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25화 (12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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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 연합조약

“유니언에는 피부미용에 좋은 화장품과 주름을 제거하는 로션이 있어요. 또 목에 걸고만 있어도 적정체중을 유지시켜주는 마법의 목걸이와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포션도 있답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이런 물건들을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기자들은 레이나의 말을 듣자 혀를 내둘렀다.

피부미용에 좋은 화장품!

주름을 제거하는 로션!

다이어트 마법 목걸이!

여자들이 지금 이 기자회견을 듣고 무슨 짓을 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벌써부터 몇몇 기자들의 스마트폰이 진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명을 연장시켜준다는 포션은 전 세계의 권력자와 부호들의 욕망을 부채질 할 것이 분명했다.

대격변 이후, 지구에도 힐러가 등장했다.

이들의 능력으로 외상을 빠르게 치료하고 내상을 호전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집중적인 힐을 받으면 몸속의 병도 어느 정도 물리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힐러의 근본적인 능력은 외상치료다.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데 포션이라니…….

그것도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포션이 등장했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에 들여와야 한다.

“……그럼 앞으로 자주 보도록 해요. 지구를 지키는데 일조하는 레이나가 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레이나 대사가 마지막으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쳤다.

서태희가 곧바로 마이크를 켰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전에 말씀드린 데로 헤븐 가디언즈와 유니언을 모독하는 질문이나 발언은 받지 않겠습니다. 괜히 헤븐 시큐리티 대원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는 국제적인 개망신을 당하는 기자가 없기 바랍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으로는 살벌한 말을 거침없이 잘도 해댔다.

헤븐 가디언즈에서는 사전에 기레기들을 차단했다.

아예 기자회견에 초청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

멀쩡하게 생긴 기자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지 말이다.

질문시간이 시작되자 천여 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서태희를 쳐다봤다.

제발 나 좀 봐달라고 쫄랑거리는 강아지처럼 애원하는 눈길들이 사방에서 서태희를 압박했다.

하지만 서태희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전에 생각해놓은 대로 고구려일보의 기자를 선택했다.

고구려일보는 국내에서 가장 언론사다운 언론사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녀의 첫 번째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물론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힐 서태희지만…….

“고구려일보 진정한 기자입니다. 먼저 다른 차원에서 오신 레이나 대사에게 이렇게 처음으로 질문을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진정한 기자는 레이나의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고 절로 무장해제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얼른 정신을 차렸다.

“먼저 유니언에서 어떻게 지구를 찾았고 또 어떻게 지구에 올 수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 부분은 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이라 모든 것을 다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옆에 앉아 계신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혹시 우주선을 타고 왔나요?”

“그건 아닙니다. 음, 일종의 차원게이트를 타고 왔습니다.”

진정한 기자가 더 질문을 하려하자 마이크의 볼륨이 바로 꺼져버렸다.

서태희는 곧바로 외신기자 중 한명을 선택했다.

“CNNN 방송국의 트루입니다. 레이나 대사께 질문하겠습니다. 만약 유니언과 유엔의 연합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트루의 날카로운 질문에 레이나는 서진과 잠시 귓속말을 나눴다.

그러더니 곧바로 대답을 했다.

“유니언과 유엔의 연합이 실패한다면 저희는 깨끗이 물러날 거예요. 지구인들이 저희와 연합을 원하지 않는데 굳이 유니언 대사관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럼 두 번 다시 유엔과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지구에는 242개국이 존재합니다. 따로 각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전혀 없습니다. 우리 유니언은 행성 연합입니다. 국가 간의 문제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럼 이후로 다시는 지구에 오시지 않겠네요.”

“글쎄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와는 아마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이나의 말에 트루 기자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더 질문을 하려고 해도 마이크의 볼륨이 바로 꺼져버렸다.

서태희는 국내 방송사에 질문을 할 수 있게 배정했다.

“MBCC 방송국의 장대한입니다. 유니언과 유엔의 연합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유니언은 여섯 개의 행성연합입니다. 유엔과 연합조약이 타결되면 지구는 유니언의 일곱 번째 회원국이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처럼 군사적인 연합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럼 외교와 통상은 어찌되나요?”

“유니언의 설립목적은 호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서로 돕자는 취지라는 말이죠. 유니언은 각 행성에 대한 내정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습니다. 또한 단계별로 통상협상을 진행해 차원무역도 가능합니다. 물론 당장 가능한 것은 아니고 시간을 두고 단계별로 진행됩니다.”

레이나의 말에 각국의 기자들은 다들 머리를 팽팽 돌렸다.

어떤 나라든 유니언과 가깝게 지내는 나라가 곧 미래에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짐작이 가능했다.

기자들의 시선이 차츰 중앙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 서진에게 향했다.

서태희가 다음 질문자를 선택했다.

“요괴우리 신문의 사쿠라입니다. 레이나 대사께서는 한국 외에 다른 나라는 가보지 않으신 것 같은데 일본의 온천관광을 오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당장은 바빠서 곤란하고 나중에 한번 가볼 생각이에요.”

“지구에는 242개의 다양한 나라가 존재합니다. 한국 한곳에만 계시게 되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다른 나라에도 레이나 대사를 모실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쿠라 기자의 말에 레이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진실의 눈이라는 고유능력 가지고 있는 엘프답게 그녀는 사쿠라의 의도를 바로 간파했다.

레이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딱 부러지게 말했다.

“일본에서 오신 기자 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저는 유니언의 친구가 있는 한국이 좋습니다. 굳이 다른 나라를 방문해야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있어요. 전 지구에 있는 242개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호드와의 전쟁에서 지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러 온 거예요. 공평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왜 한국과 일본을 공평하게 대해야합니까? 일본이 저와 유니언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죠? 여기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처럼 무슨 큰 도움을 주시기라도 하셨나요?”

“그, 그게…….”

레이나의 말에 사쿠라는 크게 당황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이런 반응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레이나는 웃으면서 사쿠라의 가슴에 비수를 날렸다.

“저는 앞으로 일본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친구사이를 이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네요.”

레이나의 말이 끝났다.

사쿠라는 바로 변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태희는 즉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마이크의 볼륨이 바로 꺼졌다.

잠시 장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보기와는 달리, 레이나는 사리분별을 잘했다.

태도도 아주 칼 같이 확실했다.

이에 놀란 기자들은 앞으로 입조심을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쿠라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아득한 심정이었다.

모르긴 해도 일본에 돌아가면 자신은 아마 죽일 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돌이나 맞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생각됐다.

“중국 CCCV 방송국의 주중팔 기자입니다.”

신태희가 이번에는 중국공영방송의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유니언과 유엔의 연합이 성사되면 유니언 대사관은 어디에 설치하실 계획이십니까?”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한국에 설치하실 겁니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만약 땅이 필요하시다면 중국정부는 원하는 만큼의 대사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그 어떤 나라에도 아직 대사관을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엔과의 연합조약이 먼저입니다. 모든 것은 그 후에 천천히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럼 중국에 유니언 대사관을 설치할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아직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지구에 유니언 대사관이 설치되면 당연히 유니언에도 지구 대사관이 설치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유니언의 외교는 호혜평등이니까요.”

주중팔 기자는 레이나의 말을 듣고 크게 고무가 된 표정이었다.

서진은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꼭 저렇게 사람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놈들이 있다니까.’

“AFPP 의 샤를입니다. 레이나 대사께서는 피부미용에 좋은 화장품, 주름을 제거하는 로션, 다이어트 마법 목걸이, 수명을 연장시켜준다는 포션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당장 샘플을 제공할 의도는 없으십니까?”

“전혀 없습니다. 다만 사흘 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만나는 각국의 정상들에게는 샘플이 아닌 정품을 선물로 드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에?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죠. 벌써 유니언의 친구인 헤븐 가디언즈 마스터에게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모든 기자들의 시선이 서진을 향해 집중했다.

서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들의 뜨거운 시선에 한껏 부담을 느껴야했다.

‘선물은 개뿔! 레이나가 준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최상급 포션들이 유니언 본부에 아주 널려있던데…….’

서진은 레무리아 행성의 라인하르트 캐슬에서 인스턴트 마나포션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참 즐거워했다.

그런데 웬걸?

유니언 본부에 가보니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포션들이 널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니언 본부에 입점해있는 차원상점!

즉, 유니언상점을 통해 얼마든지 대량으로 구매가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가지고 있던 미스릴 주화를 꽤나 소비했다.

하지만 앞으로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벌어들일 자신이 있었다.

현재 헤븐 가디언즈 본부 지하에는 유니언 본부와 직접 통하는 차원게이트 하나가 극비리에 설치되어 있다.

그것을 통해 유니언은 지구에 있는 레이나와 매일 소통을 하며 유엔과 체결할 연합조약을 손질하고 있었다.

물론 유니언 측만 그 차원게이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진과 그의 파티원에게는 차원게이트가 개방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유니언 본부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유니언상점에서 필요한 무기와 장비, 아이템을 사들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레이나가 말하는 포션 등이 아주 혹할 물건이지만 서진에게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물건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앞으로 세 분만 더 질문을 받고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서태희의 말에 기자들은 일제히 손을 들며 흔들어댔다.

기자들을 들었다놨다하는 서태희의 현란한 진행에 서진은 란돌프의 전신갑주 안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메딕, 민연서는?”

-헤븐 가디언즈 광주지점에 구금해놓았습니다.

헤븐 가디언즈의 광주지점은 광주 무등산던전 앞에 있다.

무등산던전은 국내에 생긴 보라매던전, 정릉던전, 해운대던전, 월미도던전, 북한산던전, 낙동강던전과 함께 7대 던전 중 하나로 꼽힌다.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지?”

-다친 능력자를 치료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민연서의 처벌에 대해서는 알아봤어?”

-네, 마스터. 국내법과 국제법 모두를 확인한 결과 민연서를 처벌할 법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음!”

서진은 메딕의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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