 있는 부분만 얘기해줘요.”

“네. 그렇게 하죠.”

리몬은 흔쾌히 서진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는 품속에서 원형의 탭 같을 것을 꺼내들더니 보지도 않고 두들겼다.

“으음, 민연서라는 분이 클라우드 의원과 만난 것은 사흘 전이네요.”

“사흘 전이라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이네요.”

“맞아요. 그 뒤로 매일 한두 차례 만났고 오늘도 같이 만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서진은 이것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이 만나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네요.”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꿩 잡는데 매라는 말이 있다면서요?”

“하하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군요.”

“각 행성에서 전해 내려오는 명언과 속담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긴 말이겠죠. 그래서 우리 행성에서는 지혜로운 말이고 부르기도 해요.”

“그렇군요.”

리몬은 서진에게 상체를 기울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이곳에선 클라우드 의원이 유니언의 온건파 실세라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어요.”

“그렇겠지요.”

“그러면 강경파의 실세는 누가 있을까요?”

“네?”

리몬의 질문에 서진의 머리가 갑자기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진의 눈빛을 보자 리몬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다 클라우드 의원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클리프 행성 출신의 의원은?”

“아! 화염탑의 마탑주이자 대마도사라는 이클립스 의원!”

“정답이에요. 아마 이클립스 의원이라면 절대 이런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궁금해서라도 서진을 불러서 이런 움직임에 대해 물어볼지도 몰라요.”

리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하얀 제복을 입은 자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벌써 오시네요.”

“으음, 그렇군요.”

서진은 생각보다 빠른 이들의 행동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만나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과 상대가 찾아와서 만나달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부터 입장까지 많이 달랐다.

가슴에 세계수의 문양을 한 하얀 제복을 입은 다섯 명의 남녀가 서진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제일 앞에는 화염처럼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에 주홍색 눈동자를 가진 장신의 중년사내가 서 있었다.

“이 서진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원님.”

“잠깐 물어볼 말이 있는데 좀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클립스 의원님.”

“저를 알고 계시는 군요.”

“어제 회의실에서 한번 뵙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맞네요. 우리 회의실에서도 한번 봤죠.”

이클립스는 웃으면서 서진의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리몬이 재빨리 일어나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이클립스가 리몬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의 뒤에 서있던 네 명의 남녀가 조용히 다가와 빈자리를 채웠다.

“먼저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이쪽은 크리스, 솔라, 써니, 루나 의원입니다.”

“반가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클립스의 소개에 서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의원들에게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 모습에 크리스, 솔라, 써니, 루나 의원 네 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진의 손을 차례로 마주 잡았다.

인사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이클립스는 품속에서 녹색의 돌 하나를 꺼내 테이블 중앙에 올려놓았다.

서진은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쳐다봤다.

그러자 이클립스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별것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도청방지마법진이 인챈트 된 아티펙트에요.”

“아!”

이클립스의 이런 행동을 통해 서진은 간접적으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과 하는 대화를 다른 사람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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