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140화 (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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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 Bridge of No return

홀린은 서진의 세심한 배려에 크게 감격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습기가 찼다.

서진은 살짝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졌다.

“잠시 후, 대격변 이후 자신이 회귀를 했다고 믿는 능력자가 한 명 올 거예요. 저를 위해 아니 그녀를 위해 대격변 이후의 기억을 지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홀린은 서진을 위해 그녀가 누가됐든 최선을 다해 대격변 이후의 기억을 왜곡시켜 봉인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얼핏 벽에 장식된 디지털시계를 보니 2016년 9월 21일 10시 30분이었다.

“그동안 나와 커피 한잔 더 하실래요?”

“네, 좋습니다.”

홀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이쪽입니다.”

“네.”

민연서가 고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헤븐 시큐리티 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게이트 룸을 나와 승강기로 걸어갔다.

헤븐 시큐리티 1개조는 잠시도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민연서의 감시등급은 특급!

아마 그래서 더욱 긴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승강기는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띵!

목적지에 도착하자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민연서와 대원들은 동시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승강기 앞에는 경호실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경호실 요원들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

헤븐 시큐리티 대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민연서 씨! 가시죠.”

“네.”

경호실 요원들은 그녀의 양쪽 옆과 앞뒤에 섰다.

동서남북 사방을 점한 것이다.

그들은 그 상태로 계단을 걸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헤븐 가디언즈의 마스터가 있는 펜트하우스!

그 누구도 다이렉트로 펜트하우스로 올라갈 수 없었다.

“마스터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경호실 요원하나가 그녀에게 목적지를 말해줬다.

그녀의 입가에 예쁜 미소가 걸렸다.

‘그동안 헤븐 가디언즈 광주지점에 처박아놓고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네.’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기쁨과 막연한 기대가 몰려왔다.

그녀는 흥분으로 인해 자신의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특히 그녀의 심장은 아까부터 미친 듯이 두근대고 있었다.

민연서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가슴에 살짝 댔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을 통해 선명히 느껴졌다.

‘연서야! 서진을 만나러가는 게 그렇게 좋니?’

그녀는 마음속으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경호실 요원 한 명이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의 목소리였다.

경호실 요원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는 민연서를 쳐다봤다.

“들어가세요.”

경호실 요원의 말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녀의 눈에 서진의 얼굴이 들어왔다.

얼굴에 절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어서와!”

“웬일이야? 평생 안볼 것처럼 그러더니…….”

서진을 보자 반가웠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입에서는 톡 쏘아붙이는 말투가 나갔다.

그래도 기쁨과 기대가 한껏 서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의논할 일이 있어서 불렀어. 그리 앉아.”

“응.”

민연서의 얼굴이 천천히 다시 굳어졌다.

서진의 옆에 여자 한 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검고 긴 원피스를 입은 창백한 혈색의 이국인!

그녀는 그리스티나 홀린이었다.

민연서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홀린을 쳐다봤다.

마치 자신의 연적을 보는 듯한…….

홀린도 여자라서 그녀의 눈빛을 보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홀린이에요.

“민연서에요.”

홀린은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민연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딱딱한 목소리였다.

서진은 그런 민연서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뎅뎅뎅뎅…….

그때, 어디선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연서야! 내가 널 부른 이유는…….”

“지금 몇 시지?”

그녀를 부른 이유를 설명하려던 서진의 말을 끊고 민연서는 뜬금없이 시간을 물어봤다.

“응?”

“지금 몇 시냐고?”

민연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서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회의실 벽에 장식된 커다란 벽시계를 쳐다봤다.

“11시네.”

“오늘이 며칠이지?”

“9월21일이잖아. 광주지점에는 달력도 없어?”

서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에 민연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서진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서진은 직감적으로 민연서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고 흑진주 같던 눈동자는 탁했다.

민연서는 서진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이 서진! 이제 너를 떠나 보내야할 때가 왔어.”

“으음.”

그는 민연서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렇게 될 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민연서도 이제야 둘의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결정을 내렸나보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나도 미안해.”

그는 도저히 그냥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격해지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민연서가 그의 품에 스르르 안겨왔다.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았다.

어쩌면…….

이게 우리들의 마지막일지 모른다.

“חותם הדפסה של קיום!”

“뭐라고?”

민연서는 그의 귓가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였다.

서진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서진의 입술에 재빠르게 키스를 한번 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가서 잘 살아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민연서의 입 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서진은 그 표정에서 차가운 비웃음을 읽었다.

뭔가 불길했다.

서진은 즉시 뇌정을 운용했다.

그의 정수리에서 폭발적으로 뇌정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뇌정의 기운은 단번에 그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쾅!

갑자기 회의실 문이 부서질 듯 활짝 열렸다.

“까아아악!”

여인의 놀란 비명소리가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선을 돌리자 마리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리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틱톡 틱톡 틱톡 틱톡 틱톡…….”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민연서가 회색 빛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입으로 계속 초침이 돌아갈 때 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는 짓이 딱 미친 여자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응?”

그때였다.

서진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뇌정을 극한으로 발현했다.

몸에서 노란색의 서기가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스팟!

순간, 그의 몸이 허공에서 꺼지듯 사라져버렸다.

“안 돼!”

마리의 절규가 다시 한 번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팟!

그때, 서진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 사람이 툭 튀어나왔다.

그는 나오자마자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허리를 쫙 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이로드!”

“오오오! 연서야! 성공했구나.”

민연서는 허공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을 향해 극히 공손한 자세로 배꼽인사를 했다.

마리와 홀린은 놀란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회의실 밖에서 경호실 요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메딕이 침통한 목소리를 냈다.

-네놈은 신성일!

* * *

콰아아아아아!

서진의 몸은 검은 터널을 엄청난 속도로 통과하고 있었다.

뇌정을 극한으로 발현하자 시간이 극도로 느려졌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검은 터널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소환이다.’

그는 확신했다.

아니 직감적으로 그냥 알 수 있었다.

의문이 샘솟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지금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날 소환한 존재는?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그는 정신을 집중해야만했다.

멀리 하얀 빛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저곳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두운 시공간의 터널을 통과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반대로 누군가 터널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신성일!’

서진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즉시 이 모든 게 바로 신성일이 꾸민 음모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신성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서로의 공간을 침범할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라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개새끼!’

서진은 뇌정을 극한으로 운용하다 못해 한계를 넘어 폭발적으로 발현했다.

그러자 느려진 시간이 더욱 느려지며 잠시나마 거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느껴졌다.

신성일의 어깨 너머로 연구소의 모습이 보였다.

수백 번도 넘게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던 곳!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으로 화(化)했던 곳!

마수와 수도 없이 싸우다 잘리고 찢겨 재생수술을 했던 곳!

지긋지긋한 안드로이드 연구소였다.

그 모습을 보자 서진의 영혼 깊숙한 곳에 침잠해있던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서진은 이를 갈며 신성일을 노려봤다.

두 눈에서 노란 서기(瑞氣)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그의 영안(靈眼)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세계가 드러났다.

멀리는 마나를 비롯한 온갖 기운으로 만들어진 우주의 모습!

가깝게는 인두겁을 쓰고 있는 신성일의 진체였다.

짙은 회색의 피부!

피처럼 붉은 눈!

머리에 우뚝 솟아난 두 개의 뿔!

‘저건 뭐지? 혹시 마족!’

어디선가 비슷한 모습을 봤다.

아마 유니언 본부에서였을 것이다.

마족의 행성이라는 시드라행성에 대한 정보를 열람했을 때…….

맞다.

바로 그때 본 모습이다.

그렇다면 신성일은 인간이 아닌 마족?

그제야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서진은 자신을 스치며 지나가는 신성일을 도저히 그냥 이대로 보내줄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신성일을 잡아보려고 팔을 뻗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자신의 팔은 너무나도 느리게만 움직였다.

설사 팔이 닿는다고 해도 신성일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다.

할 수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성일의 심장을 향해 ‘영혼의 아공간’을 소환했다.

그런데…… 하늘의 도우심일까?

신기하게도 서진의 EX급의 고유능력!

영혼의 아공간이 신성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됐다.’

서진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팟!

순간,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던 감각이 바로 풀려버렸다.

모든 감각이 원상태로 빠르게 돌아왔다.

서진의 몸은 이미 안드로이드 연구소에 빠져나와 있었다.

시공간의 어두운 터널과 신성일!

어느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서진은 급히 손바닥 위에 영혼의 아공간을 열었다.

철퍽!

신성일의 심장은 보이지 않고,

피에 젖은 살덩이 한 움큼만 손에 잡혔다.

그는 힘껏 주먹을 꽉 쥐었다.

살덩이가 단숨에 짓눌려 터지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뚝뚝 피를 흘려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서진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살기 찬 그의 함성이 피어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우르르르릉 쿠르르르릉…….

대지가 진동하고 안드로이드 연구소 건물이 흔들렸다.

견디다 못한 안드로이드 연구소 한쪽 지붕에 쩍쩍 금이 가더니 결국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쿵!

와르르르 우당탕 쿵탕!

그제야 서진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멈추고 씩씩댔다.

“시발, 좆 갔네!”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망할 놈의 대한민국을 떠나 잘살아보려고 과거로 회귀했다.

나라도 살리고, 이제 좀 떵떵거리며 행복을 누려보나 했더니…….

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어느새 그는 다시 그 빌어먹을 미래로 회귀를 해버렸다.

지금까지 기울인 그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제기랄! 지금 나 영화 찍은 거야? 빌어먹을!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해버린 거 맞네.”

생각해보니!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SF영화처럼…….

자신도 정말 미래로 돌아와 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아니 앞으로 어떻게 살지?’

털썩!

서진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먼지가 가득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다 포기하고 싶었다.

확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폭포수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러자 뇌정이 곧바로 활동을 개시했다.

아무래도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모양이다.

진짜 고마운 뇌정이다.

뇌정이 운용되자 그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하나씩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 이제 더 이상의 고구마는 없습니다. 마지막 고구마를 던지고 나니 제 속이 다 시원해지네요. 제 스타일에 안맞게 저도 오래 참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전부 쓱싹! (그럼 저는 이만 다음편을 쓰기위해 달려갑니다. 후다다닥!)

즐겁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수정: 9/9/0459 - 교정 & 교열 및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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