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23화 (1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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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 인큐베이터

“마스터, 혹시 연서를 죽이시려는 것은 아니죠?”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아마 즉결처분을 내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유니언 본부야. 누굴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운이 좋군요.”

즉결처분이라는 말에 최강철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에는 다시 제 혈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마리의 차가운 말에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쿵!

“왜 이러는 거야?”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우동면이 민연서를 끌고 들어왔다.

그는 한손으로 그녀의 뒷목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녀의 두 손을 뒤로 꺾은 채 거의 들다시피 데리고 왔다.

그의 두 눈에는 한 치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진은 민연서가 끌려오는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리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그러나 전혀 얼굴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혀!”

“네, 마스터.”

우동면이 민연서를 방 한가운데에 놓아둔 의자에 거칠게 앉혔다.

민연서는 인상을 팍 쓰며 우동면을 사납게 노려봤다.

하지만 힐러인 민연서가 탱커이자 딜러인 우동면을 상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화풀이 대상을 우동면에서 서진으로 바꿨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에 처연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서진을 보자 그녀는 왠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으며 신음성을 냈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그녀가 왜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는지 묻지 않았다.

“민연서, 왜 그랬지?”

“뭘?”

“지금 난 연합파티의 마스터로 물어보는 거다.”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 멋대로 클라우드 의원을 만나 지구지원 프로젝트라는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동조했냐는 말이야.”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희생 없이 지구를 침략하는 마수들을 어떻게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민연서는 조금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연합파티에 속한 파티원으로 마스터인 나에게 사전에 얘기를 해줄 수 있었잖아.”

“그건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는 클라우드 의원의 말에 미처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서진을 비롯한 연합파티원들은 그녀의 뻔뻔한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냉정히 생각해봤다.

무엇에 대해 처벌할 것인가?

어떻게 처벌을 내릴 것인가?

그는 깊이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가치관에 관한 것은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무단이탈과 연합파티와 지구에 대한 이적행위 등에 관해서는 묵과할 수 없다.”

“나는 연합파티와 지구에 이적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니언 의총에서조차 마스터인 내게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또한 지구를 위협에 빠뜨릴 뻔 한 위험한 프로젝트에 멋대로 나서서 지구를 대표해 찬성한 행동은 명백한 이적행위에 속한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연서가 서진을 도전적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나는 너의 동의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처벌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순간부터 민연서는 연합파티에서 제명한다. 지구로 데리고 갈 때까지 이 방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능력을 사용하거나 외부인과 접촉할 수 없다. 나머지는 지구에 돌아가서 결정하도록 하겠다. 이의 있는 사람?”

“저를 감금하고 구속하겠다는 겁니까?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넌 말할 자격이 없어. 내가 질문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말을 한다면 강제로 네 입을 봉해버리겠다.”

“음…….”

민연서는 서진을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봤다.

서진은 그녀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연합파티원들을 쳐다봤다.

“감시가 필요합니다.”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구속해야 합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제니와 마리는 민연서를 단순히 방에만 가둬두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의견은?”

“…….”

“…….”

더 이상 이견이 없자 서진은 선언을 하듯 말했다.

“감시와 구속은 제니와 마리에게 맡기겠다. 이상이다. 해산!”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다들 대답을 하고는 하나둘씩 방을 빠져나갔다.

제니와 마리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민연서는 눈을 크게 뜨고 제니와 마리를 쳐다봤다.

“들었지? 일단 네 손발을 묶어 놓아야겠다.”

“안 돼!”

“어? 너 질문하기 전에는 말도 하지 말라는 소리 못 들었어? 입도 봉해야겠군.”

“제발 이러지마.”

“뭘 이러지마? 너야말로 제발 까불지 마.”

제니와 마리는 한마디씩 말을 하면서 민연서의 두 팔을 잡았다.

-마스터, 제니와 마리를 써서 민연서를 감시와 구속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차라리 캡슐에다 그녀를 가두고 재우십시오. 그게 안전합니다.

“그게 좋겠군.”

마이키의 말에 서진은 블루볼에서 캡슐을 꺼내 방 한쪽에 내려놓았다.

“제니와 마리는 민연서를 이리 데리고 와!”

“네, 마스터.”

“예, 마스터.”

제니와 마리는 민연서를 강제로 끌고 서진에게 데리고 왔다.

“그냥 들어갈래? 아니면 마취제 한방 맞고 들어갈래?”

“그냥 들어갈게.”

“탁월한 선택이야.”

서진의 말에 민연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는 순순히 캡슐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제니와 마리는 캡슐 안에 있는 구속 장치를 이용해 그녀의 팔다리와 머리, 몸에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캡슐의 투명한 뚜껑을 닫으며 서진은 제니와 마리에게 말했다.

“잠시 둘만 얘기를 나누고 싶어. 자리 좀 비켜줄래?”

“네.”

“예.”

제니와 마리는 서진의 얼굴을 살피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둘이 밖으로 나가자 서진이 의자를 가져와 그녀의 머리맡에 앉았다.

“이렇게 둘만 있게 된 거 참 오랜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은 연합파티의 마스터가 아닌 서진으로 얘기하는 거야.”

“그래서? 뭘 어쩌자고?”

민연서가 잔뜩 날이 선 앙칼진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서진은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

“잘됐군.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민연서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좋아. 그럼 한 가지씩 서로 물어보자.”

“그래. 좋아.”

“너 내가 아는 민연서 맞아?”

“그게 무슨 뜻이지?”

“회귀하기 전과 내가 알던 그 민연서가 맞냐고?”

“회귀하기 전에 내가 어땠는데?”

“예쁘고 아름답고 순수했지.”

“호호호! 너 꽤나 로맨티스트구나. 혼자 상상도 잘하고 맞지?”

“대답이나 하시지.”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는지 말이야.”

“그건 그렇지.”

서진은 솔직히 시인했다.

정말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회귀하기 전, 서진은 오랫동안 그녀를 짝사랑해왔다.

그녀가 예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실질적으로 그녀와 내면의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회귀직전에 잠깐 대화를 나눠본 것이 전부였다.

결국 미래의 그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대답해주지. 난 네가 생각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연서는 아니야. 특히 내가 회귀하기 전에 네가 사귀었던 그 어린 연서는 더더욱 아니지.”

“음!”

충격이 크게 다가왔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녀의 입에서 확인을 하고나니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물어보지.”

“물어봐.”

“너 헤븐 그룹의 대주주 맞지?”

“응, 맞아.”

“그럼 헤븐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야?”

서진은 민연서가 무슨 의도로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가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러자 그녀가 자신에 대해 전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도는 된다고 봐야지.”

서진은 모든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묻는 말에…… 적당히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라고 대답만 했다.

굳이 알려줄 마음도 없었다.

헤븐 그룹이 오롯이 서진의 소유라는 것을…….

“이번엔 내 차례네.”

“물어봐!”

민연서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다.

서진이 헤븐 그룹의 대주주이자 헤븐 그룹을 좌지우지 할 정도가 된다는 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너 다중인격이냐?”

“뭐?”

“다중인격이 뭔지는 알지?”

“알아.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지.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몰라서 물어?”

“알아. 아주 잘 알지. 내가 네 옆에서 같이 회귀를 했으니 모를 리 없지.”

“그런데 무슨 질문을 그렇게 해?”

“넌 내가 아는 미래의 민연서나 네가 회귀하기 전에 알던 연서가 아니야. 아무리 내가 네 과거를 모른다고 해도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어.”

“후후후! 재미있네. 회귀하고 나서 미래와 과거의 내가 모두 하나가 됐어. 그런데 무슨 다중인격이야?”

민연서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댔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몇 초 가지도 않았다.

“크윽!”

“왜 그래?”

“아, 아니야.”

그녀는 돌연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비비 꼬았다.

누군가 손으로 심장을 꽉 조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던 것이다.

“서진아!”

“응? 연서야!”

순간 연서의 입에서 서진을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익숙한 분위기와 목소리 톤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꼭 감았다.

‘뭐지? 방금 전 그 눈빛은 예전의 연서의 눈빛이었는데…….’

민연서의 눈이 다시 크게 떠졌다.

서진은 그녀의 눈을 지그시 노려봤다.

‘내가 잘못 봤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지구에 가면 날 어떻게 할 거야?”

“그게 궁금해?”

“응, 많이 궁금해.”

민연서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아까의 고통이 아직도 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며 참아내고 있었다.

“네가 한 짓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아마 죽이려 들지도 몰라.”

“그래서 너도 날 죽이겠다고?”

“글쎄, 그건 지구에 가서 결정해야지.”

“대답을 안했으니 다른 질문을 할게. 날 다시 받아줄 수 있어?”

“뭐?”

서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귀한 뒤 내가 잠깐 최강철에게 돌아가긴 했지만 그와 다시 사귄 것은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그놈에게 뒤통수를 맞았고.”

“그래서 최강철과 헤어지고 나한테 오겠다는 거야?”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거야.”

서진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생겨났다.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녀가 최강철의 손을 잡고 함께 텐트로 들어가는 것을 말이다.

그래놓고 뻔뻔하게 자신에게 돌아오겠다니…….

“왜 싫어? 너 아직도 나 좋아하잖아. 아니 사랑하잖아. 안 그래?”

“맞아. 난 지금도 널 사랑해. 하지만 사이코 같은 네가 아니라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연서를 사랑하고 있어.”

“뭐라고? 내가 어때서?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네가 뭔데 나를 더러운 여자라고 비웃는 거야.”

민연서는 서진의 말에 무슨 역린이라도 찔렸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그에게 마구 소리치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 허접쓰레기 같은 놈아! 네가 그렇게 대단해? 네가 그 따위로 우유부단 하니까 연서가 떠난 거잖아. 아니라면 최강철에게 갈 때 왜 잡지 않았어? 네가 개 호구 병신새끼라서 그런 거야. 그래놓고 이제 와서 감히 나를 더럽다고 말해? 그러는 너는? 너는 그렇게 깨끗해? 이 해골대가리척추꼬리새끼야! 연서를 사랑한다 말해놓고 벌써 제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 같던데? 아냐? 가만히 보니까 마리도 옆에 꿰어차 놓고 언제 자빠뜨릴까 기회만 보고 있는 것 같던데……. 내말 맞지? 아오! 이 생 또라이 같은 새끼! 감히 어디서 나를 재단 질이야?”

“푸하하하하!”

엄청난 욕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서진은 신나게 그녀의 욕을 먹게 되자 오히려 무거운 가슴이 한결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민연서가 자신에게 그렇게 욕을 해주자 오히려 마구 웃음이 나왔다.

“고맙다. 네 말 덕분에 확실히 네가 연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

“지랄하네. 나 네가 말하는 민연서 맞거든.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다 나야. 이 안드로이드기생충아!”

민연서의 눈에는 독기가 풀풀 날렸다.

그녀의 입에선 다양한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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