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39화 (13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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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 Bridge of No return

서진은 몸에 힘을 단단히 주고 날아오는 제니를 두 손으로 덥석 받아 안았다.

제니는 서진의 품에 폭 안기며 나른한 목소리를 냈다.

“아! 좋다. 오빠 냄새 난다.”

“뭐야? 너 왜 갑자기 날아와?”

“헤헤, 놀랐어요?”

“아니. 뭐 꼭 놀랐다기보다는 좀 당황했잖아.”

“에이, 하나도 당황한 것 같지 않은데요?”

“당황하고 놀랐어.”

“그럼 그렇다고 해요.”

말로는 참 이기기 어려운 당돌한 녀석이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오빠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죠. 헤븐 가디언즈 본부로 가실 거죠?”

“응.”

“내가 데려다 줄게요.”

“네가?”

“왜요? 나 같은 미인이 에스코트해준다는데, 싫어요?”

“그럴 리가 있나? 나야 고맙지.”

“그럼 어서 가요.”

제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폭신하고 몰캉한 느낌에 몸이 절로 떨렸다.

괜히 몸 한쪽에 피가 쏠리면서 엉뚱한 생각이 났다.

‘내가 그동안 많이 굶주렸었나? 별 생각이 다 나네.’

서진은 뇌정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운전을 하려고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가자 그만뒀다.

둘은 각각 운전석과 보조석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나자 제니가 차를 출발시켰다.

부릉 부릉 부우우우웅!

그녀의 차는 B사의 5시리즈다.

묵직한 엔진소리가 들리며 새하얀 차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판문점을 지나 파주시 옆으로 지나갔다.

자유로가 나오자 빠르게 타고 달렸다.

강변북로를 탈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변북로에 막 들어서자 갑자기 제니가 입을 열었다.

“오빠, 라면 먹고 갈래요?”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라면 먹고 가자는 말이 단순히 라면만 먹자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음.”

서진에게서 묵직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제니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내일 걱정하지 말고 오늘밤만 생각해요.”

“아!”

서진은 제니의 말을 듣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어린 제니가 용기를 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반대로 자신이 너무 비겁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 라면 먹고 들어가자.”

“정말요?”

“응.”

“헤에, 좋아요. 그럼 장소는 내가 정할게요.”

“그래.”

제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차는 강변북로를 타고 내려가다 SG 특급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제니는 먼저 프런트데스크로 올라가 스위트룸을 잡았다.

서진은 차안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승강기를 탔다.

승강기는 빠른 속도로 호텔 꼭대기로 올라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그는 제니가 전화로 알려준 방 번호로 찾아갔다.

스위트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제니가 도도도도 달려오더니 냉큼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어느새 샤워라도 했는지 하얀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라면 먹으러 왔습니다.”

서진이 문을 닫으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걸어가던 제니가 돌연 몸을 홱 돌렸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을 두 손으로 잡고는 양옆으로 활짝 펼치며 말했다.

“마음껏 드세요.”

* * *

시리도록 새하얀 피부!

주사처럼 붉은 입술!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카락!

몸에 착 달라붙는 검고 긴 원피스!

서진은 경직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크리스티나 홀린을 쳐다봤다.

“내가 누군지는 알죠?”

“네?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마스터!”

긴장한 탓인지 크리스티나 홀린의 목소리는 살짝 떨고 있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알고 있나요?”

“아닙니다. 신태희 대변인이 저보고 마스터가 찾으신다고 하셔서 새벽같이 와서 기다렸습니다.”

“새벽이라고요? 전 아침에 보자고 했는데…….”

“네? 그럼 새벽이 아니라 아침인가 봅니다.”

크리스티나 홀린은 너무 긴장해서 조금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낮고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말했다.

“크리스티나 홀린 양을 내가 뭐라고 불러야하죠? 그냥 크리스티나라고 부르면 됩니까?”

“아닙니다. 홀린으로 불러주세요.”

“아! 그래요?”

보통 이름을 부르는데 굳이 성을 불러달라고 한다.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최면술사라고 하셨는데 언제 능력을 각성했나요?”

“대격변이 일어난 날, 각성했습니다.”

“그럼 왜 지금까지 능력자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어요?”

“그거야 제가 마수를 죽이는데 별 도움이 안 되니까요.”

“그럼 지금은 마수를 죽이는데 도움이 되나요?”

“네,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레벨이 늘어나니까 자연스럽게 능력도 같이 올라갔습니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최면술사에 관한 일을 물어보자 크리스티나 홀린은 조금씩 긴장이 풀려갔다.

“홀린, 사람한테도 써봤어요?”

“물론입니다. 제 가족은 물론 이웃, 친척들까지 골고루 사용해봤습니다.”

“그들도 알고 있나요?”

“아닙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용케 안 걸렸네요.”

“능력에 대한 실험을 하고나서 모두 원래대로 되돌려놨기 때문에 걸릴 일이 없었습니다.”

“혹시 능력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어요?”

“제 능력이요?”

“네. 범위가 어디정도나 되는지 모르겠네요.”

“마스터께서 제게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시면 제가 답변을 드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홀린은 서진의 말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직 그녀는 미래의 S급 최면술사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대격변이 시작되고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다.

능력개발이 덜 됐거나 아직 잘 모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격변 이후로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준다던가 하는 일은 가능한가요?”

“대격변 이후의 기억을 지우는 거죠?

“그렇습니다. 아니면 이런 것도 괜찮아요.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기억만 남겨놓고 모조리 날려버리는 거죠.”

“두 가지는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 쓰는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첫 번째는 대격변 이후의 기억을 봉인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대격변 이전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봉인을 걸어놓고 나머지 기억을 왜곡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럼 기억 자체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겁니까?”

서진의 질문에 홀린은 살짝 망설였다.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최면술사와 자신이 얻은 최면술사의 능력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건 뭐라고 확실히 말씀을 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아직까지 많은 실험을 해보지 않아서요. 하지만 제가 한번 봉인을 걸거나 왜곡시켜놓은 것은 절대 풀린 적이 없습니다. 전부 100% 유지됐어요.”

“만약 어떤 영향으로 인해 봉인이나 왜곡이 풀릴 수도 있습니까?”

“물론 가능성은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다만 이건 서로간의 레벨 또는 능력 차이, 혹은 정신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을 풀려면 같은 레벨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월등히 높은 레벨의 능력자, 특히 정신계열 능력자라면……. 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같은 레벨의 능력자라면 풀 수 없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서진은 크리스티나 홀린의 정보가 담긴 서류철을 열고 그녀의 레벨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홀린의 레벨이 민연서의 레벨보다 더 높았다.

“홀린 보다 낮은 레벨의 힐러라면 어때요?”

“절대 풀 수 없습니다.”

홀린은 절대라는 말을 강하게 강조했다.

“홀린의 능력을 제게 한번 써보세요.”

“네? 마스터에게요?”

홀린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감히 마스터에게 자신의 능력을 쓰겠는가?

“괜찮으니까 한번만 써보세요.”

“안 됩니다. 전 그럴 수 없어요.”

“괜찮다니까요. 제가 쓰라고 해서 쓰는 거잖아요.”

홀린은 계속 거절을 했다.

하지만 서진이 몇 번이나 자신에게 능력을 써보라고 강권을 하자, 결국 마지못해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저, 진짜 나중에 화내시면 안 돼요.”

“물론이죠.”

“마스터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거예요. 절대 제 의사가 아니에요.”

“당연하죠. 절대 불이익이 가는 일 없게 할게요.”

서진이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나서야 홀린은 결심을 굳혔다.

홀린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서진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능력을 써도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처음보다 능력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일은 능력을 각성한 후 처음이었다.

“어휴! 안되네요.”

“안된다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터에게는 아예 능력이 박히지가 않아요. 마치 온몸을 보이지 않는 갑옷으로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느낌이에요.”

서진은 홀린의 말에 곧바로 뇌정을 떠올렸다.

‘뇌정 때문인가? 그녀의 능력을 뇌정이 철저히 방어하고 있나보구나.’

뇌정의 특성 상,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내심 만족한 그는 곧바로 대안을 마련했다.

“사연정 비서! 물 한잔만 가져다 줘요.”

-네, 마스터.

서진은 인터컴으로 사연정 비서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비서를 불렀으니 한번 능력을 걸어 봐요.”

“네, 알겠습니다.”

홀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비록 마스터에게는 실패했지만 일반인에게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달칵!

사연정 비서가 쟁반에 생수 두 병과 물 컵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탁자에 생수와 물 컵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려고 할 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쟁반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봤다면 딱 미친년 널뛰기 한다고 손가락질을 할 모습이었다.

서진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홀린은 서진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홀린은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발휘해보기로 했다.

능력을 조금 더 끌어올리자 사연정이 제자리에 딱 멈춰 섰다.

그러더니 스스로 입고 있는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블라우스를 벗어버리고 치마를 내렸다.

뽀송뽀송한 하얀 살결에 레이스가 달린 야한 검은 브래지어와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헉!”

서진이 놀라서 입을 딱 벌리자 홀린은 속으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사연정은 브래지어 앞으로 손을 가져와 후크를 툭 풀었다.

보기와는 달리 꽤나 풍만한 천도복숭아 두 개가 툭 튀어나오며 크게 출렁거렸다.

가운데에 달린 분홍색 열매가 찬 공기에 놀란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만!”

“네?”

“이제 그만 됐어요. 홀린의 능력은 충분히 봤어요.”

“네, 마스터.”

서진은 더 이상은 볼 수 없어서 급히 소리쳤다.

홀린은 한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를 상기하고는 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사연정은 벗은 옷을 도로 입기 시작했다.

레이스가 달린 야한 브래지어를 채우고 블라우스를 걸쳤다.

치마를 올리고 몸을 단정히 했다.

그녀는 서진을 향해 싱긋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서진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겁니까?”

“전혀 못합니다. 기억을 왜곡시켰거든요. 설사 저보다 레벨이 높은 정신계열의 능력자라고 해도 그냥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을 한번 해봤다고 생각할 겁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무서운 능력이군요.”

“그,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홀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지금 자신이 누구 앞에서 재롱을 피웠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약속하나만 해주세요.”

“네, 마스터.”

“절대 범죄에는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절대 범죄에는 악용하지 않겠습니다.”

홀린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홀린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용하기 위해서 아마 납치도 불사할겁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것으론 부족해요. 헤븐 시큐리티에 말해서 오늘부터 일급경호를 시작하라고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들과 꼭 상의하도록 하세요.”

“네, 마스터,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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