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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 유니언
“저는 돌려서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클립스의 입 꼬리가 위로 조금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말씀하시죠.”
“무슨 의도로 클라우드 의원과 접촉을 하고 있는 겁니까?”
“네에?”
“설마 저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시겠죠?”
“아, 그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서진은 정말 몰랐다.
이들이 그런 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오해를 풀까 생각을 해보던 서진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안 그래도 저희 팀원 중 한명이 무단으로 이탈해서 클라우드 의원과 접촉을 하고 있어서 저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일단 오해를 푸시고 제 말부터 들어주시죠?”
“그래요? 그럼 일단 한번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세요.”
이클립스를 비롯한 네 명의 의원은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서진은 연서와 클라우드 의원이 접촉한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을 적당히 각색해서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들에게 둘이 만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다.
“흐음, 글쎄요. 제가 클라우드 의원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게 아니라서…….”
“으음.”
이클립스는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별로 깊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옆에 앉아있는 루나 의원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전혀 달랐다.
“이클립스 의원, 이건 절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가 의도하는 뭔가가 있다고요.”
“혹시 지난 구태를 다시 벌이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구태라니요?”
“거 왜 있지 않습니까? 콜로니 프로젝트!”
“아! 그거요…….”
“설마 그걸 또 꺼내 들겠습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호드에게 한방 먹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위인이니.”
루나 의원을 시작으로 크리스 의원, 솔라 의원, 써니 의원이 서로 빠르게 얘기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했다.
이클립스는 이런 토론이 익숙한지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루나 의원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클립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만, 오늘 저녁 의원총회가 있죠?”
“네, 맞아요. 저녁에 의원총회가 있습니다.”
“하원의장에게 물어서 혹시 클라우드 의원이 오늘 발의하려고 하는 의제가 뭔지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이클립스는 품속에선 손바닥만 한 탭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아까 리몬이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탭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탭에 올려놓더니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이런!”
“왜 그래요?”
루나가 궁금한 것을 몸 참겠다는 듯 물어왔다.
이클립스는 서진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콜로니 프로젝트가 지구지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어요.”
“그럼 그 의제를 다시 의총에 제출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오늘의 핵심의제랍니다.”
서진은 옆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이클립스 의원에게 물어봤다.
“그 콜로니 프로젝트라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으음.”
이클립스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었다.
서진은 이클립스의 그런 행동에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콜로니 프로젝트가 지구지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셨죠? 저 지구에서 온 특사입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지구에 대한 일은 알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
그래도 이클립스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바로 옆에는 루나가 앉아있었다.
루나는 부담스런 서진의 눈길을 피해 이클립스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눈으로 뭔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한참 만에 결국 루나가 입을 열었다.
“콜로니 프로젝트는 유니언의 여섯 행성연합이 가지고 있는 콜로니 행성 하나에 트랩을 설치한 후 호드를 끌어들여 그들을 몰살시키겠다는 전략입니다.”
“네? 그럼 지구원조 프로젝트는 그 콜로니 행성 대신 지구를 쓰겠다는 말입니까?”
이클립스와 루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진이 이렇게 바로 핵심을 파고들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호드를 몰살 시키고 난 후, 트랩을 설치한 콜로니 행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그건…….”
루나는 차마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콜로니 프로젝트의 단계에 따라 어떤 강도에 따라 쓰느냐에 따라 행성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루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서진은 이클립스를 쳐다봤다.
이클립스는 루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서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행성이 파괴되고 가장 강도가 약하게 해도 행성에 사는 생명체의 30% 이상이 죽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명체의 30%요?”
서진은 인구의 30%가 아니라 생명체의 30%라는 말에 주목했다.
이 말은 74억의 지구인 중 30%만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바다의 생물을 합한 모든 생명체의 30%가 완전히 몰살하는 것을 의미했다.
지구 최강의 대량살상무기 중 하나인 핵폭탄을 여러 개 터트려도 지구 생명체의 30%를 몰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터트린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클라우드, 이 새끼 미친 것 아니야? 지가 무슨 행성파괴범이야? 왜 이런 엿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거지?’
서진은 속에서 노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설마 이 계획이 연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돼!’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부인했다.
간만에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를 막을 수 있는지 생각해봤다.
결론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이클립스 의원과 동료 의원들!
강경파의 실세!
온건파에 대항하는 강경파!
서진의 머릿속에 절로 그 구도가 그려졌다.
‘유니언과 결별을 하는 한이 있어도…… 이 프로젝트가 지구에서 실행되는 일은 무조건 막아야한다.’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마침 이클립스의 눈과 서진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동료 의원들과 작게 속삭이며 얘기를 하더니 그를 보자 한손을 들어올렸다.
동료의원들은 바로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돌려 서진을 쳐다봤다.
이클립스가 서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와 한 배를 탈 생각 있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그 배에 올라타려고 합니다.”
“하하하, 콜로니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서인가요?”
“그렇습니다.”
“일단 이번 건에 관해선 서로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군요.”
이클립스와 서진은 동시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서진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남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클립스와 동료의원들은 지구를 대표하는 서진이 일단 자신들과 생각이 같고 의견을 같이 한다는 것을 깨닫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다른 요구사항 같은 거 있습니까?”
“유니언이 지구의 자주권에 간섭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클립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주권이란 말의 의미와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당장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건 유니언의 다른 의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여섯 행성의 연합인 유니언에 지구가 일곱 번째로 정식가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서진의 말에 이클립스는 반색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최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아참! 이 서진님이 지구의 능력자들을 대변한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물론 100%는 아닙니다. 하지만 반은 넘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사람들의 의견을 100% 대변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과반수만 되도 대표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클립스는 화통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냉정할 때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강경파의 실세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그의 성격과 이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클립스는 유니언의 그 누구보다 서진에 대한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의원 중 하나였다.
“아닙니다. 지구 능력자의 과반수가 이 서진님과 함께 한다면 그건 지구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함께 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차원의 균열이 지구에 열린 이상, 아니 능력자가 생겨난 지금, 능력자의 질과 양이 곧 국력이자 무력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무서운 얘기였다.
지구의 대통령이나 정부의 각료들이 들으면 아마 펄펄 뛸 것이다.
하지만 서진은 이클립스의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능력자들이 어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는지 똑똑히 봤다.
물론 끝까지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능력자들을 쥐어짜다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대한민국 같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능력자들을 우대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 구성원이 되는 정책을 취했다.
그래서 끝까지 국가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가 당장 약속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지구가 유니언에 정식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겁니다.”
“그거면 됩니다. 우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클립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진에게 다가왔다.
서진이 일어나자 그는 따뜻하게 포옹을 했다.
그의 뒤로 루나, 크리스, 솔라, 써니 의원이 차례로 다가왔다.
다섯 명의 의원과 포옹을 한 서진은 그들에게 같은 꿈을 펼쳐나가는 동지(同志)로 대접받았다.
“여기서 더 얘기를 하는 것보다 우리 사무실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그러죠.”
서진은 이클립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무리 도청방지마법진이 깔린 아티펙트가 있다고 해도 이런 오픈 된 장소에서 은밀한 얘기를 나누기는 적절치 않았다.
그들은 아름다운 은하가 생생하게 보이는 카페를 벗어나 마법승강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리몬이 그에게 배운 승리의 브이(V)자를 그리고 있었다.
* * *
우주를 양분하고 있는 호드와 유니언!
양대 진형 중, 유니언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인 유니언 의원총회가 개막됐다.
거대한 반원형의 유니언의회에는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망라했다.
상원의장의 연설을 시작으로 유니언 의원총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먼저 유니언의 활동과 실적에 대한 보고와 질책이 있었다.
다음은 호드와의 전쟁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전쟁의 향방에 대한 중요한 각종 데이터와 지표가 쏟아져 내렸다.
중간에 잠깐 휴식을 취한 후, 하원의장의 연설을 시작으로 다시 의원총회의 뜨거운 열기가 타올랐다.
옵저버의 자격으로 유니언 의원총회에 참석한 서진과 그의 파티원들은 말없이 유니언 의원총회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참관했다.
서진은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를 한번 쳐다봤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됐는데…….’
초조한 마음을 숨기며 그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자신의 뒤에 앉아 있어야할 민연서와 연어팀 사인방이 언제 건너갔는지 건너편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들의 앞!
클리프 행성 최고지도자 중 하나이자 바벨탑의 마탑주인 대마도사 클라우드 의원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보였다.
클라우드 의원이 고개를 돌려 민연서가 가끔 뭐라고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자 서진은 갑자기 급 피곤이 몰려왔다.
‘정말 피곤하게 됐군.’
아무래도 그의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민연서는 클라우드 의원이 발의한 의제에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클립스 의원과 그의 동료들이 차분한 신색을 유지하며 앉아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초조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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