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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 인큐베이터
“민연서님 뒤에 앉아 계신 최강철,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 네 분, 잠깐 일어나 주세요.”
“네.”
연어팀 사인방은 동시에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분 모두 민연서님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최강철님부터 답변해주시죠.”
폴라 하원의장이 직접 그들에게 물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제일 왼쪽에 있는 최강철에게 집중됐다.
클라우드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었고 민연서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차분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아닙니다. 전 민연서와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연합파티의 이서진 마스터와 같은 생각입니다.”
“강철 씨!”
민연서는 깜짝 놀라서 최강철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최강철은 민연서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클라우드 의원이 했던 말과는 다른 결과네요. 다른 분들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해주시죠.”
“저도 민연서와 생각이 다릅니다. 이서진 마스터와 같은 생각입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이건 민연서의 개인적인 사견일 뿐입니다. 이서진 마스터의 의견이 곧 제 공식적인 의사입니다.”
“저도 민연서와는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저도 이서진 마스터와 생각이 일치합니다.”
최강철에 이어 강무호, 원범수, 오공유가 차례로 민연서와 전혀 생각이 다르다며 클라우드의 말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클라우드는 이 황당한 사태에 너무 놀라 그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클라우드 의원!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그게…….”
클라우드는 폴라 하원의장의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따로 없었다.
모든 말과 행위가 기록되는 유니언 의회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클라우드는 패닉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서진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 서진 특사,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어떤 점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죠.”
“네, 먼저 지구의 현황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요?”
폴라 하원의장이 이클립스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클립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된 게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일단 한번 보도록 하죠.”
폴라 하원의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서진은 곧장 마이키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마이키는 일정한 높이에 다다르자 곧바로 거대한 홀로그램을 하나 띄웠다.
그리고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지구에서 일어난 대격변, 차원의 균열, 마수와의 전쟁, 능력자들의 마수소탕전 등을 차례로 보여줬다.
유니언 의회 의원들은 홀로그램의 압도적인 3D 영상미에 차츰 빠져 들었다.
“보신바와 같이 지구는 민연서의 말과는 조금 달리 마수들의 침략에 나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대격변을 무사히 넘겼고 마수웨이브도 성공적으로 잘 막았다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이곳 유니언 본부에 와서 더욱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희는 유니언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원조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희 지구도 유니언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호드와의 전쟁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지구는 유니언이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언은 지구에 꼭 필요한 각종 마법, 자원, 정보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언의 한 식구로써 서로 협력하고 돕는다면 우리는 모두 더욱 강력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호드를 멸망시키는 일이 결코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
유니언 의회 의원들은 모두 서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진은 잠시 말을 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의원들을 하나씩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저희 연합파티의 파티원인 민연서는 지금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바람만은 그녀의 진심이 분명합니다. 여러분도 고향별에 차원의 균열이 열리고 호드의 침략을 겪어보셨으니 아마 그녀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유니언 의원들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겠습니다.”
서진은 말을 마치고 제자리에 앉았다.
하얗게 얼굴이 질려있는 민연서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 서진 특사의 감명 깊은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럼 회의를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클라우드 의원은 공식적으로 의제를 발의한 상태라 여전히 찬반투표에 붙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계속 진행하실 겁니까?”
“네, 진행하겠습니다.”
“클라우드 의원!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진행하겠습니다.”
폴라 하원의장은 고집스럽게 투표를 강행하는 클라우드를 쳐다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더 이상 반대의견이 없으시면 클라우드 의원의 의사대로 바로 찬반투표에 들어가겠습니다.”
폴라 하원의장의 선언으로 지구지원 프로젝트에 대한 찬반투표가 시작됐다.
의원들은 즉시 테이블에 놓인 버튼을 눌러 찬반의사를 표명했다.
투표결과는 곧바로 허공에 떠 있는 마법영상에 집계됐다.
하원 찬성 0 반대 365 기권 0
상원 찬성 0 반대 36 기권 0
“와아아아아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상하원 양쪽에서 지구지원 프로젝트에 대해 100%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것은 클라우드 의원의 무리한 강행 투표의견에 같은 파벌인 온건파 의원들 모두가 등을 돌린 것이었다.
아니 그의 오만을 모두가 질책한다는 의미였다.
클라우드는 앞으로 유니언 의회에서 의원생활을 하기가 참으로 곤란해졌다.
동료의원들과 같은 파벌의원들이 모두 등을 돌린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끈 떨어진 연 신세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클라우드는 설마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클라우드는 지금까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온건파 의원들을 마치 온건파 실세들의 무슨 거수기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건파의 의원들은 그동안 말없이 온건파 실세들의 의견을 따라줬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고도 반성은 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투표를 강행하라고 그를 밀어줬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클라우드 의원이 발의한 지구지원 프로젝트 의제는 부결됐습니다. 다음은 써니 의원이 발의한 의제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써니 의원이 의제를 발의했다는 말에 살짝 정신이 나갔었던 클라우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써니 의원입니다. 저는 유니언에서 지구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는 호드의 초기침략을 잘 막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호드의 침략이 시작되면 아마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유니언은 지난 백 년 동안 호드와 전쟁을 치르면서 얻은 각종 전략·전술, 노하우, 무기, 정보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막 능력자들이 태동한 시기에 있는 지구를 유니언은 아기처럼 잘 보호하면서 어느 정도 힘이 생길 때까지 키워줘야 합니다. 그래야 유니언의 진정한 일곱 번째 연합행성의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본 의원은 지구에 유니언의 대사관을 설치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인큐베이터 프로젝트를 발의하는 바입니다.”
써니 의원의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의원들의 데스크에 그녀가 발의한 ‘인큐베이터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도착했다.
의원들은 각자 인큐베이터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을 해보며 이것이 타당한 의제인지를 생각했다.
폴라 하원의장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질문 없으십니까?”
“있습니다.”
폴라 하원의장의 말에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질문이 써니 의원에게 쏟아졌다.
“질문하세요.”
“지구에 대사관이 설치되면 유니언의 여섯 연합행성에서도 외교관을 파견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 호드 전쟁에 관련된 군사와 외교문제를 제외하고 모든 결정은 유니언에서 파견한 전권대사 내지는 특명대사와 협의해서 최종결제하면 됩니다.”
“거래도 가능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유니언에서 허락한 품목에 한해 가능하겠지만 나중에는 금수품목을 제외한 모든 품목에 관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유니언의 차원상점을 입점할 생각은 없습니까?”
“지구에 유니언 대사관이 세워지고 어느 정도 군사, 외교문제가 해결되면 능력자들에 한해서 제한적인 유니언 차원상점을 입점할 생각입니다.”
“이쪽이 유니언 대사관을 통해 연합행성의 의견을 모은다면 지구는 누가 대표로 나서는 겁니까?”
“지구는 국제법상 242개의 국가를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이 유엔이라는 기구를 통해 의견을 조율한다고 합니다.”
“그럼 유니언과 유엔 사이의 중재는 누가 합니까?”
“그건…….”
갑자기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졌지만 써니 의원은 침착하게 잘 대답했다.
하지만 모든 대답을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써니가 이클립스를 쳐다보자 이클립스는 즉시 서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써니는 이클립스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서진 특사를 지구의 임시대표로 해서 일차로 틀을 잡으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유엔과의 기본협상도 이 서진 특사를 유니언의 임시중재자 자격을 부여하면 쉽게 해결 될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이클립스의 순간적인 기지가 의외로 의원들에게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서진은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하고 의아해했지만 말이다.
한참동안 질문공세에 시달린 써니 의원에게 더 이상 묻는 의원이 없자 폴라 하원의장이 나섰다.
“써니 의원이 발의한 지구에 유니언 대사관을 설치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인큐베이터 프로젝트에 대한 찬반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원들은 즉시 테이블에 놓인 버튼을 눌러 찬반의사를 표명했다.
투표결과는 곧바로 허공에 떠 있는 마법영상에 집계됐다.
하원 찬성 364 반대 1 기권 0
상원 찬성 36 반대 0 기권 0
“써니 의원이 발의한 의제, 인큐베이터 프로젝트는 가결됐습니다.”
폴라 하원의장이 즉시 가결선언을 내렸다.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클라우드 의원을 향해 쏠렸다.
하원에서 유일하게 반대표 1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자신이 한 게 아니라는 뜻으로 두 손을 위로 들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의회장 안의 그 누구도 클라우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의총은 30분 후 속개합니다.”
폴라 하원의장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하고 휴정을 선언했다.
그러자 유니언 의회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일부 의원들은 이클립스와 루나, 써니 등 강경파 의원들에게 몰려와 축하를 해주면서 아까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했다.
이클립스는 이제 볼일 다 봤다면 의회장 밖으로 나가려는 서진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몰려온 의원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서진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임시 지구대표의 역할을 톡톡히 해야만 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민연서의 두 눈에 슬금슬금 독기가 피어올랐다.
* * *
“민연서를 잡아와!”
“네, 마스터!”
우동면과 강무호가 서진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즉시 방을 나섰다.
“오빠, 아니 마스터,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뭘 어째? 연합파티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도 처벌을 해야지.”
제니의 말에 마리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강백호가 서진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사전에 마스터에게 아무런 얘기도 없이 숙소를 이탈하고 클라우드 의원과 접촉을 한 행위는 처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은 고려해주십시오.”
“알겠어.”
서진은 강백호의 눈을 직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백호가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최강철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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